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성 목사.
정우성 목사(남가주광염교회)

말의 능력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말을 조심해서 잘 해야 겠다고 생각하는데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말이다.

말 할 때 좋은 말, 선한 말, 축복의 말, 감사한 말, 사랑한다는 말 등을 많이 하고 싶은데 만나는 사람들의 하는 모양을 보면 그 말이 쏙 들어 가고 오히려 미운 말, 욕된 말, 싫어하는 말 이 저절로 튀어 나온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사는데 나도 그렇게 살지... 스스로 포기하면서 말을 고치려 하기기 보다는 내 인생 그저 그저 살지 한다.

말처럼 어려운 것이 없다. 말은 환상이 아니다. 말은 꿈이 아니다.

날마다 현실에서 부딪히며 말하고 말을 듣는다. 그렇게 날마다 순간마다 살고 있다. 우리가 죽는 날 까지 말하는 습관은 우리의 숙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동안 말을 구별해서 복된 말, 은혜로운 말, 믿음의 말을 하면서 살고 싶은 것이 우리의 소원일 것이다.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지만 우리의 입술을 고치고 말을 치료하실 수 있는 전능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항상 꾸준히 기도함으로 말을 하고, 고치고 또 고치고, 회개하고 또 회개함으로 이 땅에 사는 동안 선한 말, 치료의 말, 생명의 말을 하자.

어느 교회에 말이 몹시 거칠고 혀를 통제하지 못하는 수다쟁이 교우 한 분이, 어느날 목사님을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 이제는 정말로 제 혀를 주님의 제단에 바치겠습니다.”

이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던 목사님은 이렇게 답변을 하셨다고 한다. “성도님의 혀를 받아들일 만큼 그렇게 큰 제단이 없군요.”

이처럼 우리의 혀는 통제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일수록 성숙한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귀는 두 개를 만드시고 입은 하나를 만드셨다. 두 개 만든 귀는 언제나 그 문이 열려 있다. 좋은 소식, 복된 소식을 많이 듣고 살기 위함이다.

하나를 만든 입술은 방어벽을 두 개 두었다. 혀를 깊숙이 숨겨두고 이빨 벽을 두고 그 앞에 입술로 문을 달아 두었다. 많은 말을 하면 손해 보는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민수기14:28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과 성품 그리고 인격을 걸고 맹세하는 한 말씀이 나온다.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신구약 성경에 이 만한 강조어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이건 너무나도 엄청난 맹세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직접하신 맹세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인격, 하나님의 삶을 걸고 한 맹세이기 때문이다.

그 맹세의 내용이 무엇일까?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우리가 지금까지 말한 것을 생각해 보자. 소름끼치지 않는가? 누가 듣고 있는가? 하나님이 듣고 계신다는 것이다. 산다고 말하면 살고, 잘 된다고 말하면 잘 된다는 것이다.

말은 사람을 치유한다. “지혜로운자의 혀는 양약(良藥)과 같으니라”(잠12:18) “온순한 혀는 곧 생명 나무라”(잠15:4)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영약이 되느니라“(잠13:17)

혀에는 죽고 사는 능력이 있다. 말은 치료하는 약과 같다. 우리 인생은 우리의 혀에 달려 있다. 평생 하나님 앞에 선한 말을 함으로 복된 인생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