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불구가 된 후 7년간 열심히 글을 썼습니다. 이제 출판을 위하여 여기저기 출판사를 찾아다녀 보지만 번번이 거절당하고 맙니다. 계속되는 거절로 더 이상의 희망을 잃고 낙심되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맥밀런 출판사의 사장이 출장을 간다는 소식을 듣고 기차역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원고 뭉치를 사장에게 전해주며 “제발 한 번만 읽어 주세요.”라고 간청했습니다. 하도 붙들고 간청을 하니 사장이 귀찮아 원고를 받아 들고 기차에 오릅니다. “지금 읽어야 할 원고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런 이름도 없는 작가의 글까지 내가 읽어야 한단 말이야?” 사장은 그냥 원고를 가방에 집어넣고 생각 없이 출장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얼마 있지 않아 기차 안으로 전보가 날아왔습니다. 내용은 “제발 저의 원고를 읽어 주세요.”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저 의미 없이 전보 내용을 찢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도, 또 다음 날도 가는 곳마다 같은 내용의 전보가 전달되는 것이었습니다. 사장은 결국 ‘이 원고를 안 읽어주면 평생 귀찮은 일이 생기겠구나!’ 생각이 들어 그날 저녁에 원고를 읽었습니다. 원고를 읽는 동안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글이 너무 재미있어 손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원고를 읽느라 밤을 꼬박 새웠습니다. 그리고 그 원고를 책으로 내기로 작정합니다. 이 책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설이 되었고, 결국 ‘영화’화되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 작품이 바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이며 그 집념의 작가가 ‘마가렛 미첼’이었습니다.

성경 말씀 누가복음 18장에도 보면 이런 집념의 여인이 등장합니다. 이 여인에게는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억울함이 있었습니다. 이 원한을 풀어줄 사람은 불의한 재판관이었습니다. ‘불의하다’는 단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그 재판장은 사람을 무시하고 심지어는 하나님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불의한 재판장이 마음을 바꾸고, 이 여인의 원한을 풀어 주게 됩니다. 그 이유는 하나입니다. 포기치 아니하고 밤낮으로 재판장을 찾아갔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표면적으로 보면 ‘포기하지 말고, 기도하라’는 내용으로 보입니다. 맞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말씀 내면에 더 깊은 의미가 있음을 생각해 봐야 한다고 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마치실 때 “인자가 올 때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뿐 아니라 이 이야기를 하시기 전 문맥을 보면 종말과 마지막 때에 대한 교훈이셨습니다.

결국, 이 말씀은 마지막 때에 살아가는 성도들의 믿음은 기도를 통해 주님 앞에 보여 진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믿음 있노라’ 하면서 너무 바빠 기도하는 시간을 잃어버렸거나 다양한 이유를 늘어놓으며 기도치 못 한 이유를 말한다 해도 그것은 주님의 인정받을 믿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 성도가 보여줄 믿음은 산을 움직이고,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한 능력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은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포기치 않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오해 합니다. ‘나에게 그렇게 기도할 만큼의 절박한 문제가 없다’고 말입니다. 기도는 단순히 문제 해결을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이것은 ‘내가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증거’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크고 작은 모든 일에 기도가 필요합니다.

만일 지금 내가 기도하지 않았는데 원하는 것들을 누리며 살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것입니다. 기억합시다. 주님은 마지막 때 ‘기도하는 사람’을 찾으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Kisung
Jan 20,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