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였던 이태영 여사가 변호사가 되기 전, 한때 이불 장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는 원래 이화여전을 졸업하고 평양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였다.
그런데 미국 유학까지 갔다온 남편 정일형 박사가 항일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그만 일본 경찰에 잡혀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 때문에 이태영 여사는 어쩔 수 없이 교사를 그만두고 남편의 옥바라지와 식구들의 생계를 위해서 누비이불 장사를 시작했야만 했다.
밤새 가위질을 해서 이불보를 만들고, 쉴 틈도 없이 그 다음날에는 이불을 이고 집집마다 다니며 팔아야 했다. 전차삯을 아끼려고 이불 보따리를 이고 수십리를 걷는 날이 허다했다고 한다. 이런 남편의 옥살이는 광복이 될 쯤에야 끝이 났다. 그런데 감옥에서 나와 아내의 손을 처음 본 순간 남편은 그만 눈물을 왈칵 쏟을뻔 했다고 한다. 아내의 엄지손가락이 90도 넘게 뒤로 제껴지고 검지와 중지도 크게 휘어져 있었던 것이다.
당시 쇠붙이란 쇠붙이는 일제가 전쟁물자로 다 빼앗아간 탓에, 제대로 된 가위 하나 없었던 열악한 상황에서 무디기만 했던 가위질을 어찌나 많이 했던지 손가락이 휘어져 기형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동안 아내의 고생이 어떠했는지 그 휘어진 손가락으로 짐작하고도 남았던 남편은 아내를 위해 이제는 자신이 그 무거운 짐을 바꿔져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정일형 박사는 아내로 하여금 1946년 33의 나이에 법학 공부를 시작할 수 있도로 격려하며 후원하기를 시작한다. 훗날 남편 정일형 박사는 외국을 나가거나 멀리 여행을 다녀올 때면 아내를 위한 선물을 꼭 하나 사 왔는데, 그것이 바로 가위였다. 잘 드는 가위 하나 가져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아내의 옛 소망을 풀어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사 모은 가위가 200개가 넘었다고 한다.
이태영 여사에게 있어서 가위는 자신의 삶에 다가온 남편의 사랑이었다. 이들 부부에게 있어 가위는 단순한 선물의 의미를 넘어서서 남편과 아내의 인생을 묶어주는 매개체였던 것이다.
200개의 가위는 다른 이에게는 전혀 필요도 없고 가치도 없는 물건일 망정, 그 두 부부에게는 과거의 아픈 기억과 고난을 씻어주는 유일한 위로의 상징이다. 그리고 그 가위는 두 사람의 현재와 미래까지도 붙들어 주는 소망의 물건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디며, 모든 것을 이기게 한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와는 비교도 되지 않은 놀라운 사랑의 이야기가 하나 있다. 바로 때마다 가져다준 200개 가위 정도가 아니, 수천, 수만개를 넘어서 그 끝을 알 수 없는 무한정의 사랑을 쏟아 부은 사랑의 이야기이다. 바로 2천년 전 골고다 위에 세우신 하나님의 십자가의 사랑 이야기이다. 이 사랑 이야기가 더 놀라운 사실은 우리는 이 사랑을 받을 만한 그 어떤 것도 한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 십자가의 사랑을 지금 이 순간에도 매일 같이 매순간 마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 상처와 아픔의 현실 위에 새로운 회복과 소망이 되도록 일방적으로 부어주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이 사랑을 감히 어느 누가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 이해할 수 없는 사랑…. 이 조건없는 사랑 때문에 내가 지금 절망과 탄식, 상처와 아픔의 수렁에서 회복되고 새로운 소망을 얻게 되었다는 이것만이 그 사랑을 보여주고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런 사랑을 받을 만큼 내가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 앞에 그저 감격하고 감사할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