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오늘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하여 강조하려고 하시는 말씀은 말씀을 받고 사람들이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길 가에 떨어진 씨앗은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는다…곧, 마귀가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아 가버리는 경우를 말합니다.
더러는 돌밭에 떨어지지만, 잠깐 믿다가 금방 실족해 버리는 경우입니다.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마음 속에 있는 쓴 뿌리와 세상의 염려나 돈에 대한 욕심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들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십니다.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우리 주님의 말씀에 23절입니다…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된다는 뜻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된다는 것, 저는 그것이야말로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습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말씀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 넓이와 깊이와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을 측량할 수 없습니다. 씨를 뿌리는 자는 하나님이십니다. 깨닫게 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열매를 맺게 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께서 오늘 본문의 말씀을 잘 읽어 보시면 느낄 수 있는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씨앗은 한 가지인데, 마음 밭의 종류는 네 가지로 표현하시면서, 그 네 가지의 마음 밭들이 점차적으로 좋아지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한 마디로 말씀 드리면,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져서 점점 성장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한 사람이 말씀을 들을 때에 마치 길가에 떨어진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와 무관심하게 살아갑니다. 사단이 방해를 하고 본인도 신경 쓰지 않고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씨앗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계속해서 떨어지는데 돌밭과 같은 사람의 마음에도 떨어집니다.
말씀을 듣기는 들었는데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조금 믿다가 시험이 오자 배반해 버리기도 합니다. 그래도, 말씀의 씨앗은 계속해서 뿌려집니다. 그러다가, 가시떨기 같은 마음에도 떨어집니다. 말씀을 잘 듣기는 했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성장하려고 노력도 합니다. 그런데, 가시떨기와 같은 마음에 있는 쓴 뿌리가 세상의 염려, 재리, 쾌락 등으로 물들어서 온전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그런데, 말씀은 좋은 땅에도 떨어집니다. 그래서,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을 맺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성장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말씀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아도 좋습니다. 너무 어렵게 느껴져도 좋습니다. 포기하지 말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길가에 있던 말씀의 씨앗이 바위 위에 떨어지고, 가시떨기 속에도 들어갔다가, 좋은 마음 밭에서 자라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주시는 더 깊은 도전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시다가 24절부터 시작해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가십니다. 그냥 씨 뿌리는 사람이 아니라 이제는 좋은 씨를 자기 밭에 뿌린 사람의 마음에 대한 비유의 말씀입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고자 할 때 다가오는 성장에 따르는 고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라지에 대한 비유의 말씀을 주십니다. 천국은 좋은 씨를 자기 밭에 뿌린 사람과 같은데 원수가 와서 가라지도 그 위에다가 함께 뿌렸다. 싹이 나고 결실할 때 좋은 곡식과 함께 가라지도 보였다.
종들이 와서 주인에게 "좋은 씨를 뿌렸는데 왜 가라지도 함께 나오나요." 주인이 대답하기를 "원수가 그렇게 했구나." 종들이 가로되 "그럼 가라지를 뽑을까요." "아니다,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간단한 이야기 같지만,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도전은 상당히 심각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 가라지와 같은 부분을 그냥 두실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가라지도 우리를 단련하시는 도구로 사용하실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교회 생활을 하면서 의아해 하는 부분이 이런 것입니다. 착한 양들 틈에 괜한 염소 한 마리가 끼어 있는 것 같은 그런 생각…염소가 뿔을 가지고 이리 저리 착한 양들을 못살게 구는 모습을 보는 것 같을 때, 우리는 당장이라도 가라지를 뽑아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잔잔한 호수 속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는 잉어들 틈에 메기 한 마리가 침투합니다. 어떻게 될까요? 잉어들이 난리가 나지요…살아남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면서 도망 다녀야 합니다. 그런 이야기가 있지요…어주구리…물고기가 걸어서 구리를 간다.
연못 속에 잉어들 틈에 메기 한 마리가 들어가니까 잉어가 도망 다니다가 더 이상 살 수가 없어서 아주 물고기로서는 초능력을 발휘한다는 내용입니다. 연못에서 튀어 나와서 사람처럼 걸어서 구리나 도망을 갑니다. 좇아가던 농부가 그 물고기를 보면서 외친 말입니다…어쭈구리.
메기라는 놈 때문에 초어적인 능력을 발휘했던 그 잉어처럼, 저와 여러분에게도 혹시 메기와 같은 가라지가 있습니까? 그 가라지 때문에 아파하고 힘들어 하고 당장이라도 뽑아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 때는 없습니까? 오히려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섭리인 것을 깨닫기 원합니다.
더러는 돌밭에 떨어지지만, 잠깐 믿다가 금방 실족해 버리는 경우입니다.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마음 속에 있는 쓴 뿌리와 세상의 염려나 돈에 대한 욕심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들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십니다.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우리 주님의 말씀에 23절입니다…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된다는 뜻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된다는 것, 저는 그것이야말로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습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말씀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 넓이와 깊이와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을 측량할 수 없습니다. 씨를 뿌리는 자는 하나님이십니다. 깨닫게 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열매를 맺게 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께서 오늘 본문의 말씀을 잘 읽어 보시면 느낄 수 있는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씨앗은 한 가지인데, 마음 밭의 종류는 네 가지로 표현하시면서, 그 네 가지의 마음 밭들이 점차적으로 좋아지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한 마디로 말씀 드리면,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져서 점점 성장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한 사람이 말씀을 들을 때에 마치 길가에 떨어진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와 무관심하게 살아갑니다. 사단이 방해를 하고 본인도 신경 쓰지 않고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씨앗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계속해서 떨어지는데 돌밭과 같은 사람의 마음에도 떨어집니다.
말씀을 듣기는 들었는데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조금 믿다가 시험이 오자 배반해 버리기도 합니다. 그래도, 말씀의 씨앗은 계속해서 뿌려집니다. 그러다가, 가시떨기 같은 마음에도 떨어집니다. 말씀을 잘 듣기는 했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성장하려고 노력도 합니다. 그런데, 가시떨기와 같은 마음에 있는 쓴 뿌리가 세상의 염려, 재리, 쾌락 등으로 물들어서 온전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그런데, 말씀은 좋은 땅에도 떨어집니다. 그래서,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을 맺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성장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말씀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아도 좋습니다. 너무 어렵게 느껴져도 좋습니다. 포기하지 말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길가에 있던 말씀의 씨앗이 바위 위에 떨어지고, 가시떨기 속에도 들어갔다가, 좋은 마음 밭에서 자라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주시는 더 깊은 도전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시다가 24절부터 시작해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가십니다. 그냥 씨 뿌리는 사람이 아니라 이제는 좋은 씨를 자기 밭에 뿌린 사람의 마음에 대한 비유의 말씀입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고자 할 때 다가오는 성장에 따르는 고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라지에 대한 비유의 말씀을 주십니다. 천국은 좋은 씨를 자기 밭에 뿌린 사람과 같은데 원수가 와서 가라지도 그 위에다가 함께 뿌렸다. 싹이 나고 결실할 때 좋은 곡식과 함께 가라지도 보였다.
종들이 와서 주인에게 "좋은 씨를 뿌렸는데 왜 가라지도 함께 나오나요." 주인이 대답하기를 "원수가 그렇게 했구나." 종들이 가로되 "그럼 가라지를 뽑을까요." "아니다,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간단한 이야기 같지만,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도전은 상당히 심각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 가라지와 같은 부분을 그냥 두실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가라지도 우리를 단련하시는 도구로 사용하실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교회 생활을 하면서 의아해 하는 부분이 이런 것입니다. 착한 양들 틈에 괜한 염소 한 마리가 끼어 있는 것 같은 그런 생각…염소가 뿔을 가지고 이리 저리 착한 양들을 못살게 구는 모습을 보는 것 같을 때, 우리는 당장이라도 가라지를 뽑아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잔잔한 호수 속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는 잉어들 틈에 메기 한 마리가 침투합니다. 어떻게 될까요? 잉어들이 난리가 나지요…살아남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면서 도망 다녀야 합니다. 그런 이야기가 있지요…어주구리…물고기가 걸어서 구리를 간다.
연못 속에 잉어들 틈에 메기 한 마리가 들어가니까 잉어가 도망 다니다가 더 이상 살 수가 없어서 아주 물고기로서는 초능력을 발휘한다는 내용입니다. 연못에서 튀어 나와서 사람처럼 걸어서 구리나 도망을 갑니다. 좇아가던 농부가 그 물고기를 보면서 외친 말입니다…어쭈구리.
메기라는 놈 때문에 초어적인 능력을 발휘했던 그 잉어처럼, 저와 여러분에게도 혹시 메기와 같은 가라지가 있습니까? 그 가라지 때문에 아파하고 힘들어 하고 당장이라도 뽑아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 때는 없습니까? 오히려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섭리인 것을 깨닫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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