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37살 나이에 아메리칸 드림과 목표를 성취했다. 1998년 유리 시스템스를 $1.1억에 Lucent(전 AT&T)에 매각했다. 이날이 있기까지 그는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현장에서 경험한 노하우가 결합되고 최소한의 잠을 자면서 일군 텔러컴 인노베이터이기 때문이다. 이날 그의 심연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감개가 무량했으며, 고진감래의 기쁨의 눈물과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유리, 주리 두 딸 그리고 조강지처 부인을 한없는 사랑을 담고 바라보았으리라. 그는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주지 못한 첫째 딸의 이름을 따서 1992년 유리 시스템스를 창업하면서 여러 가지 성공적 꿈들 가운데서도 특히 1억 달러 가치의 회사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거센 파도를 헤치며 나아가는 IT 선장이 되었다. 그의 회사가 만들어낸 스위치(Switches)들은 디지털 정보를 ATM 기술을 이용하여 효과적으로 전도(흐르게)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스위치들은 디지털 과밀 문제를 해결하면서 음성, 데이터, 비디오를 기존 구리 케이블, 위성, 무선 네트워크와 전도케 했다.

그는 처음으로 ATM 스위치들을 1996년 보스니아 전쟁터에서 테스트를 했다. 그는 성공적으로 위성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로 지상군과 송수신했다. 그때 그는 깨달았다. 전화 신호를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으로 바꾸어서 이 기술을 상업용으로 사용한다면……. 그의 직관은 알아 차렸다. 부모의 집을 나와 학교를 다니면서 잔디를 깎고 신문배달을 하면서 꿈을 향하여 자립 생활 속에 큰 세상을 보고 이해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능력을 배우며 밤하늘의 별들에게 말 못할 고민을 털어 놓던 그날 밤의 교신들. 워싱턴 벨트웨이에서 운전하다 졸아서 경찰차를 들이 받고야 깨어났던 일들. 친부 친모로부터 원초적으로 갈구하는 사랑이 있음에도 애증이 존재하는 자신을 보면서 성공은 바로 눈앞에 있음을 확신하며 1억 달러 자산 가치의 회사를 반드시 만들리라 굳세게 다짐과 가족들 앞에서 맹세를 했으리라. 그의 기술자들은 스위치 한 대당 약 $10,000 에 판매할 것을 제안했으나 그는 제안가의 10배 ATM 스위치 한 대당 $100,000에 판매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인터넷의 바람을 타고 탐나는 스위치들은 불티나게 팔려나가 수요를 다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다.

1997년 비즈니스 위크는 그를 커버스토리로 다루면서 새롭게 성장하는 회사들의 실질적 왕이라고 소개했다. 루센트 회사는 심사숙고 끝에 유리 시스템스를 $1억 + 알파에 샀고 김종훈 전 사장을 루센트 광 네트워킹 그룹의 사장으로 초빙했다. 루센트는 2001년 그를 벨연구소 소장으로 초빙했으나 그는 거절했다. 1991년 메릴랜드 주립대로부터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탐나는 소장자리를 거절하고 다시 학문 경험이 필요하다고 여겨 메릴랜드대 엔지니어링 교수직을 선택하고 500백만 불을 기증하여 매우 훌륭한 종훈 김 엔지니어링 빌딩을 만들었다. 인재를 알아보는 루센트는 2005년 다시 그를 벨연구소 소장으로 초빙하였는데 이때 그는 수락하였고 7여 년 동안 혁신 연구를 주도하다 박근혜정부의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으로 내정되자 사직했다. 1998년 메릴랜드에 김종훈 장학금이 설립되어 2007년부터 2013년까지 약 87여명의 학생이 혜택을 보고 있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가 아니고 정승처럼 벌어서 정말로 정승처럼 쓰고 있음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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