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허다한 꿈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꿈들이 이 세상을 움직이는 동력들이 되었던 것이다. 비록 모든 꿈들이 실현되지 않고 남가일몽이나 일장춘몽으로 끝나기 일쑤이지만 그런 꿈들이 없었다면 역사의 내용은 무미건조한 것이 되었을 것이다. 춘원 이광수도 꿈꾸는 자였다. 그가 몽상가가 아니였다면 춘원(春園)이라는 호(號)를 한국의 문학사의 반열에 올리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의 유년시절은 비참함 그 자체였다. 술주정뱅이 아버지밑에서 겨우 탈출하여 친척집을 전전하며 눈칫밥을 먹던 어린시절의 춘원이 꿈이 없었다면 머슴의 일생을 살았을 것이다. 이같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그의 꿈은 그로하여금 독학으로 한문과 일어를 습득케하고 결국은 일본 유학까지 오르게 한 힘의 원천이 된것이다.
그리고 도산 안창호(安昌浩)는 춘원의 꿈에 불을 지피는 최초의 멘토가 된다. 그가 미국으로부터 귀국하는중 동경에 들러 행한 애국 연설을 춘원이 듣고 크게 감명을 받았던 것이다. 그는 김병로(金炳魯)•전영택(田榮澤)•신석우(申錫雨) 등과 교유하며 그의 꿈을 조금씩 더 키웠다. 그리고 그가 작가로서 한국 현대소설의 시작을 알리는 무정을 세상에 내 놓았을때 세상은 그의 꿈들이 펼쳐지는 것을 목도하였던 것이다. 한국 상해 임시정부의 독립투사에서 일제의 회유에 넘어가 친일분자가 되고 한국동란에서는 납북되어 병사(病死)하기까지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고 가정적으로도 불행의 연속이었으며, 어린 동학도에서 기독교로 그리고 불교로 톨스토이주의로 무수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지만 그는 꿈꾸는 자의 행진을 계속하였던 것이다.
그가 쓴 중편소설 '꿈'은 그런 그의 꿈의 행진의 불길한 대미를 엿보게하는 작품이다. 삼국유사에 실린 땡중 조신의 설화를 소설화 한 '꿈'은 결국은 자신의 꿈이 어떻게 파멸하는 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까닭이다. 조신이 태수의 딸인 월례에 대한 사랑의 욕망을 이기지 못해 승려의 계율을 깨고 야반도주했듯이 춘원 역시 상해임정에서 활동하다가 조선 최초의 여의사로 유명했던 허영숙과 결혼을 위해 조선행을 택하고 친일파가 된 것이다. 조신의 비극은 꿈속에서 절 첫 종이 울펴퍼지고 저산 너머로 아스라히 사라지는 마지막 타종에서 끝나는 에피소드로 끝나지만 춘원의 비극은 현실의 악몽으로 찾아온다. 그가 꿈에서 말하고자 했던 멧세지는 그가 일생 추구했던 꿈이 일장춘몽(一場春夢)에 불과했다고 자조(自嘲)하고 또 자조(自照)한 것이다.
춘원 전에 그와같은 천재의 꿈을 바로 지도해줄 바른 꿈의 인도자가 없었기에 우리는 한국의 존 번연을 낳을 수 없었던 것이다. 역사는 만약을 허락치 않지만 그가 만약 상해에서 미국으로 유학을 왔다면 조신몽이 그의 꿈의 모티브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꿈꾸는 모든 자들에게 바른 꿈의 해석과 길라잡이야 말로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화 하는 가장 귀중한 자원이다.
[정인량 칼럼] 춘원(春園) 이광수의 꿈에 대하여
워싱턴영광장로교회 정인량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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