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나 국가나 어느 집단이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관심을 기울이실 때에 그 대상들의 믿음이 하나님의 마음에 드시면 그들을 가장 소망적이고 성공적인 신앙생활의 본보기가 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면서 반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지속적으로 분에 넘치도록 받아 누리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신앙심리가 둔해지고 하나님 앞에 형식적이고 습관적으로 기도하고 예배하는, 즉 죽은 신앙의 사람들에게는 육신과 정신, 경제적 환란과 시련을 겪게 하심으로 견디기 어려워서라도 죽지못해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하나님 앞에 나태했던 믿음을 바로 세우도록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보기도 합니다.
죄와 심판
스바냐서는 하나님이 섬기신다는 뜻의 스바냐가 하나님 앞에 받아서 기록한 말씀인데 예루살렘과 유대나라가 100년 전에 망한 북쪽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게 BC722년도부터 완전히 멸망해버린 것을 보면서도 그들이 각성 분발하지 못하고 겸손하지 못하고 회개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하나님은 100년이나 참고 기다려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단되어 북쪽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사마리아를 수도로 했고 남쪽은 유대국이라는 이름으로 예루살렘을 수도로 했습니다. 이 형제나라가 때로는 싸우는 일도 있으나 북쪽이나 남쪽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여 매를 맞거나 환란이나 고통에 시달리는 모습을 남은 다른 한 나라가 각성 분발하는 재료거리로 제시하는 일들도 있어왔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지면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 내가 사람과 짐승을 진멸하고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와 거치게 하는 것과 악인들을 아울러 진멸할 것이라 내가 사람을 지면에서 멸절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거민 위에 손을 펴서 바알의 남아 있는 것을 그곳에서 멸절하며 그마림이란 이름과 및 그 제사장들을 아울러 멸절하며 무릇 지붕에서 하늘의 일월성신에게 경배하는 자와 경배하며 여호와께 맹세하면서 말감을 가리켜 맹세하는 자와 여호와를 배반하고 좇지 아니한 자와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를 멸절하리라(습1:2-6)” 이 말씀은 이 세상 끝날에 불신대상은 완전히 전멸시킬 것에 대한 경고적 예언입니다. 이와 비슷한 내용이 스바냐 3장에 나옵니다. 유대인들에게 경고하신 말씀입니다. 3:1에 “패역하고 더러운 곳, 포학한 그 성읍이 화 있을찐저”에서 포악한 그 성읍은 예루살렘을 말하는 것입니다. 원래 예루살렘이란 뜻은 평화의 도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하늘의 평안을 보장받았던 예루살렘이 폭군들에 의해서 패역하고 성읍이 온갖 죄악으로 차고 넘쳤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무서운 징계를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2절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남의 이야기처럼 그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고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뢰하지도 아니하고 자기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지도 아니하였다고 합니다. 믿음 없이 습관적으로 하나님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3절에 “그 가운데 방백들은 부르짖는 사자요 그 재판장들은 이튿날까지 남겨 두는 것이 없는 저녁이리요” 방백들은 교회로 말하면 장로를 말함이고 부르짖는 사자는 위협을 주어 강탈하려는 자를 의미합니다.
4절에 “그 선지자들은 위인이 경솔하고 간사한 자요 그 제사장들은 성소를 더럽히고 율법을 범하였도다”했습니다. 이것은 지금의 목회자들이 영적 성과를 위한 목회에 전념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눈치를 살펴 인간적으로 자기이득을 챙기자는 식으로 목회자가 타락한 인간들의 편을 이해해주는 입장으로 그들과 함께 어울리고 휩쓸려서 죄악의 길로 이끌고 간다는 것입니다. 항상 기억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사자는 칼날 같은 말씀으로 찔리고, 녹아지고, 깨짐으로 회개하는 역사가 있어야 영혼이 구원 얻을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히브리서 4:12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신의 지은 죄로 인하여 책망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소망 없는 모습으로 교만하고 도도하게 회개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이럴 땐 그 교회의 목자가 하나님이 세우신 참 진리의 목자라고 하면 그 사람의 비유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칼날갈이 죄를 지적하여 책망하고 회개시킴으로 그 영혼이 겸손하게 예수님 앞에 무릎 꿇어 거듭나는 구원을 회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회개와 회복의 기쁨
어느 교회가 개척을 해서 11년이 되었습니다. 교인들은 그간 140여명이 되었습니다. 이 교회에 열심인 두 사람이 있었는데 A라는 사람은 대학교수로 가진 것이 별로 없어도 신앙인격이 하늘소망을 바라고 목자를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협력하면서 교회 은혜 분위기 조성에 숨은 봉사자로 힘쓰고 교회에서 해야 할 일이 있을 때에는 자기가 힘껏 애씀에도 자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기쁨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잘 이끌어가는 사람으로 그 교회 목자의 목회에 큰 힘을 실어주는 아주 인격적인 분이었다고 합니다. 또 B라는 다른 한 분은 사업이 잘되어 돈은 많이 벌었으나 항상 말을 할 때도 자기생각으로 말을 하고 자기의 생각이 저지된다고 생각하면 조금 위협적인 태도로 변하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교회가 예배당을 넓혀 건축하기 위하여 건축헌금을 하게 되었는데 A는 가진 것은 없으나 많은 사람들로 즐거움에 참예케 하는 역할을 하게 되고 B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헌금을 해야 자기를 알아주겠다는 기대감 때문에 다른 사람은 헌금할 필요 없이 내가 다하면 된다고 큰소리를 쳤습니다. 그 후 자그마한 예배당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봉헌예배를 드리면서 앞서 말한 두 사람을 장로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후 B장로는 제직회가 되면 목자의 입장이 무색할 정도로 분위기를 만들어서 계통질서가 엉망이 되곤 했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권을 침해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2년이 지나는 동안 어느 누구도 그 장로에게 한 마디의 권면도 해줄 수가 없었답니다. 목사님도 여러번 우회해서 말씀을 하셨지만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교회를 자신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A장로는 날마다 B장로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며 지내는데, B장로는 A장로를 바보스럽게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하나님의 심판이 나타났습니다. 하던 사업 중 하나가 잘못돼 무너지면서 나머지 사업체마저 무너져 버렸습니다. 그럼에도 이 사람은 자신의 허세와 자존심의 손상만을 생각하다 더 신경질적으로 변해 그만 병이 나고 말았답니다. 서울대학병원에 입원하여 아무리 검사를 하여도 병명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병원에서는 병명은 알 수 없으나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이에 화가 난 B장로는 다른 병원에 가서 또다시 검사를 했으나 똑같은 진단을 받았다고 합니다.
고향에서 함께 자란 동기생 중 친구 목사님이 한 분 계셨는데 친구가 아프다는 소리에 그 친구를 보기 위하여 B장로를 찾아왔습니다. 친구를 만난 후 이 목사님은 B장로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을 만나 왜 회개시키지 못하셨냐고 묻자 회개하라하면 목사님이 회개하셔야한다고 말하던 사람에게 무슨 말을 더하겠냐고 하더랍니다. 그간의 정황을 다 들은 후 다시 친구를 찾아간 목사님은 이대로 지옥가고 싶지 않다면 살려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지옥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라고 권면했습니다. 옛사람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회개도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장로가 되었어도 하나님이 치신 것이라고 일러주고 지금부터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철저히 회개해야 부끄러운 구원이라도 받아 지옥 길은 면할 수 있지 않겠냐고 간곡히 전하고 기도하던 중 B장로는 성령의 감동을 받게 되었습니다. 심령 깊은 곳에서의 회개가 시작되고 일주일을 밤낮없이 기도하고 평안이 왔답니다. 이는 하나님이 그를 고치시고 용서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는 표정부터 달라졌습니다. 우선 목사님을 찾아가 무릎 꿇고 용서를 빌고 A장로를 찾아가서 그동안 자신이 교만했었다고 사과를 했답니다. 그리고는 그 병이 나았답니다.
교회에 오래 다녔다고 하면 그 믿음이 모범이 되고 은혜와 덕을 끼치는 일에 앞장서고 목회하는데 더 힘 있는 뒷받침으로 참여해 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예들을 볼 때 오늘 이 말씀이 너무나 절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사람들 중에 하나님이 남기신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12절 말씀처럼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너희 중에 남겨 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거라 하십니다. 회복을 보장받을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본문의 말씀입니다. 17절 말씀은 주위 사람들이 모두 불의와 강포로 범죄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며 발악하고 그들의 순수한 믿음을 무시하고 짓밟으면서 행패하며 온갖 모양으로 괴롭혔지만 그 모든 것을 참고 견디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해 부르짖고 매달리는 그 믿음을 하나님이 너무나 귀하게 보셔서 마귀들을 다 물리쳐주시고 이제는 그들의 시대로 회복해 주실 때 회복되어지는 그들을 보시는 하나님이 회복 받는 그들보다 더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환경을 탓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자기 믿음은 자신이 지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남편이 아내의 신앙생활에 대한 박해와 핍박이 있다하더라도 마귀가 보기에 그 아내의 신앙이 하나님 앞에 크게 쓰임받기 전에 쓰러뜨리려고 하는 온갖 행패임을 깨달아 그 모든 상황을 불평과 핑계거리로 삼지 말고 오히려 감사의 조건으로 삼으시길 바랍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했습니다. 두려워할 일이 없습니다. 도리어 핍박하는 이를 불쌍히 여겨 그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19절에 “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로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하십니다.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근심시키면서 내가 기쁨을 얻고 유익을 얻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사기꾼과 같습니다.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입니다. 참 신앙인은 영적 신앙으로 참고 견디며 하나님께 붙들리고 매달려 믿음으로 성공하는 승리자가 될 때 그 모습을 보시는 하나님이 그 모습을 통해 기쁨을 이기지 못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뒤부터 하나님은 그 사람을 위하여 기쁨이 넘치도록 회복의 역사가 서둘러진다는 것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