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피를 흘리고 있다.' 브라질의 한 10대 소녀가 들고 있는 표지판에 포르투갈어로 적힌 글씨다. 그녀는 성폭행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기 위해 리우데자네이루 시내에 서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어느 날 이 소녀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한 빈민가에 있는 남자친구의 집에 놀러 갔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30여 명의 남성들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 이 영상이 트위터에 유포되면서 브라질 사회가 발칵 뒤집어졌다. 경찰은 즉각 영상을 삭제하고, 유력한 용의자 4명을 체포했다.
그러나 수사가 뒤늦게 시작되는 바람에 결정적 증거 확보가 어려워져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게다가 남성 경찰관이 면담 도중 부적절한 질문을 해, 더 이상 경찰과의 면담을 이어갈 수 없었다.
일각에서는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린다. "범죄가 잦은 빈민가에 겁 없이 함부로 들어간 피해자도 잘못이 있는 것 아니냐?" 이쯤 되다 보니 브라질 각지에서 수천 명의 시위대가 구호를 외치면서 연일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피해 소녀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브라질 사법체계 하에서 정의를 기대할 수 없다." 법에서 정의를 찾을 수 없고 해결 방안을 모색할 수 없다면, 희망은 사라진 셈이다.
최근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에 대한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차별금지법을 통과시키면 '동성연애와 결혼'이 허용된다. 차별금지법을 통과시키려는 자들은 두 가지 논거를 제시한다. 하나는 동성연애와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것은 세계적인 변화와 흐름이라는 게다. 네덜란드, 미국, 영국을 위시한 유럽 국가들이 동성애를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 세계 237개국 중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나라가 21개국이라고 한다. 그러니 우리도 뒤지지 않으려면 그 길을 가야 한다는 게다.
다른 하나는 대한민국 헌법 정신을 봐도 그렇다는 것이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며,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성소수자들의 인권이 옹호되는게 헌법 정신에 옳다는 게다. 그러니 동성연애와 동성결혼은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는 순간, 동성연애와 동성결혼이 법적으로 가능해진다.
6월 11일이 되면 대한민국 수도인 서울 덕수궁 대한문 광장에서 소위 '알몸 퍼레이드'인 퀴어문화축제가 벌어질 예정이다. 길거리 한복판에서 게이들과 레즈비언들이 엉덩이를 드러내고, 속옷만 입은 채 춤을 추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에 의하면 남성과 여성의 결혼이 법제화되어 있다. 역사는 명확하게 보여 주었다. 성적으로 문란했던 소돔과 고모라, 고린도, 로마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에이즈의 발병 원인에 대한 여러 가지 분석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동성연애와 같은 문란한 성행위가 에이즈를 확산시켰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다. 만약 내 자녀가 동성연애를 하고 에이즈에 걸린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동성연애로 인해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 사람들의 실상에 대한 영상과 강연을 보고 들은 적이 있는가? 그런데도 하나님의 법에서 벗어난 길을 권장할 건가?
그런데 더 가슴 아픈 현실이 있다. 믿음의 세계 속에서 하나님의 법이 외면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이시지만, 사람들이 교회의 머리 노릇을 하려고 한다. 목사가 장로가 머리 노릇하려고 싸운다. 하나님의 법은 서로 종노릇하라고 하지만, 서로 주인이 되어 큰소리치려고 한다.
서로 비난하고 정죄하는 일이 허다하다. 하나님의 가족이라고 하면서 서로 얼굴을 붉히면서 다투고 싸운다. 피차 망하는 길이라고 하지만, 겁내지 않고 그 길을 걷는다. 교회에서 안 되니까 이제 사회 법정까지 갖고 나가 교회에 먹칠을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 그리고서 전도한다고 애쓴다. 사람들이 전도지를 집어 던지는데도.
다시 한 번 점검해 보자. 우리가 왜 하나님의 법 안에 머물러야 하는지.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우리를 언약 백성으로 삼으셨다. 보배롭고 존귀한 존재로 대우하셨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출 19:5-6)."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8-9)."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라'고 요구하신다. 하나님의 법을 지키라는 명령은 우리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려는 게 아니다. 복을 주시기 위해서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 20:6)."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멘, 아멘'이라고 응답했다. 하나님의 법대로 살겠다고 굳게 약속했다. 그러나 언약 백성들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포로로 끌려갔다.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의 법을 떠난 백성들에게 '말씀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호소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들을 철저하게 점검해야 한다. 그리고 과감하게 돌이켜야 한다. 돌이켜 하나님께로 나아가면 살 것이고, 그대로 머물면 죽을 것이다.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법 가운데 머물러야 한다.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2차 귀환을 했을 때, 느헤미야가 3차로 귀환을 했을 때, 언약 백성들은 이방인과 결혼을 했다. 그러자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영적 갱신운동을 일으켰다. 이방민족과 혼합하여 정체성을 상실한 백성들을 책망하고, 돌이키도록 촉구했다. 이미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고 심지어 자녀까지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가정을 깨뜨렸다. 인간적인 정보다 하나님의 법을 지키기 위해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럼에도 인간은 연약해서 하나님의 법대로 살아가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보혜사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법대로 살아가도록 도우신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겔 36:26-27)."
나의 몸부림보다 성령의 도우심을 입어야 한다. 강인한 의지와 투지보다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한다. 번뜩이는 지혜보다 성령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인간적인 생각과 경험보다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한다. 성령으로 굳은 마음, 거친 마음을 부드러운 마음으로 기경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