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동부교역자 협의회는 이필찬 교수를 초청해 "요한계시록 바로 이해하기"라는 주제로 13일과 14일 저녁 7시 30분 선한목자장로교회(고태형 목사)에서 연합집회를 열었다.

"미국에서 모든 사람들은 종말을 믿는다....21세기에 들어서 우리는 세계가 어떻게 멸망할 것인지에 대한 셀 수도 없는 시나리오가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진다." (Matthew Barrett Gross,『The Last Myth : What the Rise of Apocalyptic Thinking Tells Us about Amerrica』)

성경이 말하는 종말은 창조의 회복이 완성되고 성취되는 것 

이필찬 교수
(Photo : 기독일보) 이필찬 교수(이필찬요한계시록연구소 소장)이 강의했다.

이필찬 교수는 최근 미국 내 종말론에 관한 관심을 분석한 매튜 배렛 그로스의 책『마지막 신화』를 인용하며 둘째 날 강의의 문을 열었다. 그는 2002년 타임지에서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미국인 절반 이상(59%)이 요한계시록의 예언이 이루어질 것이라 믿는다고 답했다며 종말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불신자들은 종말을 끝이라 생각해 쾌락주의에 빠진다. 전통적인 교회에서는 심판으로 여긴다. 올바르게 종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창조, 타락, 구속, 완성으로 진행되는 구속의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은 신실하고 완전하신 분이기에 이 세계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신다. 구속의 역사는 창조의 회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사건은 아담에게 주신 에덴의 회복을 위한 거대한 발걸음을 내딛으신 것이다."

그는 성경이 말하는 종말은 세상이 말하는 지구 멸망 시나리오와 다르다며 종말에 관한 오해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성경에서 말하는 종말은 창조의 회복이 완성되고 성취되는 것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지며, 초림은 회복의 성취, 재림은 회복의 완성이다. 새로운 아담이자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예수께서 그것을 이루셨다. 따라서 성경의 종말은 세속적 의미의 '끝'으로서의 종말이 아니라 '회복'을 가리킨다. 이미 종말은 시작되었으며 예수님의 재림을 통해 완성된다."

그는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계1:1)의 의미를 "그가 느부갓네살 왕에게 후일(날들의 마지막)에 (반드시) 될 일을 알게 하셨나이다"(단2:28)와 연속선상에서 논의했다.

다니엘 시대에 주신 약속 요한계시록으로 이어져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꿨다. 뭔가 비밀이 있는 것 같아 온 나라 박사들을 불러 모았다. 왕이 꿈 내용을 알려주지 않은 채 꿈을 해석하라고 명하자 모든 박사들이 해석하지 못해 참수형을 당한다. 다니엘은 하나님께 계시를 받아 꿈을 알아맞춘다. 그 일 후 다니엘이 왕에게 한 말이 이 말이다. 결론적으로는 '이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계2:44)고 말한다."

"즉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다. 다니엘서의 주제는 '하나님 나라가 임할 것이다'다. 바벨론과 페르시아 대제국이 지배하는 가운데 하나님은 역설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신다. 그 약속을 요한계시록이 이어받았다."

계시록의 예언, 노스트라다무스 예언과 달리 접근해야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탄생을 통해 이미 임했다. 요한계시록을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처럼 접근하면 안 된다. 불특정 다수에게 일어날 사건을 예시해 놓은 책이 아니다. 계시록의 주제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 하나님의 나라다. 예수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됐고 재림을 통해 완성될 것이다."

그는 "매튜 배렛 그로스의 책을 보면 하루가 멀다하고 지구멸망 시나리오가 쏟아지고, 그럴 때 마다 믿는 사람들도 동요한다. 그러나 우리가 진리를 붙들고 진리에 서 있으면 그 어떤 이야기를 들어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며 종교적 열광주의를 경계했다.

동부교협연합집회
(Photo : 기독일보) LA동부교역자 협의회 주관 연합집회가 13일,14일 선한목자교회 본당에서 열렸다.

종말의 시대, 심판의 시대는 바로 지금. 영적 분별력 길러야

그는 계시록 7장 1절부터 8절까지를 본격적으로 해석하며 종말이 먼 미래에 일어날 사건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가운데 임한 사건임을 강조했다.

"문맥을 살펴보면, 바로 앞 절인 6장 17절의 '누가 능히 서리요'라는 말이 나온다. 즉 누구도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설수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구약의 선지서의 내용을 두 가지로 축약하면 '구원'과 '심판'이다. 그런데 이 심판은 구원을 위한 심판이다. 출애굽 사건에서 애굽을 심판하셨듯,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이방 국가를 심판하셨다. 이처럼 구원의 역사에는 심판이 동전의 양면처럼 따라붙는다."

"종말은 초림 때 이미 시작됐으며 재림 때 완성된다. 따라서 지금은 종말의 시대이며 심판의 시대다. 우리는 이처럼 시대를 분별하는 영적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로마서 1장에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버려 두사'(롬1:24)라고 말하듯 죄를 짓는 것 자체가 심판이다."

"6장의 예언 '해가 총담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 것같이 땅에 떨어지며...'(계6:12-13)를 보면 구약의 선지자들이 쓴 표현을 가져와서 썼다. 문자적으로 이해될 언어가 아니다."

심판의 시대, 교회도 심판의 대상인가?

그는 '누구도 심판을 피할 수 없다면 교회도 심판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7장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1절부터 4절까지는 '하나님의 종들에게 인치기까지 해하지 말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서서 바람을 붙들고 있다.(1절) 성경에서 '4'는 우주적인 수를 의미한다. 9절의 '각 나라와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도 결국 다 같은 뜻 즉 모든 사람이란 뜻이다. 네 천사가 바람을 붙들고 있는 것은 바람을 놓기 위해서다. 다른 천사들이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바람을 놓지 말라고 말한다.(1~3절)"

"인은 자기 소유를 나타낸다. 노예를 사면 손목과 이마에 주인 이름을 이니셜로 새겼다. 14장에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14:1) 즉 인을 친다는 것은 하나님의 소유를 의미하며, 그들은 심판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교회 공동체는 심판의 대상이 아니라 구원과 보호의 대상이다. 출애굽을 보면 이는 매우 명확하다.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재앙이 임하지 않았다. 심판 때 하나님의 백성과 세상은 명확히 구별된다."

왜 십사만사천인가? 십사만사천은 누군가?

그는 "계시록은 일차적으로 일곱교회 성도를 대상으로 쓴 책이다. 일곱이라는 수는 모든 교회를 가리키기 때문에 '종들'은 특정한 무리가 아닌 성도를 의미한다. 그런데 왜 하나님의 백성을 144,000명이라 했는가?"라고 물으며 십사만사천이 의미하는 바로 초점을 옮겼다.

"144라고 하면 어떤 숫자가 떠오르는가? 12 곱하기 12가 떠오른다. 12란 숫자는 크리스천들에게는 익숙한 숫자다. 구약의 12지파가 있었고 예수님의 12제자가 있었다. 그 수에는 깊은 하나님의 경륜, 손길이 담겨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런 행보를 하신 것이다. 제자를 뽑으실 때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는 현장에 있다는 감동이 있었을 것이다."

"구약에서 '천'이라는 숫자의 용례를 찾아보면,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루느니라'(출20:6, 신5:10, 7:9), '너희는 그의 언약 곧 천 대에 명령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할지어다(대상16:15)' 등에서 볼 수 있듯 '완전성', '영원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십사만 사천은 예수를 믿는 자라면 들어갈 수 있는, 약속으로서의 구약의 백성과 그 성취로서의 신약의 백성의 모임 즉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의 수를 가리킨다."

그는 또 민수기에서 군대 조직을 정비하기 위해 각 지파별로 인구를 계수한 민수기를 배경으로 144,000을 하나님의 군대로서 온전한 수라고 해석했다.

셀 수 없는 큰 무리,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성취자

십사만사천의 논의에 이어 9절의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누구인지에 관해 해석했다. 그는 이들을 창세기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성취자로 이해했다.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끝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끝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창13:16)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15:5)

또, 다윗이 인구조사를 할 때 이러한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의식해 다윗이 의도적으로 이십 세 이하를 계수하지 않은 사건을 예로 들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셀 수 없는 큰 무리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역대상에 보면 '이스라엘 사람의 이십세 이하의 수효는 다윗이 조사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사람을 하늘의 별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음이라'(대상27:23)는 말씀이 나온다. 이는 아브라함에 주신 약속이 다윗 자신의 때에 이루어졌다고 본 믿음의 고백이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이유는 타락한 우주를 구속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이 왜 인간을 창조하셨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다. 로마 황제는 식민지에 자신의 동상을 세워 자신의 권세가 그곳까지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형상(icon, 아이콘)이 이 땅에 충만해지면 하나님의 영광이 그만큼 충만해진다. 오늘날 땅 끝은 여러분이 서 있는 바로 이 자리다.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셔서 우리를 후손으로 만들어주셨다. 교회는 오늘날 아브라함의 영적인 자손들이다."

'666'을 베리칩으로 해석하면 안되는 이유

이어서 '666'(계13:16-18)을 해석하며 '베리칩' 해석이 범하고 있는 오류를 지적했다.

"계시록이 서신이라는 점을 얘기하고 싶다. 계시록 1장 4절에서 일곱교회 성도들에게 편지한다고 말한다. 계시록의 집필시기는 서기 90년, 100년 정도로 추정된다. 군대 간 아들에게 어머니가 편지를 쓴다고 가정해보자. 그 편지 속에는 어머니와 아들만 공감할 수 있는 표현들이 많을 것이다. 제 3자가 이 편지를 읽게 된다면, 그런 표현들이 나올 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아들에게 그 배경을 물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 제 3자가 자기 마음대로 판단한다면 편지의 내용이 왜곡될 것이다. 즉 계시록은 두 당사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갖고 쓴 편지다. 고린도전서를 읽을 때도 먼저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일차적으로 어떤 의도를 갖고 편지를 썼는지를 먼저 해석한 후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해야 한다. 해석의 과정 없이 적용하면 의도가 왜곡된다. 올바른 진리를 차곡차곡 배워두는 게 중요하다."

"666을 베리칩이라 해석하면 발신자와 수신자가 지닌 정황에 맞지 않다. 당시 그들이 베리칩에 대해 알고 있었을 가능성은 전무하다. 우리는 발신자 요한, 수신자인 교회의 입장에서 성실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666은 요한도 교회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666'은 오늘날 물질주의로 해석할 수 있어 

"이는 이름을 숫자로 표현한 것이다. 히브리어와 헬라어는 각 철자마다 숫자를 부여했고 당시 이름을 수로 표현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를 게마트리아(Gematria)라 부르는 데, 네로 황제를 히브리어로 음역해 수로 표현하면 666이 된다. 그런데 네로 황제는 68년에 죽었고 계시록이 기록된 것은 90년이라 시기적으로 맞지 않다. 이는 네로 황제가 기독교인을 공식적으로 핍박한 최초의 로마 황제라는 사실에 방점이 있다. 그가 기독교를 핍박하며 황제숭배를 요구한 로마 황제의 대표적 인물이기 때문이다."

"17절에 이 표(666)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온다.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말씀을 보면, '부자교회'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않아 토해내겠다'고 하신 것을 볼 수 있다. 당시 경제 시스템은 길드라는 협동조합 형태를 띠고 있었으며 그 길드의 수장은 로마제국 황제였다. 먹고 사는 문제를 황제가 해결해 준다는 사고가 바탕에 깔려 있었고 로마 제국에 순응하지 않고 황제 숭배를 하지 않으면 경제활동을 할 수 없었다. 이러한 정황에 비춰보면 라오디게아 교회는 황제를 숭배하고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러므로 13장의 짐승의 표 '666'을 통해 전달하고 한 바는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황제 숭배를 거부하라'는 것이며 '황제 숭배'는 오늘날 '물질주의'로 해석할 수 있다.

신천지 해석의 세가지 특징 : 환상계시와 실상계시, 이원론적 세계관, 영육합일설

마지막으로, 신천지 요한계시록 해석의 특징인 '환상계시와 실상계시', '이원론적 세계관', '영육합일설'이 지닌 오류를 지적하며 진리 위에 바로서서 이러한 잘못된 해석을 배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천지에서는 요한이 환상의 의미를 알지 못했고 이만희만 그 의미를 풀 수 있다며 그가 해석한 실상계시를 들어야 진정한 구원이 있다고 주장한다. 두 번째, 유재열의 장막성전과 이만희의 증거장막 성전을 제시하며 기성교회와 유재열의 장막성전 모두 악의 세력으로 규정한다. 한국교회가 물들어 있는 이원론적 세계관에는 신천지 세계관이 스며들기 용이한 접촉점이 있다."

마지막으로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하니'(계20:4)라는 말씀을 바탕으로 한 '영육합일설'의 오류를 지적했다.

"신천지에서는 목베임을 받은 영혼과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은 자를 각각 신랑, 신부로 해석하며 이 둘이 합일해 완전한 부활에 이른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본문에는 '하나됨'이란 표현이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이 두 그룹은 동격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순교의 정신의 공동체로 보는 게 타당하다."

영국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류스대학교에서 리처드 보캄(Richard Bauckham)의 지도로 박사 학위(Ph. D.)를 취득한 이필찬 교수는 웨스트민스터 대학교 신약학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이필찬요한계시록연구소 소장으로 활발히 강의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을 주해한『요한계시록 어떻게 읽을 것인가』,『내가 속히 오리라』를 비롯해,『히브리서』,『로마서』, 『이 성전을 허물라』,『진리가 자유케 하리라』등 주해 및 설교 시리즈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