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에서 존경을 받는 어느 목사님이 여자대학교에 가서 [배우자 선택법]에 대한 강의를 했습니다. 이 강의가 끝나자 한 여학생이 손을 들어 질문했습니다. "목사님, 만약 목사님이 몇 십 년 전으로 돌아가서 다시 배우자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여자를 선택하시겠습니까?" 그 질문에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딱 한 가지만을 보겠습니다. 수용성입니다. 수용성이 많은 여자를 선택하겠습니다."
존 포웰은 그의 책, 『왜 나를 사랑하기를 두려워하는가?』에서 '나 라는 존재는 나를 사랑해주었던 이들과 사랑해주기를 거절했던 이들의 산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한 사람의 행복과 건강은 그 사람이 성장하면서, 가족이나 주변 인물들로부터 얼마나 수용 받았는가로 결정됩니다. 만약 수용 받지 못하고 거절당했다면 상처가 많습니다. 어떤 아이는 어릴 적 아버지가 자신을 감금하여 광 속에 가두었습니다. 이 아이는 끝내 부모의 거절을 이겨 내지 못하여 정신분열증에 걸립니다. 그녀는 아버지로부터 당한 거절의 상처를 어떻게 회복할 수 있었을까요? <훈련>이나 차원 높은 <상담>에 의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따뜻한 애정을 받는 관계'속에서 그녀의 상처가 치유되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거절당했을 때 화가 나고,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집니다. 복수심이나 증오심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자기 연민에 빠져 슬픈 음악만 듣거나, 무기력증에 빠지기도 합니다. 살 맛을 잃는 것이지요. 그러나 누군가로부터 수용 받게 되면 감사와 기쁨이 넘치고, 자존감이 높아집니다. 수용을 받고 자란 사람은 관계를 맺어가는 게 편안합니다. 의사소통도 쉽습니다. 하지만 거절당하며 성장한 사람은 평범한 대화조차 힘들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고립되거나 따돌림을 당하곤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이해하시고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용할 때와
거절할 때가 있으셨습니다. 예를 들면, 아벨의 제사는 수용하셨으나 가인의 제사는 거절하셨습니다. 누군가는 그들 각 자가 바친 제물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짐승이든 농산물이든 그게 중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물을 받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그 사람의 마음을 중요하게 보십니다. 제물을 바치는 사람의 영혼의 상태를 들여다보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가인은 화를 냈지만, 하나님은 그가 화 내는 것을 이해하셨습니다. 그리고 "죄의 소원은 너를 소유하는 것이나, 너는 반드시 죄의 주인이 되어라. It desires to have you, but you must master it.
(창4:7)" 가인에게는 '나의 어떤 점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거절할 수 밖에 없었을까?'라는 자기 성찰이 필요했습니다. 그가 반성하고 성숙해지기를 하나님은 원하셨습니다. 환경 탓, 조상 탓, 남 탓을 하고 있으면 나의 부족한 점을 보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의 죄는 거절했지만, 사람은 수용하셨습니다. 그의 감정도 수용하셨습니다.
가인에게 표를 주셔서 누구든 죽이지 못하게 보호하셨습니다. 우리는 거절할 줄 아는 용기도 필요하고, 죄에 대한 단호한 응징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다른 사람의 인격을 수용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것이 사랑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은 (죄인이요 욕심덩어리인) 우리를 지금도 받아주고 계시니까요.
-용납받은 죄인, 이기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