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여기저기에서 사람을 구해 달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우리 교회를 책임지고 목회할 수 있는 사람을 좀 보내주세요” “좋은 현지 목회자를 소개해 주세요”. 금년 들어서도 계속하여 이러한 이야기를 듣는다. “선교사님께서 훈련시킨 제자는 어디서 일하고 있습니까?”.
오늘날 선교의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러시아의 경우 20여년의 세월이 흘러 이제 지치고 피곤하다. 많은 경우 지금까지 선교사 중심의 사역을 감당하며, 강단을 지키며, 현지인 대상으로 목회를 해왔기 때문이다. 그것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역의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분명하게 지적하고 싶다.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선교사는 목회자가 아니다. 선교 초기에는 선교와 목회를 동시에 진행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인 사역이다. 오늘의 문제는 일시적인 사역이 아무런 생각 없이 주 사역이 되어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몇 가지 생각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그것은 한국교회가 그렇게 만들었다. 선교사는 반드시 교회를 개척하여야 한다. 그것도 제1교회 제2교회, 선교센터, 신학교 등 이런 식으로 사역을 평가하고, 교인 숫자를 세면서 그것을 선교의 성공요인으로 계산하였던 것인데, 그것이 오늘의 결과를 가지고 왔다는 것을 한국교회는 알아야 하고 정신을 좀 차려야 할 것이다.
사역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공부하여야 하고, 전략과 전술적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고민하여야 한다. 변화와 개혁과 배움을 시도하지 않는 구시대 지도자들이 오늘의 급변하는 스마트 시대를 인식하지 못하였거나, 고집과 전통과 수구주의로 똘똘 뭉친 결과일 것이다.
숫자의 노예가 되어서 선교를 망치지 말고 하나님의 일을 그릇되게 하지 말라. 외적인 성과에 치중하여 선교를 평가하지 말라. 그렇게 하다 보니 파송교회 눈치 보다가 오늘의 사역자 한 사람 제대로 키우지 못하고 훈련시키기 못한 것이 아닌가?
그래서 지금까지 한국교회에서 돈 가져다가 교회 지어 놓고 센터 지어 놓았는데, 이제는 운영할 사람이 없어서 쩔쩔 매고 잘못 맡겼다가 건물 빼앗길까 두려워하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지금이라도 이러한 어리석은 결과를 회개하고 반복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둘째, 무식한 열정이 그렇게 만들었다. 사역은 열정을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다. 한때는 열정이 없음을 탓하고 열정이 없음을 죄인 취급하던 때가 있었다. 격하게 뜨겁지도 쉽게 흥분하지도 않았던 필자는 늘 열정을 외치는 사람들 앞에 죄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열정이 지식을 겸하지 못하면 그것은 악을 행하는 결과를 가지고 온다.
오늘날 열정이 없어서 문제가 된 적이 있었던가? 차라리 더디게 진행되는 것이 낫다. 모든 것이 지나치게 무식한 열정, 편협한 열정, 자기 의를 세우기 위한 열정이 문제가 아니었던가? 필자는 젊은이들에게 허황된 열정을 버리라고 충고한다. 그리고 지성과 영성을 겸한 열정을 가지라고 모두에게 권면한다.
열정은 얼굴을 붉히며 힘주어 고함치는 것이 아니고 정신 없이 떠들며 말을 빠르게 하는 것도 아니다. 깊이 묵상하는 것이고, 시대와 역사를 분변하며 행할 일을 찾는 것이 열정이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무르익으면 열정이 생기게 된다. 영성이 풍성하면 없는 열정도 발전하게 된다. 개념정리도 안된 무식한 열정을 외치지 말라. 그것이 오늘의 현실과 결과인 것을 기억하라.
셋째, 비전훈련이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비전(about)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한다. “비전을 가지라” “비전을 세워라” “비전이 없으면 안 된다” 이러한 이야기는 수없이 들어왔다. 집회 때마다 들어오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진정 비전(For)을 논하고 무엇인가를 제시하고 고민하는 일들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대부분 뜬 구름 잡는 이야기만 하고 동기는 부여해 주었는데, 실제적이 되지를 못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선교의 비전이 무엇인가? 사역적인 면에서 대부분 교회나 센터 개척이 비전이라고 한다. 대부분 돈 있으면 하는 그러한 것을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비전을 천박한 비전이라고 한다.
돈 떨어지면 모든 것이 사라질 비전들이고, 앞으로 재산권 문제로 다툼이 일어날 비전들이다. 성경을 제시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이지만, 주님께서 언제 돈 가지고 사역을 진행하셨는가? 12제자를 훈련하실 때에나 70인 일꾼을 훈련하여 파송하실 때에 언제 돈 가지고 행하는 비전을 제시하였던가?
오늘의 한국 선교사역은 물질 선교를 행하고 있다. 그 결과 오늘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사역지를 떠나지 못하고, 휴가 한 번 제대로 갈 수 없다. 교회를 비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역이 계속하여 진행된다면 그것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한국교회나 선교회가 바른 비전도 세우지 못하면서 선교사 5천 명이니, 10만 명이니 허황되고 허탄한 헛소리를 하고 있으니,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오늘날 교회 성장율은 하락하고 있고, 개척도 어려워 문을 닫는 곳에 수두룩하다. 목회자는 1년에 몇천 명씩 공식 배출하고 있고, 놀고 있는 목사가 본 교단 소속만 천명이 넘는다 하고, 선교사가 한국교회를 방문하면 또 왔느냐면서 이제는 겁을 내어(?) 초청도 안 하는 실정이 되고 있는데, 선교사는 자꾸 파송하고 있어 2011년에는 파송 숫자가 상향곡선을 긋고 있다 하니,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하고 “할렐루야”를 외치고 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이성이 없는 하나님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잘못 믿고 있는가? 기본이 안 되어 있는 것인가? 이제는 한국 개신교 역사가 120년을 넘었으면 성숙할 때도 되었는데, 한참 멀었나 보다. 오호라, 사람이 변하든지 바뀌든지 하지 않으면 아무리 역사가 흘러도 똑같은 일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현장 지도자와 한국교회에 고하노라
선교의 꽃은 교회이다. 선교의 진행도, 결론도 교회이다. 교회를 통하여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고 교회를 통하여 일꾼이 양육된다. 교회를 통하여 공동체를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선교의 꽃은 교회이다.
그러나 선교사역의 핵심과 본질은 교회 개척이나 건물이 아니다. 사람이다. 복음의 사명, 시대에 주신 사명,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는 그러한 사람을 키우는 일이다. 이것이 선교사역 중, 가장 우선적으로 할 핵심 사역이다. 은사가 다르고 상황이 다르다고 이야기하지 말라. 모든 분야에서 핵심 사역이다. 이것은 현장에서 생겨난 실천 경험이다.
지도자를 양성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 그래서 모든 정열과 재정과 노력을 이 일에 하나님이 인정할 만한, 아니 일반적으로 사역자들이 인정할 만한 사람에 투자하여야 한다. 이것은 사역의 기본이고 사역의 중심이고 사역의 결론이다. 사람이 교회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역이 되었든지간에 그 사역에 전념하고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을 키워야 한다. 이것이 주님의 사역이었고, 성경이 가르치는 사역이다. 여기까지는 모두가 잘 안다. 그런데 원안에는 동의하지만 구체적인 사역을 내어놓지 못하고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하면서 뜬구름 사역에 치중하는 일들이 허다하다.
어떤 사람이 보고하는 것을 듣고 있노라면 엄청난 사역이고 혼자서 다 하는 것처럼 들린다. 너무나 대단하게 여겨지면서 나는 뭔가 싶어 움츠러든다……. 이런 식으로 한국의 순진한 교회와 성도들에게 그렇게 보고하면 어떨 것인가? 엄청난 역사를 이루는 것처럼 보일 것이고 대단한 칭찬을 보낼 것이다. 그러나 실제 현장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람을 소개해 줄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경험해 보지 않은 사역자와 얼마나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겠는가? 맘에 맞지 않으면 내쫓는 것은 쉬울 수도 있지만, 깨어진 관계나 선교사의 이미지는 어떻게 하고 교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선교사는 나그네이다. 현장에서 뼈를 묻는다는 이야기를 자신 있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나그네임을 항상 인식하여야 한다. 모두가 나름대로 철학과 방법을 가지고 사역할 것이다. 필자의 소원은 한국교회와 한국인 선교사들이 이 기본 원칙에 더 충실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기본이 바른 선교를 소망하며…….
Sergei(모스크바 선교사)
Lee7095@gmail.com
오늘날 선교의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러시아의 경우 20여년의 세월이 흘러 이제 지치고 피곤하다. 많은 경우 지금까지 선교사 중심의 사역을 감당하며, 강단을 지키며, 현지인 대상으로 목회를 해왔기 때문이다. 그것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역의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분명하게 지적하고 싶다.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선교사는 목회자가 아니다. 선교 초기에는 선교와 목회를 동시에 진행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인 사역이다. 오늘의 문제는 일시적인 사역이 아무런 생각 없이 주 사역이 되어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몇 가지 생각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그것은 한국교회가 그렇게 만들었다. 선교사는 반드시 교회를 개척하여야 한다. 그것도 제1교회 제2교회, 선교센터, 신학교 등 이런 식으로 사역을 평가하고, 교인 숫자를 세면서 그것을 선교의 성공요인으로 계산하였던 것인데, 그것이 오늘의 결과를 가지고 왔다는 것을 한국교회는 알아야 하고 정신을 좀 차려야 할 것이다.
사역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공부하여야 하고, 전략과 전술적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고민하여야 한다. 변화와 개혁과 배움을 시도하지 않는 구시대 지도자들이 오늘의 급변하는 스마트 시대를 인식하지 못하였거나, 고집과 전통과 수구주의로 똘똘 뭉친 결과일 것이다.
숫자의 노예가 되어서 선교를 망치지 말고 하나님의 일을 그릇되게 하지 말라. 외적인 성과에 치중하여 선교를 평가하지 말라. 그렇게 하다 보니 파송교회 눈치 보다가 오늘의 사역자 한 사람 제대로 키우지 못하고 훈련시키기 못한 것이 아닌가?
그래서 지금까지 한국교회에서 돈 가져다가 교회 지어 놓고 센터 지어 놓았는데, 이제는 운영할 사람이 없어서 쩔쩔 매고 잘못 맡겼다가 건물 빼앗길까 두려워하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지금이라도 이러한 어리석은 결과를 회개하고 반복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둘째, 무식한 열정이 그렇게 만들었다. 사역은 열정을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다. 한때는 열정이 없음을 탓하고 열정이 없음을 죄인 취급하던 때가 있었다. 격하게 뜨겁지도 쉽게 흥분하지도 않았던 필자는 늘 열정을 외치는 사람들 앞에 죄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열정이 지식을 겸하지 못하면 그것은 악을 행하는 결과를 가지고 온다.
오늘날 열정이 없어서 문제가 된 적이 있었던가? 차라리 더디게 진행되는 것이 낫다. 모든 것이 지나치게 무식한 열정, 편협한 열정, 자기 의를 세우기 위한 열정이 문제가 아니었던가? 필자는 젊은이들에게 허황된 열정을 버리라고 충고한다. 그리고 지성과 영성을 겸한 열정을 가지라고 모두에게 권면한다.
열정은 얼굴을 붉히며 힘주어 고함치는 것이 아니고 정신 없이 떠들며 말을 빠르게 하는 것도 아니다. 깊이 묵상하는 것이고, 시대와 역사를 분변하며 행할 일을 찾는 것이 열정이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무르익으면 열정이 생기게 된다. 영성이 풍성하면 없는 열정도 발전하게 된다. 개념정리도 안된 무식한 열정을 외치지 말라. 그것이 오늘의 현실과 결과인 것을 기억하라.
셋째, 비전훈련이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비전(about)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한다. “비전을 가지라” “비전을 세워라” “비전이 없으면 안 된다” 이러한 이야기는 수없이 들어왔다. 집회 때마다 들어오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진정 비전(For)을 논하고 무엇인가를 제시하고 고민하는 일들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대부분 뜬 구름 잡는 이야기만 하고 동기는 부여해 주었는데, 실제적이 되지를 못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선교의 비전이 무엇인가? 사역적인 면에서 대부분 교회나 센터 개척이 비전이라고 한다. 대부분 돈 있으면 하는 그러한 것을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비전을 천박한 비전이라고 한다.
돈 떨어지면 모든 것이 사라질 비전들이고, 앞으로 재산권 문제로 다툼이 일어날 비전들이다. 성경을 제시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이지만, 주님께서 언제 돈 가지고 사역을 진행하셨는가? 12제자를 훈련하실 때에나 70인 일꾼을 훈련하여 파송하실 때에 언제 돈 가지고 행하는 비전을 제시하였던가?
오늘의 한국 선교사역은 물질 선교를 행하고 있다. 그 결과 오늘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사역지를 떠나지 못하고, 휴가 한 번 제대로 갈 수 없다. 교회를 비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역이 계속하여 진행된다면 그것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한국교회나 선교회가 바른 비전도 세우지 못하면서 선교사 5천 명이니, 10만 명이니 허황되고 허탄한 헛소리를 하고 있으니,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오늘날 교회 성장율은 하락하고 있고, 개척도 어려워 문을 닫는 곳에 수두룩하다. 목회자는 1년에 몇천 명씩 공식 배출하고 있고, 놀고 있는 목사가 본 교단 소속만 천명이 넘는다 하고, 선교사가 한국교회를 방문하면 또 왔느냐면서 이제는 겁을 내어(?) 초청도 안 하는 실정이 되고 있는데, 선교사는 자꾸 파송하고 있어 2011년에는 파송 숫자가 상향곡선을 긋고 있다 하니,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하고 “할렐루야”를 외치고 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이성이 없는 하나님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잘못 믿고 있는가? 기본이 안 되어 있는 것인가? 이제는 한국 개신교 역사가 120년을 넘었으면 성숙할 때도 되었는데, 한참 멀었나 보다. 오호라, 사람이 변하든지 바뀌든지 하지 않으면 아무리 역사가 흘러도 똑같은 일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현장 지도자와 한국교회에 고하노라
선교의 꽃은 교회이다. 선교의 진행도, 결론도 교회이다. 교회를 통하여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고 교회를 통하여 일꾼이 양육된다. 교회를 통하여 공동체를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선교의 꽃은 교회이다.
그러나 선교사역의 핵심과 본질은 교회 개척이나 건물이 아니다. 사람이다. 복음의 사명, 시대에 주신 사명,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는 그러한 사람을 키우는 일이다. 이것이 선교사역 중, 가장 우선적으로 할 핵심 사역이다. 은사가 다르고 상황이 다르다고 이야기하지 말라. 모든 분야에서 핵심 사역이다. 이것은 현장에서 생겨난 실천 경험이다.
지도자를 양성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 그래서 모든 정열과 재정과 노력을 이 일에 하나님이 인정할 만한, 아니 일반적으로 사역자들이 인정할 만한 사람에 투자하여야 한다. 이것은 사역의 기본이고 사역의 중심이고 사역의 결론이다. 사람이 교회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역이 되었든지간에 그 사역에 전념하고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을 키워야 한다. 이것이 주님의 사역이었고, 성경이 가르치는 사역이다. 여기까지는 모두가 잘 안다. 그런데 원안에는 동의하지만 구체적인 사역을 내어놓지 못하고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하면서 뜬구름 사역에 치중하는 일들이 허다하다.
어떤 사람이 보고하는 것을 듣고 있노라면 엄청난 사역이고 혼자서 다 하는 것처럼 들린다. 너무나 대단하게 여겨지면서 나는 뭔가 싶어 움츠러든다……. 이런 식으로 한국의 순진한 교회와 성도들에게 그렇게 보고하면 어떨 것인가? 엄청난 역사를 이루는 것처럼 보일 것이고 대단한 칭찬을 보낼 것이다. 그러나 실제 현장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람을 소개해 줄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경험해 보지 않은 사역자와 얼마나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겠는가? 맘에 맞지 않으면 내쫓는 것은 쉬울 수도 있지만, 깨어진 관계나 선교사의 이미지는 어떻게 하고 교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선교사는 나그네이다. 현장에서 뼈를 묻는다는 이야기를 자신 있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나그네임을 항상 인식하여야 한다. 모두가 나름대로 철학과 방법을 가지고 사역할 것이다. 필자의 소원은 한국교회와 한국인 선교사들이 이 기본 원칙에 더 충실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기본이 바른 선교를 소망하며…….
Sergei(모스크바 선교사)
Lee709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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