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딕식 조각으로 宮城 안 높은 눈높이 위에 펼쳐진 교회당 정문 앞,
시칠리아의 전도사가 끓는 가마솥에 던져져서 순교하였다는 자리 위에
세워진 교회당 탑은 100m높이로 하얀 구름 사이로 치솟아 오르고

바츨라프4세가 왕비의 고해성사 하였다는 비밀을 지켜낸
신부 네포우크의 혀를 잘라, 돌로 묶어서 블타바 강의 카롤교 위에서
던져져, 수장하였다는 비장(秘藏)의 비밀을 묻어 가지고 있는 교회당

장미 스테인 그라스 안으로 비쳐드는 교회당 안의 빛깔 퍼진 엄숙
26,740장의 유리를 겹 싼 대형 유리창은 교회바닥과 굵은 기둥에 얹혀서
연보라 빛 반사로 감싸 안아, 위엄으로 내려앉는다.

광장을 한 구석으로 벗어나
돌 박힌 넓은 길목은 鍊金術로 황금을 다듬어 내던 골목 길
옛 붙어 전해 내려 온, 武器 寶物 商들이 마음 끌리게 하는 商街골목 곁으로

소박한 2층집 몇 채 중에 카프카의 生家 명패(名牌),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자, 自身이 벌레로 變하여 가고 있었다는 그로테스크한 小說集
눈망울 멀뚱한 그의 사진에서 <변신(變身)> <수인(獸人)>의 人猿 一人 無言劇
예전 명동 골목舞臺 앞에 나붙었던 60년도 중반 이무송 무대광고가
눈앞에 아직도 어른거린다.

삶이란 변이(變異)하는 흉내로도 우스꽝스럽게
인간 본능을 통해서
오히려 찾아내지는 순수(純粹)

아무리 소리쳐 시끄러운 목 줄 세워, 그렇게 세월 흘렸다 하여도
어느 날, 조용히 조용히 남겨져 있는 인간 낡아버린 본 모습으로 돌아 와서는
겨울 빛 무겁게 눈 머금은 흐려진 구름
하늘가에 떠나가다가 스러지는 그림자로
지난 날 들, 곱 고비 되씹으며, 회한의 회전목마에 얹혀 있거나, 아니면

또 내일의 환히 부활하는 준비의 몸 가꿈을 꿈꾸고 살아갈 우리 되어서
느닷없이 찾을, 변이(變異)와 경이(驚異)로도
새 아침을 맞게 되는 것은 아닐 가.

 
 


엄숙한 세월타고 흘러 내려 온 교회당마다에도 아픈 사연들이 박혀 있어서 지나쳐 가는 사람들 가슴에 연민을 안겨주는 환희 와 굴곡을 고색 찬연하게 깊숙이 묻고 서 있습니다. 무심코 발길 소리 흘리며 지나쳐 간 숱한 사람들, 그 중에서도 때로는 감취어진 아픈 사연을 거룩하신 신 앞에 풀어놓고 가려고 교회당 문을 지척이며 들어섰던 사람들도 많이 있었겠고, 아무 자극도 없이 곁, 옆 보지도 않고 무심결 지나쳐 갔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었겠지만, 이 프라하의 비투수 교회당엔 가슴 뭉클케 하는 사연이 묻혀 있습니다.

대조되게도 그 곁자리에는 옛 무기상과 금세공조각을 다듬는 손등 꽤나 터진 금 장색 장인들의 시선이 뚫어지게 찍히는 세월의 흐름도 스쳐 머물고 있습니다. 왠지 또 그 곁에는 지혜의 눈을 비틀어 뜨고 있는 초현실주의 작가 카프카의 生家 작은 골목 안이 잔뜩 變身하는 그로테스크한 소설이야기, 出産을 되새기며 고즈넉이 누어있습니다. 참 제각각의 굴곡의 사연을 안고 있으면서, 무언가 無想의 사람들 마음에 무게를 담아 지나가게 하는, 켓션마크의 머리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괴이한 골목이 되겠습니다.

세상은 풀어지지 않는 수수께끼에 덮여있는 세상입니다. 그리고 이를 풀지도 못하면서, 별 사람들은 눈을 부릅뜨고 소리쳐 대기도 하며, 또는 세상에다가 아예 눈을 감는, 그렇게 세월은 가마득히 넘겨져 왔습니다. 하나, 또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자기 위장 위증을 온전히 다 털어버리고 신앙의 안목을 신앙양심으로 부여잡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러면서도 양보할 수 없는 마지막의 겸손을 안고서, 최후의 진리를 목숨 걸어 지켜내려는 신념의 길목을, 또 걷고 있는 사람들도 얼마가 있어서, 세상의 희망은 그래도 살아 있음을 믿게 만드는 세상, 그 한 구석이라도 살아 있음을 깊게 마음 다짐하여 봅니다. 나는 그래서 지금 어느 길목 편에 서야 할 것인가를, 뼈를 깎는 몇 번의 變身을 짐짓 해 내서라도, 분명한 결의로 나 스스로를 가다듬어 놓아야 하는 것 아닐까. 신중하게 마음 다짐하면서 살아갈 각오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