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인공지능, 무엇이 다른가
학창 시절 군복무를 마치고 4학년에 복학하여 교내 축제 중 바둑대회에 나간 적이 있다. 당시 바둑을 유난히 즐기던, 지금은 농협 지부장으로 일하다 은퇴한 친구의 권유 때문이었다. 친구는 중도 탈락하고 필자는 쟁쟁한 유단자들을 물리치고 준결승까지 진출하였다. 그때 사단이 났다. 4강 진출 유단자들이라 바둑 복기가 가능할 거라 전제하고, 지역 신문 기자가 준결승부터는 기보를 신문에 연재하겠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혹시 바둑을 복기하지 못하면 창피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심리적 압박감에 그만 초반의 절대적 우세를 그르치고, 도저히 질 수 없던 바둑을 저력 있는 후배에게 역전패당하고 말았다. 이렇게 사람에게는 본질적 실력과 구별되는 또 다른 영역이 있다. 즉 인간은 지적 능력뿐 아니라, 결정론적 기계와 구분되는 감정과 의지를 가진 인격적 존재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조금 다르다. 다분히 잘 정리된 절차를 따라 나열된 알고리즘(algorithm)이라 알려진, 전문가가 만든 프로그램을 따라 일종의 신경망 작업을 수행한다. 따라서 사람과 인공지능이 겨루는 모든 게임의 승패를 예측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승패의 결과는 인간 측의 결정적 변수(실수)나, 아니면 인공지능(인공지능을 만든 전문가)이 얼마나 상대방 사람보다 더 철저하게 준비했는가가 결정할 뿐이다. 이미 지난 1997년 IBM이 개발한 인공지능 '딥블루'는 체스 세계 챔피언과의 대결에서 승리했다. 같은 해 오셀로 게임에서도 인공지능 '로지스텔로'는 세계 챔피언을 상대로 완승을 거뒀고, 2011년 IBM이 개발한 인공지능 '왓슨(Watson)'은 미국 인기 퀴즈 프로그램 역대 우승자에게 승리했다. 체스와 오셀로, 퀴즈 분야를 인공지능이 석권해 인간 지성을 초월한 것이다. 체스, 게임, 퀴즈 등이 바둑과 비교할 때 좀 더 구조가 단순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바둑은 이들과 다르다. 네모꼴 반상 19×19=361점에서 흑백을 가지고 집의 많고 적음을 겨룬다. 지금까지 동일한 화보가 없었다고 할 만큼, 그 경우의 수와 변수가 다양하다. 수학자들은 그 경우의 수가 우주의 원자 수보다도 훨씬 많다고 하니, 수학이 말하는 무한대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인공지능이 지금까지 전문 기사들을 정복하지 못한 면이 있다. 바둑을 일컫는 말이 아주 다양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 중 '수담(手談)'이라는 표현은 손으로 나누는 대화라는 뜻이다. 인공지능과 바둑 대결이 가능한 이유다. 필자가 중풍으로 수족을 움직이는 것과 대화가 어려워진 아버지께, 아주 어린 시절 '수담'으로 바둑을 배울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었다.
과거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인공지능은 겨우 7-8급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이들과 달리 구글이 2014년 인수한 영국의 딥마인드(DeepMind)가 개발한 인공지능 '알파고(AlphaGo)'는, 학습할 수 있는 심층 신경망 기술을 채택하여 수많은 프로 기사들의 기보를 연구하고 스스로 24시간 대국을 통해 끊임없이 기력을 향상시켰다. 즉 알파고는 게임에 따라 소프트웨어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게임에 응용해서 쓸 수 있는 인공지능인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기력이 급상승한 '알파고'는, 바둑의 '경우의 수'가 무한대로 많아서 사람을 이기기는 불가능할 거라는 전문가들의 판단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급기야 최근 중국계 유럽 바둑 챔피언 판 후이(Fan Hui) 2단과의 대결에서 5대 0 일방적 완승을 거두었다. 이 내용은 2016년 1월 28일 학술지 Nature에 실렸다.
이제 이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에서 승패의 결과는 별 의미가 없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뇌를 능가하는 바둑 분야의 '특이점(Singularity)'이 현실화되는 것을 앞두고 있다는 것이다. 한때 천하제일의 바둑 기사였던 이세돌 9단도 자신과 인공지능과의 대결이 지니는 역사적 의미와 중요성(바둑에 있어서 특이점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를 알고, 기꺼이 이번 세기적 대결에 임했음을 밝혔다.
'특이점'이 주는 의미
'특이점'은 과학 혁명이나 디지털 시대의 시작처럼, 이 세상을 다시 한 번 획기적으로 뒤바꿀 가능성이 있다. 그러한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를 정확히 예측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는 의사·약사보다, 변호사나 법관보다, 교수나 회계사보다 더 많은 지식과 데이터로 이들 전문인들의 존재를 미약하고 초라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의사나 법학자나 교수들은 다양한 일들로 너무나 바쁘다. 하지만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는 다르다. 졸지도 자지도 않으며 의사나 법학자나 경영자나 교수들보다 훨씬 더 빠르게 최신 지식과 논문들을 수집하고 읽고 판단하고 분별하고 정리해, 정확하게 실수 없이 처방하고 판단하고 대중을 가르칠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똑똑한' 인공지능들은 이미 사람 대신 병원, 의학연구소, 제약회사, 스포츠 클럽, 재벌, 홍보 회사 등에서 일하고 있다. 이렇게 미래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등의 디지털 환경은 인류의 먹거리·직업 등 삶에 엄청난 변화를 초래하고, 급기야 신앙과 교회에도 변혁의 회오리를 일으킬지도 모른다. 교회는 진리와 원리, 본질과 비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과 만반의 준비를 하여, 새로운 세상 상황 앞에 흔들리는 신자들을 바르게 이끌어야 한다.
'특이점'에 대한 천문학자 쇼스탁의 충격적 주장(외계인은 인공지능?)
미국 세티(SETI, the 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 외계지적생명체탐사본부)의 천문학자 세스 쇼스탁(Seth Shostak) 박사는 "인류가 조우하게 될 외계인(aliens)은 생화학적 룰(rules)을 따르는 생명이 아닌 '지각 능력이 있는 기계'(thinking machines)일 가능성도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세티는 우주 바깥에서 날아오는 무선 전파 신호를 수집해 지성을 갖춘 외계 생명체를 탐색하는 국제 과학 연구 모임이다.
쇼스탁은 인류가 2025년 이전에 외계 생명체와 전파로든 어떤 식으로든 조우(遭遇) 가능하다고 늘 주장하는 과학자이다. 쇼스탁은 "드레이크 방정식에 따르면, 우리는 몇십 년 혹은 25년 안에 외계인을 만날 수 있다"면서 "나는 영화 속 ET를 실제로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프랭크 드레이크 박사가 고안한 드레이크 방정식(Drake equation)은, 우리 은하(Milky way Galaxy) 안에 존재하면서 우리와 지적 교신의 가능성이 있는 외계생명체 수를 추정·계산해 보는 것이다. 항성계의 속도, 생존에 적합한 행성, 행성이 생명체를 형성하는 비율 등을 계산할 수 있다. 아직 이 방정식의 정확한 답은 알 수 없다. 천문학자들은 외계인이 거주하는 행성 숫자가 적게는 100에서 많게는 100만 사이일 것이라고 각각 추정할 뿐이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훗날 외계에서 신호를 받을 수는 있어도, 그들이 하는 말을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과학은 우리 수준보다 훨씬 높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쇼스탁 박사는 국제우주학회(IAA) 학술지 악타 아스트로노티카(Acta Astronautica) 기고에서 "외계인이 무선통신 기술을 갖췄다면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 개발까지도 오래 걸리지 않았을 것"이라며 "(외계인 탐사를 하다가) 생물학적 생명체보다 인공지능체를 발견할 확률이 더 크다"고 했다. 세티 연구원 대다수는 외계인도 상식적 의미의 '생명체', 즉 수명이 한정돼 있고 자손을 번식하며 진화 과정을 겪는 유기체일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는, 우주 안에는 인간을 비롯한 지구 생물과 겉모습 뿐 아니라 생화학적 구조까지도 전혀 다른 생명체가 있을 수 있다는 주장도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다.
쇼스탁 박사는 "생명체가 외계와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 만큼 진화하기까지에는 엄청난 시간이 걸리겠지만, 기술 발달의 속도는 그 생명체의 진화 속도보다 훨씬 앞서갈 수 있다"고 흥미로운 추정을 한다. 그는 '인공지능 에일리언'은 물질과 에너지가 충분한 곳을 찾아 이주생활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세티도 뜨겁고 어린 새내기별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영국 리즈메트로폴리탄(Leeds Metropolitan)대학의 세티 연구원인 존 엘리어트(John Elliott)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쇼스탁 박사가 세티 커뮤니티 안에서 아직은 일반적이지 않은 관념에 더욱 굳건한 발을 내디뎠다"며 "50년간 외계 전파 신호를 관찰해 오면서, 세티는 인류 과학 기술의 진보가 외계 문명체의 발달 방식을 이해하는 데 좋은 지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외계 메시지의 탐색과 해독에 있어 기술적 난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쇼스탁의 주장은 에일리언 탐사의 새로운 방향을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의 나사(NASA)나 세티(SETI)는 언론과 대중의 관심이 잠잠해질 만하면 외계 생명체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시키는 행성 관측 자료나 주장들을 꾸준히 제공하여 왔다. 대중의 관심을 유도하는 것은 좋으나, 이들 대부분은 늘 실체 없는 일방적 추정일 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을 통한 관심 유도가 혹시 이들의 재정 확충 필요성 때문은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세티는 나사의 재정 지원을 받는 외곽단체다. 150여 명의 연구원들은 우주 생물학과 외계 지성이 보내올지도 모르는 전파를 연구하면서, 늘 나사에 그 연구 성과를 제공해야 한다. 그 중 우주 생물학자들이 대부분이고, 쇼스탁과 같은 전파 탐색 전문가는 일부다. 세티의 재정과 예산은 늘 유동적인 것이다. 아무튼 그리스도인이든 비그리스도인이든, 외계에 대한 우리 인류의 관심은 끝이 없는 것 같다. 계속되는 연구 결과를 흥미를 가지고 지켜 볼 필요가 있다.
바둑에 대한 인공지능의 '특이점'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의미
언젠가 바둑에 있어 인공지능이 인간 최고 기사를 물리칠 날('특이점')이 온다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 날은 상상보다 훨씬 더 빨리 오고 있음을 우리는 체감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인공지능이 우리 인간을 넘어서서 자신을 스스로 복제하고 진행하여 가는, '자기 주도적 개체'로의 진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이란 여전히 인공지능을 만든 뛰어난 인간이 만든 '알고리즘'을 따라 움직이는 '결정론적 기계'일 뿐인 것이다. 물론 인공지능이 그것을 만든 인간을 뛰어넘는 '특이점'이 올 수 있다고 주장하는 과학자도 있기는 하다. 보통 사람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외삽(外揷)이다.
바둑에는 정맥과 속맥이 있다. 전문 기사들이 두는 수들은 정맥이고, 유급자들이 두는 수들은 대개 속맥이다. 유급자들의 바둑 실력이 수 만 판을 두어도 잘 늘지 않는 이유는, 자신이 두는 수가 틀림없이 맞다고 여기는 자기 착각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속맥에 익숙한 하급자들은 바둑 수십 년을 두어도 이렇게 정맥을 잘 모른다. 그게 바로 '사람 보기에 옳은' 속맥이다.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이다(잠 14:12; 16:25). 조국 교회가 마치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사람 보기에 옳은 것'을 옳다고 착각하며 사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조국 교회는 얼마나 힘써 하나님을 알려고 했으며(호 6:3),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있는가(벧전 3:15)? 혹시 속맥처럼 보이는 교회는 아닌가?
조덕영 박사는
환경화학공학과 조직신학을 전공한 공학도이자 신학자다. 한국창조과학회 대표간사 겸 창조지 편집인으로 활동했고 지금은 여러 신학교에서 창조론을 강의하고 있는 창조론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가 소장으로 있는 '창조신학연구소'(www.kictnet.net)는 창조론과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로 구성돼 목회자 및 학자들에게 지식의 보고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글 역시 저자의 허락을 받아 연구소 홈페이지에서 퍼온 것이다. '기독교와 과학' 등 20여 권의 역저서가 있으며, 다방면의 창조론 이슈들을 다루는 '창조론 오픈포럼'을 주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