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인구 6천명이 거주하는 팜데일 지역에 6년 전 세워진 두드림교회가 지난 5일 오전 창립 기념 전교인연합예배에 이어 권사(유조앤 집사: 사진 위 가운데)임직식을 가졌다. 동교회는 이날 지역 커뮤니티 청소년들을 위한 장학금을 전달하는 순서도 마련했다.
이강천 목사가 말하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은혜의 신앙 여정
이날 예배에서는 안세광 담임목사의 인도 하에 부흥회 강사로 초청된 이강천 목사(바나바훈련원장)가 '십자가의 은혜'라는 제목으로 메시지를 전했다.
이강천 목사는 6·25 피란 당시 온갖 굶주림과 병마와의 투쟁 가운데 알코올 중독자인 부친에 대한 미움과 증오를 키워가다 지인의 소개로 성경을 접하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게 된 자신의 신앙간증으로 이날 메시지를 풀어나갔다.
다음은 설교 요약.
6·25 피란 때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린 날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어린 나이에 위장병에 걸려 고생했고, 폐병, 심장병 등을 앓으며 암울한 소년시절을 보냈다. 다행히 초등학교 문턱은 넘었지만, 중학교 진학은 어림도 없었다. 어려서 난 예수를 모르는 부모 밑에서 자랐다. 가세가 어려운 형편이라 아버지는 매일같이 술에 절어 있었다. 어머니와 싸우다 안풀린 분을 자식인 내게 풀었다. 수도 없이 맞았다. 그렇게 지옥같은 생활을 하던 어느 날, 가족 구성원 모두 예수를 믿는 친구네 부모님이 날 전도하기 시작했다.
최 집사님이라는 친구의 아버지가 다 죽게 생겼는데도 목이 꼿꼿했던 교만 덩어리인 내게 손을 내미셨다. 보아하니 열번이고 스무번이고 아니, 백번이라도 찾아올 기세였다. 아무리 거절해도 당최 포기란 걸 모르는 눈치였다. 그래서 하루는 단단히 결심을 했다. 매번 내게 찾아오는 그 분의 정성을 봐서라도 교회라는 곳에 한 번은 가보자는 결심을 말이다. 그리하여 찾아간 교회였다. 그런데 설교하는 목사님이 "여러분, 우리는 모두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이 말을 들은 나는 더럽게 기분이 나빴다. 내 딴엔 나름 순수한 청년이라고 자부하고 살아왔는데, 이런 나더러 '죄인'이라니.... 쳇. 두 번 다신 그 교회에 가지 않으리라 속으로 결심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뒤. 최 집사님은 또 날 데리러 오셨다. 그러자 이번에도 못 이기는 척 따라나섰다.
그런데 이번에도 목사님은 '죄'에 대한 설교를 하시면서 "하나님의 심판대에 누가 감히 서겠냐"는 것이었다. 죄를 지으면 지옥 간다는 내용의 설교가 너무나도 귀에 거슬렸다.당시 목사님의 설교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죄로 인해 지옥에 가야할 우리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릴 사랑하사 우리 죄를 예수님을 통해 대속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심판을 그 분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대신 받으심으로 우리가 용서함 받고, 의롭다함을 얻었습니다. 십자가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는 길을 열어주는 크나큰 은혜입니다."이 얘기를 들은 나는 '아니, 이건 또 뭔가. 병 주고 약 주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죄인이 아닌데, 왜 자꾸 십자가가 필요하다는 거야?'라며 계속 거부해왔다. 신기한 건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1년간 주일마다 꼬박꼬박 최 집사님에게 끌려 교회란 곳을 다녔다는 거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젠 정말이지 더는 교회를 못다니겠다고 선언했다. 나는 최 집사님을 상대로 "지난 1년간 교회를 다녀봤지만, 도대체 있지도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왜 믿어요?"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도통 이해할 수 없으니 이대론 더는 못가겠다"고 그 분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아저씬, 한 번이라도 하나님이란 분을 만난 적이 있긴 하냐"고 추궁했다. 딴에는 그렇게 몰아 부치면 꼼작 못할 거란 계산이었다. 이 말을 들은 최 집사님은 한참을 껄껄 웃으시더니 "한 번 만난 정도가 아니라 날마다 만나고 있단다"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그 말에 기가 죽은 나는 가만히 있다가 두 번째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날마다 만나신다고 했죠? 그럼 그 하나님께 나, 면회 좀 시켜주세요." 처음엔 '면회(面會)'라는 단어에 집사님도 당황하셨는지 한동안 말을 못 이으시더니 "이 사람아, 내가 하나님께 면회 신청을 할테니 준비하고 있게나" 하시는 게 아닌가. 그리고 며칠 뒤 집사님은 "일전에 말한 준비란 바로 이걸세"하시면서 성경책을 불쑥 내미셨다. "여보게, 그 책에 다 나와있으니 찬찬히 한번 읽어보게"나는 "아니, 그 두꺼운 책을 어떻게 다 읽어요?"라고 푸념을 늘어놓으면서도 "다 읽을테니, 하나님과의 면회는 반드시 성사시켜 달라"고 생떼 아닌 생떼를 쓰면서 한 장씩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누가 누구를 낳고'에서부터 시작해 지루함에 못이겨 덮고, 처녀가 얘를 낳았다는 얘기에 황당해서 덮었다. 그러면서도 집사님을 따라 계속해서 교회를 다녔다.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요한일서 2장을 읽고 있었는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 속에 사는 인생과 같다'는 말씀이 덜컥 양심에 걸렸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미움 때문이었다. 술에 절어 마구 횡패를 부리는 아버지의 꼴이 보기 싫어 밥도 따로 나가 먹곤 했던 나는, "아버지를 미워했지, 형제를 미워하진 않았노라"고 항변하고 싶었다. 그리고는 빨리 요한일서를 끝내려는 마음으로 정신없이 읽어 내려갔다. 목사님의 "죄인"이란 말이 정말이지 기분이 나빴다. 여하튼 끝까지 읽고 난 뒤에도 여전히 "난, 죄인이 아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요일 3장에도 보니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자"라고 나오는게 아닌가.... 이 말이 또 걸렸다. 그러면서 속으로 "비록 내가 미워하는 사람은 있긴 하지만, 형제를 미워하진 않았으니..."하며 나름 위안 삼으며 넘어갔다. 그리고선 4장으로 넘어가는데 거기서도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라는 말이 또 뇌리에 강한 돌처럼 박혔다. 이내 마음 깊은 속에서 이런 음성이 들렸다. '형제만 미워해도 살인하는 자, 거짓말하는 자라고 했는데, 너를 낳고 양육시킨 아버지를 미워하면서 어디로 도망을 치려 하느냐...'순간 내 모든 것이 무너지면서 무릎을 꿇었다.
지난 1년 반 동안 교회를 다니면서도 끝까지 예수 안 믿겠다고,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 따위 안 믿겠다고 철저히 거부해 온 내 모든 '교만'이 꺾기는 찰나였다. 그 시간부로 나는 하나님을 부르짖었다. 그리고는 귀에 들리는 목사님의 말씀이 깨달아지기 시작했다. 예수님이 내 죄를 짊어지시고 대신 심판을 받으셨다는 말씀이 믿어지고 깨달아지니 눈물이 절로 터져 나왔다. '꺼억 꺼억' 하는 내 울음소리에 건너방에 계시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막 뛰어오시는 게 아닌가. 눈물을 참으려 해도 도저히 참아지지가 않았다.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산에 올라가 다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는데, 눈물이 막 쏟아지면서 아버지를 미워한 죄를 비롯 여러 죄들이 생각나서 한참 동안 회개를 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마음 속에 믿음이 란 것이 생겨났다. 내가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었다는 확신이 주어지더라. 너무도 기쁘고 감사하고 감격스러웠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아버지께 지난 날 미워했던 날 용서해 달라고 무릎꿇고 사죄했다. "아버지, 잘못했어요. 사랑합니다." 이런 내 모습에 아버지는 이상해졌다고 하셨다. 그래도 내겐 충만한 평화가 있었다. 아버지는 내가 돌긴 돌았는데, 아버지를 사랑하는 쪽으로 돌았다고 말씀하셨다. 비록 그날은 아버지와 화해를 못하고 잤지만, 이후 새 사람이 되어서 삶이 변했다. 지금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으면서 하루 하루 살고 있다.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감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대속하셨다는 사실을 믿을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은혜 아래에 살게 된다. 여러분도 매일의 삶 가운데 이러한 십자가의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사랑을 전하길 바란다.
■ 이강천 목사는 누구?
전도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이강천 목사는 국제전도폭발훈련 초대 본부장으로서 20년을 섬기면서 1천여명의 목회자를 길러냈고, 그야말로 한국교회의 부흥을 일으키는 견인차 역할을 감당했다. 저서 <마지막 세기, 마지막 주자(두란노, 1991년>를 통해 한국교회의 선교적 비전을 다지게 했고, 수많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선교사로 헌신하게 했다. 현재 바나바훈련원 원장으로 목회자, 선교사 및 평신도 지도자를 재무장 시키는 사역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그의 성령사역 일대기를 기록한 <바나바 행전>,<전략적 중보기도>, <성령사역으로의 초대>, <코미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