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장로교회 청빙위원회가 지난 5일 담임목사 청빙 후보자로 이승한 목사를 추천, 오는 12일 열리는 공동의회 결과가 매우 주목되는 가운데 이승한 목사(뉴잉글랜드은혜장로교회)가 어떠한 인물인가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뉴욕장로교회는 지난 2010년 8월 안민성 목사의 사임 이후 지금까지 3년 가까이 목회자를 청빙하지 못하고 있다. 몇 차례 청빙위원회를 거쳐 후보들이 제시됐으나 공동의회에서 신임을 받지 못하거나 본인이 청빙을 거절해 담임 목사 공백 상태가 지속돼 왔다.

이에 따라 과연 뉴욕장로교회가 이승한 목사를 3년만에 담임으로 맞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승한 목사는 지난해 뉴욕장로교회가 차기 담임으로 공동의회에서까지 결정했던 김한요 목사(세레토스장로교회)와도 가까운 사이다. 김한요 목사는 세레토스장로교회에서 계속 목회를 하겠다고 밝혀 청빙이 무산된 바 있다.

1961년 출생의 이승한 목사는 비교적 젊은 목회자로 현재 PCA 교단에 소속돼 있으며 1.5세와 2세에 대한 깊은 이해도 갖고 있다. 고든 켄웰 신학교(M Div)를 1993년 졸업해 당해 년도에 목사안수를 받았다.

보스턴장로교회 교육목사를 거쳐 보스턴 새언약장로교회 담임목사로 지난 2003년까지 섬겼으며 이후 뉴저지 리버사이드 커뮤니티교회 담임목사로 2009년까지 섬긴 바 있다. 사회경력으로는 1985년-1990년까지 뉴욕 도시 계획국에 근무한 바 있다.

이승한 목사는 지난해 7월 세리토스장로교회에서 열린 ‘1.5 Merits’ 한여름밤 말씀축제에서 말씀을 전한 바 있다. ‘교회:하나님의 충만함’(엡 1:15-23) 이라는 제목으로 전했던 당시 이승한 목사의 설교는 평소 자신의 목회소신을 밝히고 있기에 주요 내용을 게재한다. 다음은 지난 7월6일 전한 설교 주요 내용.

현대교회는 십자가를 의존하는 교회가 되었다. 여러분과 내가 십자가를 의존하기만 한다면 편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성경은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지하고 편하게 쉬고 벽과 같이 기대는 것으로 말씀하지 않는다. 성경에서는 십자가를 지고 가라고 하셨다. 십자가를 지고 가면서 날마다 내 자신을 부인하고 주를 고백하면서 예수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것이 교회의 본질이 아닌가 생각된다.

내가 1.5세이기 때문에 깊은 영성은 없다. 다만 갖고 있는 것은 30년 동안 정체성 때문에 방황을 하다가 요즘 좀 편해졌다는 것이다. 내 친구 이야기를 한다면 나보다 한국에 더 오래 산 사람인데 백인이다. 그 친구가 한국에서 17년 살았는데 한국말이 나보다 조금 서툴다. 그건 백인이라서 그런 것 같다. 그렇지만 파란눈을 가진 그가 한국어로 설교를 하면 더 은혜가 된다.

1975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그 당시 김포공항에는 대합실이 없었다. 활주로까지 걸어 나가서 미국행 비행기에 탑승한 것이 내 기억이다. 나는 미국에 강제로 이민을 당한 사람이다. 1.5세는 대부분 이런 피해의식이 있다.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미국에 오게 된다. 나보고 다시 1.5세 될래? 라고 물으면 싫다고 얘기할 것이다. 영어를 잘하는 2세들이 부럽다. 나는 14세 때 여기 왔기 때문에 독서를 할 때 한국어가 더 편하다. 하지만 한국어도 미숙해 한국어 잘하는 분들을 보면 부럽다. 그렇지만 나는 한국의 친구들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생명을 바친 선교사들보다 한국을 더 사랑하지는 못한 것 같다.

아펜젤러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조선에 사랑 받기 위해서 온 게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서 왔다고. 이런 분들을 다 천국에 가면 만나보고 싶다. 성경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보다도, 아무도 몰라준 조선이란 나라에 복음을 전한 그분들을 만나고 싶다.

‘바보야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야’란 양국주 대표가 쓴 책이 있다. 책의 주인공은 서서평 선교사이다. 그녀는 나와 같은 독일계 1.5세다. 1912년 12세의 나이에 한국 선교사로 간다. 그는 남자용 검정고무신을 신고 나변환자들이 있는 병원을 꾸준히 찾아 사랑을 실천했다. 그는 22년 동안 선교 사역을 한 후 지나친 과로로 소천한다. 22년 동안 안식년을 딱 한번 했을 정도로 한국에서 헌신했다. 안식년을 하면서 그는 회개를 한다. 그분이 일기에 쓰기를 내가 지금까지 조선을 섬긴 것을 회개한다는 것이다. 왜 회개했는지 아는가? 누구를 섬긴다고 할 때 본인은 조선인을 더럽게 봤다는 것이다. 더럽고 무지한 조선인을 섬기는 자였다는 것이다. 본인이 뛰어나서 남을 섬기는 자아도취적인 모습을 회개하고, 다시 조선에 가면 내가 섬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조선인이 되리라고 말씀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민 교회 문제점 중 하나로 정체성을 잃어버린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나의 모습이 대견해서 기쁨을 누리는 모습이 많다는 것이다. 나의 기쁨이 하나님께 있다면 나의 정체성이 흔들릴 수 없는 것인데 너무도 많은 이민 교회가 기능적인 면에서, 또 실용적인 면에서 자만에 빠지고 서로를 추궁하고 죄책에 빠져서 내가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등의 경우를 많이 봤다.

서서평 선교사가 회개한 것이 굉장히 복음적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인간이 되려고 오신 분이다. 단순히 십자가를 의지하고 기대는 것이 아니고,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이 성육신이 되어 우리와 동일하게 되기 위해 어린아이와 같이 태어났다. 평생을 죄 없이 사시다가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다고 성경은 이야기한다.

서서평 선교사가 본 조선은 고난으로 가득 차있다. 인신매매가 넘치고 딸에 대한 인식은 너무 안좋아 여자를 홍등가에 파는 일들이 너무 많았다. 그는 돈을 지불해서 19세 된 여자들을 홍등가로부터 구출시키고 정작 본인은 어머니에게 버림을 받았다. 그녀는 결혼도 하지 않았다. 또 그는 조선간호부협회를 세우고, 일제에 탄압 속에서 힘들어하는 우리 민족에게 출애굽을 가르치고, 희망을 불어넣었다. 내가 천국에 가면 그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이런 분들의 조선 사랑을 감히 따라가기 어렵겠지만 나도 1.5세로서 한국문화와 조선을 사랑한다.

나는 또 미국사람으로서 미국을 사랑한다. 하지만 제가 제일 사랑하는 나라는 교회이다. 교회는 나라이다. 교회는 천국의 실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 중에 뛰어난 걸작품 가운데 걸작품이다. 교회가 아름다운 것은 하나님이 신부로 삼으셨기 때문이다. 교회가 왜 그러냐는 불평이 있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보시는 교회는 아름답다고 하나님은 이야기한다.

교회는 예수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나누는 생명의 공동체이다. 충만은 온전하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충만케 하시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충만하게 해드릴 수 있다.

하나님은 부족함이 없으신 분이다. 완전하시고 전지전능하시다. 인간은 자기 생각이 완전하지 못하다.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이고, 완전한 자의 구현을 예수님을 통해 하셨다. 영광과 존귀의 실체가 예수님이다. 영원 전부터 있었던 하나님이 여러분을 보면서 충만하다고 이야기한다. 완전하신 분이 여러분을 보면서 나의 교회가 있기 때문에 완전하다고 말씀하신다.

여러분과 내가 하나님의 충만함이 되는 것은 우리가 예수 안에 거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택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새로운 피조물이라. 우리는 하나님 사랑의 대상이다. 우리는 사랑을 먹고 사는 대상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면 아무리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다. 마음이 텅 빈 상태에 빠진다. 반면에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고 있으면 밥을 안먹어도 괜찮다. 가난해도 부유하고, 희생해도 기쁘고 만족한 상태에 빠진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은 이렇게 사랑하신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 텅 비게 되신다. 생명의 근원이 목마르다고 하신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기도 속에는 항상 아버지라고 부르셨다. 하지만 십자가에서 아버지라는 기도가 나오지 않는다. ‘하나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하셨다. 왜 그러셨을까. 여러분과 내가 하나님의 사랑이 대상이 되어서, 충만의 대상이 되어서 하나님을 향해 ‘아바아버지’라고 외칠 수 있도록 허락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 위해서 목숨을 버리신 것이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신다. 이 충만은 먼 훗날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의 충만이다. 세상에 귀 기울지 말고 십자가에 귀 기울이시는 여러분이 되길 바란다. 이게 신앙생활의 첫걸음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