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인권
(Photo : 기독일보) 안인권 목사.

전나무는 주변 환경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불안이 가중될 때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엄청난 열매를 맺는다. 종족 보존을 평소와 같은 방식으로 해서는 도저히 달성할 수 없다는 엄청난 불안감이 폭발적인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앞날이 불확실한 전나무의 이 같은 종족 보존을 위한 분투노력을 '앙스트블뤼테(angstblute)'라고 한다. 공부하는 과정도 전나무의 앙스트블뤼테와 같은 불안감이 열정을 불러일으켜 전대미문의 새로운 창조로 연결되는 가능성의 문을 열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잉스트블뤼테는 불안감이 피워낸 열정의 꽃이다. 글쓰는 작가의 경우 마감 시간이 임박하기 시작하면 평소 때와는 달리 긴장감과 집중력이 극도로 작용하여 순식간에 줄거리가 풀리는 경험을 한다. 글이 실타래 풀리듯이 마감시간이 임박해서 술술 풀리는 경험은 평소 그만큼 해당 주제에 대하여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이다. 고민한 흔적이 쌓여서 어느 날 갑자기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는 선물을 받아 생각지도 못한 글이 술술 풀리는 경우가 많다.

불멸의 작곡가 베토벤은 그의 천재적인 재능 덕분에 어릴 적부터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그의 나이 스물일곱 무렵 귓병으로 청력을 상실하면서 안 들리기 시작했다. 작곡가에게 소리가 안 들린다는것은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도 위대한 작곡가이기 이전에 평범한 한 인간이기에 깊은 절망감과 좌절을 맛보았으며, 1802년 하일리겐쉬타트에서 유서를 작성하고 급기야 죽기를 결심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베토벤의 작곡한 위대한 작품의 꽃은 그때부터 개화하기 시작했다. 1804년 교향곡 3번<영웅>작곡, 1805년 피아노소나타 <열정>작곡, 1808년 교향곡5번 <운명>작곡, 1809년 피아노협주곡<황제>작곡, 대작으로 평가받는 곡들은 대부분 청력을 거의 상실한 이후 탄생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불후의 명곡으로 꼽히는 <합창> 교향곡은 청력이 완전히 소멸된 시기 임종 3년전인 1824년에 작곡했다. 불안 가득한 나날 속에서 창작에 대한 그의 간절함은 극에 달했고, 죽음보다 더 깊었던 간절함은 장애조차 초월하여 위대한 창조의 앙스트블뤼테를 피워낸 것이다.

400년 동안 이집트의 노예생활을 했고, 2000년 동안 핍박받고 추방당하여 유랑생활을 했다. 홀로코스트로 600만명이 희생당했지만 MS의 빌게이츠 회장,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 회장, 구글의 세르게이 브린 회장, 세계 반도체 업계의 제왕이었던 인텔의 앤드 그로브 전 회장 등 <포춘> 선정 100대 기업 CEO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노벨상 수상자의 30%와 미국 10대 부자의 20%를 점유하고 있으며 AP, UPI, AFP, 로이터, NBC 등 주요 방송사는 물론 세상을 움직이는 3대 신문인 <뉴욕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월스트릿 저널>을 장악,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감독을 비롯하여 파라마운트, 20세기 폭스사, 헐리웃 6대 메이저를 장악하고 있다. 이들은 전 세계 인구의 0.25%인 약 1,300만 명에 불과하지만 세계를 주도하고 주무르고 있다. 바로 유대인들이다.

이들의 저력은 어디에서 나올까? 디아스포라(diaspora), 그리스어에서 온 말로 분산이나 이산을 의미한다. 주변 민족에게 핍박당하고 수천 년 동안 집단 유랑생활을 하면서 항상 위협받았기에 끝없이 생존의 돌파구를 찾아야 했고, 나라가 없었기에 끝없이 새로운 땅을 찾아야 했다. 이들에게 두려움에 맞서는 두 가지 필수품은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는 '비전'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행동할 수 있는 '용기'였다. 또 한 가지 유대인의 필수품이 있으니 바로 <탈무드>이다. 현명한 삶을 이끌어주고 민족을 집결시킨 <탈무드>, 위대한 연구를 의미하는 <탈무드>는 인생 전반에 대한 삶의 지침서이자 지혜의 보고이다. 두려움에 떨었지만 좌절하거나 낙망하지 않고 끝까지 희망의 등불을 가슴에 안고 다녔다. 언젠가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남을 것이라는 강인한 정신력과 불굴의 의지로 버텼다. 탈무드의 뿌리는 <토라>이다. 그들에게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인 <토라>는 살아있는 하나님 그 자체였다.

하나님이 살아 있는한 인생의 밑바닥에서도 좌절하지 않았고,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갖은 고문과 배고픔의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가스실로 들어가면서도 하나님의 나라의 회복을 노래했다. 세계 각처에서 겪는 시련과 역경 속에서 백절불굴의 자세를 잃지 않았다. 인류 역사상 비참한 참상을 가장 오랫 동안 당한 민족이 유대 민족이다. 형용하기 어려운 고난이 그들로 하여금 감히 흉내낼 수 없는 정신력과 신앙으로 무장하게 했다. 2000년 동안 조국을 잃어버린 쓰라린 디아스포라의 세월은 조국을 찾기 전에 세계 문명을 지배하고 세계를 주도하는 강력한 리더쉽으로 피어난 것이다. 그들의 절박함은 어느 민족도 경험해 보지 못한 절망에서 나왔다. 하나님은 그들을 어느 민족보다 매몰차게 대하셨다. 그러나 어떤 민족보다 사랑하셨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절박한 만큼 하나님께 매달린다는 것을 하나님은 잘 아신다. 절박하지 않은 상황을 결코 축복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개인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위기에 부딪히지 않으면 절박하게 매달리지 않는다.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다. 절박함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부딪혀야 치열한 긴장감을 갖게 된다. 그때부터 사람의 뇌는 평범함을 거부하고 비범함을 추구하게 된다. 이때 뇌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위기를 돌파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환경과 상황이 평범한 상태에서 스스로 비범한 심리상태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위대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비범한 인생을 살고 시대를 이끌어갈 수 있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