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눅2: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1. 예언 성취의 성탄
아담의 범죄 후 하나님께서 서둘러 구속의 의지를 창세기 3장 21절에서 밝히셨는데 그 내용은 대속을 위한 희생양의 필요성이었다. 이후 계속해서 선지자들의 입을 의탁하사 메시야를 보내주시기 위한 구체적인 예언이 있어왔다. 이사야 7장 14절에서는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하셨으니 대속을 위한 희생양은 처녀의 몸에서 출생할 것을 계시하시며 그 목적은 임마누엘(IMMANUEL)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이었다.
미가서 5장 2절에는 “메시야는 베들레헴에서 출생할 것이며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고 하셨으니 요한복음 1장 1, 14절 말씀과 대조해 볼 때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곧 하나님이신 말씀이 살신성인(道成人身, INCARNATION)하신 것이 분명하다.
메시야는 왜 동정 탄생을 했어야 하는가에 대하여는 아담의 범죄 이후 아담의 자손된 전 인류는 죄 아래 태어났고 죄악을 먹고 마시며 살았기에 죄 값에 시달리다가 멸망할 수밖에 없다. 죄인은 자신의 죄도 해결할 대책이 없을 뿐 아니라 남의 죄도 해결해 줄 능력도 전혀 없다.
그래서 택하신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는 아담의 죄와 상관없이 태어나는 의인이어야만 했고 그 의인만이 죄인들을 구속할 수가 있는 법이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동정탄생을 하신 것이다. 그러면 처녀 마리아는 아담의 혈통이 아니며 죄 아래 있는 사람이 아니었던가? 라는 의문을 제시하게 되겠지만 사실은 구약 시대의 복음은 오실 메시야에 대한 믿음으로 이미 그의 죄는 약속의 구속을 받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마리아도 구약과 신약의 중간 지점에서 자기가 동정출산 한 예수님이 메시야 곧 그리스도이심을 알고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는 인정을 받은 것임을 알게 된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동정해산 한 후 정혼한 요셉과의 부부 사이에서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와 딸 몇을 낳은 것으로 마태복음 13장 55, 56절과 요한복음 7장 3~5절, 마가복음 3장 31, 32절에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로마교회에서는 마리아를 성모로 영원한 동정녀(永遠한 童貞女로 念. Perpetual Virginity of Mary)로 주장하며 마리아를 신성시하고 있다. 이 같은 경우는 요한계시록 22장 19절에서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고 하셨으니 곧 이단이라는 말이 된다.
사실 마리아야 말로 예수님만을 동정해산 하는 것으로 하나님 앞에 복된 소임을 감당한 것이 되었고 그 후에 일반 여인으로서의 생애를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요한복음 1장 10~11절에서 예수님이 창조하신 자기 땅에 오셨으나 자기 백성마저도 영접하지 아니하더라는 말씀을 생각하면서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이 왕궁에나 대가의 내실에서 출생하지 못하시고 왜 마굿간에서 나시고 침대가 아닌 구유 위에 누우셔야 했는가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메시야 즉 그리스도란 말은 ‘기름 부음을 받은자’라는 뜻으로 구약시대에는 왕, 제사장, 선지자를 세울 때에 기름을 부었다. 그러고 보니 예수 그리스도는 왕중의 왕으로, 영원한 제사장으로, 영생하는 말씀의 선지자로 오신 것이다. 그가 짐승들의 거처인 마굿간에서 출생하신 것은 선민 이스라엘이나 이방인이 다 이성 없는 짐승처럼 하나님을 등지고 살았기에 그들을 구속하러 오신 것이며 천하고 가난하며 소외된 밑바닥 인생들을 위하여 임마누엘의 주님으로 오신 것이 아닌가!
2. 천사들의 증언
밤에 벌판에서 자기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나타난 천사들은 베들레헴 마굿간에 출생하신 아기 예수님을 소개하며 빨리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라면서 그같이 확인되어지는 사실이 곧 표적임을 밝혔다. 본래 천사는 영물로서 사람이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법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목적이 있어서 영의 눈을 띄워 주실 때에는 영계를 볼 수도 있고 천사들도 보게 된다. 그 천사들의 증언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고 했는데 헬라어 원어로는 유앙겔리조마이 카란으로 곧 “큰 기쁨을 전하는 좋은 소식을 전파하노라”고 했다.
다시 말하면 사람에게 큰 기쁨을 주는 복음을 전하노라고 한 것이다. 그렇다. 예수라는 이름의 뜻이 마태복음 1장 21절에서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하심과 같이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는 택하신 자기백성들의 죄를 대속해 주러 오신 분으로 베들레헴 마굿간에서 시작된 그의 생애는 멸시, 천대며, 수모와 고난의 연속으로 세상이 그에게 베푼 마지막 대접은 십자가 형틀뿐이었다. 그러나 그가 그 십자가 형틀에 못박히시고 가시와 창에 찔린 상처를 통하여 흘리신 피는 택하신 자기 백성들의 영원한 대속의 보혈로 과거에도 그러했듯이 오늘날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이미 살았었고 살고 있고 살게 될 이 세상 사람들 중에 택하신 자기 백성들을 영원히 대속하러 오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심을 증언한 것이다.
3.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
전술한 바와 같이 아담의 범죄로 완전 타락한 인류는 악령 사탄의 짝이 되어 범죄하며 이성을 잃고 하나님께마저 대적하고 발악하는 지경이어서 에베소서 2장 2~3절에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다”고 했으니 세상에는 의인도 없고 하나님을 알아보거나 두려워하는 자도 없어 흑암에 사로잡힌 죄인들, 곧 진노와 형벌의 대상뿐이었다. 하나님은 사랑이신지라 자신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들이 죄값으로 당하는 고통과 지옥의 형벌을 그대로 외면하실 수 없어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대속을 위한 희생양으로 세상에 보내신 것이다. 그 같은 하나님 편에서의 구속 의지적 은혜계약을 알아보고 믿어져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의지하여 회개하며 성령의 감동에 의한 진실된 신앙고백을 하게 될 때 죄사함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거듭나게 되는데 영적 소망의 결실을 이루기 위하여 보혜사라는 성령까지 파송해 주심을 받게 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복음을 듣기는 하지만 믿어지지 않아서 구원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믿음에는 자기 의지적 결단으로 믿어보자는 믿음이 있고 성령님의 계시, 조명과 감동에 의하여 진리가 깨달아지고 믿어지는 믿음이 있다. 전자는 환경에 따른 형편, 처지의 변화와 심경의 변동에 따라서 자기 믿음을 스스로 쉽게 중단할 수도 있겠지만 후자의 믿어지는 믿음은 하나님께서 택하셨고 속으로 불러내셨고 성령의 계시 감동으로 믿어질 수밖에 없도록 계속 집중적으로 역사해 오시기 때문에 자기 의지적 주관의 부정이나 의도적인 거부 반응도 부질없어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히고 성령에 이끌리는 믿어지는 믿음으로, 이러한 경우를 불가항력적 은혜라고 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신 바와 같이 죄악으로 저주 아래 있어 지옥길을 달음박질하는 무지몽매한 인간들은 진노의 대상이요 곧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백성들이었지만 그들 중에 택하신 백성들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면서 성령의 계시조명과 감동하시는 역사를 통하여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아보고 믿어져서 진실로 회개하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본문 중 14절에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하심은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은 자라야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어 영원한 그분의 자녀로서 무한한 영광을 돌리게 되며 또한 하나님의 나라를 물려받을 영생복락의 후사가 되겠기에 비로소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을 때는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을 수도 없고 또한 자신들도 기뻐할 아무런 기대가 없게 되고 만다.
매년 성탄절이 되면 세상 사람들은 공연히 들떠서 흥분하고 죄악의 온상인 유흥장을 휩쓸고 다니며 온갖 죄악으로 낙을 삼는 듯 먹고 마시며 쾌락을 좇아 방탕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이같은 형태는 성탄절의 의미를 크게 오해하고 있다는 증거일 뿐 아니라 대속을 위한 희생양으로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나님의 아가페적 사랑의 섭리를 오히려 악으로 보답하는 배은망덕이며 하나님의 미움을 더하여 진노를 재촉하는 불행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금년 성탄절에는 교회들과 선교단체들의 보다 적극적인 역할로써 술집이나 유흥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확실히 증거하여 교회와 기도원으로 구름 떼같이 모여들게 하고 성령의 도우시는 역사를 의지하여 이 민족이 복음화 되게 하며 나아가서 인류 복음화를 위한 세계선교에 더욱 진력해야 하는 것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의 사명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