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목회자가 개척해 20년 이상 시무하며 대형교회로 성장한 후, 그의 후임으로 오는 목회자들의 하나같은 고백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전임 목회자의 발자취를 따라가지 못할까 걱정해야 하고, 오랫동안 그 목회자와 동역해 온 평신도들과 마찰이 생길까 걱정이고, 혹여 그 전임자와 갈등을 빚을까도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이 교회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전임자가 세상을 뜬지, 6년이 다 되어 가지만 후임자의 집무실에는 여전히 전임자의 사진이 걸려 있다. 후임자는 “아버지같은 분이셨고 지금도 그분으로부터 받았던 사랑이 기억난다”며 눈시울을 적신다.
충현선교교회다. 1985년 정상우 목사가 이 교회를 개척해 1천명 이상의 성도가 출석하는 대형교회로 성장시켰다. 그리고 2002년 신학교 교수였던 민종기 목사가 후임으로 청빙받게 됐고 정 목사와 민 목사는 원로목사와 담임목사로 4년간 동역할 수 있었다. 첫 담임목회였지만 정 목사의 든든한 후원 아래 민 목사는 충현선교교회를 2천여명 규모의 교회로 성장시키고 새 성전을 건축하며 동시에 지역사회와 세계선교에 크게 기여하는 교회로 자리잡게 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민 목사가 남가주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직을 수행하며 교회 연합을 위해 섬기기도 했다. 지난 1년간 교회 연합 활동을 하며, SB48 법안 반대 운동, 로즈볼 기도회 등을 추진하는 등 괄목할만한 성과를 낸 그로부터 연합 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본다. 동시에 그의 멘토이자 스승이었던 정상우 목사의 이야기도 함께 들어 본다.
민 목사는 한양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같은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으로 유학 와 충현선교교회에 출석하며 USC(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서 박사 과정을 밟던 중, 목회에 소명을 받고 풀러신학교로 진학해 M.A. 학위를 마쳤다. 이어 미주총신대학교에서 M.Div. 학위를 받으며 충현선교교회 부목사로도 시무했다. 풀러신학교에서 기독교윤리학으로 Ph.D. 학위를 받고 한국으로 귀국했으며 웨스트민스터신학교 교수로 사역하다 다시 충현선교교회의 담임목사로 부름을 받았다. 평신도에서 전도사, 부목사, 담임목사를 모두 한 교회에서 한 셈이다.
-지난 회기 교협 회장으로 섬기시며 어떤 일이 가장 기억에 남으십니까?
역시 SB48 법안 반대 운동입니다. 동성애 문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의 영성과 관련된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것이 그렇게 큰 문제냐”고 되묻기도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도덕적 이슈가 아니며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창조 질서가 훼손되는 중대한 문제입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로 구성되는 가정의 기저가 무너진다는 것은 곧 문명의 기저가 흔들리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참 좋은 열매를 거둘 수 있었는데 50만5천표 가운데 7천표가 모자라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그 원인이 교계의 목소리가 흩어졌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미국교회의 입장이 워낙 다양했을 뿐 아니라 장로교 내부에서도 동성애를 받아들이는 교단과 그렇지 않은 교단이 나뉘어졌습니다.
저는 이제 앞으로 이것보다 더 심각한 도덕적 이슈들이 사회 가운데 등장할텐데, 기독교가 과연 승리를 장담할 수 있을까 우려가 됩니다. 그러나 한인들의 경우는 이번에 서명한 숫자가 선거인 등록자의 숫자보다 많을 정도로 참여가 뜨거웠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고무적입니다.
또 지난 회기 교협은 한인 커뮤니티는 물론 주류사회에서 발생하는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해서 그때그때 성명을 발표하며 교회의 입장을 대변했습니다. “두루 사랑”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커뮤니티와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연평도 문제에서부터 일본 쓰나미 구호 등 다양한 대사회적 활동을 했습니다. CBMC와 공조하며 일터 복음화 문제에도 협력했고 작은 교회 목회자 자녀들을 위한 장학금도 전달했습니다. 교협 자체적으로는 남가주 교협 40년사를 펴낸 것이 뜻깊은 일이었습니다.
로즈볼 기도회도 중요한 행사였습니다. 한인 커뮤니티를 대표하는 목회자들이 다 참여했고 1만명 이상의 성도들이 동원돼 뜨겁게 기도했습니다. 주류사회와 한인이 하나되어서 이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동참했던 기도회였습니다. 저는 한인교회의 순수성과 복음에 대한 열정이 미주교계에 더욱 알려지게 되길 바랍니다.
-방금 말씀하신 SB48 반대운동이나 로즈볼 기도회 등은 주류사회와 연합된 활동으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런 일들을 통해 미국 교계에 우리의 열정이 전달됐다고 생각합니다. SB48 반대 운동의 경우는 우리가 좀 늦게 참여한 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준비도 부족했고 여러 면에서 어려움이 있었지만 최선을 다해 참여했습니다. 좀더 전략을 짰더라면 더 잘 할 수 있었을텐데 아쉽습니다. 로즈볼 기도회는 미국 교계가 기도회를 다 준비해 놓고 우리 한인들을 초청했고 특히 중요한 시간대를 한인들에게 허락해 주었습니다. 우리 교협에서는 이들의 초청에 대해 회의하며 우리가 적극적으로 참여해야겠다는 결정을 하게 됐습니다. 미국 교계에서도 한인교회의 참여를 매우 반가워했습니다.
-미국 주류사회가 왜 특별히 한인교회들을 주목했다고 생각하십니까?
필리핀 교회, 일본인 교회 등 다양한 동양인 교회가 있지만 특별히 한인교회는 동원력이 뛰어나다는 점을 그들이 알고 있었습니다. 어떤 운동을 할 때에는 충전된 잠재력이 필요한데 그 점에서 한인교회가 높이 평가 받았습니다.
특히 동성애 반대 운동에 대해서는 남가주 교협이 분명한 입장을 갖고 있었고 미주한인기독교총연합회의 지도부가 다 모인 자리에서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하게 됐을 때, 전 미주의 교협회장들이 모두 반대에 뜻을 모아 주셨습니다. “전국 한인교계를 대표하는 지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동성애 반대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회피다”라는 동의 아래 우리는 성명서를 만들어 수십명의 지도자들이 서명한 후 캘리포니아 주지사에게 전달했습니다. 결국 SB48 반대 운동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우리의 일치된 견해를 미국 주류사회에 전달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미국교계에서 볼 때 이제는 더 이상 한인들을 무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신학교에 가면 학생의 25%가 한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국교회가 가진 맨파워에 복음에 대한 열정, 기도하는 영성은 미국교회가 주목하는 바입니다. 미국교회는 오히려 감소하고 있는데 한인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 곧 백인교회에도 동양인 목회자들이 세워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교협이 여러가지 사업을 추진하는데 산하 교회들의 참여는 어떠했나요
지금까지의 경향으로 보면, 참여하는 교회는 계속 참여하고 그렇지 않은 교회는 여전히 참여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 문제에 교협의 책임과 개교회의 책임이 동시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협은 그동안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공신력을 착실히 쌓아 왔습니다. 그러나 밖에서 볼 때는 아직도 비판받을만한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런 점이 여러 교회의 참여를 더디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점을 개선하는 것은 교협의 책임입니다.
그런데 개교회의 책임도 있습니다. 교회들이 너무 개교회주의에 빠져서 성장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물론 개신교회의 특징 중 하나가 개교회성이지만 이런 성격이 공동의 연합운동을 할 때는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회장직을 수행하며 감동한 것은 개교회에만 머물지 않고 열린 시각을 갖고 교협을 도와주는 훌륭한 선배들이 많았다는 점입니다. 그들이 저보다 앞서서 이 길을 걸어 가셨고 저를 잘 이끌어 주시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그분들이 물심양면으로 도와 주신 덕에 회장직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임원들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큰 힘을 모아 주셨습니다.
-교협에 개교회의 참여가 저조한 것은 과거부터 제기되었던 고질적 문제인데요. 해법은 없나요?
제가 변영익 회장님에게 과제로 넘겨드리게 된 것은 교협이 명실상부한 연합체가 되기 위해서 교회들의 참여를 늘리는 방안입니다. 몇몇 교회가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교회가 참여할 수 있도록 활동의 폭을 넓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남가주 각 지역 교협의 회장들이 당연직으로 남가주교협의 부회장으로 들어가게 했습니다. 남가주교협이 각 지역 교협들의 우산과 같은 역할도 감당하고자 합니다.
또 후원교회라는 시스템을 만들어 적게는 몇백불에서 많게는 몇천불까지 교협의 사역을 후원해 줄 수 있는 교회들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연합사역에 열려 있는 많은 목회자들과 교회들이 교협의 후원자가 된다면 참여율은 자연 상승하게 될 것입니다.
참여가 저조한 구조적 원인은 교회에 교회 연합 사업에 대한 헌신이 이뤄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들이 신학적 입장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연합 사업이 잘 안되면 그로 인해 교회 전체가 받는 피해는 상상 이상입니다. 교계가 갈라진다든지, 제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되면 개교회가 잘 된다고 해서 그것이 오래 갈 수 없습니다. 교계라는 것은 교회 전체의 이미지를 주도하는 일입니다. 한 교회가 열심히 했느냐 아니냐의 문제를 넘어 있습니다. 저는 교회가 사역의 2%는 교계 전체에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공동체도 건실해 지고 개교회도 그 안에서 건실해질 수 있습니다.
“교회 연합 활동에 참여할까 말까”라는 그 질문 자체가 잘못되어 있습니다. 참여는 필수라는 전제 아래 “내가 어떻게 참여할까”가 질문이 되어야 합니다. 직접적으로 참여할 것인지, 금전적으로 도울 것인지 등 다양한 방법이 존재하겠지요. 다행스럽게도 이민교회는 커뮤니티 센터 역할을 하며 아직 이민자들에게 의지할 수 있는 언덕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3년 후, 5년 후도 그럴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한국교회처럼 전체 국민들에게 질타받는 교회가 안되리란 보장이 없습니다. 저는 그것이 분명 금방 오리라 생각하고 있으며 이것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기도와 참여, 결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남가주 지역 1350개 교회를 대표하는 교협이 중추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교회들이 관심을 기울여 주면 좋겠습니다.
-교협에의 참여가 높지 않은 이유는 교협의 담이 높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런 지적도 굉장히 설득력 있는 지적입니다. 실제로 교협의 활동이 그런 차원에서 진행된 면도 없지 않습니다. 제가 교협에서 5-6년 활동하는 동안, 회장이 되건 부회장이 되건 돈이 상당히 든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실제로 어느 정도 교회 규모가 안되면 교협에서 활동하기 힘들다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는 그래서 회원교회 제도가 도입되면 회장, 부회장 등의 분담금이 낮아지고 작은 교회를 섬길지라도 헌신적 마음을 가진 분이 회장 역할을 할 수 있고 교협의 높은 담도 낮아지리라 봅니다.
뉴욕교협의 경우는 우리보다 규모는 작을지 모르지만, 오랫동안 공신력을 착실히 쌓았으며 지역의 대표적인 교회들이 모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들이 교협에 반드시 가입하고자 하고 또 회비도 정확히 납부합니다. 남가주교협도 이런 시스템을 만들고 후원교회의 목회자라면 누구라도 리더십에 진출해 뜻을 펼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저는 지금이 과도기라고 봅니다.
-교협이 젊은 세대를 리더십에 잘 못 담아내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저는 그 지적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사실 최근 몇년동안 젊은 분들이 상당히 많이 교협 내에서 활동의 폭을 넓혔습니다. 신승훈, 박종대, 한종수, 지용덕 목사님 등이 50대의 젊은 분들이었고 저도 50대 중반입니다. 이번에 변영익 목사님은 70대이시지만 차기 회장이 되실 진유철 목사님은 또 50대입니다. 저는 지금 중진과 소장이 왔다 갔다 하면서 중진급의 경륜과 소장급의 패기가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교협회장을 할 때도 원로급 지도자들께서 많이 격려해 주시고 돌보아 주신 것이 기억이 납니다.
만약 그 젊은 세대가 2세들을 가리킨다면 그것은 교협에 있어서 아직 역부족인 부분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2세들을 영입하기 위해서는 활력성이 중요한데 현장 목회를 돕기 위한 세미나나, 중요한 신학적 주제에 대한 공동 대응을 통해서 1세와 2세가 만날 수 있는 장이 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인 이민교회의 장래를 내다 보며, 두 세대가 좀더 유기적으로 활동할 필요는 있습니다. 특히 올해 말이면 이민신학연구소가 추진한 설문조사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그런 자료를 1세와 1.5세, 2세가 함께 나누며 연구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교협 회장을 하시는데 교회 성도들이 좋아하던가요?
두가지였습니다. “왜 그런 단체에 나가서 활동해 시간을 버리느냐”는 분도 있고 “교회로서 명예로운 일이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볼 때는 우리 교회가 그동안 지역교회에만 묶여 있다가 대외적 활동을 통해서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타 교회도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서 좋았습니다. 기본적으로 우리 교회에는 전임 목사님 때부터 목회자를 존중하고 우대하는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에 제가 교협회장 활동을 할 때에도 평신도 리더들이 잘 인내해 주시고 도움을 많이 주셨습니다. 사실 교역자에 대한 존경심이나 신뢰가 사라지면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제가 교협회장을 함에 있어서 시간적으로나 금전적으로나 많은 면에서 성도들이 잘 견뎌 주었습니다.
-교협 활동을 하는 것이 개교회 목회에 도움이 되기도 하던가요?
분명히 도움이 됐습니다. 첫째는 교계에 포진된 인적 자원을 알게 된 점입니다. 교협 활동을 하면서 그동안 교계를 위해 일해 오시던 분들, 선두에 서서 뛰시던 분들을 알게 됐습니다. 그분들과 소통하며 제 목회도 시야가 넓어졌습니다. 전체 교회를 생각하면서 충현선교교회에서 목회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책임감입니다. 개교회의 목회자이면서 동시에 미주 기독교계의 한 모퉁이를 섬기는 목회자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만약 목회자가 시대 사조와 커뮤니티의 방향성을 도외시할 경우, 이것은 교인들을 수용소에 묶어두는 목회입니다. 성도들도 넓은 시각을 갖고 공동체를 바라볼 수 있는 영적 지도력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교협 활동은 제 목회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양심의 가책에 의해 교협 활동을 했습니다. “기독교윤리학으로 Ph.D. 학위를 받았는데 사회 참여도 안하고 내 교회만 꾸리고 있으면 되나”라는 질문이 계속 들었습니다. 그래서 회비라도 내고 이름이라도 걸어 놓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선배들께서 중직을 맡겨 주셨습니다. 힘들기도 했지만 즐거운 경험, 보람된 경험이었습니다.
-전임 목회자인 故 정상우 목사님에 대해서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부임한지 9년이 됐습니다. 훌륭한 전임자 뒤를 이어 목회하게 된 저는 때론 열등감에 시달리고 괴로웠습니다. 정 목사님의 설교는 감동을 주고 결단하게 하는 것인데 저의 설교는 학자적 논문 스타일이었습니다. 수십년간 정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배운 성도들은 아마 굉장히 힘들었을 것입니다. 저는 지난 9년간 설교하며 처음에는 8장을 설교 원고로 준비했는데 이제는 4장 반으로 줄었습니다. 내용의 전달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강의와 설교의 차이가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이죠. 저는 지금도 제 자신이 “완성된 목사가 아니라 만들어지고 있는 목사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 목사님은 저를 꾸짖고 문제 제기를 하시기보다 오랫동안 기다리며 기도해 주시고 저를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돌아가시기 전까지 5년간 저와 함께 해 주셨는데 그 기간동안 제게 멘토링을 해 주신 것이 제 목회에 참으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교인들이 저에 대한 불만을 제기한 적이 없지는 않았을 텐데, 정 목사님께서는 단 한번도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제게 찾아 오셔서 “민 목사는 설교에 은사가 있는 것 같다”며 격려해 주셨습니다. 만약 이 세상 원로 목사가 다 정 목사님 같다면 담임-원로 간의 갈등은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그분이 그렇게 빨리 돌아가신 것을 성도들이 아쉬워 하고 저도 참 아쉽습니다.
-네. 목사님.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