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력
최학량 목사는 남가주 하버시에 있는 새창조교회를 개척하여 12년째 시무하고 있다. 한국 고신SFC 대표간사를 역임했으며 군목으로 제1군단 사령부와 육군대학 군종참모을 거쳐 중령으로 전역했고 현역시절에 고신교단 군목단장을 맡았다. 최 목사는 도미해 역시 SFC의 대표간사로 일했으며 국내외 1천5백여회의 부흥회를 인도했고 2002년도에는 제18회 재미고신 총회장도 역임한 바 있다. 현재는 복음대학교 부이사장, 남가주영관장교연합회 부회장 및 월드비전 운영위원으로 있다.
"인질들에게 음식이라도 먹였나?" "아니 먹지 않았다" "그래 너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먹을 수 있겠냐" 오가는 대화는 짧았지만 상황은 긴박했다. 전방부대에서 보초근무중이던 한 군인이 야밤을 틈타 탈영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것도 실탄과 수류탄을 소지한 채 말이다. 일대 도시는 일순간 공포에 휩싸였다. 비상이었지만 군 지휘관과 중대장, 전우들, 심지어 친 어머니의 권고도 먹히지 않았다. 2명의 여자 인질의 목숨을 장담할 수 없는 급박한 상황이 계속됐다. 그때 한 군종참모가 단신으로 뛰어들어가 그 탈영병를 침착하게 설득, 무장해제시키고 극적으로 자수시킨다. 3천명의 군인이 투입된 대치 상황은 그렇게 종결됐다.
주인공은 당시 oo군단 중령으로 있던 최학량 목사였다. 당시 상황을 묻자, "무장탈영하는 사건이 발생하면 사실 그 누구도 손쓰기 힘들어집니다. 영생을 믿고 복음을 전하는 군목이 나서야만 하는 자리였죠." 나라의 안보를 책임지는 자리에서 살아온 그였기에 투철한 안보관과 희생정신은 분명 남달랐다.
특수목회를 해온 그였기에 극적 상황도 여럿 있었다. 원주 00부대 소령으로 있을 때다. 헌병대장의 집에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갑자기 불이나자 헌병대장 부부는 본능적으로 뛰쳐나왔지만 아이를 미쳐 생각 못했다. 하지만 이미 불길은 너무 거세졌고 완전무장한 소방대원들도 어찌하지를 못했다. 그때 최 목사는 헌병대장 부인이 "아기가~"라는 말만 되뇌이며 울부짖는 것을 보고는 본능적으로 불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누구도 미쳐 말릴 겨를도 없었다.
"불길을 뚫고 안방부터 들어갔죠. 없더라구요. 그러다 거실을 지나서 문간방에서 자는 아이가 보였습니다. 바로 안고 나왔죠." 당시 불길은 겉에서 보기와는 달리 실내는 막 번지기 시작한 단계라 그나마 덜 위험했다. 그렇게 아이도 최 목사도 무사할 수 있었다.
이런 대소사는 사실 한둘이 아니었다. 어디에서 그런 용기가 났을까? "제 몸이 자동으로 그렇게 움직이더군요." 일순 갸우뚱했지만 곧 고개가 끄덕여졌다. 늘 '죽으면 국립묘지에 묻히지 뭐' '나는 이웃을 위해 죽겠다'고 되뇌이며 걸어온 군생활이었기에 몸이 그렇게 반응할 수 밖에.
이렇듯 나라의 국방과 신앙 모두를 책임지는 군목으로 20여년간 섬긴 최 목사는 한국 군선교의 대표적 인물중 한 명이었고 교단 안에서의 신뢰도도 상당했다. 그리고 이제는 남가주교계의 일꾼으로 특히, 사상적인 보루로 톡톡히 쓰임받고 있다. 작년에는 남가주한국예비역기독장교회 회장으로 그리고 올해는 남가주영관장교연합회 부회장으로 섬기는 모습부터가 그렇다.
교회 깨어나라! 지금은 전시상황
6월 한달 최 목사는 정말 바빴다. 계속되는 6.25 한국전쟁 관련행사로 여기 저기서 찾는 통에 눈코뜰새 없었다. 사실 이러한 활동 모두는 북한의 실체를 제대로 알려야 하기 때문이다. "정말 중요한 사실을 미국의 한 종교관련 사이트가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기독교 신자가 21억명, 이슬람교가 13억명, 힌두교가 9억명, 유교가 3억9천400만명이라는 통계자료를 읽다가 뒤에 북한의 주체사상이 1천900만으로 기록돼 있는 걸 봤습니다."
북한은 국가라기 보다 주체사상으로 통제되는 하나의 종교집단이라는 것. 그리고 주체사상이 흔들리자 민족주의라는 미명하에 단군우상이라는 카드를 들었다는 말이 이어졌다.
"주체사상에 민족주의를 교묘히 포장하는 작업이죠. 한민족이 단군의 후손이라고 단군릉을 크게 짓고 북한 땅에 단군상을 3천개나 세운 것이 그러한 노력들입니다."
최 목사의 한 후배목회자는 북한에 이어 남한땅에 암암리에 세워지는 단군상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철거운동에 나섰다가 투옥되기도 했다.
그는 외친다. 지금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치열한 영적전쟁에 교회가 얼마나 깨어있는지 점검해야 한다고. "복음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그렇기에 동족이 300만명이나 아사한 일을 그냥 묵과할 수는 없는 일이죠. 이건 영적인 전시상황입니다. 북한 땅의 수많은 영혼이 이처럼 힘없이 죽어가는 모습을 볼 때 교회가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또한 정말로 제대로 일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더구나 올해는 대선을 앞두고 있어 더욱 중요한 때를 가고 있다는 그는 "다행인 것은 모든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에 승패 또한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렇기에 지금은 하나님과 씨름하며 국가의 장래를 놓고 기도할 뿐입니다."
부흥회나 각종 집회의 마지막날은 국가관을 확립할 수 있게 메세지를 전하는 것도 결국은 교회가 올바른 국가관과 세계관을 심어주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는 신념에서다.
최학량 목사는
4살때부터 어머니 손을 잡고 교회를 다녔다. 중2때는 영어사전에 'I want to pastor' 이라고 써 놓고 새벽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예배당을 찾아가 기도의 단을 쌓았다. 그렇게 시작된 새벽기도는 지금도 이 교회 새벽기도회로 일년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는 늘 "기도하는 재주 밖에는 내게 능력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엄격한 질서가 있는 군대가 좋아 군목의 길을 택했다. 나라와 장병 모두는 섬김의 대상이었다. 희생하고 섬기는 삶을 실천하자는 그의 목회관도 군에서 확고히 자리잡았다.
수도경비사령관, 1군단장, 기타 여러 장군들이 그가 있을 당시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최고의 계급으로 진급한 뒤 지금은 각 분야의 장관들로 국가에 공헌하는 이들이 된 걸 볼 때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란다.
설교는 구름잡는 식의 설교 보다는 삶 가운데 즉각 실천가능한 내용들을 좋아한다. 특별히 예배는 세대차를 최소화하기 위해 전 세대가 함께 드리는 쪽을 선호한다. 그래서 주일 1부 예배는 교사 중심의 설교를 해 영어권, 2세에게 전달식 교육이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2부 예배는 영어권과 2세도 일단 함께 예배를 드리되 찬양대 찬양이 끝나면 교사들과 학생들은 곧 바로 교육관으로 이동해서 예배와 교회학교를 진행하게 하고 있다.
또한 국가 기념주일, 교회력에 따른 모든 절기는 철저히 지킨다. "역사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 모든 기념일의 배경 또한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섭리로 특별히 역사하신 날이기에 꼭 기념하고 2세들에게 전수하고 있습니다."
최 목사는 또한 교회 설립과 동시에 5개국의 선교사를 지원했고 현재 교회 재정의 20%를 책정, 7개국의 선교사를 지원하고 있다.
취재를 마치며
군대라는 특수집단에서 장병들이 신앙의 꽃을 피울 수 있게 돕는 일은 군선교의 백미일 것이다. 그 일선에서 젊음을 바친 한 목회자를 만나는 일은 분명 감사한 자리였다. 먼저 예편했다 하지만 군선교에 대한 열정만은 여전한 모습이 인상 깊었다. 전군을 복음화하기 위해 한국에서 추진중인 '비전2020'는 '8만 기독군인회원'과 '장병 75%의 신자화'를 푯대로 하는 프로젝트로 그는 미주지역 군 관련 인사와 매년 한국에서 진중세례식을 베풀며 이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무엇보다 영혼구원을 위해 세상에 선포되는 복음이 세상의 견고한 진과 잘 싸워 이 땅 가운데 뿌리내릴 수 있게 기도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최학량 목사는 남가주 하버시에 있는 새창조교회를 개척하여 12년째 시무하고 있다. 한국 고신SFC 대표간사를 역임했으며 군목으로 제1군단 사령부와 육군대학 군종참모을 거쳐 중령으로 전역했고 현역시절에 고신교단 군목단장을 맡았다. 최 목사는 도미해 역시 SFC의 대표간사로 일했으며 국내외 1천5백여회의 부흥회를 인도했고 2002년도에는 제18회 재미고신 총회장도 역임한 바 있다. 현재는 복음대학교 부이사장, 남가주영관장교연합회 부회장 및 월드비전 운영위원으로 있다.
"인질들에게 음식이라도 먹였나?" "아니 먹지 않았다" "그래 너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먹을 수 있겠냐" 오가는 대화는 짧았지만 상황은 긴박했다. 전방부대에서 보초근무중이던 한 군인이 야밤을 틈타 탈영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것도 실탄과 수류탄을 소지한 채 말이다. 일대 도시는 일순간 공포에 휩싸였다. 비상이었지만 군 지휘관과 중대장, 전우들, 심지어 친 어머니의 권고도 먹히지 않았다. 2명의 여자 인질의 목숨을 장담할 수 없는 급박한 상황이 계속됐다. 그때 한 군종참모가 단신으로 뛰어들어가 그 탈영병를 침착하게 설득, 무장해제시키고 극적으로 자수시킨다. 3천명의 군인이 투입된 대치 상황은 그렇게 종결됐다.
주인공은 당시 oo군단 중령으로 있던 최학량 목사였다. 당시 상황을 묻자, "무장탈영하는 사건이 발생하면 사실 그 누구도 손쓰기 힘들어집니다. 영생을 믿고 복음을 전하는 군목이 나서야만 하는 자리였죠." 나라의 안보를 책임지는 자리에서 살아온 그였기에 투철한 안보관과 희생정신은 분명 남달랐다.
특수목회를 해온 그였기에 극적 상황도 여럿 있었다. 원주 00부대 소령으로 있을 때다. 헌병대장의 집에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갑자기 불이나자 헌병대장 부부는 본능적으로 뛰쳐나왔지만 아이를 미쳐 생각 못했다. 하지만 이미 불길은 너무 거세졌고 완전무장한 소방대원들도 어찌하지를 못했다. 그때 최 목사는 헌병대장 부인이 "아기가~"라는 말만 되뇌이며 울부짖는 것을 보고는 본능적으로 불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누구도 미쳐 말릴 겨를도 없었다.
"불길을 뚫고 안방부터 들어갔죠. 없더라구요. 그러다 거실을 지나서 문간방에서 자는 아이가 보였습니다. 바로 안고 나왔죠." 당시 불길은 겉에서 보기와는 달리 실내는 막 번지기 시작한 단계라 그나마 덜 위험했다. 그렇게 아이도 최 목사도 무사할 수 있었다.
이런 대소사는 사실 한둘이 아니었다. 어디에서 그런 용기가 났을까? "제 몸이 자동으로 그렇게 움직이더군요." 일순 갸우뚱했지만 곧 고개가 끄덕여졌다. 늘 '죽으면 국립묘지에 묻히지 뭐' '나는 이웃을 위해 죽겠다'고 되뇌이며 걸어온 군생활이었기에 몸이 그렇게 반응할 수 밖에.
이렇듯 나라의 국방과 신앙 모두를 책임지는 군목으로 20여년간 섬긴 최 목사는 한국 군선교의 대표적 인물중 한 명이었고 교단 안에서의 신뢰도도 상당했다. 그리고 이제는 남가주교계의 일꾼으로 특히, 사상적인 보루로 톡톡히 쓰임받고 있다. 작년에는 남가주한국예비역기독장교회 회장으로 그리고 올해는 남가주영관장교연합회 부회장으로 섬기는 모습부터가 그렇다.
교회 깨어나라! 지금은 전시상황
6월 한달 최 목사는 정말 바빴다. 계속되는 6.25 한국전쟁 관련행사로 여기 저기서 찾는 통에 눈코뜰새 없었다. 사실 이러한 활동 모두는 북한의 실체를 제대로 알려야 하기 때문이다. "정말 중요한 사실을 미국의 한 종교관련 사이트가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기독교 신자가 21억명, 이슬람교가 13억명, 힌두교가 9억명, 유교가 3억9천400만명이라는 통계자료를 읽다가 뒤에 북한의 주체사상이 1천900만으로 기록돼 있는 걸 봤습니다."
북한은 국가라기 보다 주체사상으로 통제되는 하나의 종교집단이라는 것. 그리고 주체사상이 흔들리자 민족주의라는 미명하에 단군우상이라는 카드를 들었다는 말이 이어졌다.
"주체사상에 민족주의를 교묘히 포장하는 작업이죠. 한민족이 단군의 후손이라고 단군릉을 크게 짓고 북한 땅에 단군상을 3천개나 세운 것이 그러한 노력들입니다."
최 목사의 한 후배목회자는 북한에 이어 남한땅에 암암리에 세워지는 단군상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철거운동에 나섰다가 투옥되기도 했다.
그는 외친다. 지금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치열한 영적전쟁에 교회가 얼마나 깨어있는지 점검해야 한다고. "복음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그렇기에 동족이 300만명이나 아사한 일을 그냥 묵과할 수는 없는 일이죠. 이건 영적인 전시상황입니다. 북한 땅의 수많은 영혼이 이처럼 힘없이 죽어가는 모습을 볼 때 교회가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또한 정말로 제대로 일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더구나 올해는 대선을 앞두고 있어 더욱 중요한 때를 가고 있다는 그는 "다행인 것은 모든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에 승패 또한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렇기에 지금은 하나님과 씨름하며 국가의 장래를 놓고 기도할 뿐입니다."
부흥회나 각종 집회의 마지막날은 국가관을 확립할 수 있게 메세지를 전하는 것도 결국은 교회가 올바른 국가관과 세계관을 심어주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는 신념에서다.
최학량 목사는
4살때부터 어머니 손을 잡고 교회를 다녔다. 중2때는 영어사전에 'I want to pastor' 이라고 써 놓고 새벽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예배당을 찾아가 기도의 단을 쌓았다. 그렇게 시작된 새벽기도는 지금도 이 교회 새벽기도회로 일년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는 늘 "기도하는 재주 밖에는 내게 능력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엄격한 질서가 있는 군대가 좋아 군목의 길을 택했다. 나라와 장병 모두는 섬김의 대상이었다. 희생하고 섬기는 삶을 실천하자는 그의 목회관도 군에서 확고히 자리잡았다.
수도경비사령관, 1군단장, 기타 여러 장군들이 그가 있을 당시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최고의 계급으로 진급한 뒤 지금은 각 분야의 장관들로 국가에 공헌하는 이들이 된 걸 볼 때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란다.
설교는 구름잡는 식의 설교 보다는 삶 가운데 즉각 실천가능한 내용들을 좋아한다. 특별히 예배는 세대차를 최소화하기 위해 전 세대가 함께 드리는 쪽을 선호한다. 그래서 주일 1부 예배는 교사 중심의 설교를 해 영어권, 2세에게 전달식 교육이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2부 예배는 영어권과 2세도 일단 함께 예배를 드리되 찬양대 찬양이 끝나면 교사들과 학생들은 곧 바로 교육관으로 이동해서 예배와 교회학교를 진행하게 하고 있다.
또한 국가 기념주일, 교회력에 따른 모든 절기는 철저히 지킨다. "역사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 모든 기념일의 배경 또한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섭리로 특별히 역사하신 날이기에 꼭 기념하고 2세들에게 전수하고 있습니다."
최 목사는 또한 교회 설립과 동시에 5개국의 선교사를 지원했고 현재 교회 재정의 20%를 책정, 7개국의 선교사를 지원하고 있다.
취재를 마치며
군대라는 특수집단에서 장병들이 신앙의 꽃을 피울 수 있게 돕는 일은 군선교의 백미일 것이다. 그 일선에서 젊음을 바친 한 목회자를 만나는 일은 분명 감사한 자리였다. 먼저 예편했다 하지만 군선교에 대한 열정만은 여전한 모습이 인상 깊었다. 전군을 복음화하기 위해 한국에서 추진중인 '비전2020'는 '8만 기독군인회원'과 '장병 75%의 신자화'를 푯대로 하는 프로젝트로 그는 미주지역 군 관련 인사와 매년 한국에서 진중세례식을 베풀며 이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무엇보다 영혼구원을 위해 세상에 선포되는 복음이 세상의 견고한 진과 잘 싸워 이 땅 가운데 뿌리내릴 수 있게 기도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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