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Photo : )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다사다난했던 2013년 달력이 다 넘어간다. 지나온 한 해를 되돌아 보니 정말 다채롭다. 행복하게 웃을 일도 많았다. 그러나 눈물겨운 순간도 적지 않았다. 그렇게 걸어오다 보니 어느덧 2013년 끝자락에 서 있다. 끝자락에 선 당신은 어떤 느낌인가? 뭔가 아쉬움이 남는가? 다시 돌아보지 않고 싶을 정도로 후회스러운가? 아니면 가슴 뿌듯한가?

나에게 2013년 12월은 긴 터널과 같았다. 고막이 손상되어 귀를 수술하고 회복을 기다리고 있다. 대학 시험을 보는 막내에게서는 아직 반가운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다. 새롭게 세워진 청년회 임원들을 집으로 불러 함께 식사하기 위해 음식을 준비하던 아내는 허리에 문제가 생겨 열흘 넘도록 고생을 하고 있다.

가장 가슴이 아팠던 것은 연로하신 어머님에 대한 소식이다. 얼마 전 이른 아침 시간에 시골에 있는 형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렇게 이른 시간에 전화를 한 적이 없었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아니나 다를까, 어머님이 갑작스레 이상하다는 것이다. 지나간 과거에 대한 이야기만 하면서 누워서 일어나지도 않는다고 한다. 음식을 드려도 거부하고, 기독교방송을 틀어줘도 싫다고 끄라고 한단다. 평소에는 기독교 방송을 무척 좋아하던 분인데.

새벽에는 손자 방에 가서 소변도 봤단다. 옷을 갈아입으라고 했더니 바지를 입고 그 위에 팬티를 입더란다. 우울증에다 치매 증상까지 보인다는 것이다. 깜짝 놀라서 전화를 한 것이다.

시골에 있는 병원을 가서 검사를 해 봤다. 당 치수가 400 이상 올랐다고 한다. 치매도 왔다고 했다. 그래서 약을 먹기 시작했다. 그래도 안심이 안 되어 대구로 가서 검진을 받아보기로 했다. 한의원에 갔더니 풍이 살짝 왔다고 한다. 지난 목요일과 금요일 이틀 동안 대구에 있는 가톨릭병원에서 검사를 해두었다. 이번 화요일에 검사 결과가 나온다.

이렇듯 나에게 한 해의 마지막 달력은 너무 혼란스러웠다. 지난 화요일 새벽 기도회 시간이었다. 기도하는 중에 내 마음에 떠오르는 게 있었다. '다 하나님께서 하셨지~', 그리고 요셉의 생애를 생각나게 하셨다. 그 순간, 나는 '아멘~'으로 응답했다. 그리고 그걸 마지막 주일 설교제목으로 받았다.

사람들은 내 인생에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예리하게 갈라놓으려 한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하려 한다. 유익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좋은 감정을 만들고 웃음을 자아낸다. 그러나 유익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은 나쁜 감정을 자아내고 얼굴을 찌푸리게 만든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그렇지 않다'고 하셨다. '이 모든 게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다'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보니, 내 인생에 불필요한 과거는 없다. 잘 된 일, 안 된 일이 모두 감사의 조건이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니까.

최근 우리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중국 교포가 있다. 중국에서 공무원으로 몸담고 있었다. 그런데 양쪽 무릎과 허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한의원을 다니면서 치료했다. 그러나 뾰족한 수가 없었다. 견디는 데까지 견뎠지만 직장을 다닐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말했다. "의료기술이 뛰어난 한국에 가서 치료받아 봐라."

결국 치료를 받기 위해 한국으로 왔다. 가는 병원마다 '수술을 해야 한다'고 권했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우리 교회 권사님들을 만나서 교회로 나오게 되었다.

어느 날 내가 심방을 가서 우리 교회에서 하고 있는 봉침과 사랑의 뜰안을 소개해 주었다. 그래서 봉침치료와 발 마사지를 두 달 동안 받았다. 덕분에 지금은 거의 다 나았다. 무척 고맙다며 성탄절 점심식사 시간에 장로님에게 감사하다는 편지를 써주었다.

그 동안 얼마나 불편했겠는가? 얼마나 아팠겠는가? 얼마나 걱정이 되었겠는가?  그런데 아픔을 통해 한국에 와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육체의 고통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을 누리게 된 셈이다. 아름다운 고통이요, 이유 있는 가시가 아닌가? 우리는 닥쳐오는 일 앞에서 함부로 단정 짓지 말아야 한다.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일들도 하나님께서 하시니까.

'다 하나님이 하셨지요'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너무 속상해하지 않는다.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다 하나님이 하셨으니까. 뿐만 아니라 자기 자랑을 하거나 너무 자만하지도 않는다. 자랑할 게 없다. 자만할 게 없다. 하나님이 하셨으니까. 그저 하나님의 은혜일 뿐이다.

때때로 우리는 '내가 한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다. 스스로 생각해도 자랑스럽고 대견하다. 그래서 은근히 자신이 한 일을 과시하고,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어한다. 아니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불평과 비난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할 것 없다. 왜냐하면 '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니까.' 그저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할 뿐이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하나님이 하신 것을 갖고 자기가 생색을 내려고 한다면 그것은 오만이요, 자만이다. 충성스러운 종은 일을 다 마친 후에도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라고 고백한다.

때때로 실수를 한다. 실패작을 만들기도 한다. 그럴 때면 속상하다.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피할 수 없다. 순간은 불편할 수 있다.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면 받아들일 만하다. 신뢰할 만하다. 덮어 놓고 감사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나고 가면 반드시 찬양할 날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바울은 선언하지 않던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살다 보면 인생 파편들은 형형색색이다. 그러나 퍼즐들을 모두 맞추고 나면 아름다운 작품으로 탄생할 것이다. 하나님이 하시니까. 그렇고 보면 어떤 일이 생기든지 '다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고백할 수만 있다면 감사하지 못할 일이 없다. 불편하고 원망스러운 마음도 쉬 사라진다. 어느 새 평안과 자유가 찾아온다. 한 해의 달력을 찢으면서 고백해 보자.

"다 하나님께서 하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