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릭사이드 교회 김칠곤 목사
크릭사이드 교회 김칠곤 목사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답을 한다면 필자는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사랑은 '요람에서 죽음'까지 계속되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랑은 나이, 인종과 어느 특정한 대상에 상관없이 누구나 가지고 살아가도록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건으로 삶을 살아가며, 인간이 사랑해야 하는데, 이와 같은 필요한 조건이 충족이 되지 못하게 되면 인간은 누구나 마음에 상처를 받게 된다. 그런데 관심 있게 이러한 상처를 본다면 수많은 경우에 그 상처의 시작이 가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특별히 가정에서 자라는 어린 아이들의 유년시절은 인생에 있어서 사랑의 가치관을 부모로 부터 보고, 느끼며 자라기에 어린 시절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 이유는 어린 시절에 그들이 무엇을 보고 자라났느냐에 의해 그것이 평생의 삶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만일 어린아이가 부모로 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고 학대를 받고 살았다면 그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과거의 아픔들을 그대로 가지고 살아가기에 그것으로부터 치유를 받지 아니하면 그 다음 세대에게도 그것이 전달된다. 그러나 이와 반면에 부모가 자녀에게 비추어지는 사랑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여지고 그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부모로 부터 배웠다면 그들은 성인이 되어 가정을 꾸리는데 있어서 부모가 보여준 삶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실천하며 살아가게 된다. 이러한 삶이 후손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것은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 간에 친밀한 정서의 관계를 이루고 살아가는 '애착'(愛着)이라는 고리가 있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주어지는 '애착'의 관계에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면 그때부터는 마음에 상처를 받기 시작한다. 여기서 말하는 애착은 부모가 자녀를 사랑함에 있어서 인격적인 사랑을 말하는 것이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함에 있어서 중립적인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부모가 자녀에 대해 지나친 집착력을 가지고 강압적으로 자녀들의 삶을 사사 건건 바꾸거나 교정하려고 한다면 언젠가는 '갑을'(甲乙)관계를 갖게 되어 부모가 자녀에게 '갑질'을 하게 되어 그때부터는 자녀가 부모를 더 이상 존경(尊敬)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녀가 어린 시절 부모의 부부애(愛)에 문제가 있어 별거를 하거나 이혼을 함에 있어서 자식의 소중함과 그들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면 부모에 대한 신뢰감이 상실 되어 삶을 방황을 하거나 삶의 목적의식을 상실하는 아픔을 마음속으로 끌어안고 살아가게 된다. 그래서 가정에 있어서 혈육 간에 애착은 중요한 것이며, 이것은 쉽게 내치거나 방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애착'은 사람의 심리와 행동을 지배할 뿐 아니라 삶의 방식과 사람들과의 대인관계를 유지하는 데에도 큰 영향력을 주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주어지는 이러한 애착의 연결고리는 비단 사람에게만 아니라 동물들의 관계 속에서도 동일하게 주어진다는 것이다. 동물도 사랑을 받지 못하면 소극적이고, 자폐증을 나타내고, 사람에게 공격적이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에 대해 두려움으로 경계하는 것을 동물농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를 통해 볼 수 있다. 

이번 겨울에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재미나게 드라마를 본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캐나다 알버타(Alberta)주의 어느 시골 목장에 6대째 내려온 가정의 삶을 그려 놓은 것이다. 그 드라마의 제목은 "마음의 땅"(Heartland)로 이것은 그 목장을 알리는 이름이다.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은 말(馬)을 너무나 사랑하는 십대 소녀인 에이미 플래밍(Amy Fleming)이다. 그녀는 어린 나이지만 어릴 때부터 엄마로 부터 말을 어떻게 사랑하는 지를 배우고, 거칠고 뭔가 문제 많은 말들을 잘 훈련시키는 조련사이다. 그녀가 말을 타고, 가르치고, 어떤 경기에 나가든지 수상을 받을 수 있지만 그러한 것들을 거부하고 오직 말들을 사랑하고 훈련하는데 만 관심을 쏟아 부었다. 수많은 사람들은 말을 통해 부자가 되려하고, 경기에서 우승을 하려고만 했지, 말이 갈등하고 말의 건강에 이상이 주어진 것에 대해서는 그리 크게 관심을 두지 않은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 소녀는 말들의 내면의 심리적인 것들을 이해하고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공격하려고 하는 말들에게 끊임없는 도전과 사랑을 보여 다가섰고 말들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그것은 '신뢰와 사랑'이었으며 이러한 것들은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온순한 자가 거친 자에게, 평안한자가 상처를 받은 자에게,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에게 먼저 다가서는 것이며 진심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거친 말이 어느새 등을 돌리고 서 있는 소녀에게 말이 다가와 소녀의 팔을 툭툭치는 것이다. 그 소녀가 한 말 중에 인상적인 것이 몇 가지가 있는 데 "말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서 두 발짝 물러서고 한 발짝 앞으로 다가 가는 것이다.", "말에 대한 사랑을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말을 하지 못하는 짐승을 사랑하는 한 소녀는 참으로 삶의 영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상처를 받고 살아가는 말 못하는 짐승을 이해하며 신뢰함을 보여 준다는 것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니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말들도 상처를 치유 받지 못하면 사람들에게 공격의 대상이 되기에 말의 주인으로 부터 버림을 받게 된다. 이것은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인간은 삶을 살면서 환경 속에서 상처를 받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제자 삼기 위해 하나님으로 부터 부름을 받은 목사인 나도 사역 가운데서 수많은 상처를 받았다. 그런데 이러한 상처로 부터 치유함을 받지 못하고 상처를 가정에 안고 가면 이것이 남편인 목사만을 바라보는 사모나 자녀들에게 말할 수 없는 삶의 어려움과 고통을 줄 수 있다. 언젠가 어린 딸아이가 목사인 나에게 고백한 말들이 생각이 난다. 그것은 " 아빠는 왜 작은 교회에서만 사역하는 거야?", "교인들에게 상처를 받을 때 아무 말도 못하는 거야?", "그래서 나는 아빠가 목사라는 것을 우리 친구들에게 말하기 싫어"이러한 말들은 사랑을 가지고 바라보는 딸 아이의 '마음의 아픔'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은 연약한 존재이기에 상처를 받게 되면 그것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것이 보편적인 인간의 삶이다. 그러나 상처는 마음에 안고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마음의 상처는 독을 품게 하여 건강을 해칠 뿐 아니라 예수님께서도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지만 그 모든 상처를 십자가로 가져 가셨다. 이러하기에 하나님의 자녀들은 마음의 상처를 주님의 십자가에 내려놓아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마음의 갈등과 우울증에서 벗어나 기쁨과 찬미로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살아야 할 권리가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기 때문이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립보서4:4)

크릭사이드 한인교회 김칠곤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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