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교회의 소망적인 믿음
본문에서는 세 사람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6장 6절 이하에서 보면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세우라는 지시를 받고 파송 받아 가서 빌립보 교회를 세우는 과정에서 실라는 사도 바울에 있어서 오른 팔과 같은 요긴한 동역자로, 선교의 협조자로 봉사해 왔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를 세우는 과정에서도 바울과 실라는 함께 했습니다. 그 후에 믿음의 아들이라고 일컫는 디모데가 데살로니가 교회에 가서 봉사한 일이 있기 때문에, 데살로니가 교회 목회자 입장에서는 바울이나 실라나 디모데가 한마음으로 계속 애지중지 가꾸어왔던 교회였습니다. 그렇기에 그 교회가 소망적이고 모범적으로 믿음과 은혜와 사랑이 충만하여 그들의 수고는 넘치는 보람을 얻게 된 것입니다.
바울이나, 실라나, 디모데가 데살로니가 교회에 가서 전한 복음의 말씀에 데살로니가 인들은 100% 그대로 믿어지는 믿음을 가졌습니다(살후1:10下). 그랬기에 그들의 신앙은 잘 자랄 수 있게 되었고, 같은 하늘소망을 목적으로 주안에서 형제, 자매된 상호간에 이해하고, 협조하고, 아끼고, 사랑의 교제가 뜨거워지게 되어졌습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시고 그곳에서 선포하는 말씀들은 여러분을 위하여 제시하신 약속의 말씀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 말씀이 믿어지지 않은 연고로 무시하고, 거부하며, 불신함으로, 결국 자신의 이권야심(利權野心)의 고집대로 살았습니다. 그 말씀들은 불행하게도 여러분의 불신앙이라는 벽에 부딪혀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실패와 고통, 절망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2. 끝까지 참고 견디는 믿음
목회자에게 자랑거리가 되는 신자는 이미 복 받은 성도입니다. 목회자에게 근심과 걱정거리가 된다면 그 인생은 영적인 소망도 잘못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 형편도 말할 수 없이 비참한 지경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만약 예수님을 믿는 이유 때문에 당하는 핍박과 환난,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나를 구속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살 수 있다고 믿어진다면, 그 인생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복된 길을 기대할 수 있다는 소망의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데살로니가후서 1장 5절에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속해 사는 이 세상은 천국이 아닙니다. 이곳은 원수 마귀가 행세하는 적진과도 같은 곳입니다. 이곳에서 천국의 역사를 확장시키자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세움을 받았습니다. 그렇기에 이 세상에서 존경받고 칭찬들을 것이라는 기대는 어리석은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믿음을 바로 지키느라고 받는 고통은 절대로 손해가 없습니다. 끝까지 참고 견디면 마침내 이기도록 책임져 주시는 예수님으로 체험하실 것입니다.
전날에는 마귀에게 소속되어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과는 원수와 같았던 우리들입니다. 그런 우리를 택하시고 불러주셔서 구속하신 은혜의 복음을 듣고 믿어 회개했기에, 마귀와의 인연을 끊고 그동안 지었던 죄를 보혈의 공로로 용서받아 하나님께 소속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늘의 허락받은 영원하고 신령한 조건을 바라보며 새 출발하는 것이 중생한 성도의 사는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믿기 전에 가졌던 직업이나 직장 중에는 중생한 성도로서 계속 할 수 없는 것들도 있음을 알 것입니다. 믿는 자의 신분에 어긋나지 않는 직업을 갖는 것 또한 신앙을 위해 잘 고려해야 할 일입니다.
잘 기억해야 할 것은 이제는 하나님께 속하여 살아가고 있다 하더라도 그 전의 주인 되었던 마귀가 그런 우리들을 가만히 놔둘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간(離間)시키고 믿음을 뒤흔들어 시험 들게 하여 또다시 마귀에 속한 자로 만들기 위한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완전히 마귀에 속한 자도 아니요, 그렇다고 완전히 하나님의 사람도 아닌 채로 살아가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말할 수 없는 갈등과 고통, 고달픔의 연속일 것입니다. 이들은 생각으로는 믿지만 행동으로는 옮기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의 생활은 예수님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마귀가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직분 얻어 생활하고 있더라도 결국에는 마귀에게 쓰임 받는 사람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했다면 마귀와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단절하고, 그 올무에서 벗어나서 해방과 은혜 안에 자유 할 수 있는 결단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완전히 은혜 안에 살아갈 때에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 14:20)하셨습니다.
3. 하나님께 인정받는 믿음
데살로니가후서 1장 6-7절에 “너희로 환난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 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잘못해서 받는 환난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죄 값의 보응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환난은 오로지 믿음 지키려는 일념으로 몸부림치며 살았는데, 영적인 소속이 다르기 때문에 나의 믿음을 무너뜨리기 위해 마귀가 괴로움을 가해 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안식’은 편히 쉰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헬라어로 풀이하면 ‘구겨졌던 것이 펴지고 얽혔던 것이 풀어진다’는 뜻입니다. 즉, 회복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살후 1:8-9)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믿음이 없는 자들이 괜한 트집을 잡고 핍박을 한다 해도 ‘죄는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는 말처럼 그 사람이 분별없이 하는 짓이기에 이것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상대방을 대할 때, 여러분의 신앙인격을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 중 겪는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오로지 하늘의 뜻을 받들고 주님께 영광 돌리기 위한 믿음의 정절을 목적으로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잘 했다면, 그 모든 고난의 분량만큼 내 몫으로 돌려받게 됩니다(살후 1:11-12). 나의 수고에 따라 내게 돌아올 분깃이 결정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