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철 교수, 침례신학대학교 기독교교육학
이석철 교수, 침례신학대학교 기독교교육학

“Your Happiness is Our Priority.(“우리의 최고 관심사는 당신의 행복입니다.)”

한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오렌지카운티의 어느 마켓에 걸려 있던 현수막이다. 하나님의 최고 관심사도 사람의 행복일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창조의 순간부터 사람에게 복을 주셨고 지금도 우리가 그를 믿고 참된 행복을 누리기를 바라신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 중에서 사람의 복은 참으로 귀한 것이다. 이것은 물질의 복이라는 기본적인 복과 영혼의 복이라는 궁극적인 복과 함께 인간의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요소다. 행복한 삶에는 사람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뜻하는 한자어 ‘인’(人)을 봐도 두 사람이 서로 기대어 있는 형상이다. ‘인간’(人間)이라고 하는 말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사람의 본질임을 암시하고 있다. 인간은 인간과 함께 살아가야만 인간다운 삶이 가능하고 이러한 인간들 ‘사이’에서의 삶이 행복의 필요조건이다.

실로 사람에게는 사람만이 채워줄 수 있는 욕구가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에게 사람을 주신다. 아담에게는 풍성한 자연계가 마련돼 있었고 하나님이 함께 계셨다. 부족할 것 없어야 할 그는 뭔가 부족함을 느꼈다. 사람이 그에게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 사람의 복을 주셨다.

우리의 전통 사상에서는 사람에게 천운, 지운, 인운이 있다고 말한다. 인운은 ‘사람 복’을 말하며 아무리 천운과 지운을 잘 타고 났어도 마지막 인운에서 그르치면 삶이 힘들어진다고 했다. 실로 사람은 행복의 주요 원인이다. 사람 없이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사실 교회에 나가는 것도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하나님과의 관계만을 생각한다면 굳이 교회에 나갈 필요가 없다. 얼마든지 혼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기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잠언 8장 31절은 지혜를 의인화하여 말하기를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었느니라.”고 표현하고 있다. 어떤 번역을 보면 “그분이 지으신 땅을 즐거워하며, 그분이 지으신 사람들을 내 기쁨으로 삼았다.”고 되어 있다. 우리는 삶에서 사람을 소중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 때로는 홀로 하나님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필요하지만, 사람들 속에 들어가지 않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단절하면서까지 그렇게 하는 것은 좋은 삶이 아니다. ‘삶’이란 글자에서 모음 ‘ㅏ’를 아래로 늘리면서 밀어내리면 ‘사람’이라는 글자가 만들어진다. 우리는 삶에서 사람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행복한 삶을 위해 필요한 사람들은 세 가지 형태의 ‘가족’으로 우리에게 주어진다. 그것은 생물학적 가족인 혈연가족(family), 사회적 가족인 친구들(friends), 그리고 영적 가족인 믿음의 친구들(faith-friends)이다.

이 세 가족 중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중요한 것은 혈연가족일 것이다. 실로 가정은 인간의 생존과 행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삶의 터이며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귀한 복이다.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주로 가족들로 인한 것이다. 우리 삶에서 가장 불행했던 순간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혈연가족은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바울은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라고 말하기도 했다.

행복에 큰 영향을 주는 또 하나의 사람들인 친구들은 우리가 선택하는 가족이요 사회적 가족이다. 친구의 중요성에 대해 성경도 분명히 말하고 있다.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다”(잠 18:24)고, 또한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한다.”(잠 27:17)고 말이다. 이 세상은 혼자 살아가기가 힘들다. 그래서 좋은 친구가 필요하다. 나이를 먹으면서 배우자와 좋은 친구처럼 지낼 수 있으면 큰 복이다. 배우자 외에도 가깝게 지낼 수 있는 친구들이 주변에 있다면 더 큰 복이다. 친구가 많을 필요는 없지만 정말로 가까운 친구는 한 두 명이라도 있어야 한다. 내 주변에는 은퇴한 이후에 그런 친구들과 가까이 어울려 사는 계획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참으로 현명한 생각이다.

영적 가족, 즉 믿음의 친구들은 우리가 선택하는 또 하나의 가족이다. 불신자들에게는 없는 매우 소중한 가족이다. 이 영적 가족은 때론 혈연가족이나 사회적 가족보다 더 소중한 가족이 될 수 있다. 바울은 교회의 성도들을 “형제들”이라고 말하면서 그들이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 안에서 맺어진 지역교회의 교우들은 참으로 소중한 영적 가족이다. 우리 크리스천의 행복은 상당 부분 우리가 속한 이 영적 가족과 관련이 있다. 시편 기자는 믿음의 친구들끼리 나누는 아름다운 관계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우리는 함께 다니며 재미있는 이야기도 나누고 성전에도 함께 드나들었다.”(55:14, 현대인의 성경) 과연 우리는 교우들과 얼마나 재미있게 교회생활을 하고 있을까? 갈등과 불화 때문에 너무 재미없고 불행한 교회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일이다.

사람은 행복의 주요 원인이지만 동시에 불행의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우리는 사람 없이는 행복할 수 없지만, 또 한편으로는 주로 사람 때문에 불행해진다. 이 사실은 우리가 사람과의 관계를 잘 해야 행복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좋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복, 즉 인운도 필요하지만, 우리에게는 주어진 사람 관계를 잘 가꾸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저절로 좋아지는 관계란 없다.

사람과의 관계를 잘 가꾸는 일이란 사랑을 나누는 일이다. 행복한 삶에는 우리 주변의 중요한 사람들과 사랑을 적절히 주고받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쉽지 않다. 가족, 친한 친구, 교우라도 상처를 주고, 은혜를 저버리고, 배반할 수도 있다. 이처럼 사람 사랑하는 일이 어렵지만 행복한 삶을 만들어가는 것은 그 길 밖에 없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결국 남는 것은 사랑이다. 충분히 사랑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행복한 존재가 될 것”이라고 했다.

영국 최북단인 컬크웰에서 런던까지 가는 가장 좋은 방법을 묻는 현상 공모를 영국의 한 신문사가 했다고 한다. 비행기, 기차, 도보 등 여러 가지 방법들이 나왔다. 1등으로 뽑힌 답은 “좋은 동반자와 함께 가는 것”이었다. 그렇다. 행복한 삶은 좋은 동반자들과 함께 걸어가는 것이다. 나는 이 땅에서 사람의 복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고 싶다. 나는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그러기 위해서 나의 세 가족들—혈연가족, 친구들, 그리고 교우들—과의 관계를 사랑으로 잘 가꾸어나가야 함을. 사람의 복은 사랑의 복이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