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학교]의 과제물 중에 ‘아내가(자녀가) 사랑스러운 20가지 이유’를 써오는 숙제가 있습니다. 쉽게 써오시는 분들도 있지만 많은 분들이 끙끙거리다가 20가지를 채우지 못하기도 하고, 아예 포기하고 오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결혼 전 연애할 때 그 숙제를 하라고 하면 아마도 수백가지 이유를 한숨에 써내려갔을 텐데, 결혼생활 몇년이 흐르는 동안 사랑스런 이유는 다 날라가고 미운 이유, 원망스런 이유, 맘에 안드는 이유를 쓰라고 하면 한달음에 써내려갈 만큼, 우리의 관계는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은혜를 체험하고 관계가 회복되고, 그러면서 20가지 이유를 쓰는 것이 별로 어렵지 않게 되어가기도 합니다. 정말 은혜라고 밖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지요? 그래서 20가지 이유만이 아니라 30가지, 50가지 이유도 쉽게 쓸 수 있을만큼 관계가 회복되고, 가정이 평안해지고 아이들도 웃음이 가득하고……

저는 그 동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은혜 속에 잠기면, 좀더 적나라하게 표현해서 성령으로 충만하면, 아내가 사랑스러운 이유가 점점 늘어나고, 자녀가 사랑스러운 이유가 점점 더 늘어나고, 이웃이 사랑스러운 이유가 늘어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100가지 이유를 가지고 있으면, 20가지 이유만을 생각해낼 수 있는 사람보다는 더 회복된 가정의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니, 20가지 이유가 단지 내 눈에 사랑스러운 이유일 뿐이라면, 그건 여전히 나를 만족시키는 조건일 뿐이더라고요! 즉 그 20가지 이유 외에는 여전히 나를 만족시키지 못 하는 수만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 않겠어요?

20가지라도 사랑스러운 이유를 찾을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20가지 이유를 찾으면서도 우리가 여전히 수만가지 부정적인 이유를 가슴에 간직하고 있다면 우리는 여전히 화약고를 가슴에 품고 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20가지 이유를 써오라고 하는 것은 단지 출발점에 불과합니다. 관계가 회복되고 하나님의 은혜가 들어갈 수 있는 작은 구멍이 뚫린 것에 불과합니다. 그 구멍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질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가 내 속에 가득 충만하게 채워지면 – 그러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20가지 이유가 50개로, 100개로 늘어나는 정도일까요? 불만과 원망을 가슴에 품고도 여전히 20가지 이유를 쓸 수 있지 않을까요?

하나님의 은혜가 내 속을 가득 채우면, 이젠 이유가 있어서 사랑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구약성경 신명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복을 이런 식으로 표현합니다.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신 28:6) – 바로 이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가는 것이 사랑스런운 이유일 수 있고, 어떤 사람은 들어오는 것이 사랑스러운 이유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20가지 이유를 쓰라고 하면 나가는 것이 사랑스럽다고 쓰기도 하고, 들어오는 것이 사랑스럽다고 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은혜가 내 속을 가득 채우면, 그러한 조건을 넘어서는 것, 즉 초월(超越)의 역사가 내 속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가는 것도 사랑스럽고 들어오는 것도 사랑스러운 것입니다. 어느 한 가지 조건이 내 맘에 들어서 사랑스러운 것이 아니고, 그저 저 사람이기 때문에, 저 사람이 나의 아내요 나의 남편이요 나의 자녀요 나의 이웃이기 때문에, 그래서 사랑스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조건과 관계없이 다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느꼈던 – 아이의 몸에서 나는 그 풋풋한 내음도 사랑스럽지만 동시에 내 아이가 지려놓은 오줌냄새도 사랑스러운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스럽기 때문에 저것은 사랑스럽지 않다라고 생각한다면, 20가지가 아니라 수만가지 이유를 찾아 쓸 수 있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내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으로 내 속 사람이 충만해지면, 따라서 우주의 모든 만물이 아릅답게 내 눈에 들어옵니다. 곱게 화장한 아내의 얼굴만이 아니라 찡그린 얼굴도, 땀에 젖은 얼굴도, 때로 내게 화를 내는 그 험한 얼굴도 – 사랑스럽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저 사람이 사랑스러워서, 저 사람이 내가 보기에 사랑스러워 보이는 짓을 했기 때문에 – 그래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 자기만족일 뿐입니다. 사랑은 이런 식으로 바깥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사랑이 가득하면 만물이 사랑스럽습니다. 내 아이의 똥기저귀가 아름답게 보이듯이 사랑하지 못할 것이 없는 “나,” 이건 오직 내 속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져야 누릴 수 있는 축복입니다. 그 축복을 종일 누리시는 복된 삶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