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즐거운 추석 명절이다. 찾아갈 고향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른다. 이번 추석 명절에는 사고 없는 안전한 명절이 되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서로 배려하고 참아줄 수 있으면 좋겠다. 교통 체증이 계속되더라도 서두르거나 짜증부리지 말고, 가족끼리 나누지 못한 담소를 나누는 기회로 삼으면 좋겠다. 막힐 것을 생각해 먹을 것도 챙기면 좋을 것 같다. 먹는 데서 정이 나는 거니까. 지겹지 않게 여행할 수 있으니까.

그리스도인이라면 명절에 우상을 숭배하는 제사에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 대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배해야 한다. 우리에게 풍요로운 삶과 수확을 주는 것은 조상신이 아니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무지한 사람들이 조상신이 그렇게 해 주는 줄 알고 제사를 드린다. 하나님이 가장 가증히 여기는 우상숭배이다. 절대 동참하지 말아야 한다.

고향 가는 길에 넉넉한 마음을 키웠으면 좋겠다. 실향민의 설움도 생각해 주길 바란다. 가고 싶어도 갈 고향이 없는 외국인 근로자들과 함께 하는 명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고향을 버리고 자유로운 세계를 꿈꾸며 남한 땅을 찾은 탈북민이나 이산가족들의 눈물도 좀 닦아줄 수 있으면 좋겠다. 혹시 넉넉하다고 생각하는가? 명절이 되면 상대적으로 빈곤을 더 절실하게 느끼는 이웃들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가족 가운데 다른 형제들보다 좀 더 가난하고 어려움을 겪는 가족이 있다면, 그를 도와주는 것도 좋으리라. 이렇게 엮어진 명절이 풍요로움이 될 것이다. 나만 풍요로운 명절이 되는 게 아니라 함께 풍요로움을 공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고향을 찾아가면서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 보길 바란다. 고향을 찾아가는 내가 영혼의 고향을 잃고 살아가는 영적 실향민은 아닌지? 육신의 고향이 없는 사람보다 영적 실향민들이 훨씬 더 불쌍하다. 신앙인의 영적 고향은 '아버지 품'이다. '하늘나라'이다. 고향을 찾으면 따뜻하고 푸근한 것처럼 하늘 아버지의 품에 안기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아는가? 하나님의 품을 떠나는 게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하나님의 품속으로 파고드는 영혼의 명절이 되기를 바란다. 이 땅에서 아무리 호화롭게 살아도 죽어서 갈 하늘 본향을 놓치고 산다면 그는 불쌍한 사람이다. 비록 나사로처럼 살아도 하늘 본향을 갈 수 있다면 참을 만하지 않을까? 반대로 가난한 형제를 돌볼 줄 오르고 자기 입만 채우려 하다가 영적 고향을 들어가지 못하고 죽는다면, 그는 불쌍한 인생이 아닌가?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 땅에 살아가면서도 하늘나라를 늘 사모하고 기다리며 살아야 한다.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이 없으면 가장 불쌍한 자이다.

우리 주변에 고향을 찾아가지만, 영적 고향을 잃은 영적 실향민은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 가족 중에. 친구들 가운데. 이웃들 가운데. 만약 그러한 자가 있다면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도록 초청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를 예비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들이 영혼의 고향을 찾도록 돕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책임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최근 세월호 승무원 15명에 대한 재판이 이루어진 걸 기억하는가? 재판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 때문에 사람들은 분노하고 있다. 그 당시 1등 기관사가 구조를 기다리면서 기관장과 캔맥주를 나눠 마신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격앙된 감정을 진정시키기 위해 그랬다지만 시민들은 납득하기 힘들다. 수많은 목숨이 걸린 절박한 상황이었으니까. 그런데 그것보다 더 가슴 아픈 일이 있다. 이들은 동료인 조리원 두 명이 다쳐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보고도 그냥 탈출했다. 무자비하게도. 결국 조리원들은 나중에 모두 숨진 채 발견됐다. 어디 그 뿐인가? 이들은 선원 객실에서 빠져나와 3층 복도에 모이면서 바로 옆에 있는 선실의 학생들에게는 아무런 통보도 하지 않았다. 한 마디만 해줬더라면. 이들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살 수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처참히 죽어갔다. 그들은 살인죄를 면할 수 없다.

만약 내 주변에 영적인 실향민이 있다면, 하나님은 나에게 그를 붙여주신 것이다. 만약 그를 외면해서 불신앙의 바다에서 그를 건져내지 않는다면, 그는 훨씬 더 무서운 지옥의 바다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그를 지옥의 바다에 빠지도록 방치한 나도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명절을 앞두고 웃어넘길 수 없는 재미있는 현상이 있다. '가짜 깁스'가 품절되는 헤프닝. 연극·영화 소품이나 만우절 장난을 위해 만들어진 가짜 깁스가 명절이 다가오면서 불티나게 팔렸다. 명절 연휴가 다가오면 평소보다 3배 이상 잘 팔린다고 한다. 도대체 왜? 우울증, 불면증, 신경성 신체장애 등을 동반한 명절증후군을 피하기 위해서.

그러고 보면 명절은 주부들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가 분명하다. 웃으면서 고향으로 갔던 부부가 돌아올 때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남편은 운전을 하고, 아내는 창문을 바라본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남편들이여, 이번 명절에는 아내의 고충과 스트레스를 함께 나누면 어떨까? 아내의 일손을 도와주면서 부부의 사랑을 싹트게 만드는 계기로 만들면 어떨까?

명절에 주부들이 열 받는 것 가운데 하나는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것. 그것도 아니면 남편들의 술상 차려주는 일. 남편들이 조금만 도와줘도 달라질 텐데. 주부들이 겪는 고달픔과 스트레스를 조금만 이해해 줄 수 있어도 덜할 텐데. 일손을 도와주는 것도 소중하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소중한 건,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다.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것이다. 그러면 얼어붙은 마음도, 피곤한 몸도 다 풀려지게 될 것이다. 수고했다고, 고맙다고, 당신이 최고하고 한 마디만 해줘도 주부들은 행복감을 느낄 것이다.

많은 가정들이 가족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명절 문화가 없다. 하루 종일 방안을 뒹구는 것. 고스톱을 치는 것. 하루 종일 술을 마시는 일. 아니면 노래방을 찾는 일. 가족들이 함께 만들 수 있는 추억이 깃든 명절이면 좋겠다. 함께 재미있는 게임을 하든가. 가까운 곳에 나들이를 한다든가. 고향 부근에 있는 문화유적지를 탐방한다든가. 어쨌든 한 가족이 함께 즐기고 먼 훗날 아름다운 추억이 될 만한 그 무엇을 찾아보면 좋겠다. 어린 자녀들은, 손자 손녀들은 함께 만든 추억을 간직할 존재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