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그 어느 때보다 나라와 교회 안팎으로 어수선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국제적으로는 지중해 난민 문제와 IS의 만행, 국내적으로는 경기 불황과 북한 도발, 연이은 대형 사건·사고들, 청년실업과 동성애 문제로 소란스럽다. 교회 내부적으로는 한기총 문제, 목회자 성추문과 교회 분쟁, 반동성애 운동 등으로 어수선하다. 가뜩이나 힘겹게 쫓기듯 살아가는 현대인은 이런 어수선한 세상 속에서 평정심을 잃고 우왕좌왕하기 쉽고, 어떤 면에선 무덤덤·무감각해지고 자신만의 세계로 침잠하거나 쾌락에의 경도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사회가 불안정하게 느껴지고 취업의 문이 막힐수록 청년들은 좌절하게 되고, 미래를 비관하며 결혼의 꿈마저 포기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크리스천 청년들도 예외가 아니다. 오늘의 20·30대 청년들은 그 어느 세대보다 상실감이 크며, 교회에 대해서도 비판적이고, 동성애에 대해서도 전향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 그러다 보니 반(反)동성애 운동을 하는 기성세대를 향하여 왜 그런 식으로 포용력이 없느냐고 화살을 날리는 것을 경험한다. 결국 적은 외부에도 있고 내부에도 있는 셈이다.
필자는 이제 머잖아 도래할 다음 세대에, 한국교회가 지금의 위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재난 상황에 직면할 거라는 암울한 전망 탓에 마음이 무겁다. 이슬람을 비롯해 통일교와 여호와의증인 등등의 이단 종교단체들은 필사적으로 '결혼포교전략'을 활용하고 있는데, 한국교회는 아예 이 문제에 손을 놓아온 탓에 이젠 거의 절망적 상황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13년째 미혼 청년의 '결혼 문제 해결을 통한 교회 부흥'을 광야의 세례 요한처럼 외쳐 왔지만, 돌아오는 메아리는 없었다. 그로 인해 한국교회의 청년들은 점점 패잔병과 오합지졸처럼 힘을 잃고 낙오자 아닌 낙오자의 신세로 전락해 버렸다. 이에 대해 어느 누구 하나 책임의식을 갖지 않고, 개인 역량 탓으로 돌리고 외면해 왔던 것이다. 세상에서 학업과 아르바이트와 취업 문제에 치이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외적 스펙을 중시하는 문화 속에서 찢기고 상한 심령들이 교회 안에서나마 위로와 치유를 받고 세상으로 힘차게 나가야 하지만, 결과는 그리 녹록지 않다. 교회 내에서마저 '성공주의 신학'이 팽배해, 청년들을 경쟁구도 속의 세상 잣대로 평가해, 보이지 않는 차별적 시선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크리스천 청년들은 결혼의 꿈을 잃어버린, 패기 없고 믿음 없는 떠돌이 신세가 돼 버린 것이다. 일부 기성세대들이 편안함을 좇아 대형교회로 옮겨간다면, 미혼 청년들은 결혼 장벽 앞에서 좌절해 수치감을 느끼거나 도피심리로 교회를 아예 등지거나 대형교회로 적을 옮겨버린다. 그로 인해 소형교회의 고사(枯死)와 대형교회로의 수평이동은 점점 가속화돼, 한국교회의 위기를 심화시킨다. 지금 한국교회 전체 청년부의 실상을 눈여겨 보면, 이는 허언이 아님을 금방 알게 될 것이다.
지금 한국교회에 가장 큰 이슈로 떠오른 '동성애 문제'만 해도 그렇다. 필자 또한 당연히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를 설립해 적극 나서고 있지만, 반대만을 외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고는 결코 생각지 않는다. 한국교회를 지켜내기 위한, 동성애 진영과의 기나긴 영적 싸움에서 보다 전략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쉽게 무너지지 않기 위해선, 내부에서부터 강한 힘을 키우고 성경적이며 건강한 이성결혼문화를 확산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미혼 청년들을 더 이상 이대로 방치 말고 큰 관심과 사랑을 쏟고, 결혼정책을 최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 그래서 심화된 교회 내 성비(性比) 불균형이 해소되고, 주님께서 주시는 비전 안에서 세상 조건을 초월해 아름다운 믿음의 가정들이 세워지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후배 청년들이 희망을 품고 연어처럼 회귀할 때, 황폐해진 청년부가 소생하리라 본다. 한국교회 부흥은 절로 얻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타성에 젖은 패러다임을 일거에 뜯어고치려는 혁신적 사고가 전제될 때 가능한 것이다. 어떻게 교회 문화가 세상 문화에 뒤처지고, 천국을 소망하는 교회 구성원들의 사고가 세상의 썩어 없어질 구습을 좇는 이 세상 사람들보다 고루하고 구태의연할 수 있단 말인가?
필자에게 이는 너무나 답답하고 통탄스러운 일이다. 지금 당장 내 주머니, 내 교회 수중에 얼마를 움켜쥐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다음 세대에 얼마나 많은 유산을 넘겨 주고 지금보다 더욱 역동적이고 힘차게 부흥하는 교회를 물려 줄 수 있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이를 위해선 청년들에 대해 보다 과감한 정책 입안과 투자가 있어야 한다. 교회는 어떤 면에서 정부와 기업보다 더 과감하게 혁신적으로 청년 세대를 일으킬 수 있는데, 지금 우리의 모습은 절망적이고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그래서 교회 다니는 청년들이 패기도 없고 세상 친구들 앞에서 점점 위축돼, 전도마저 버거워지는 것이다. 이런 암울한 상황을 언제까지 방치해 둘 것인가?
물론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들어도 확고한 신앙교육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소용 없고, 철저한 경건훈련을 강조하고 지금보다 더욱 말씀 공부에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그러한 기초 위에서 교회학교 교육의 황금 열매를 거두는 결혼적령기 미혼 청년들의 결혼을 많이 맺어줘야 한다. 올바른 믿음의 가정이 새로 탄생했을 때의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신앙은 무늬 뿐이고 세상 조건만 따져 결혼한 가정은, 별다른 힘을 발휘할 수 없다. 긴 시간 훈련만 받다 세월을 허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시는 비전에 입각해 믿음 안에서 결혼기도의 응답을 받고 '선교적 가정'을 목표로 확신 있는 커플은 출발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그런 가정은 신혼 때를 자연스럽게 지나 곧바로 헌신된 교회 일꾼으로 자리잡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에선 이런 연결고리가 끊긴 상태다. 목회자와 제직들의 무책임과 무관심, 잘못된 교회관, 목회철학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이를 통분히 여기시며 돌이키기를 바라신다. 왜냐하면 이대로 조금만 더 방치하면 한국교회가 머잖은 장래에 문을 닫는 참극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극소수 대형교회에 넘쳐나는 듯 보이는 청년들이 한국교회의 실상이 아니다. 그걸 잘못 해석해 '과잉일반화'의 오류에 빠질 경우, 한국교회는 골든타임을 놓치고 칠흑의 망망대해로 침몰하는 세월호와 같은 비극적 운명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자, 이제 시간이 얼마 없다. 이십여 년간 많은 시간과 물질을 투자해 키운 한국교회 미혼 청년들을 세상에 빼앗기지 말고, 어떻게든 살려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미혼 청년들에게 교회 예산과 정책의 최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그리고 그 정점은 성경적 결혼 준비 교육을 시키고 믿음 안에서 자연스런 이성교제 훈련을 통한 만남을 통해 결혼으로 골인시키는 것이다. 손놓고 방치하다 나이에 쫓겨 허둥지둥 결혼정보회사나 찾아가게 해서, 준비 없이 믿음 없는 배우자와 만나 일평생 고난을 겪게 만드는 건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 것이다. 그렇게 만든 목회자와 부모, 제직들에게 반드시 주님께 엄위한 책망이 돌아갈 것이다. 점점 이혼율이 높아가고, 혼전동거를 당연시하고, 결혼하지 않는 게 마치 자유롭고 멋진 삶으로 착각하도록 만들고, 심지어 동성결혼까지 상상토록 만드는 병든 세상 문화에 내 자녀들, 내 교회 청년들을 빼앗겨서야 되겠는가? 마귀가 얼마나 춤을 추고 좋아할 것인가? 이 글을 읽는 독자의 영안이 열려 피눈물 흘리시는 주님의 슬픈 얼굴을 볼 수 있길 소망한다. 그 얼굴이 진노의 얼굴로 바뀌기 전에.
앞으로 이 지면을 통해 미혼 청년들의 안타까운 실상과 결혼 문제의 해결책, 그리고 반동성애운동과 대안 있는 현실 대책을 모색하는 칼럼을 번갈아 게재할 예정이니 많은 관심 가져 주시길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