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근 목사
유동근 목사
온누리선교교회 담임
IMC 선교회 대표
두란노 아카데미 학장

14절, 그러므로 내가 저를 개유하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앞 구절에서는 다 징벌하겠다, 심판하겠다고 하셨다. 가만두지 않고 아무도 구원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14절에서는 또 반전이 일어난다. 물론 이 구절에도 심판의 내용이 들어 있다.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란 말씀이 그것이다. 이는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있을 때를 연상케 한다. 또한 그들이 앗수르에 정복당하고 괴로움당할 것을 예시하기도 한다. 그러한 환경(거친들)을 거치게 하면서 다시 용서하고 격려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우리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는 알기가 어렵다. ‘개유’란 꾄다(allure)는 뜻이다. 하나님은 어떻게 하든지 아무 소망 없이 힘들게 만들어 놓고 또 거기서 위로해 주시겠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가장 복잡하다. 사랑하는 젊은 남녀의 마음을 보라! 하루에도 열 두 번씩 이랬다 저랬다 한다. 이것은 참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에서 나온 것임에는 틀림없다. 어쩌면 그들이 앗수르나 바벨론에 사로잡혀 가서 많은 고생을 하고 있을 때 그들을 개유하여 어떤 방식으로든지 그 마음이 하나님께 향하도록 하시겠다는 말씀이다.

15절, 거기서 비로소 저의 포도원을 저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저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아간이 죽은 곳이 아골 골짜기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거친 들에서, 즉 그들이 포로로 사로잡혀가 고생하는 그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렸을 때, 곧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게 해주신다고 했다. 예레미야서에서는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을 신혼시절로 비유했다. “가서 예루살렘 거민의 귀에 외쳐 말할지니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 소년 때의 우의와 네 결혼 때의 사랑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광야에서 어떻게 나를 좇았음을 내가 너를 위하여 기억하노라”(렘 2: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렘 31:32). 이렇게 그들이 하나님과 가장 좋았을 때와 같이 이제 용서해주고 받아주시겠다는 것이다.

16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그때서야 그들이 하나님을 ‘내 남편’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회개하여 다시는 바알을 숭배하지 않고 주님을 남편이라고 부른다는 말씀이다.

17절,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저의 입에서 제하여 다시는 그 이름을 기억하여 일컬음이 없게 하리라

다시는 바알들의 이름을 부르지 않게 하겠다고 하신다.

18절, 그 날에는 내가 저희를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 하고 저희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역사를 볼 때, 이것은 유다로 말하자면 바벨론으로 포로 되었다가 70년 후에 다시 회복(귀환)되는 것이며 그것이 이 예언의 일차적인 성취이다. 그러나 사실상 이 예언의 완전한 성취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더불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천년왕국에서 이 예언이 이루어질 때에는 땅의 들짐승, 공중의 새, 곤충까지도 회복이 된다. 그리고 동물들과도 언약을 세우시는데, 전쟁 도구를 꺾어서 농기구로 만들고 활과 살을 꺾어 전쟁을 없이 하고 저희를 평안히 눕게 하겠다고 하신다. 이것이 영적으로 이루어지는 때는 오늘날 교회 시대이다. 1장에서 내가 사랑하지 않는 자를 사랑하고 내 자녀라 부르시겠다고 하신 것이 바로 교회이다.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이 말한 것도 이것이다. 이렇게 주님만이 내 남편이라고 부르는 회복된 무리가 바로 교회이다. 이사야의 예언과 비슷한 면이 있다. 이처럼 동시대 선지자들의 말은 유사한 면이 있다.

19-20절,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이스라엘 백성은 부정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부정한 백성을 징계하시고(거친 들로 나가게 하셨다, 14절) 우상을 빼앗아 벌거벗게 하시고는 다시 설득해서 회개하게 하시고 당신의 아내로 삼으시면서 ‘나는 반드시 너에게 장가들 거야!’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아내로 생각하신다. 이것의 실제는 오늘날의 교회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이다. 에베소서 5장에 보면 그리스도는 남편이시고 교회는 그분의 신부이다. 교회는 신랑이신 예수님과의 혼인잔치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분상으로 하나님의 아내가 되는 사람들로서 그분과만 연합해야 한다. 우리는 사실 하나님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가 없고 하나님만 의지해서 살아야 하는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만 사랑하지 않고 다른 것, 즉 이 세상의 명예나 부 같은 것들을 좇아가는 것 자체가 ‘간음’이다.

교회는 오늘날 실제적인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신부이다. 그분과 연합해야 하는 존재이다. 우리가 만일 주님만을 사랑하지 않고 신뢰하지 않는다면 이스라엘과 똑같은 죄를 범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구절은 여러분들이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회개하는 마음으로 읽고 또 읽어야 할 것이다.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프로포즈를 하시는 말씀이다. 신약으로 말하면 복음이다. 주 예수님을 믿으라, 하나님만을 사랑하라고 하면서 복음을 전해주고 계신다. 그런데 이것을 거절함으로 하나님을 실망시키고 노하게 만드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겠는가?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성도들이 주님만을 바라고 의지하는 것이다.

오늘 암 수술을 한 어떤 자매와 통화한 후 기록한 것을 여기 옮겨보겠다.

C 자매는 2-3주전 갑상선 암을 수술했다. S대 병원에 수술할 때도 갔었고 퇴원한 후 집에도 한두 번 방문했다. 오늘 상태를 알기 위해 전화했다. 자주 누가 뒤에서 목을 조이는 것 같은 느낌이 있다고 했다. 그것이 갑상선 암 수술환자들의 공통적인 감각이란다. 갑상선 암에는 세 종류가 있는데 그 자매가 걸린 암은 그 중 2%정도 밖에 안 되는 가장 안 좋은 수질암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이젠 죽었구나 싶어 어떻게 죽음을 준비하나 하루를 생각했다고 했다. 문득 속에서 기쁨이 솟아나더란다. “저 지금 평안해요!” 차분한 목소리였다. 3개월을 살아도, 3년을 살아도 매일매일이 감사하다고 했다. 담당의사가 수질암이라고 말해주었을 때 ‘나 기쁘다’고 말하니 뭐가 기쁘냐고 물었단다. “비밀이예요.”라고 대답했단다. 나에게 말했다. “목사님에게 잘 배워서 감사합니다. 이 환경은 나에게 주님 외에는 의뢰할 것이 없게 만들었습니다.” 어떤 방법도, 길도 없다! 주님만 바라볼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다! 그래서 기쁘단다. 전에는 그렇게 하나님만 의지해보려고 애써도 안 되더니 이젠 힘들이지 않아도 주님만 바라볼 수 있으니 너무나 기쁘단다. 속에서 아무도 모를 위로와 기쁨이 솟아오르더니 계속 감사한 마음과 더불어 든든함이 계속된다고 했다. 아! 죽음을 초월한 믿음이여! 주님은 이 땅에서 사망과 음부의 세력이 이기지 못하는 한 자매를 얻으셨다! 오늘 이곳에서 나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리를 본다.

21-23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 날에 내가 응하리라 나는 하늘에 응하고 하늘은 땅에 응하고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하고 또 이것들은 이스르엘에 응하리라 내가 나를 위하여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저희는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이스르엘’은 ‘흩어진다’는 뜻도 있고 ‘심는다’는 뜻도 있다. 내가 나를 위하여 이 땅에(이스르엘에) 심는다고 하신다. 삐뚤어진 이스라엘을 향해서 ‘이스라엘’이라고 하지 않으시고 ‘이스르엘’이라고 부르신다. 그런데 이스르엘이라고 하시면서도 또한 축복해줄 것이라고 하신다. 비록 못났지만 축복해 주겠다고 하신다.

“그날에 내가 응하리라”. ‘응한다’(respond)는 것은 ‘내가 반드시 반향한다’, 즉 ‘대답해 준다’는 뜻이다. 2장에 오자 1장의 말씀을 완전히 뒤집고 계신다. 1장에서는 르암미(내 백성이 아니라)라고 하고 로루하마(긍휼히 여기지 않는다)라고 하시고는 2장에서는 돌변하셔서 내가 내 백성을 만들 것이고 내가 긍휼이 여길 것이고 용서해 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반전에 반전이 거듭되는 것이 호세아의 특징이다. 이것이 또한 복음이다. 복음을 받은 사람들은 인생이 반전된 사람들이다. “내가 나를 위하여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저희는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