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을 주님과 함께 기도하게 하는 성막기도-향단(출30:1-10)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마26:40) 예수님의 삶과 사역의 방법은 기도였습니다. 예수님의 우리를 향한 도전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에 성막에 있는 향단을 중심으로 해서 중보기도에 대하여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교회성장 학자이시고 콜로라도에서 기도의 집에서 세계 교회를 위한 중보사역을 하고 계시는 피터 웨그너 박사는 중보 기도를, “중보기도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어려운 사람을 위한 자비를 얻기 위하여 그 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간구하는 행위다.”라고 정의 한 바 있습니다.
영어의 Intercession 중보라는 말은 라틴어의 ‘Inter’ ~의 사이에 라는 말과 ‘Cedere’ 나아간다 라는 뜻으로 기도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나아가 기도하는 행위를 가르친 말입니다. 성경의 여러 곳에서 성도들의 기도를 대접에 담은 향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계시록 5장 8절에서,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고 했고 또 계시록 8장 3절과 4절에서도,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중보기도의 중요성은 제가 말하지 않더라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리고 성경이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중보기도 자들을 통하여 중보기도의 중요성을 확인해 보고 우리가 중보기도 자가 되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 것인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위대한 중보기도 자이십니다. 로마서 8장 34절에서 성경이 말씀하시기를,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신 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셨던 요한복음 17장에 기록되어있는 대 제사장의 기도는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중보기도입니다.
기도의 능력을 아시고 계시는 주님은 아직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대언하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요일2:1). 예수님의 기도의 특징은 1), 당신의 기도하신 것에 대한 응답을 한 번도 의심한일이 없다는 것입니다(요11:41-42). 2),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향한 사랑입니다. 3), 끈질김입니다. 예수님은 한 번도 기도하다가 중도에 포기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구세군의 창시자 윌리암 부스는, “기도응답 받는 비결은 거기에 생사가 달려 있는 것처럼 기도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중보기도 자들이 예수님께 배워야 할 태도입니다.
둘째, 성령님께서 위대한 중보기도 자이십니다. 성령님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다음에 우리와 함께하시는 또 다른 보혜사이십니다(요14:26). 로마서 8장 26절에서,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돕는다는 말의 헬라어의
‘sunantilambavneta’라는 단어는 세 단어가 합하여 하나의 단어가 된 것입니다. ‘sun’이라는 함께하는 말과 ‘anti’라는 양끝이라는 말 그리고 ‘lambavnw’잡다 라는 단어입니다.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에 내가 감당치 못하는 것을 우리와 함께 저편에서 잡아주시고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비록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고 부족한 것들 투성이 이지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되는 이유가 바로 이 성령님의 중보기도 사역이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교회와 성도들의 중보기도 사역입니다. 하나님은 교회와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중보 할 기도 자들을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59장 16절을 보면 “. . . 중재자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의 의를 스스로 의지하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중재자가 없는 것을 보시고 이상히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주신 말씀은,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서 찾다가 얻지 못한 고로.” 하나님께서 중보기도 자를 찾고 계신다는 것을 이처럼 생생하고 강하게 표현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포울 빌하임머 박사는, “어떤 교회든지 잘 조직되고 체계적인 기도 프로그램이 없는 교회는 단지 종교적인 다람쥐 체 바퀴 돌리는 것이다.”라고 말하여 교회의 중보기도 사역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행12:5). 그렇습니다. 중보기도 사역을 통하여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을 하나님께서 교회와 성도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 사역을 교회가 한 다면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다음에는 언약궤를 중심으로 해서 언약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와 언약을 성취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도에 대하여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마26:40) 예수님의 삶과 사역의 방법은 기도였습니다. 예수님의 우리를 향한 도전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에 성막에 있는 향단을 중심으로 해서 중보기도에 대하여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교회성장 학자이시고 콜로라도에서 기도의 집에서 세계 교회를 위한 중보사역을 하고 계시는 피터 웨그너 박사는 중보 기도를, “중보기도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어려운 사람을 위한 자비를 얻기 위하여 그 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간구하는 행위다.”라고 정의 한 바 있습니다.
영어의 Intercession 중보라는 말은 라틴어의 ‘Inter’ ~의 사이에 라는 말과 ‘Cedere’ 나아간다 라는 뜻으로 기도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나아가 기도하는 행위를 가르친 말입니다. 성경의 여러 곳에서 성도들의 기도를 대접에 담은 향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계시록 5장 8절에서,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고 했고 또 계시록 8장 3절과 4절에서도,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중보기도의 중요성은 제가 말하지 않더라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리고 성경이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중보기도 자들을 통하여 중보기도의 중요성을 확인해 보고 우리가 중보기도 자가 되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 것인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위대한 중보기도 자이십니다. 로마서 8장 34절에서 성경이 말씀하시기를,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신 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셨던 요한복음 17장에 기록되어있는 대 제사장의 기도는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중보기도입니다.
기도의 능력을 아시고 계시는 주님은 아직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대언하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요일2:1). 예수님의 기도의 특징은 1), 당신의 기도하신 것에 대한 응답을 한 번도 의심한일이 없다는 것입니다(요11:41-42). 2),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향한 사랑입니다. 3), 끈질김입니다. 예수님은 한 번도 기도하다가 중도에 포기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구세군의 창시자 윌리암 부스는, “기도응답 받는 비결은 거기에 생사가 달려 있는 것처럼 기도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중보기도 자들이 예수님께 배워야 할 태도입니다.
둘째, 성령님께서 위대한 중보기도 자이십니다. 성령님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다음에 우리와 함께하시는 또 다른 보혜사이십니다(요14:26). 로마서 8장 26절에서,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돕는다는 말의 헬라어의
‘sunantilambavneta’라는 단어는 세 단어가 합하여 하나의 단어가 된 것입니다. ‘sun’이라는 함께하는 말과 ‘anti’라는 양끝이라는 말 그리고 ‘lambavnw’잡다 라는 단어입니다.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에 내가 감당치 못하는 것을 우리와 함께 저편에서 잡아주시고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비록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고 부족한 것들 투성이 이지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되는 이유가 바로 이 성령님의 중보기도 사역이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교회와 성도들의 중보기도 사역입니다. 하나님은 교회와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중보 할 기도 자들을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59장 16절을 보면 “. . . 중재자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의 의를 스스로 의지하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중재자가 없는 것을 보시고 이상히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주신 말씀은,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서 찾다가 얻지 못한 고로.” 하나님께서 중보기도 자를 찾고 계신다는 것을 이처럼 생생하고 강하게 표현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포울 빌하임머 박사는, “어떤 교회든지 잘 조직되고 체계적인 기도 프로그램이 없는 교회는 단지 종교적인 다람쥐 체 바퀴 돌리는 것이다.”라고 말하여 교회의 중보기도 사역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행12:5). 그렇습니다. 중보기도 사역을 통하여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을 하나님께서 교회와 성도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 사역을 교회가 한 다면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다음에는 언약궤를 중심으로 해서 언약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와 언약을 성취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도에 대하여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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