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선교교회에서 Higher Calling Conference(이하 HCC) 후원을 위한 간증집회가 20일 오후 7시에 열렸다. Higher Calling Conference는 다음 세대를 훈련해 그리스도의 군사로 세우기 위한 비전캠프로 올해는 12월 26일(목)부터 29일(일)까지 3박 4일 동안 샌디에고에서 열린다.

김세진 군
(Photo : 기독일보) 김세진 군

이 간증집회에는 ‘로봇다리’라는 별명이 붙은 장애인 국가대표 수영선수 김세진(16세) 군과 그의 어머니 양정숙(45세) 씨가 초청돼 꿈꿀 수 없는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뤄낸 기적 같은 이야기를 전했다.

또래에 비해 체격이 건장한 세진 군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무색하게 만들만큼 밝은 표정과 앳되지만 당당하고 확신이 담긴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자신을 로봇다리라고 소개했다.

“저는 로봇다리 김세진입니다. 훈련을 위해 수영장에 가면 ‘얘 때문에 물 더러워 진다’는 말을 듣고 수차례 쫓겨났습니다. 저는 선천성 무형성장애로 두 다리와 팔에 장애가 있어요. 하지만 10월 말에 열린 ‘2013 장애인아시아 청소년대회’에서 금메달 1, 동메달 1개를 땄습니다.”

“저는 로봇다리라는 별명을 좋아해요. 나를 어떻게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을지를 깊이 생각해봤는데 제 다리가 로봇다리 같으니 로봇다리 세진이라는 별명을 만들었어요.”

수영선수로 활동과 학업을 병행하는데도 어려움을 겪은 그는, 결국 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로 4개월 만에 중학교 과정을, 3개월 만에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성균관대학교 스포츠학과에 최연소로 합격했다. 장애인으로서 학업이 어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오히려 6과목 중 4과목을 A+를 받았다고 당차게 말한다.

그는 그의 특별한 다리처럼, 그와 어머니의 만남 역시 특별했다고 말한다.

“아이를 낳는 데는 세 가지 방법이 있어요. 하나는 배가 아파서 낳는 자연분만이고, 또 하나는 제왕절개고 마지막 하나는 마음으로 낳는 거예요. 수원의 한 보육원에 봉사활동을 하러 온 엄마가 저를 보고 첫눈에 반하셨어요. 제 다리와 손이 보이지 않고 제 눈이 예뻐 보였다고 하세요. 저를 마음으로 품어야겠다고 생각하셨대요. 그렇게 저희 엄마는 마음으로 저를 낳아주셨습니다.”

이 로봇다리라는 별명에는 그가 남들과 다른 신체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받아야 했던 비난과 손가락질에 대한 기억이 얽혀 있기도 하다.

“저는 말을 배우기도 전부터 배운 말이 있어요. 엄마와 함께 손을 잡고 돌아다니면, 사람들이 ‘엄마 말 안 들어서 저렇게 다리가 없는 피노키오가 됐다’는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어야 했어요. 어릴 때 꿈은 피노키오가 아닌 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의족을 차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수술을 합니다. 4살 때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수술을 받았습니다. 너무나도 걷고 싶었기에 수술실에 들어가는 저를 보시며 우는 엄마에게 ‘엄마, 나 코 자고나면 예뻐질 수 있지요? 걸을 수 있지요? 그러니까 울지 마세요’라고 말했어요.”

수영을 하게 된 계기는 재활을 위한 훈련이었다. 재활을 위해 엄마와 함께 타이어를 메고 걸어 다니고, 거실에 매트를 깔아 놓고 매일 넘어지는 훈련을 했다. 그 혹독한 훈련을 통해 그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기도하며 훈련을 하던 중 불빛이 보였어요. 그때 알았죠. 내 옆에 항상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요.”

걷는 훈련 중 수차례 넘어져야 했던 그에게 엄마는 “세진아, 걷는 건 중요하지 않아.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게 중요한 거야. 그리고 넘어지면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 수 있는 게 중요한 것”임을 가르쳐주셨다.

그는 라틴댄스, 승마, 스키, 마라톤 등 다양한 도전을 했다. 9살 때 로키산맥을 등정했고, 10km 마라톤을 완주한 후 상품으로 받은 리프트가 장착된 차를 장애인야학교에 기증하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수영에 도전하게 된 것은 닉부이치치와의 만남을 통해서였다. 닉부이치치가 수영을 했다는 사실이 부러웠다. 게다가 수영은 재활에 무리가 없는 적합한 운동이었다. 물을 정말 싫어했지만 엄마가 자신을 물속에 그냥 던져 넣었고, 살기 위해 수영을 해야했다.

그렇게 수영을 시작한 그는 7년간의 선수생활을 하며 120개의 금메달을 비롯해 총 150개의 메달을 수상했다. 또 지난 9월 총 300명이 출전, 218명이 완주한 뉴욕 허드슨강에서 열린 10km 리틀 레드라이트 하우스(Little Red Light House) 수영대회에서 전체 21위, 18세 미만으로는 1위의 기록을 세웠다.

그는 자신의 이런 성취 뒤에는 흡사 ‘계모처럼’ 혹독하게 자신을 밀어붙인 엄마가 있었음을 강조한다. 양정숙 씨는 “세진아, 상상할 수 없는 꿈을 꾸니? 그럼 상상할 수 없는 훈련을 하자”며 그를 독려했다. 또 그는 아들을 생김새로 인해 절망하지 않고 많은 일들에 도전할 수 있도록 도왔다.

“어떻게 생겼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어떻게 살아가는가가 중요한거야.”

그는 왜 힘든 수영을 하는지에 대해, “자유로움 때문”이라고 답한다. “물에 제 몸을 맡기도 팔 만으로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다는 것. 하늘을 나는 것 같아요”라고 답한다.

김세진 군으로부터 마이크를 이어받은 양정숙 씨의 목소리는 단호하고 강렬했다. 마치 분노라도 품고 있는 것처럼 큰 목소리를 통해 아들을 키워오는 동안 가슴 속에 꾹꾹 담아둬야 했던 많은 사연들이 흘러나왔다.

김세진 군
(Photo : 기독일보) 김세진 군과 어머니 양정숙 씨.

“저는 말은 말로 하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거라 생각했습니다. 세진이가 세상에 나가면 ‘네까짓 게 뭘 할 수 있어’ 같은 모욕적인 말을 들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말은 말을 하는 사람의 몫이 아니라 듣는 사람의 몫이라 생각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우리 마음과 귀에 약을 바르는 연습을 하자고 했습니다. 어린 아이에게 그렇게 가르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상의 편견에 굴하지 않고 김세진 군을 훌륭하게 키울 수 있었던 이면에는 양정숙 씨의 단호함이 있었다.

“영부인과 케잌커팅식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네손가락 피아니스트 희야가 영부인에게 말을 걸자, 세진이도 이에 질세랴 영부인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할머니, 어디살아?’ ‘할머니, 집은 몇 평이야?’ 라는 세진이의 질문에 그 곁에 있던 사람이 제게 왜 세진이에게 영부인에 대해 가르치지 않았냐고 다그쳤습니다. 그때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변하는 것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저는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만 가르칩니다. 예의는 가르치지만 돈, 명예, 권력 앞에 고개 숙이고 비굴해지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세진이를 낳아도 된다는 허락을 받기 위해 아버지를 찾아간 그에게, 정숙 씨의 아버지는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고 한다.

“누구 앞에서도 여자가 되지 마라. 세상에 맞서 싸우지 마라. 좋아도 참고 네 감정에 흔들리지 마라. 네 자식은 네 그림자이다. 네가 바로 서 있으면 네 그림자는 흔들리지 않는다.”

양정숙 씨는 아들의 로봇다리에 얽힌 한 사건을 이야기했다. “세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6학년 형들이 세진이를 화장실에 가두고 망치로 무릎을 망가뜨렸습니다. 피투성이가 된 채 기어서 집에 온 세진이를 보자 미칠 것 같았습니다. 그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을 찾아 학교에 갔더니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할까요?’하고 기도하며 아이들에게 다가갔습니다. ‘너희들 이리 와봐, 축구하느라 힘들었지, 아줌마가 햄버거 사줄게’라고 말하고 햄버거 집에 데려 갔습니다. 햄버거를 다 먹어갈 때쯤 말했습니다. ‘아줌마가, 사실은 너희들 하는 거 다 봤어’라고. 한 아이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한 아이는 변명을 시작했습니다. ‘걔는 로봇 다리라서 안아파요’ 그때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습니다. 저는 옆에 있던 물통을 그 아이 앞에 갑자기 들이 밀었어요. 그러자 아이가 깜짝 놀라며, ‘아줌마, 왜 그래요’라고 했습니다. 전 그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물론 그 아이도 아프지 않았을거야. 하지만 놀랐을 거야. 그리고 사실은 내가 그 애 엄마야. 너희가 내일 학교에 가면 교문 앞에서 미안하고 한마디만 해줘. 그러면 너희도 그 아이에게 미안하지 않을거고 그 아이도 너희에게 잘못된 마음을 갖지 않을거야.’ 하나님께서 제게 이렇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는 세진 군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누나 김은아 양에 대해서도 전했다. 중학교 2학년이던 은아 양은 갑자기 어느 날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동생을 돌보고 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동생을 향한 세상의 멸시를 대신 감내했다.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친 그는 현재 대기업에 다니고 있다. 그런 은아씨의 아름다운 마음에 대해, 양정숙 씨는 “자기 동생을 사랑한 만큼 기대하지도 않은 부분까지 하나님께서 부어주셨다”고 말한다.

“세진이가 로봇다리를 하고, 수영선수가 되기까지 뼈를 깎는 고통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진이는 한 번도 힘들다는 표현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엄마, 나보다 세상엔 힘든 사람들이 있어’라고 말합니다."

16세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생각이 깊고, 어느 숙련된 강연자 못지않게 말을 잘 하는 세진 군에겐 교수가 되고, IOC(국제올림픽위원회)의 위원이 되어 많은 어린이들에게 꿈을 주고 싶다는 꿈이 있다. 이번 HCC에도 참여해 자신의 삶에 오롯이 새겨진 희망의 메시지를 전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양정숙 씨는 “물에 들어가 잘 하려면 힘을 빼야한다. 하나님께서 이끄시면 따라가야지 버티면 안 된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이끄심에 맡겨야 한다”고, 세진 군은 “길을 가다가 길이 막히면 주저앉지 말고, 다른 여러 가지 길을 시도해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간증을 마쳤다.

HCC 집행위원인 권태산 목사가 밝힌 최근 조사에 따르면, 한국 대학생 중 하나님의 믿는 비율이 6~7%에 지나지 않고 고등학생이 대학교에 가면 80%가 교회를 떠나며, 직장이나 학교에서 그리스도인임을 밝히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고 한다. 이런 추세라면 미국 내 한인교회의 미래 역시 텅 빈 교회가 가득한 현재의 유럽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KCCC는 위세대의 신앙이 다음 세대에 전달이 잘 안되고 있다는 위기의식 속에서 HCC를 오랜 기간에 걸쳐 준비해 왔다.

차세대 영적리더를 세우는 이 컨퍼런스를 통해 청년들을 충분히 훈련시키기 위해서는 미래 세대에 관심 있는 이들의 영적, 재정적 후원이 필요하다. 이 컨퍼런스를 후원을 위한 문의는 웹사이트(www.gohighercalling.org), 이메일) support@gohighercalling.org 전화) 213-389-5222로 할 수 있다.

(Photo : 기독일보)
동양선교교회에서 Higher Calling Conference 후원을 위한 간증집회가 20일 오후 7시에 열렸다.
(Photo : 기독일보) 동양선교교회에서 Higher Calling Conference 후원을 위한 간증집회가 20일 오후 7시에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