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이 있었던 지난 주간, 계속해서 감사에 관한 묵상들을 하면서 참 감사가 부족했음을 회개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들을 하나씩 떠올리고 묵상하다가 추수감사절 아침에는 그 동안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새롭게 감사를 결단하는 시간을 갖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특히 제게 주어진 여러가지 만남들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되었는데, 이 모든 만남들이 하나님의 소중한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딸, 가족들, 동역자들, 성도님들, 친지들, 다들 하나님께서 나를 축복하기 위하여 보내주신 귀한 선물들인데, 충분히 감사하지 못했고, 때로는 불평과 원망으로 하나님의 선물들을 스포일 했으니 하나님께서 서운하셨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람은 처음부터 누군가와 더불어 사는 자로 만들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만드시고 그에게 돕는 배필을 주셨습니다. 즉 태초부터 인간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살도록 창조되어졌다는 의미이지요. “돕는 배필”에서 돕다는 의미는 "생명을 구원하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부부의 만남뿐 아니라 모든 만남도 서로를 세워주고 살리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행복한 인간 관계는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노력과 인내를 가지고 만들어져가는 작품과도 같습니다. 바보로 소문난 천덕꾸러기 평민이었던 온달과 일국의 공주였던 평강 공주는 도대체 어울리지 않는 만남이었습니다. 그러나 평강 공주는 인내와 사랑을 가지고 남편의 부족한 점을 도우려고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 바보 온달은 고구려의 훌륭한 장수가 되었다고 합니다. 처음부터 완전한 관계란 없습니다. 인간이 완전하지 않은데 어떻게 완전한 만남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서로의 부족한 점들로 인하여 실망하고 비판하지만, 하나님의 의도는 바로 우리를 힘들게 하고 우리가 비난하는 그 약점 때문에 우리가 그 사람 곁에 보내어졌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모든 만남을 하나님의 선물로 생각하며 주변의 사람들을 살리고 세워주려 한다면, 하나님은 그런 만남들을 향하여 이렇게 축복하실 것입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여호와께서 거기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모든 만남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최선을 다하여 연합을 이룰 때 하나님께서 그 만남가운데 임재하시며 모두를 축복하십니다. 우리가 도움을 주고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실 통로로 그들을 우리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아무 힘이 없는 병자를 우리 곁에 보내신 이유는 우리가 지극히 작은 자를 섬김으로 예수님을 섬기고, 예수님을 잘 섬기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상급을 약속하셨습니다. 때문에 도움을 주는 입장이던, 받는 입장이던,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만남들은 하나님의 소중한 선물과도 같은 것입니다.
영어의 감사는 thank 인데 생각하다는 단어, think와 같은 어원이라고 합니다. 한 치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얼마든지 감사할 이유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부모님이 최근에 많이 변하셨습니다만 많은 세월들을 두 분을 전도하는라 저는 고민도 하고 불평도 하였습니다. 부모님의 기도 덕분에 목회한다는 목사님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얼마나 부러웠는지, 왜 우리 부모님들은 그 같은 믿음이 없는 것일까 늘 불만스러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가 가진 강점들이 과연 어디서 왔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그 분들을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두 분에게 감사할 조건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어느 날 저는 크게 놀라게 되었습니다. 비록 믿음은 저에게 물려주지 않으셨지만, 두 분이 없었다면 오늘날 저의 목회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진심으로 두 분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부모님들은 마음 문을 여시고 자연스럽게 복음을 받아들이며 예수님을 영접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돌이켜 보면 우리 부모님과의 관계에 결정적인 turning point 는 제가 중심으로 그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 이후였다고 기억 합니다. 그런데 그 감사는 자동적으로 제 마음에 주어진 것이 아니라 두 분에 대하여 생각하고 깨달으면서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파스칼은 “사람은 같은 사건에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고 하였습니다. 생각을 바꾸어 내게 주어진 모든 만남들을 하나님의 소중한 선물로 생각하며 감사를 결단하는 이번 감사주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사람은 처음부터 누군가와 더불어 사는 자로 만들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만드시고 그에게 돕는 배필을 주셨습니다. 즉 태초부터 인간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살도록 창조되어졌다는 의미이지요. “돕는 배필”에서 돕다는 의미는 "생명을 구원하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부부의 만남뿐 아니라 모든 만남도 서로를 세워주고 살리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행복한 인간 관계는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노력과 인내를 가지고 만들어져가는 작품과도 같습니다. 바보로 소문난 천덕꾸러기 평민이었던 온달과 일국의 공주였던 평강 공주는 도대체 어울리지 않는 만남이었습니다. 그러나 평강 공주는 인내와 사랑을 가지고 남편의 부족한 점을 도우려고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 바보 온달은 고구려의 훌륭한 장수가 되었다고 합니다. 처음부터 완전한 관계란 없습니다. 인간이 완전하지 않은데 어떻게 완전한 만남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서로의 부족한 점들로 인하여 실망하고 비판하지만, 하나님의 의도는 바로 우리를 힘들게 하고 우리가 비난하는 그 약점 때문에 우리가 그 사람 곁에 보내어졌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모든 만남을 하나님의 선물로 생각하며 주변의 사람들을 살리고 세워주려 한다면, 하나님은 그런 만남들을 향하여 이렇게 축복하실 것입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여호와께서 거기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모든 만남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최선을 다하여 연합을 이룰 때 하나님께서 그 만남가운데 임재하시며 모두를 축복하십니다. 우리가 도움을 주고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실 통로로 그들을 우리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아무 힘이 없는 병자를 우리 곁에 보내신 이유는 우리가 지극히 작은 자를 섬김으로 예수님을 섬기고, 예수님을 잘 섬기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상급을 약속하셨습니다. 때문에 도움을 주는 입장이던, 받는 입장이던,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만남들은 하나님의 소중한 선물과도 같은 것입니다.
영어의 감사는 thank 인데 생각하다는 단어, think와 같은 어원이라고 합니다. 한 치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얼마든지 감사할 이유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부모님이 최근에 많이 변하셨습니다만 많은 세월들을 두 분을 전도하는라 저는 고민도 하고 불평도 하였습니다. 부모님의 기도 덕분에 목회한다는 목사님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얼마나 부러웠는지, 왜 우리 부모님들은 그 같은 믿음이 없는 것일까 늘 불만스러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가 가진 강점들이 과연 어디서 왔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그 분들을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두 분에게 감사할 조건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어느 날 저는 크게 놀라게 되었습니다. 비록 믿음은 저에게 물려주지 않으셨지만, 두 분이 없었다면 오늘날 저의 목회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진심으로 두 분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부모님들은 마음 문을 여시고 자연스럽게 복음을 받아들이며 예수님을 영접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돌이켜 보면 우리 부모님과의 관계에 결정적인 turning point 는 제가 중심으로 그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 이후였다고 기억 합니다. 그런데 그 감사는 자동적으로 제 마음에 주어진 것이 아니라 두 분에 대하여 생각하고 깨달으면서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파스칼은 “사람은 같은 사건에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고 하였습니다. 생각을 바꾸어 내게 주어진 모든 만남들을 하나님의 소중한 선물로 생각하며 감사를 결단하는 이번 감사주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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