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효 목사
장재효 목사(서울 성은교회)

1.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은 회개로부터

회개란 다른 곳을 향해 제멋대로 달려가던 인생이 말씀과 성령의 깨우침을 받고, 하나님을 향하여 방향을 바꾸어 돌아서는 것입니다. 이것을 회개운동(悔改運動. Repent Movement)이라고 합니다.

본문은 제사장이면서 학사였으며 포로로 끌려간 바벨론에서 태어난 에스라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바벨론에서 자기 민족의 불행과 비극이 하나님을 능멸하고, 하나님 말씀의 본질과 권위를 무시하며, 제멋대로 육체의 입장에서 살아가느라 영적인 소망을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영육간에 버림을 받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서두르기 위해 자신이 먼저 철저히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며 사는 생활로 바꿨습니다.

페르시아(바사)가 바벨론을 점령하고, 다시 페르시아가 세계를 지배하는 과정에 아닥사스다 왕에 이르면서 에스라는 그 시대에 서기관 노릇을 하게 됩니다. 그는 비록 포로의 자식으로 태어났지만 유식하고 촉망 받는 출세한 자였습니다.

그는 자기 민족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가 하나님 앞에 잘못되면, 더 심한 채찍과 시련 가운데 멸망당하게 될 것이 불안하고 두려웠습니다. 이것은 사명자의 발로(發露. 숨은 것이 겉으로 드러나거나 숨은 것을 겉으로 드러냄)이기도 하고, 마땅히 가져야 할 본질적 자세이기도 했습니다.

2. 불순종으로 하나님을 거스르는 백성

B.C. 538년 제1차 포로귀환(스 1-6)은 스룹바벨의 인도로 예루살렘에 돌아갔고, 그들이 24년 만에 예루살렘 성전을 짓고 봉헌식을 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외면하고 사는 육에 속한 모습들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유대교의 종교적 지도층 인물이었던 제사장과 레위인들, 성전에서 예배하던 찬양대원들, 성전을 지키던 경비들 같이 성전에서 먹고 살고, 대접받고, 봉사해야하는 사람들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출애굽기 34장 15-16절을 보면 “너는 삼가 그 땅의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찌니 이는 그들이 모든 신을 음란히 섬기며 그 신들에게 희생을 드리고 너를 청하면 네가 그 희생을 먹을까 함이며 또 네가 그들의 딸들로 네 아들들의 아내를 삼음으로 그들의 딸들이 그 신들을 음란히 섬기며 네 아들로 그들의 신들을 음란히 섬기게 할까 함이니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랫동안 미신, 우상에 물들어 악령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 하나님의 선민(選民. 하나님이 거룩한 백성으로 택한 민족이라는 뜻)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중심으로 온전히 구별된 삶을 살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요셉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어 애굽 여자인 아스낫과 혼인하게 된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닐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스낫은 에브라임과 므낫세라는 두 아들을 낳고 이방인이었지만, 남편인 요셉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는 일에 적극적으로 믿음을 같이했습니다.

약 400년 후에 있었던 모세도 애굽 공주의 양자로 살면서 많은 애굽 문물을 습득했습니다. 그 후에 광야로 도망쳐 이스라엘을 오랫동안 괴롭혀 왔던 미디안의 사제 이드로의 일곱 딸 가운데 하나인 십보라와 혼인했습니다. 십보라도 마찬가지로 모세와 그 믿음을 같이 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가나안 땅 원주민의 딸들과 혼인하지 말라고 금기령을 내리신 이유는, 그들의 심지가 견고하지 못한 연유로 이방 여인들을 따르게 되고, 결국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으로 멸망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3. 순종하고자 하는 착한 마음이 깃든 회개

하나님이 에스라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신실하고 충성스러운 일꾼으로 여기심으로, 아닥사스다 왕을 성령으로 사로잡아 많은 재물과 함께 1,754명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또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을 지키심으로 무사히 귀환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1차 귀환으로 먼저 와 있던 자들은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도 몰랐고, 하나님이 금하신 일들을 행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제사장들까지도 이방 여인들을 아내와 며느리로 삼았습니다. 이것은 이방 여인들과 왜 혼인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것이 죄가 되는 것입니다.

구약과 신약을 통해 성경은 기록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지켜 살면 그 말씀이 너를 살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한 쪽은 그 말씀을 지켜 살지 않으면 멸망하여 지옥으로 갈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 두 가지 “하라”와 “하지 말라” 뿐입니다.

“하지 말라”하셨는데 했으니 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원칙이고 법칙입니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며 주관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목자로 세움 받은 에스라는 죄를 짓지 않은 자였습니다. 지금 에스라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려는 죄는 이스라엘이 지은 죄인 것입니다. 그러나 에스라는 자기 백성의 죄를 애통하며 기도했습니다. 이 죄 값으로 이스라엘이 또 다시 하나님의 징계로 멸망이 임하지 않도록 하나님 앞에 용서를 빌며 부르짖고 매달렸습니다.

에스라가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심히 통곡하면서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 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였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소망적인 것입니다. 에스라의 회개에 동참하는 회개운동이 시작된 것입니다.

2절에서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 이방 여자를 취하여 아내를 삼았으나 이스라엘에게 오히려 소망이 있나니”라고 한 말은, 하나님이 에스라를 어떻게 보내오셨는지, 그 에스라가 왜 그토록 애통하며 회개를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백성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저주받은 이방 여인들과 가정을 이루었기 때문이며, 이러한 죄를 에스라를 통해 지적하시며 책망하시면서 서둘러 회개하기를 촉구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 오히려 그 하나님을 향하여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온전한 회개만 이루어지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질 것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스가냐는 솔선하여 함께 살던 이방 여인을 그 자식과 함께 내보냈습니다. 그리고 에스라를 찾아가 “곧 내 주의 교훈을 좇으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의논을 좇아 이 모든 아내와 그 소생을 다 내어 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이는 당신의 주장할 일이니 일어나소서 우리가 도우리니 힘써 행하소서”하며 의욕을 북돋워 주었습니다. 이것이 회개운동의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4. 진실성을 인정받는 회개

하나님 마음에 드는 교회, 인정받는 교회가 되게 하기 위해 바른 목회를 하자고 애써오는 과정에서 야단도 치고 징계도 하지만, 온전한 회개와 변화가 없다면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에스라는 총회를 열어 누구든지 3일 안에 다 모이도록 했고“ 누구든지 방백들과 장로들의 훈시를 좇아 삼 일 내에 오지 아니하면 그 재산을 적몰하고 사로잡혔던 자의 회에서 쫓아내리라(스 10:8)”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아닥사스다 왕을 통해 에스라에게 준 특권이었습니다. 에스라 7장 26절 “무릇 네 하나님의 명령과 왕의 명령을 준행치 아니하는 자는 속히 그 죄를 정하여 혹 죽이거나 정배하거나 가산을 적몰하거나 옥에 가둘찌니라”고 에스라에게 특권을 주었습니다.

유다와 베냐민 모든 사람이 삼 일 안에 모두 모였고 에스라는 그들에게 “너희가 범죄하여 이방 여자로 아내를 삼아 이스라엘의 죄를 더하게 하였으니 이제 너희 열조의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복하고 그 뜻대로 행하여 이 땅 족속들과 이방 여인을 끊어 버리라”(스 10:10-11)고 명합니다. 입으로만 죄를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하여 진정한 회개의 진실성을 인정받아 그 죄를 온전히 용서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영적인 소망을 가꾸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법을 어겼을 땐 그 죄를 정리하는 결단의 믿음을 보여드려야 합니다. 이들이 함께 살던 이방 여인들과 그 자식들을 돌려보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위해 죄악의 끈을 끊어낼 필요가 있었습니다.

12절에 “회 무리가 큰 소리로 대답하여 가로되 당신의 말씀대로 우리가 마땅히 행할 것이니이다”고 힘써 이 일을 행하기로 답하고 석 달 동안 이방 여인들과 결혼한 자들을 파악했습니다. 그런데 112명 중 “오직 아사헬의 아들 요나단과 디과의 아들 야스야가 일어나 그 일을 반대하고 므술람과 레위 사람 삽브대가 저희를 돕더라”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에스라에게 주어진 특권대로 조치가 취해졌습니다. 이것은 에스라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은 그를 보낸 아닥사스다 왕을 거역하는 것이고, 결국 아닥사스다 왕을 움직이신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