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사무엘상 18장 6절 - 16절
물맷돌 한 개로 골리앗을 쓰러뜨려서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가져온 다윗이 돌아온다는 소식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야단이 났습니다. 각 성에서 여인들이 나와 춤을 추며 사울 왕과 다윗을 환영합니다. 북을 치고 꽹과리를 울리며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군을 환영하는데, 이때 여인들이 부른 노래가 그만 사울 왕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사실 이 날은 다윗에게는 생애 중 최고의 날이었습니다. 이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이스라엘 백성 중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심지어 블레셋에서도 그의 이름은 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다윗은 고난의 길로 접어듭니다. 생애 최고의 날을 맞이한 다윗이 피할 수 없는 난관에 직면합니다. 바로 여인들의 노래 때문이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 노래의 가사 때문이었습니다.
아주 오래 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해 나올 때 그들은 이보다 더 큰 일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때 모세라는 한 개인을 높이는 노래는 들을 수 없었습니다. 대신 미리암이 작은 북을 치며 다른 여인들과 함께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출 15:21).” 그랬습니다. 그들은 모세에게 영광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만일 사울 왕이 승전하고 돌아올 때 여인들이 이렇게 노래를 했었다면 아무 문제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만 그 입이 문제였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희는 세상에 속한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거니와...(요일 4:5)” 예나 지금이나 영웅숭배는 변함이 없습니다. 사람을 높이는 일은 변함이 없습니다. 심지어 교회도 마찬가지로 그런 세상에 속한 말들을 서슴없이 합니다.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높이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문제가 생깁니다.
그리스도인은 “듣는 자에게 은혜를 끼치는” 말을 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세상에 속한 말을 할 때에도 우리 그리스도인은 듣는 자에게 은혜를 끼치는 말을 해야 합니다. 세상에 속한 말은 듣는 사람을 교만하게 만듭니다. 듣는 사람을 주눅들게 만듭니다. 듣는 사람을 화나게 만듭니다. 듣는 사람을 고민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듣는 사람을 질투하게 만듭니다. 여인들의 말은 사울 왕으로 질투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난 사울 왕이 좋아하기는커녕 이렇게 화를 냅니다.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의 더 얻을 것이 나라밖에 무엇이냐?” 다윗이 저렇게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으니 이제 다윗이 노릴 것이 이 왕의 자리밖에 더 무엇이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아무리 바른 말이라 할지라도 듣는 자에게 은혜를 끼치는 말을 하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집니다.
어느 목사님은 늘 여선교회 회원들에게 이런 당부를 했다고 합니다. “집에 가시면 제발 남편 앞에서 목사 칭찬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실 목사가 칭찬받을 일은 별로 없습니다. 그럼에도 때때로 여선교회 회원들이 집에 돌아가서는 믿지 않는 남편이나 혹 신앙이 약한 남편 앞에서 생각 없이 목사를 칭찬하고 나면 그 다음에 돌아오는 남편들의 반응은 듣지 않아도 뻔합니다. 어떤 반응을 보이리라고 생각하십니까? “너 가서 목사하고 살아라.” 대개 그런 반응입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집에서 다른 남자들 칭찬하지 마시라는 당부를 꼭 한다고 합니다. 알고 보면 남자들 속 좁은 사람 많습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이 지금 전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죽인 자는 수만 명이요, 자기가 죽인 자는 수천 명이라고 하니 기분이 나쁜 것입니다. 불쾌한 것입니다. 생각 없이 던진 말 한 마디가 그만 다윗을 고난의 길로 몰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눅 6:26).” 모든 사람이 칭찬하면 그게 좋은 게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독 모든 사람에게서 칭찬받는 이들이 있는데 거짓 선지자들이 바로 그들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는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을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여인들의 노래로 인해 다윗으로 하여금 고난의 길을 걷게 만드셨습니다. 하지만 이는 다윗의 교만을 꺾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다윗에게 세상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도록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세상의 인기, 세상의 명예라는 것이 얼마나 쉽게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는 지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사울 왕만 해도 그렇습니다. 사무엘상 16장 21절에 보면, “사울 왕이 다윗을 크게 사랑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런 사울 왕이 여인들의 노랫말이 불쾌하다며 이때부터 다윗을 죽일 기회를 노립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쉽게 변하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다윗은 여전히 사울 왕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일을 만나면서 다윗은 세상 사랑하는 마음이 사라지게 됩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의 칭찬, 사랑, 관심, 인기보다 오직 하나님의 칭찬만 바라보게 됩니다. 위대한 일, 선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이웃의 시기와 미움, 심지어 중상모략까지도 당할 위험을 각오해야 합니다.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 세상 하찮은 일, 세상적인 시시한 일들에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울 왕은 어떻습니까? 그의 삶을 특징짓는 세 가지 말씀이 등장합니다. 첫째는 “사울이 이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늘 화가 나 있습니다. 분노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아주 작고 하찮은 일에도 화를 냅니다. 둘째는 “그 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다윗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눈여겨보기 시작합니다. 보이는 건 오직 다윗뿐입니다. 혹 무슨 일을 작당하고 있나 의심합니다. 사울 왕은 이제 더 이상 바르게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다윗이 하는 모든 행동이 모두 왕위를 빼앗기 위한 행동이라고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셋째는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 다윗을 무서워합니다. 두려워합니다. 다윗에게는 사울 왕위를 탐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무서워하고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사울 왕은 다윗을 무서워하고 두려워합니다. 이 모든 것을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악신이 힘 있게 내리매...” 악한 영의 역사였습니다. 분노와 의심, 두려움 이 모든 것은 악한 영의 역사였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시면 평화와 확신, 믿음이 생겨납니다. 악한 영을 물리치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기도입니다. 제자들이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이에 주님께 묻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그러자 주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우리 삶이 분노로 가득 차 있습니까? 우리 삶이 의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 우리 삶이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를 평화와 확신에로, 믿음에로 인도해 줄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중에 은혜와 축복을 부어주시길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이렇게 권면하십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9).”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통해 아낌없이 우리에게 주시려고 하십니다.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혜를 주십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강을 주십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깨끗하게 치료해 주십니다. 기도하고 또 기도하십시다.
물맷돌 한 개로 골리앗을 쓰러뜨려서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가져온 다윗이 돌아온다는 소식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야단이 났습니다. 각 성에서 여인들이 나와 춤을 추며 사울 왕과 다윗을 환영합니다. 북을 치고 꽹과리를 울리며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군을 환영하는데, 이때 여인들이 부른 노래가 그만 사울 왕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사실 이 날은 다윗에게는 생애 중 최고의 날이었습니다. 이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이스라엘 백성 중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심지어 블레셋에서도 그의 이름은 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다윗은 고난의 길로 접어듭니다. 생애 최고의 날을 맞이한 다윗이 피할 수 없는 난관에 직면합니다. 바로 여인들의 노래 때문이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 노래의 가사 때문이었습니다.
아주 오래 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해 나올 때 그들은 이보다 더 큰 일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때 모세라는 한 개인을 높이는 노래는 들을 수 없었습니다. 대신 미리암이 작은 북을 치며 다른 여인들과 함께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출 15:21).” 그랬습니다. 그들은 모세에게 영광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만일 사울 왕이 승전하고 돌아올 때 여인들이 이렇게 노래를 했었다면 아무 문제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만 그 입이 문제였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희는 세상에 속한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거니와...(요일 4:5)” 예나 지금이나 영웅숭배는 변함이 없습니다. 사람을 높이는 일은 변함이 없습니다. 심지어 교회도 마찬가지로 그런 세상에 속한 말들을 서슴없이 합니다.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높이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문제가 생깁니다.
그리스도인은 “듣는 자에게 은혜를 끼치는” 말을 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세상에 속한 말을 할 때에도 우리 그리스도인은 듣는 자에게 은혜를 끼치는 말을 해야 합니다. 세상에 속한 말은 듣는 사람을 교만하게 만듭니다. 듣는 사람을 주눅들게 만듭니다. 듣는 사람을 화나게 만듭니다. 듣는 사람을 고민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듣는 사람을 질투하게 만듭니다. 여인들의 말은 사울 왕으로 질투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난 사울 왕이 좋아하기는커녕 이렇게 화를 냅니다.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의 더 얻을 것이 나라밖에 무엇이냐?” 다윗이 저렇게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으니 이제 다윗이 노릴 것이 이 왕의 자리밖에 더 무엇이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아무리 바른 말이라 할지라도 듣는 자에게 은혜를 끼치는 말을 하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집니다.
어느 목사님은 늘 여선교회 회원들에게 이런 당부를 했다고 합니다. “집에 가시면 제발 남편 앞에서 목사 칭찬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실 목사가 칭찬받을 일은 별로 없습니다. 그럼에도 때때로 여선교회 회원들이 집에 돌아가서는 믿지 않는 남편이나 혹 신앙이 약한 남편 앞에서 생각 없이 목사를 칭찬하고 나면 그 다음에 돌아오는 남편들의 반응은 듣지 않아도 뻔합니다. 어떤 반응을 보이리라고 생각하십니까? “너 가서 목사하고 살아라.” 대개 그런 반응입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집에서 다른 남자들 칭찬하지 마시라는 당부를 꼭 한다고 합니다. 알고 보면 남자들 속 좁은 사람 많습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이 지금 전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죽인 자는 수만 명이요, 자기가 죽인 자는 수천 명이라고 하니 기분이 나쁜 것입니다. 불쾌한 것입니다. 생각 없이 던진 말 한 마디가 그만 다윗을 고난의 길로 몰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눅 6:26).” 모든 사람이 칭찬하면 그게 좋은 게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독 모든 사람에게서 칭찬받는 이들이 있는데 거짓 선지자들이 바로 그들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는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을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여인들의 노래로 인해 다윗으로 하여금 고난의 길을 걷게 만드셨습니다. 하지만 이는 다윗의 교만을 꺾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다윗에게 세상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도록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세상의 인기, 세상의 명예라는 것이 얼마나 쉽게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는 지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사울 왕만 해도 그렇습니다. 사무엘상 16장 21절에 보면, “사울 왕이 다윗을 크게 사랑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런 사울 왕이 여인들의 노랫말이 불쾌하다며 이때부터 다윗을 죽일 기회를 노립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쉽게 변하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다윗은 여전히 사울 왕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일을 만나면서 다윗은 세상 사랑하는 마음이 사라지게 됩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의 칭찬, 사랑, 관심, 인기보다 오직 하나님의 칭찬만 바라보게 됩니다. 위대한 일, 선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이웃의 시기와 미움, 심지어 중상모략까지도 당할 위험을 각오해야 합니다.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 세상 하찮은 일, 세상적인 시시한 일들에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울 왕은 어떻습니까? 그의 삶을 특징짓는 세 가지 말씀이 등장합니다. 첫째는 “사울이 이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늘 화가 나 있습니다. 분노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아주 작고 하찮은 일에도 화를 냅니다. 둘째는 “그 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다윗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눈여겨보기 시작합니다. 보이는 건 오직 다윗뿐입니다. 혹 무슨 일을 작당하고 있나 의심합니다. 사울 왕은 이제 더 이상 바르게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다윗이 하는 모든 행동이 모두 왕위를 빼앗기 위한 행동이라고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셋째는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 다윗을 무서워합니다. 두려워합니다. 다윗에게는 사울 왕위를 탐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무서워하고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사울 왕은 다윗을 무서워하고 두려워합니다. 이 모든 것을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악신이 힘 있게 내리매...” 악한 영의 역사였습니다. 분노와 의심, 두려움 이 모든 것은 악한 영의 역사였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시면 평화와 확신, 믿음이 생겨납니다. 악한 영을 물리치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기도입니다. 제자들이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이에 주님께 묻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그러자 주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우리 삶이 분노로 가득 차 있습니까? 우리 삶이 의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 우리 삶이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를 평화와 확신에로, 믿음에로 인도해 줄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중에 은혜와 축복을 부어주시길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이렇게 권면하십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9).”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통해 아낌없이 우리에게 주시려고 하십니다.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혜를 주십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강을 주십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깨끗하게 치료해 주십니다. 기도하고 또 기도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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