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어느 날 새벽 울산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17살 난 여고생 하나가 쓰러져 있는 것을 경비원이 발견했다. 양쪽으로는 차가 서 있었고, 그는 그 사이에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그는 이 아파트 15층에 살고 있었다. 평소 활달한 성격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사고가 나기 며칠 전부터 표정이 어두웠다.

평소 쓰던 그의 방에서 그가 써놓은 유서가 발견됐다. "사실 어제(8월 30일) 늦게 온 이유도 애들에게 맞아서야. 명치랑, 턱, 뺨. 너무 아팠는데 소리 내면 더 때린다고 해서."
"그리고 오늘 집에 있으려고 했는데 불러서 나갔더니 쭈그려 앉으라면서 때리려고 하기에 나도 머리채를 잡았어. 안 그러면 더 아프고 맞을 것 같아서."
"이제 얼굴 들고 다닐 의지도 없고 희망도 없는 것 같아."
"너희 때문에 많이 힘들고 울었던 게 이제 없어질 것 같다."
"주먹이라서 그런지 오늘 아침에 숨쉬기가 많이 힘들더라."
"너 때문에 우울증 걸리는 줄 알았어."
"1학년 애들 상담해 보면 너 신고 진짜 많을걸. 애들 상처 주지 마. 너한테 돌아오게 돼 있어."
"어떤 처벌이든 받고 진심으로 반성(하기를 바란다.)"

그녀가 남긴 유서에는 자신을 괴롭힌 친구 5명의 이름도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덧붙여 이렇게 써놓았다. "너희 때문에 많이 힘들고 울었던 게 이제 없어질 것 같다." 그동안 친구들 때문에 얼마나 괴로워했을까? 그것도 가해자가 평소 가까이 지내던 친구들이라니. 그녀는 학교 친구들의 폭행을 견디다 못해 결국 선택하지 말아야 할 자살이라는 극단의 길을 선택하고 말았다.

더구나 얼마 전 20년 가까이 교회 재정을 담당했던 어느 수석장로가, 교회 근처에 있는 한 아파트단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사건도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40초에 한 명은 자살한다고 한다. 게다가 한국은 세계 2위의 불명예를 안고 있고.

알고 있는가? 비록 보잘것없이 초라한 인생일지 몰라도, 때때로 견디기 힘든 아픔과 상처가 몰려와서 견디기 힘들지라도,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생명인 것을.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소중한 재산임을.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천하보다 더 귀한 생명임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죽을 생각을 하기 전에 살 생각부터 했으면 좋겠다.

중국 사람들에게 '1할~2할'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인생에서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8할~9할이라는 게다. 인생에서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80~90% 되지만, 적어도 10~20%는 내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으니 이들을 보고 살자는 것이다. 그렇다. 무엇을 보느냐가 중요하다.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관건이다. 사람들은 환경이나 주변 사람들을 탓한다. 그러나 절망적인 환경이 문제가 아니다. 바로 절망이 독약이다.

벌써 몇 년 전 일이 되었지만, 큰 딸이 학원을 다닐 때 일이 생각난다. 학원 친구 가운데 엄마가 대학 교수인 아이가 있었다. 강남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고액 과외를 시켜왔다. 여름이 들어서면서 공부하는 게 힘들었던 모양이다.

어느 날 학원에서 늦게 들어온 우리 딸이 말했다. "엄마, 친구가 자꾸 죽고 싶다고 그래." 우리 부부는 깜짝 놀랐다. 어쩌면 자살 직전에 주는 하나의 사인 아닌가 하는 생각에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그래서 나는 딸에게 말했다.

"혜린아, 친구 엄마 아빠 전화번호를 좀 알아 와라. 엄마나 아빠가 친구 부모님과 대화를 좀 나눠 보게."
"싫어. 그러면 그 친구는 내 얼굴도 안 볼 거란 말야."
"엄마 아빠에게 그 정도의 지혜는 있다. 부모님을 잘 설득시킬게. 그 엄마 아빠도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거 아니니? 그런데 자식이 죽고 난 다음에 공부가 무슨 소용이니"

그래도 딸은 안심이 안 되는가 보다. 결국 딸은 "내가 잘 말해 볼게" 라고 말했다. 할 수 없이 우리 부부는 딸에게 당부했다. "그럼 학원 선생님께라도 말씀 드려 봐라." "학원 선생님도 알고 있고, 학원 선생님이 걔네 부모님과 통화도 했어."

우리 부부는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그럼 혜린아, 그 친구를 토요일에 한번 데리고 와라. 우리 집에서 하루 자면서 기회를 봐서 대화를 좀 나누게."

혜린이는 이런 과정을 친구에게 말한 것 같다. 그랬더니 친구가 혜린이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야, 니네 엄마 아빠 감동이다. 니네 엄마 아빠는 천사인가 보다. 넌 좋겠다."

얼마 시간이 지난 후, 어느 토요일이었다. 평소에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딸이, 저녁 늦은 시간인데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무슨 일이니?"라고 물었다. "나, 친구랑 여의도 한강 둔치에 있어." 순간 우리 부부는 걱정부터 앞섰다. '혹시~'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혜린아, 친구를 집으로 데리고 와라."고 했다.

얼마 후에 딸이 혼자 왔다. 그래서 물었다. "친구는 어쩌고~" "집에 안 온다고 해서 혼자 왔어." "그럼 친구가 집에 가는 걸 보고 와야지." "혼자 조금만 더 생각하고 온다는데 그럼 어떻게 해." "그래도 그렇지. 지금 친구에게 전화 해봐."

딸은 친구와 전화 통화를 했다. "너 빨리 집에 들어가. 지금 안 들어가면 너 나한테 죽는다." "아니야, 생각 좀 하고 집에 들어갈 거야...." 한참 통화를 하고 끊었다. 그 다음날 알아보니 친구는 무사히 집으로 들어갔다.

이제 수시를 쓰는 수험생들이 찾아와 추천서를 써 달라고 부탁한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실패의 쓴 잔을 마셔야 할까? 그러면서 낙심하고 절망하지는 말아야 할텐데. 맥 빠져서 스스로 포기하지는 말아야 할 텐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달려갔으면 좋으련만. 안타까운 마음,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사랑하는 자녀를 자살로 몰아가는 어리석음을 멈추길 바란다. 이 사회의 희망인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교육 풍토가 개선되길 기대해 본다. 이들을 지키지 못하는 교회의 무력함도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자살을 예방하는 최선의 백신은 주변의 작은 관심이라고 한다. 가족들이 작은 관심만 기울여도 자녀들의 자살을 막을 수 있다. 주변 사람들이 사랑의 눈만 뜨면 죽음의 길을 찾아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도 덮는다.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만 있다면, 그들은 스스로의 목숨을 지킬 수 있을텐데. 복음으로 도전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 앞으로 나아가도록 몸부림쳐야 한다.

입시를 향해 마지막 질주하는 수험생들을 위해 목회자들과 교사들이 해야 할 일이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