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자살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지옥에 가는 걸까,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에 이르는 것일까. 신학자들의 의견은 갈렸다. 같은 개혁주의, 칼빈의 신학을 따른다는 이들마저도.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총회(총회장 이기창 목사)가 5일 오전 서울 대치동 총회회관에서 개최한 총회 설립 100주년 기념 제3회 ‘개혁주의 신학대회’에서 가장 ‘핫’(hot)했던 주제는 다름 아닌 ‘자살’이었다. 이 주제로 논문을 발표한 신원하(고신대 신대원) 교수와 논평한 박혜근 교수(칼빈대)의 입장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신학적 근거 없는 통설” VS “자살 방조 초래할 수도”
‘자살과 구원의 관계에 대한 분석과 성찰’을 주제로 발표한 신원하 교수는 “자살은 기독교 역사를 통해 가장 혐오스러운 죄로 취급됐다”며 “(그런데) 자살한 이들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통설은 어디서 기원했는가. 이것의 성경적 근거는 무엇인가. 한국교회 어느 교단이 이런 교리나 이에 관한 신학적 입장 및 지침서를 만든 적이 있는가. 거의 없다. 그럼에도 이 통설은 오랫동안 교회를 지배해 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살이 구원받지 못할 죄라는 통설은 중세 교회와 로마 가톨릭 교회가 제정한 교회법과 교리에 기원하고 있다”며 “로마 가톨릭은 그 성격과 심각성에 따라 죄를 대죄와 소죄로 구분해 이해했는데, 토마스 아퀴나스는 자살을 대죄로 분류했다”고 분석했다.
신 교수는 “(로마 가톨릭 교리에 따르면) 대죄로 취급된 자살은 마땅히 고해성사를 통한 화목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결국 영원한 죽음에 처할 수밖에 없다”며 “현실적으로 자살한 자는 고해성사를 할 수 없고, 따라서 자살은 구원받지 못하는 죄가 될 수밖에 없다. 오늘날 기독교의 자살에 관한 통설은 이런 로마 교회의 자살 이해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주장에 논평한 박혜근 교수도 어느 정도 동의했다. “통설에 대한 신학적 반성을 하겠다는 시도는 시의적절하고 필요한 노력”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박 교수는 “‘자살한 이들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주장은 잘못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전적으로 옳은 것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가룟 유다와 세계 2차 대전의 전범인 히틀러는 구원받지 못했다고 단언할 수 있다”고 한 박 교수는 “자살한 이들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통설이 무차별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할 때 단순화의 위험이나 논리적 모순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자살한 이들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통설이 잘못이라고 공공연하게 비판하게 되면서 자살을 간접적으로나마 방조할 위험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그것은 신 교수가 통설을 반대하면서 초래한 더 풀기 어려운 과제일 것”이라고도 했다.
“구원의 결정적 변수 아냐” VS “견인교리 오해하지 말아야”
특히 이 둘은 개혁주의 교리 가운데 하나인 ‘성도의 견인’을 자살에 적용하는 것에 있어 서로 상반된 주장을 펼쳤다.
먼저 신 교수는 “‘성도의 견인’ 교리는 참된 신자는 전적으로, 종국적으로 은혜로부터 떨어져 나갈 수 없고, 끝까지 견딘다, 그리고 이는 인간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가르치는 교리”라며 “이 교리로 자살을 들여다 볼 때, 자살이라는 그 행위 자체는 구원에 결정적인 변수가 될 수 없다. ‘성도의 견인’의 핵심은 택자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작정에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인간이 비록 자유의지적으로 자살을 택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이 성도를 견인하는 것에 그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다”며 “왜냐하면 자살이 하나님의 자비와 주권에서 나오는 선택의 작정을 변경할 수 없고, 또 그리스도의 공로와 중보의 효력을 무효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박 교수는 “개혁주의 견인의 교리에 대한 오해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견인에 관한 칼빈주의 정통교리의 핵심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 안에서 성도의 안전을 찾는 동시에 칭의와 점진적 성화의 필요성을 분리하지 않는 것”이라며 “즉 하나님은 구원에 이르도록 선택하신 자들로 하여금 중생 이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그의 구원을 위해 적극적 노력을 펼치도록 이끄신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칼빈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보존된 자들이라면 그들은 반드시 바른 믿음을 끝까지 간직하는 성화의 진보를 나타내야만 한다고 믿는다”면서 “반면 비전통적 칼빈주의자들은 일생 중 한 번의 신앙고백만으로 구원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확정된다고 믿기 때문에 구원을 위한 성화의 절대적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신 교수의 논문 내용만으로 그가 비전통적 칼빈주의자들의 견인 교리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며 “그러나 구원과 관련한 성화의 필요성에 대한 개혁주의자들의 일관된 강조와 비타협적인 태도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꼬집었다.
“자살도 여러 죄들 중 하나” VS “안전한 죄란 없다”
아울러 신 교수는 “선택된 자라 하더라도 극단적으로 약하게 될 때 극단적인 죄를 범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스스로 생명을 끊었다는 것이 그가 선택받지 못했음을 드러내는 증거라고 말할 수 없다”며 “자살도 육체의 약함과 사탄의 유혹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여러 잘못들 중 하나일 뿐이다. 따라서 교회는 자살한 자의 유족들에게 더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통설을 바로 잡고 그것이 근거가 없음을 교육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박 교수는 “자살과 구원하는 믿음이 상호 무관한 것, 혹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어떤 인과관계가 전혀 없는 것으로 믿게 하는 어떤 암시를 주려는 시도는 잘못”이라며 “모든 죄의 보편적인 속성은 하나님께 대한 반역성이며 죄의 값은 사망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안전한 죄란 없는 것이며 죄의 종류는 사실상 문제가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따라서 어떤 죄든 그것의 위험성과 그 잠재적 파괴성을 영벌과 관련해 경고하는 것은 죄의 유혹을 물리치고 신앙을 견고하게 유지하고자 하는 견인 교리의 취지에서나 성화의 차원에서나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총회(총회장 이기창 목사)가 5일 오전 서울 대치동 총회회관에서 개최한 총회 설립 100주년 기념 제3회 ‘개혁주의 신학대회’에서 가장 ‘핫’(hot)했던 주제는 다름 아닌 ‘자살’이었다. 이 주제로 논문을 발표한 신원하(고신대 신대원) 교수와 논평한 박혜근 교수(칼빈대)의 입장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신학적 근거 없는 통설” VS “자살 방조 초래할 수도”
▲신원하 교수 |
그러면서 그는 “자살이 구원받지 못할 죄라는 통설은 중세 교회와 로마 가톨릭 교회가 제정한 교회법과 교리에 기원하고 있다”며 “로마 가톨릭은 그 성격과 심각성에 따라 죄를 대죄와 소죄로 구분해 이해했는데, 토마스 아퀴나스는 자살을 대죄로 분류했다”고 분석했다.
신 교수는 “(로마 가톨릭 교리에 따르면) 대죄로 취급된 자살은 마땅히 고해성사를 통한 화목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결국 영원한 죽음에 처할 수밖에 없다”며 “현실적으로 자살한 자는 고해성사를 할 수 없고, 따라서 자살은 구원받지 못하는 죄가 될 수밖에 없다. 오늘날 기독교의 자살에 관한 통설은 이런 로마 교회의 자살 이해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주장에 논평한 박혜근 교수도 어느 정도 동의했다. “통설에 대한 신학적 반성을 하겠다는 시도는 시의적절하고 필요한 노력”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박 교수는 “‘자살한 이들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주장은 잘못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전적으로 옳은 것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가룟 유다와 세계 2차 대전의 전범인 히틀러는 구원받지 못했다고 단언할 수 있다”고 한 박 교수는 “자살한 이들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통설이 무차별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할 때 단순화의 위험이나 논리적 모순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자살한 이들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통설이 잘못이라고 공공연하게 비판하게 되면서 자살을 간접적으로나마 방조할 위험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그것은 신 교수가 통설을 반대하면서 초래한 더 풀기 어려운 과제일 것”이라고도 했다.
“구원의 결정적 변수 아냐” VS “견인교리 오해하지 말아야”
특히 이 둘은 개혁주의 교리 가운데 하나인 ‘성도의 견인’을 자살에 적용하는 것에 있어 서로 상반된 주장을 펼쳤다.
먼저 신 교수는 “‘성도의 견인’ 교리는 참된 신자는 전적으로, 종국적으로 은혜로부터 떨어져 나갈 수 없고, 끝까지 견딘다, 그리고 이는 인간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가르치는 교리”라며 “이 교리로 자살을 들여다 볼 때, 자살이라는 그 행위 자체는 구원에 결정적인 변수가 될 수 없다. ‘성도의 견인’의 핵심은 택자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작정에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인간이 비록 자유의지적으로 자살을 택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이 성도를 견인하는 것에 그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다”며 “왜냐하면 자살이 하나님의 자비와 주권에서 나오는 선택의 작정을 변경할 수 없고, 또 그리스도의 공로와 중보의 효력을 무효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박 교수는 “개혁주의 견인의 교리에 대한 오해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견인에 관한 칼빈주의 정통교리의 핵심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 안에서 성도의 안전을 찾는 동시에 칭의와 점진적 성화의 필요성을 분리하지 않는 것”이라며 “즉 하나님은 구원에 이르도록 선택하신 자들로 하여금 중생 이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그의 구원을 위해 적극적 노력을 펼치도록 이끄신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칼빈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보존된 자들이라면 그들은 반드시 바른 믿음을 끝까지 간직하는 성화의 진보를 나타내야만 한다고 믿는다”면서 “반면 비전통적 칼빈주의자들은 일생 중 한 번의 신앙고백만으로 구원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확정된다고 믿기 때문에 구원을 위한 성화의 절대적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신 교수의 논문 내용만으로 그가 비전통적 칼빈주의자들의 견인 교리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며 “그러나 구원과 관련한 성화의 필요성에 대한 개혁주의자들의 일관된 강조와 비타협적인 태도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꼬집었다.
▲제3회 개혁주의 신학대회가 서울 대치동 예장 합동총회 회관에서 진행되고 있다. ⓒ김진영 기자 |
“자살도 여러 죄들 중 하나” VS “안전한 죄란 없다”
아울러 신 교수는 “선택된 자라 하더라도 극단적으로 약하게 될 때 극단적인 죄를 범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스스로 생명을 끊었다는 것이 그가 선택받지 못했음을 드러내는 증거라고 말할 수 없다”며 “자살도 육체의 약함과 사탄의 유혹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여러 잘못들 중 하나일 뿐이다. 따라서 교회는 자살한 자의 유족들에게 더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통설을 바로 잡고 그것이 근거가 없음을 교육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박 교수는 “자살과 구원하는 믿음이 상호 무관한 것, 혹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어떤 인과관계가 전혀 없는 것으로 믿게 하는 어떤 암시를 주려는 시도는 잘못”이라며 “모든 죄의 보편적인 속성은 하나님께 대한 반역성이며 죄의 값은 사망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안전한 죄란 없는 것이며 죄의 종류는 사실상 문제가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따라서 어떤 죄든 그것의 위험성과 그 잠재적 파괴성을 영벌과 관련해 경고하는 것은 죄의 유혹을 물리치고 신앙을 견고하게 유지하고자 하는 견인 교리의 취지에서나 성화의 차원에서나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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