대중의 마음은 참으로 대중을 잡기가 어려운 것이어서, 그것을 얻고자 하는 이들로 하여금 고뇌를 거듭하게 만든다. 그래서 정치인·기업인·문화예술인 등은 자신들의 기량을 한껏 쥐어짜내 '작품'을 만들어 내는데, 때로는 그 '의도'가 제대로 먹히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다. 그런데 반대로 전혀 의도하지 않은 부분이 소위 '대박'을 터트리기도 한다.

'대중문화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영화에도 그런 사례는 매우 많다. 대표적인 예로 몇 년 전 동명의 고전 소설을 영화화한 '레 미제라블'을 들 수 있다. 당시 영화의 엄청난 흥행으로 OST의 인기도 대단했는데, 그 중 최고는 단연 '혁명의 노래'인 "Do you hear the people sing(민중의 노래가 들리는가)?"이었다.

영화 '레 미제라블'에서 혁명을 노래하는 장면.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줬지만, 사실 '혁명'은 이 작품의 주제와 거리가 멀다.
영화 '레 미제라블'에서 혁명을 노래하는 장면.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줬지만, 사실 '혁명'은 이 작품의 주제와 거리가 멀다.
미리엘 신부가 은식기를 훔친 장발장을 용서하는 모습. '레 미제라블'의 최고 명장면은 사실 이 부분이 아닐까.
미리엘 신부가 은식기를 훔친 장발장을 용서하는 모습. '레 미제라블'의 최고 명장면은 사실 이 부분이 아닐까.

하지만 이에 대해 양화진문화원 명예원장인 이어령 박사는 "명명백백한 기독교적 메시지를 주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모두가 혁명만을 인정할 뿐 이를 기독교적인 사랑으로 해석해낸 사람을 보지 못했다"며 "바리케이트를 치고 소리 지르면서 노래를 부르는 데서만 감동을 얻지만, 사실은 용서와 구원의 이야기가 <레미제라블>"이라고 했다. 당시 혁명을 반대(反)하자는 말이 아니라, 혁명 이상의 것 즉 예수의 사랑을 가지지 못해서 그 혁명이 실패했음을 위고는 말하고 있다는 것.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화려한 부활을 알렸던 '겨울왕국'의 경우 원래 주인공인 안나보다 조주연 격이라 할 수 있는 엘사가 훨씬 많은 인기를 얻어 버렸다(실제 엘사를 주연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더 많을 정도로). 엘사가 워낙 화려하고 역동적으로 보이는 부분들을 많이 맡고 있는 데다가, 결정적으로 역대 최고의 영화 OST 중 하나로 꼽히는 'Let it go'를 부른 것도 크게 작용했다(그냥 한 마디로 외모지상주의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원작 '눈의 여왕'에서 엘사는 마녀였지만, 'Let it go'가 워낙 밝은 느낌의 곡으로 나와서 제작진이 그에 맞게 캐릭터와 스토리를 변형시켰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노련한 디즈니 측은 이 같은 결과를 충분히 예상하고 또 의도한 듯, 처음부터 이야기의 주제와는 관계없는 'Let it go'(엘사가 자신을 미워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피해 도망간 뒤, 자신만의 성을 쌓고 나서 "날 내버려 두라"고 부르는 노래다)를 메인 테마로 정하고 엘사를 적극적으로 마케팅에 앞세우기도 했다.

"'벤허' 하면 '전차신'이지!" 여러분의 생각도 그러한가? 

자, 그럼 이제 '벤허' 이야기를 해 보자. 

벤허의 친구에서 원수가 된 메살라.
벤허의 친구에서 원수가 된 메살라.

루 월리스(Lew Wallace)의 19세기 소설 '벤허: 그리스도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 영화 '벤허'는 아카데미 역사상 최다 수상에 빛나는 명작이다. 주인공 벤허는 서기 26년 로마제국 시대를 살던 예루살렘의 당대 최고 유대 귀족이었는데, 실수로 터진 사고와 친구인 메살라의 배신으로 자신은 노예로 팔려가고 가족은 생사를 알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벤허는 노예선에서 로마군 집정관을 구해 주면서 그의 양자가 되고, 이제는 원수가 된 메살라를 상대로 전차 경주에서 승리(메살라는 이 경주에서 비열한 수를 쓰던 도중 오히려 자기가 치명상을 입어 사망한다)하며 '복수'에도 성공하고 유대인들의 '영웅'으로 떠오른다.

전차 경주에서 승리하고 메살라에게 복수까지 성공한 벤허가 본디오 빌라도 총독에게 월계관을 받는 모습. 이때 빌라도는 벤허에게
 전차 경주에서 승리하고 메살라에게 복수까지 성공한 벤허가 본디오 빌라도 총독에게 월계관을 받는 모습. 이때 빌라도는 벤허에게

대중이 기억하는 벤허 이야기는 대부분 여기까지다. 또 이 영화의 백미이자 영화사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부분도 바로 '복수'와 '영웅 탄생'을 상징하는 '전차신'이다. 하지만 기독교 고전인 '벤허'가 진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적어도 기독교인이라면, 이 점을 좀 더 주목해서 영화를 봐야 하지 않을까.

벤허는 '복수' 이후 성취감과 쾌감에 젖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더 큰 분노와 복수심에 불타오르게 된다. 간신히 찾아내 재회한 어머니와 여동생이 한센병(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것이라 여겼던)에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과 함께 나오던 벤허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 모습을 보며 자신을 괴롭히던 분노와 복수심에서 자유를 얻는다. 또한 예수를 통해 어머니와 여동생의 한센병이 치유된 것까지 경험하고는 모두 함께 기독교로 귀의한다.

다행히도 이번에 개봉하는 '벤허' 무삭제판 원작에서는 '용서'와 '그리스도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기존 여러 차례 개봉된 영화 <벤허>에서는 지나치게 긴 러닝타임 때문에 해당 장면들이 삭제되거나 편집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주인공 '벤허'가 고난에 처했을 때 예수님에게서 물을 대접받고, 훗날 고난을 극복한 벤허가 십자가를 지신 채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시는 예수님을 다시 만나 물을 건네는 장면 등이 그대로 등장하면서 큰 은혜를 전해 준다.

벤허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향하는 예수와 마주치는 모습.
벤허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향하는 예수와 마주치는 모습.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화려하고 웅장한 '전차신'을 보며 흥분하고 전율을 느끼는 자신을 정죄(?)하거나 억제할 필요는 없다. 이 '전차신'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달까? 제작진이 정성껏 준비한 영화적 장치는 그 자체로 즐기면 된다. 1만 5천여 명이 4개월간 연습해 무려 5주 동안 촬영했다(CG 없이! 100% 수작업으로!)는 이 장면은, 최신·최고의 영상 및 음향과의 조화를 통해 더욱 압도적으로 다가온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직접 보고 듣지 않고는 절대 실감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