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트라그라마톤: 테트라그라마톤은 숫자 "넷"을 의미하는 "테트라"와 알파벳을 의미하는 "그라마"의 합성어로써 하나님의 존함을 יהוה로 표기하는 것을 말한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이 존함은 너무도 거룩했기에 다른 단어들과 분류되어야만 했다. 그래서 그 방법으로 테크라그라마톤을 발음하지 않고, 꼭 발음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주"라는 의미인 "아도나이"나 "그 이름"이라는 의미의 "하 셈"으로 대치하여 발음했다. 히브리어에 모음을 기표화 하기 시작한 이후에도 이러한 그들의 태도는 이어졌다. 테트라그라마톤에는 모음을 붙이지 않음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읽기를 기피하도록 격려했던 것이다. 유대인의 문헌을 보면 테트라그라마톤을 발음하며 부모를 저주했을 경우에는 반드시 죽어야만 했고, 테트라그라마톤을 발음하는 자는 아무런 상급 없이 사후의 세계를 맞이한다고 기록됐을 정도니 하나님의 존함이 얼마나 거룩하게 여겨졌는지 엿볼 수 있다.

노미나 세크라: 몇몇의 학자들은 이러한 태도가 신약에 와서 사라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발견되어지는 사본들은 그들의 주장과 사뭇 다르다. 신약시대의 성도들은 구약시대의 성도들의 테트라그라마톤의 정신을 이어 받아 새로운 모습으로 성경필사에 적용했는데, 그것이 바로 노미나 세크라이다. 노미나 세크라란 하나님의 존함이 약자로 쓰인 것을 말하는데, 예를 들자면 "하나님"의 주격형태가 θεός라면 노미나 세크라는 앞글자 θ와 마지막 글자인 ς를 이은 후 단어 위에 선을 붙여 다음 처럼 표기한다: θ̅ς̅. 이것이 신약 시대의 성도들이 하나님의 존함을 높이는 방법이었다.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신약 성경의 사본을 예를 들도록 한다.  2세기에서 3세기 사이에 쓰여진 사본들 중P1, P9, P13, P28, P39, P49등이 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존함이 노미나 세크라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우선 P9을 예로 들어 보겠다.  아래의 그림을 보라.

 

파피러스 9에 기록되어 있는 구절은 요한일서 4:11~12, 14~17의 부분이다.
(Photo : ) 파피러스 9에 기록되어 있는 구절은 요한일서 4:11~12, 14~17의 부분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하노니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이 구절에 등장하는 "하나님"이라는 단어는 동그라미 친 곳에서 볼 수 있듯이 θεός에서 θ̅ς̅나  χ̅θ̅ς̅로 축약된 노미나 세크라로 되어있다.  이것이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높이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예수님의 존함: 이러한 사실을 알고 3세기 이전의 성경 사본들을 연구해 보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예수님의 존함까지도 노미나 세크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크게 세 가지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1) 처음 두 개의 알파벳으로 축약되어 윗 선과 함께 나타나거나 (2) 처음과 나중의 알파벳 두 개로 축약되어 윗 선과 함께 나타나거나 (3) 처음 두 개의 알파벳과 마지막 알파벳으로 축약되어 윗 선과 함께 나타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니 몇 가지 증거를 보여드리도록 한다.

(1) P1: P1은 마태복음 1:1~9, 12, 13~20의 일부를 담고 있는 파피러스로써 예수님의 존함이 노미나 세크라로 되어있다.

P1

보시다시피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마 1:1)"는 구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께서ι̅υ̅ χ̅υ̅로 되어있다.  Ἰησοῦ Χριστοῦ가 노미나 세크라로 표기된 것이다.

(2) P13: P13은 히브리서2:14~5:5; 10:8~22; 10:29~11:13; 11:28~12:17의 일부를 담고 있는 파피러스로써 역시 예수님의 존함이 노미나 세크라로 표기되어 있다.

P13

보시다시피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히 3:1)"는 구절에 있는 예수님께서ι̅ν̅로 되어있다.  Ἰησοῦν이 노미나 세크라로 표기된 것이다.

(3) P28: P28은 요한복음 6:8~12, 17~22의 일부를 담고 있는 파피러스로써 예수님의 존함을 노미나 세크라로 표기하고 있다.

P28

보시다시피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저희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요 6:17, 19)"에 있는 예수님께서ι̅ς̅ (주격)와ι̅ν̅ (대격)으로 되어있다.  Ἰησοῦς와Ἰησοῦν가 노미나 세크라로 되어 있는 것이다.

(4) P39: P39는 요한복음 8:14~22의 일부를 담고 있는 파피러스로써 성부의 호칭과 성자의 존함이 다 노미나 세크라로 표기되어 있다.

P39

보시다시피 "이에 저희가 묻되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요 8:19)"에 있는 "아버지"는 π̅η̅ρ로 표기되어 있고, "예수님"은 ι̅η̅ς̅로 표기되어 있다.  πατήρ와 Ἰησοῦς가 함께 노미나 세크라로 표기된 것이다.  이것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께서 동일한 하나님(삼위일체의 교리 하에서)이시라는 것을 강하게 피력한다.

(5) P49: P49는 에베소서 4:16~29; 4:31~5:13의 일부를 담고 있는 파피러스로써 예수님의 호칭과 존함이 노미나 세크라로 표기되어 있다.

P49

보시다시피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엡 4:17)"에서 예수님의 호칭인 "주"가κ̅ω̅로 되어 있고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찐대 (엡 4:21)에 있는 "예수님"도 ι̣̅υ̅로 되어 있다.  κυρίῳ와 Ἰησοῦ가 노미나 세크라로 표기되어 있는 것이다.

(6) 그 밖의 사본들: 그 밖에도P4+64+67, P5, P15 + P16, P29, P47, P49+65, P66, P75등에도 예수님의 존함은 노미나 세크라로 표기된다.

맺으며: 기독교 초기의 문서들은 오직 "하나님," "주," "그리스도," "예수"에게만 노미나 세크라가 사용되었다.  그 다음에는 "성령"에게도 노미나 세크라가 허용되었고, 한 참 후에야 비로서 예수님과 관련되어 신성하게 여겨지던 것들에도 허용되었다.  중요한 것은 구약 시대의 테트라그라마톤의 정신을 물려받은 초기의 기독교 성도들은 예수님을 표기하는데 주저 없이 노미나 세크라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유대인들은 가장 존경하던 선지자 모세나 이사야의 이름을 노미나 세크라로 표기하지 않았다.  천사장 미가엘에게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는 주저없이 사용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신성이 4세기에 고안된 것이 아니요 기독교 초기부터 당연히 받아들여졌던 사실임을 변증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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