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회 창조론오픈포럼이 15일 서울 합정동 100주년기념교회 사회봉사관에서 개최됐다. 이날 포럼은 학자와 전문가들 뿐 아니라 출판 관계자와 평신도 등 창조론에 관심을 가진 다양한 이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첫 발표는 공동대표인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장)가 '서평: 신재식, <예수와 다윈의 동행>'이라는 제목으로 전했다. 그는 "한국 신학계에는 진화론을 수용하는 입장과 부정하는 두 가지 입장이 있다"며 "호남신대 신재식 교수는 전자로, '한 손에는 성경을, 다른 손에는 종의 기원을'이라며 다윈과 기독교 신학의 동행이 가능하다고 말한다"고 소개했다.
◈"기독교, 진화론으로 담을 수 없는 계시·신비·초월의 영역"
조덕영 박사는 "종교와 과학의 관계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하고 종교와 과학, 그리스도교와 진화론의 공존 가능성을 모색해 온 저자는, 과학의 시대에 종교는 과학, 진화론의 성과를 읽고 받아들여 그리스도교 신학을 발전시키지 않으면 현대 사회에서 설 자리를 찾을 수 없다고 진단한다"며 "초자연적 인격신의 존재를 철저하게 배제한 채 우주와 생명의 진화와 현재를 설명해 온 대폭발 우주론과 다윈주의적 진화생물학의 성과를 기반으로 새로운 신학을 전개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재식 교수는 책에서 "그리스도교의 2000년 역사 속에서 신학은 언제나 새로운 시대 상황과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워져야 했다"며 한국교회가 성장을 멈춘 아주 중요한 이유로 종교와 과학의 대화에 대한 무관심, 한국교회 안에 만연하고 있는 지성주의와 반과학주의 등을 꼽았다. 창조과학 운동 같은 반진화론 운동이 종교 언어와 과학 언어를 동일한 선상에서 비교하고 평가하는 오류에 빠져 있고, 진화론을 선택하는 순간 신앙이 배제된다고 생각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는 것.
조 박사는 "그러나 다윈은 결코 진화론을 다룸에 있어 가치중립적이지 않았고, 진화는 곧 하나님 없는 무심한 세계를 보여 주는 결정적 표지"라며 "성경에 대한 문자적 집착이 큰 화근을 불러일으킨 것처럼, 세속의 진화론도 자연주의 속에서 너무 오염돼 버렸다. 성경을 과학 교과서로 보는 것도 경계해야 하나, 세속 과학에 편승하여 신앙을 계몽하려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반박했다.
그는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늘 예수 그리스도의 수사학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는 놀랍게도 승리의 길, 제도권의 예루살렘이 아닌 스스로 비움(케노시스)의 길을 따라 척박한 '갈릴리와 납달리'를 영화롭게 하러 오셨다"며 "그곳에서 예수님은 낮은 자, 소외된 자, 병든 자, 귀신 들린 자들과 함께했다. 그 길은 도태의 길이자 부적응자의 길이었는데, 소위 다윈이 말하는 자연선택에 결정적으로 불리한 변방의 '루저들'과 '약자들'의 편에 섰던 예수님께서, 과연 강하고 적응하는 자가 결국 승리한다는 약육강식·적자생존의 진화론을 편들었을까"라고 했다.
조덕영 박사는 "오늘날 진화론은 단순한 생물학 이론이 아닌 기원, 우주, 별, 땅,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정신분석·심리학, 심지어 종교 등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을 미치고, 기원·발전·발달·변이·전개·과정·진보 등의 언어를 이미 우군으로 확보한 견고한 이론으로, 마치 개선장군처럼 종교인들에게까지 자신들의 승리의 월계관을 내밀고 있다"며 "그러나 진화론이 승리했다고 외치는 것이 기독교가 패배했음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물론 기독교도 하나님이 주신 세상의 질서를 연구하는 하등 학문인 과학을 전혀 부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그러나 진화론의 수용은 자연적 진화론의 틀 속에서 기독교 특유의 일부 역사적 도그마틱한 부분들이 제거되면서 다원주의에 이르는 지름길을 자연스럽게 제공하게 된다"며 "이것은 기독교를 평범한 여러 종교 가운데 하나로 전락시킬 수 있는 위기 상황을 스스로 제공하는 위험을 노출한다. 초월을 믿는 신앙은 분명 다르다. 세속적 자연주의 진화론의 무비판적 수용이 또 다른 극단을 야기하는 것은 아닐까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조 박사는 "이제 과학적 창조론(창조과학)과 자연주의 진화론이 아닌, 복음과 함께하는 제3의 길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며 "그것은 단순히 진화는 과학이고 과학은 신앙을 계몽할 수 있다는 또 다른 이념의 길을 제시하려는 유혹이 아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신진화론이든, 과학적 창조론이든, 지적설계든 여전히 제한적이고, 이들 모두는 내재(內在)가 초월(창조)을 계몽할 수 있다는 현학적 착각의 위험을 내재한다. 이것들은 모두 어색한 기독교 사상일 뿐"이라며 "성경적 창조신앙의 기독교는 내재의 미숙한 진화론으로는 쉽게 담을 수 없는 계시와 신비와 초월의 영역을 포함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100주년기념교회 사회봉사관에서 포럼이 진행되고 있다. |
◈"현재 주류인 표준 대폭발이론, 틀린 것으로 판명돼"
권진혁 박사(영남대 물리학과)는 '대폭발, 다중우주론, 그리고 우주의 창조'라는 주제로 우주의 기원에 관한 최신 이론들을 소개했다. 그는 "천문학의 발전을 통해 우리는 우주에 대해 놀라울 만큼 많은 지식을 얻고 있지만, 아직도 우주가 언제 어떻게 시작됐는가 하는 중요한 질문에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다"고 전했다.
권 박사는 "지난 몇십 년간 대폭발이론은 마치 우주의 기원에 대해 명쾌한 설명을 할 수 있는 완성된 이론인 것처럼 알려져 왔다"며 "일부 신학도 대폭발이론과 조화될 수 있는 관점을 세우려 노력하고 있지만, 최근 여전히 대폭발이론으로 풀리지 않는 여러 우주의 수수께끼가 발견되기 시작하자 대폭발 자체를 의심하는 전문가들도 많이 나오는 등 우주의 기원에 대해서는 상황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 우주 속에는 아직까지 정체를 전혀 알 수 없는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가 각각 23%, 72%나 되어, 우주의 95%를 모르고 있다"며 "이 상황에서 제기되는 우주기원론은 하나의 임시적이고 가설적인 추론일 뿐으로, 정리하면 표준 대폭발이론은 틀린 것으로 밝혀졌고 우주기원론은 과학적 검증이 불가능한 다중우주론으로 완전히 건너갔다"고 설명했다.
권진혁 박사는 "이처럼 우주의 기원 문제는 풀지 못한 문제가 푼 문제보다 훨씬 많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모르는 것은 아직 모른다고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특히 우주와 생명의 기원 영역으로 들어갈수록 과학적 증거는 부족해지고, 과학자의 세계관이나 종교적 입장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오늘날 첨단이라고 자랑하는 현대의 과학 지식도 수십 년이 지나면 구식으로 변모해 있을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과학이란 항상 변하는 잠정적 이론"이라며 "모든 학문이 그렇듯 과학도 궁극적 기원 영역에 들어가면 철학이나 신학적 영역으로 바뀌게 되므로, 하나님이 과학적 영역에 포함될 수 없듯 창조의 과정이나 우주의 궁극적 기원의 문제는 과학의 영역을 벗어나게 된다"고 역설했다.
그는 "순수한 논리적 측면에서 볼 때, 무신론은 절대로 유신론보다 유리하지 못하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신보다 더 많은 지식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며 "하나님의 창조는 본질적으로 과학과 인간의 이해 범위를 벗어나는 높은 영역에 있고, 창세기는 그것을 모든 시대의 사람들이 가장 알아듣기 쉬운 언어로 간결하게 말하고 있지만, 그 속에는 시대를 초월한 영원한 진리가 들어 있다"고 덧붙였다.
이 외에도 허정윤 박사(창조론오픈포럼 공동대표)가 '과학적 유신론 정립을 위한 노자의 자연 이해 연구', 양승훈 박사(VIEW)가 '아담의 창조연대'와 '방사능 이전의 창조연대', 박찬호 박사(백석대)가 '몰트만의 창조론: 신적 자기 비움(Zimzum)을 중심으로'를 각각 발표했다. 포럼 후에는 양승훈 박사의 <대폭발과 우주의 창조(SFC)> 출간 기념 북콘서트가 열리기도 했다.
창조론오픈포럼은 창조론과 무신론적 우연론 등의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 과학자·신학자·과학사학자·과학철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창조론 전문가들이 함께하는 '오픈' 모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