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말>
전도는 생명을 구하는 행위이다. 전도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도구로 사용되기를 자처하는 행위이다. 수많은 종교들이 자신들의 교리를 전하는 활동을 하고 있지만, 어떠한 종교일지라도 생명을 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생명 구원의 길을 막아서는 악역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복음 한 가지 뿐이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이 마치 영어회화를 못 하는 영어 교사에게 배운 영어처럼, 삶의 현장 속에서 영원한 생명을 구하는 전도 도구로 사용될 수 없는 벙어리 신앙인이 되고 말았다.
목회란 무엇인가? 먼저 영원한 생명을 은혜로 얻은 성도들의 신앙생활은 어떤 가치로 존립되어야 하는가? 두 질문의 공통된 해답은 전도이다. 진정으로 자신이 영원한 생명을 받았다면, 지금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생명을 구원하고 계심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한국교회는 영적으로 침체일로를 걷고 있다. 많은 목회자들이 세상과 별반 다름없는 물질관으로 교회를 부동산 투기, 유산 상속, 자녀 과보호, 안락한 삶을 추구하는 대상으로 여기면서 결과적으로 영적인 퇴보를 주도했다. 많은 교회들의 비리가 온갖 매스컴에 오르내리면서, 성도들은 목회자에 대한 불신과 사역의 당위성 상실로 우왕좌왕하고 있다. 더구나 목회자의 타락으로 인한 영적인 침체로 지식적 신앙인만 양산될 뿐, 더 이상 천하보다 귀한 영혼에게 전도할 수 있는 성도를 보기 드문 현실이다.
전도를 하는 행위를 두고 목회자와 성도의 구분이 있을 수 없다. 생명 있는 자가 번식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섭리이다. 동물이건 식물이건, 물속에 있는 것이건 하늘에 있는 것이건, 초목이나 들꽃까지도 생명이 있으면 번식한다. 진정 예수 그리스도의 영생을 얻은 자라면 전도행위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목회자들이 입을 다문 채 미자립교회 상태를 장기적으로 끌어안고 강단 설교를 하고 있다.
설교를 한다는 것은 전도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성도들이 많은 교회 목회자들은 현장 전도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울타리 안에 있는 양들을 위한 설교, 곧 내부의 전도가 더 시급하다. 그러나 대형교회 목회자가 아니라면 교회 밖, 외부 현장 전도를 위한 목회로 고심해야 할 것이다. 교회의 규모를 갖추지 못했는데도 예배, 기도, 찬양, 면담, 각종 행사, 강의, 설교 등이 목회인 줄 알고 있다면 천만부당한 의식일 수 있다. 이러한 행위들은 경험과 교육을 통해 누구나 행할 수 있는 가능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전도가 배제된 모든 목회적·교회적 행위는 부수적인 요식행위일 수 있다. 전도는, 모든 목회 사역과 행위의 중심이며, 생명 얻는 기쁨 없이는 행할 수 없는 실천이다. 전도 없는 목회는 목회일 수 없다.
<중심 말>
그렇다면 전도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1) 인간 문제를 확신하라
모든 인간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떠난 문제이다.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할 때 생명으로 창조되었다. 마치 밀가루 반죽이 밀가루와 물의 조합으로 섞인 것처럼,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존립되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피조물로 창조되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면 죽듯,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면서 죽음을 초래했다.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나님 말씀을 어기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을 배신한 모든 인간에게 죽음이 왔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난 모든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다.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 사탄에게 죽음의 노예로 얽매이게 되었다. 그래서 사주팔자 운명을 믿고, 죽음 문제를 두려워 떨며, 피조물인 인간이 피조물인 인간을 섬기는 우스꽝스러운 종교들을 여기저기 만들어놓고 우상숭배에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죽음 후에 하나님의 심판으로 영원한 불지옥의 나락에 떨어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인간의 모든 문제는 곧 하나님을 떠난 문제이다. 하나님을 떠난 결과로 죽음에 직면했고, 창조주 하나님을 섬겨야 할 인간이 어리석게도 인간을 신격화하여 종교의 형태를 갖추고 사탄을 숭배하게 된 것이다. 사탄은 종교를 통하여 인간이 다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도록 삶의 전반을 붙들고 있다가, 자신이 가야 할 불지옥까지 인간을 끌고 간다. 오늘 내가 만난 불신자가 죽음 후에까지 영원한 불지옥에 떨어져야 한다는 인식과, 모든 인간의 죽음 문제까지가 하나님 떠난 문제임을 확신할 때 전도의 발걸음은 시작된다.
2) 불신자의 상태를 파악하라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하나님을 섬기던 습성으로 우상을 숭배한다. 불교의 중심인 석가모니도 인간이요, 유교의 머리라는 공자도 인간이다. 훌륭한 인간이 도덕률을 흠모하는 것은 아름다운 덕목일 수 있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있게 생각해 보면 피조물인 인간이 같은 피조물인 인간이나 태양 같은 자연을 섬기는 것은 어처구니 없음을 알 수 있다.
왜 그럴까?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는 순간을 '운명'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사 생령(生靈)이 된지라". 하나님을 떠난 인간, 즉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인간들은 하나님의 영(靈)인 생령이 죽은 자들이다. 그래서 영적인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을 떠남으로 생성된 운명을 점치고, 내세 문제의 불안을 떨치기 위하여 부적을 소지하는 등 몸부림을 치며, 우상을 숭배하고, 각종 종교, 철학, 미신에 의지하고, 아무리 고심해도 풀리지 않는 죽음의 문제로 두려움과 공포 속에 살아가며, 운명처럼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더러는 자못 용기 있는 체하며 하나님이 없다고 떠들기도 한다. 그러나 우주 만물은 물론, 태양과 달, 별과 바람을 운행 주관하시고, 소리도 흔들림도 없이 시속 5000km 이상으로 지구를 자전시키시는 하나님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음일 뿐이다.
내 인생이 내 것이면, 어디에서 왔으며, 언제, 어느 때, 어느 곳으로 갈 것인지 본인은 잘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예고 없는 사고로 죽거나, 육체의 질병과 경제적 고난은 물론 오해로 얽힌 인간 만사가 뜻대로 안 되는 일이 더 많다. 한 치 앞을 못 보는 인생을 살다 죽음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내 인생이 내 것이 아니라는 충분한 반증이다. 하나님을 떠난 모든 인간은, 영적인 문제에 직면하고 정신적 문제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문명의 이기가 발전할수록 정신병은 늘어간다. 한 치 앞을 못 보는 것이 인간이거늘, 귀신 들린 자들이 대나무 깃발을 내걸면 돈 싸들고 가서 자신의 인생을 점치고 기만당하는 어리석음을 자행한다. 또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을 멀리한 삶은 자신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모든 영적 문제가 자녀들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치므로, 자녀들까지 지옥불에 떨어지게 하는 악순환을 되풀이한다. 불신자들에게 하나님 떠난 인간의 상태를 소상히 설명해 줄 수 있는 성도라면, 이미 하나님의 전도 사역에 쓰임받고 있음이다.
3) 구원 받은 자의 권리를 알게 하라
"그가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 자녀가 되는 신분과 권세를 주셨으니". 세상은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몰라본다고 성경은 말씀하신다. 천만다행인 것은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영접하는 자의 권리를 일깨워 주고 계시는 점이다. 하나님을 떠남으로 죽음 문제에 직면한 모든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그리스도의 영을 영접함으로 영생에 이를 수 있는 엄청난 기쁨의 소식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말씀은 전도의 핵심이다.
불신자들을 우상 숭배자로 만들고, 영원한 멸망으로 끌어넣은 사탄을 결박하고 이길 수 있는 권리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주어진다는 영적 신비를 설명해 주는 말씀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한 자가 자신에게 영생의 구원이 주어졌다는 확신에 서게 하는 중요한 전도 행위이다. 시위를 떠난 화살과 같이 빠른 육신의 인생 뒤에 영원한 천국이 보장되었음을 인식시키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망을 심어주는 전도의 필수 요건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여 새로운 생명을 얻은 자에게, 하늘 생명책에 호적처럼 당신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음을 확신시켜 주는 말씀은 막연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고 영적 신앙인으로 변화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끝으로 구원받은 자가 하나님 자녀가 되었으므로 기도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다는 사실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면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심을 알려 주는 말씀은 중요한 영적인 교두보를 건설해 주는 아름다운 유전이다. 구원받은 자가 기도를 통해 세상 지혜로 풀 수 없는 어려운 난관들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새 힘을 주는 말씀까지 준비되었다면, 전도의 열매는 하늘 상급으로 무한정 쌓일 것이다. 더불어 당신을 통해 영생의 축복을 받은 영혼 또한 참으로 새 생명이 주어졌다면, 그 생명은 반드시 번식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전도'의 사명으로.
4) 하나님 말씀을 적용하라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은 총과 실탄 없이 승리할 수 없다. 무기고에 아무리 많은 무기들이 잘 정돈되어 있더라도 지금 내가 사용할 수 없는 무기라면 전시품에 불과하다. 교회를 수십 년 다니고, 성경을 수십 번 통독했어도, 생명의 말씀이 자신의 것으로 정립되지 않으면 불신자와의 대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생을 전도할 수 없다. 말씀을 잘 적용해야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모든 인간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죽음 문제에 접근하면 "한 번 죽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일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는 말씀을 적용할 수 있다. 종교나 우상에 빠진 불신자들을 만나면 "천하 인간에게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느니라"는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 적절하다. 여기에 "피조물이 피조물을 믿는 것은 종교입니다. 종교로써는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창조주를 믿어야 합니다"고 덧붙여 말한다면 대화는 지속될 수 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하나님 만나는 길이요...', 이런 말씀을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정신분열자가 아니라면 구세주가 맞지 않을까요?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정신 이상이 있었다면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는 농담 정도는 딱딱한 대화를 부드럽게 이끄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분명한 사실은 성경 전체를 암송하더라도 불신자와의 현장 전도 경험이 없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섯 마디 말씀만을 암송하고 있더라도 그 생명의 말씀이 뜨거운 가슴에서 분출되도록 내 것으로 정립되어 있다면 당신은 이미 하나님의 생명 구원의 도구일 수 있다.
<맺는 말>
전도는 죽은 자를 살리는 행위이다. 인생 중에서 죽은 자를 살리는 것보다 중차대한 문제가 무엇이랴. 목회자들은 현장을 가져야 한다. 현장 없는 목회는 목회일 수 없다. 목회자의 발걸음이 전도 현장을 향하지 못한다면, 한 번쯤은 목회자가 목회를 접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일 수 있다는 기도제목 앞에 숙연해져야 한다. 성경은 모두 생명 구원인 전도에 관한 설명서이다. 성경은 생명의 길을 전하기 위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천국 입성의 길잡이다. 구약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영생의 구세주로 오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으로 천국을 입성할 수 있음을 전도하고 있으며, 신약성경도 약속했던 그리스도께서 구세주로 오셨음을 전도하는 생명책이다. 그러므로 성경 전체는 전도를 위한 서술이다.
성경 전체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그리스도'요, 전도는 오직 그리스도를 전하는 행위이다. 교회의 존립은 생명 구원의 전도가 유일한 당위성이다. 전도를 통한 영생은 그리스도를 전할 때 주어진다. 그래서 전도는 목회의 모든 것이고, 생명 구원의 유일한 대안이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