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아프리카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님의 선교 보고에 큰 감동을 받고 교회적으로 함께 동역하기를 바라며 무엇을 해드릴까 여쭈어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선교사님의 요구는 순대를 사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역비나 시설비를 후원해 달라고 부탁할 줄 알았는데 순대를 요구하는 말씀에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선교를 위해 순교까지 각오한 “거룩한” 선교사님이 지극히 세속적인 순대를 찾는 인간적인 면을 보는 것은 놀라움이기도 하였지만,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선교사님들의 문화적, 정서적 필요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는 인터넷이 겨우 보급되어 선교지에서 문화적 콘텐츠를 접하기 힘든 시기라 선교사님에게 추수감사절 소포를 보내드리며 필요한 신앙 서적 외에 여성잡지 또한, 당시 히트를 쳤던 드라마를 녹화해서 비디오로 보내드렸습니다. 그리고 순대를 진공 포장해서 얼음을 채워 속달로 보내드렸는데 선교지에서 대히트를 치게 된 상품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소감을 알려오는 선교사님의 편지에 드라마도 서로 돌려보고 여성잡지들도 돌려보면서 많은 은혜를 받았다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순대였습니다. 무사히 상하지 않고 도착한 순대를 냉장고에 넣고 오래오래 두고 먹으려고 선교사님 부부만 식사 후 몰래 내어놓고 먹으려 했답니다. 순대가 얼마나 귀하고 아까웠던지 자식들은 어차피 순대 맛을 모르니깐 아이들 재워 놓고 단둘이 순대 데이트를 하려는 참에 ‘딩동’, 이웃에 사는 동료 선교사님이 방문한 것이었습니다. 들어서자마자 “이게 웬 순대냐?” 하며 같이 먹자고 하는데 선교사님 왈, 그때처럼 사람이 미워 본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바람에 게눈 감추듯 순식간에 순대는 사라졌는데 방문한 동료 선교사가 뭔가 부족한 듯 입맛을 다시며 순대 또 없느냐고 묻는데 이미 뺏긴 것도 아까워서 그만 더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 밤 거저 받은 복음 거저 나누기 위해 순교도 각오한 선교사가 거저 받은 순대도 나누지 못하고 거짓말까지 했다며 순대 시험에 넘어져 통회 자복했노라는 웃지 못할 사연이었습니다.
우리도 순교의 시험은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총칼의 위협 속에서도 신앙의 절개를 꺾지 않고 가겠다는 다짐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조심해야 할 일은 순대의 시험입니다. 작은 일부터 충성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