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은 대한민국을 건국한지 63년이 되는 해이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으로 어부지리(漁父之利)한 해방보다는 천신만고 끝에 우리의 힘으로 이루어낸 건국이 훨씬 중요할 뿐 아니라 세기사적 의미가 있는 건국이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는 언제부터인가 건국이라는 말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으며 청소년의 83%, 일반국민의 65% 정도는 건국일을 알지 못하며, 모르기 때문에 기념도 하지 않고, 축하는 더더욱 하지 않는다.

제 힘으로 이루지 못한 해방은 마치 독립기념일이라도 된 것처럼 국가명절인 광복절로 정하여 개천절, 3·1절과 나란히 거창하게 축하하는 참으로 이상한 대한민국이다. 건국이라는 말이 사라지기 시작한 원인은 이승만 건국대통령을 역사 속에서 지워버리기 위해 반 이승만 세력들이, 건국이라는 말을 일상에서 사라지도록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 결과, 세계가 놀라는 오늘의 대한민국에는 건국절도 없고, 건국기념관이나 그 흔한 건국기념공원 하나 없다. 건국의 아버지는 그 용어조차 생소할 뿐이다.

이승만 건국대통령은 20대 청년기에는 암울했던 구한말의 사회개혁과 민중계몽운동가였고, 30-60대 후반까지 미국 하와이와 워싱턴을 거점으로 평생 독립운동을 한 독립투사였으며 1919년 3·1운동으로 태동된 3개 임시정부의 수장이었을 뿐 아니라 후에 하나로 통합된 상해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이었다. 70대인 1945년에는 혼란스런 해방정국과 공산·사회주의가 풍미하던 세계적 시대 상황을 극복하고 1948년 8월 15일 자유민주주의 공화국 대한민국을 건국한 건국의 아버지이다.

신생국인 대한민국이 정착도 하기 전인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급습 남침으로 국가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았을 때 그는 외교역량을 발휘하여 미군과 UN군을 1주일만에 참전시키는 쾌거를 통해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낸 호국 영웅이다.

또한 반만년 가까이 대륙문명권과 불교·유교 문화권에 속해 주변 강국으로부터 끊임없는 침탈과 박해로 가난과 고통 속에서 살던 우리 민족을 해양문명권과 기독교 문화권으로 문명사적 대변혁을 주도한 선각자이며 이승만의 예지 덕분에, 건국 이래 자유와 번영을 구가하는 태평성대를 누리며 살고 있다. 아직까지 대륙문명권에 속해 살고 있는 북한의 현실과 비교하면 더욱 분명해진다.

그는 또한 1904-1910년 사이 조지워싱턴대 학사와 하버드대 석사, 프린스턴대 박사를 6년 만에 취득한 최고의 엘리트 대통령이다. 하버드대 동문들은 이승만 대통령을 세계 3대 정치인 중의 하나라고 극찬한다. 뿐만 아니라 언론인, 문필가, 서예가, 시인, 교육자, 자유주의 사상가, 탁월한 외교와 정치가인 세계적인 인물이다.

▲대한민국 상해 임시정부 이승만 대통령 취임식 장면.
이승만 대통령이 반만년 우리 민족사에 끼친 가장 위대한 업적은 역사 이래 왕조의 백성으로 살아오던 우리 민족을 국민 각자가 국가의 주인이 되게 한 주권재민의 자유민주공화국을 건국한 것이다. 70만 대군의 양성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강한 군사대국을 만든 국군의 아버지이다. 유상몰수 유상분배(북한 무상몰수 국가소유) 방식의 농지개혁을 통해서는 양반제가 타파되고 농민의 92%를 자작농으로 만든 농민의 아버지이다.

자신의 삶에 비추어 교육 백년지대계를 절감했던 이승만은 어려운 경제상황 속에서도 과학도, 산업기술자, 군의 현대화를 위한 유학 등을 적극 장려하여 이후 압축 산업발전을 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한 교육의 선각자였다.

1913년 하와이에 한인기독여학원을 세워 한국 최초로 여성교육을 시작하였으며 1916년 한인기독학원을 세워 최초의 여성교육과 남녀 공학을 실시하여 여성의 사회참여와 권익을 신장하였다. 건국 이후 국민학교의 6년간 의무교육제 실시와 국민 문맹퇴치운동을 전개하여 해방 당시 80%의 문맹률이 10년 만에 22%로 낮아졌다. 외국과의 교류 중요성에 따라 외국어대 설립, 공업입국 정책에 따라 한국의 MIT인 인하대 설립, 배재대학 설립, 측근인 임영신 씨와 김활란 씨를 통해 중앙대학과 이화여자대학을 설립케 하는 등 고등 교육기관을 대거 설립하여 인재 육성에 박차를 가했으며 한글전용 정책을 장려하여 한글시대를 열게 한 교육의 아버지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원자로 기공식에 참석했던 장면(1959년 7월 14일).
산업 발전에 에너지의 중요성을 알아 1959년 원자력연구소를 설립하여 오늘날 세계 6대 원자력국가가 될 수 있는 기초를 다졌을 뿐 아니라 대한민국은 원자력에너지 수출국이 되었다. 석탄 운송을 위해 강원도에 영동선 철도개설과 농본지대국을 위한 호남비료, 충주비료 공장을 세워 산업의 기반을 다진 산업의 아버지다.

외교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던 이승만은 1948년 유엔의 지원 아래 총선을 실시하여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유엔과 미국 등 세계 30여개국의 승인을 받음으로써 세계가 인정하는 합법적인 국가의 정통성을 확립하였고 1950년 6·25 전쟁으로 국운이 풍전등화와 같을 때 미군과 유엔군의 신속한 참전을 이끌어 냈을 뿐 아니라 1952년에는 인접해양에 관한 주권을 위한 평화선을 일방적으로 선포하여(이승만 라인) 일본 어선의 어류남획을 막고 독도를 보호하고 어족자원과 해저자원을 보호하였다.

6·25 전쟁의 휴전이 불가피해지자 이를 빌미로 미국을 회유 협박하여(반공포로 석방)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함으로써 북한의 군사도발을 막고 60년이 넘도록 우리국민들이 태평성대를 누리며 살 수 있게 한 외교와 정치의 달인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 최초의 한글, 영문판 일간지 매일신문을 창간하였다. 한문에 익숙한 이들은 모두 부패하였고 많은 대중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글신문을 창간하여 독립신문, 협성회보 제국신문의 주필을 맡았던 언론인이자 문필가이다.

1941년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세계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념이 풍미했다. 미국조차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 정부가 사회주의 경향을 지향하던 때에 탁월한 정치사상적 안목으로 세계정세를 꿰뚫어보고 일본의 침략근성과 소련의 패권주의를 미국 정부에 경고(저서를 통하여)하였을 뿐 아니라 소련과 동구, 중공, 북한 등 세계 대륙의 1/3 정도가 붉은 나라로 변해갈 때 대륙 끝자락에 주먹만하게 매달려 있는 대한민국을 미국,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과 4대1로 한판 겨루어 자유민주공화국을 세운 실로 세계적인 위인이며 반공, 자유주의 사상가이다.


▲이 대통령의 도로 포장공사 현장시찰 장면(1959년 12월 19일).
또 13세 때부터 과거시험 준비를 해서인지 글씨가 서예가 수준의 명필이며 한평생 삶의 굽이굽이를 시로 엮어낸 한시집과 서예 서책이 발간되기도 한 서예가이자 시인이기도 하다.

그는 1875년 3월 26일에 태어나 1965년 7월 19일에 서거하였으니 향년 90수를 하신 분이다. 당시 남성 평균 나이가 60세가 채 되지 못했고 현재는 78세가 평균연령인 것을 생각하면 100세를 넘겨 사신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아직까지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장수하신 건강한 대통령이다.

마지막으로 그 분은 약관 20대에 배재학당에 영어공부를 하기 위하여 입학한 것을 계기로 기독교 교육을 받고 감옥생활을 하는 동안 죽을 만큼의 고통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며 중생하게 되었다. 이후 그는 선교사와 목사들의 도움으로 엘리트 리더(프린스턴대)가 되고 36년간의 독립운동을 통해 애국애족 정신을 훈련받은 후에 1948년 대한민국을 건국하는 기적을 이루어 낸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그는 “이승만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초인적인 분으로 일평생을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대한민국 근·현대사 가운데 가장 애국애족을 한 분이며 세계적인 위인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불세출의 영웅 국부 이승만을 버렸다. 국부로 예우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독재자, 장기 집권자, 3·15부정선거자로만 교육돼 왔다. 대한민국은 배은망덕하게도 그분의 위대한 업적을 감추었고 알리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바꿔 말하면 대한민국은 태어난 날도 모르고 아버지가 없는, 근본을 모르는 私生국이 되었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국가의 최고 지도자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그 시대의 상황에 따라 공과가 있기 마련이다.

건국한지 63년이 되는 2011년 세계 속 대한민국의 위상은 어떠한가?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이후 탄생한 140여개 신생국 중 유일하게 산업화·민주화의 압축성장을 성공적으로 이루고 지식정보화 사회를 선도하게 되었다. 1953년 6·25로 폐허가 된 대한민국은 35년 만인 1988년 서울올림픽을 개최하여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였고 이후 소득 1만불 시대가 되었다. 2002년 월드컵을 개최하여 2만불 시대로 진입한 이후 10년간 제자리에 머물렀지만 이제 평창 겨울올림픽을 거쳐 3만불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최빈국이었던 대한민국이 건국한지 60년 만에 후발국을 지원하는 개발지원국이 되었으며 2010년 G20 정상회의의 의장국이 되어 성공적으로 회의를 마침으로 세계를 다시 한번 놀라게 하였다. 한류 바람이 동서양을 넘나들고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젊은이 김연아, 박태환, 박지성, K-POP 등은 세계인의 심장을 뛰게 만들고 있다. 7월 6일 아프리카 더반의 평창은 포기할 줄 모르는 12년간의 끈질긴 도전의 결과였으며 5천만 우리국민들의 승리였다.

대한민국은 경제력이나 무역규모로나 IT강국으로나 복음강국으로 세계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되었으며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이 있는 놀라운 국가로 세계가 평가하고 있다. 이렇게 자랑스럽고 위대한 대한민국에 건국의 아버지가 없다. 건국절도 없으며 기념도 축하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건국기념관, 그 흔한 건국 기념공원 혹은 광장 하나도 없다. 우리는 하루속히 해방, 독립, 광복, 건국에 대한 정의를 바르게 내리고 이승만 건국대통령을 국부로 예우하여 대한민국의 권위를 회복하고 더 이상 졸부국가가 아닌 국격을 갖춘 나라로 그 브랜드 가치를 높여야 한다.

한강의 기적은 오늘도 쉬지 않고 진행되고 있다. 이 기적은 한반도의 자유, 복음통일과 대한민국의 선진화로 이어져 대한민국을 동북아의 중심국이 되게 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선진화는 세계의 중심축이 동북아로 옮겨올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며, 만일 대한민국의 기적이 멈출 때에는 신냉전시대가 될 가능성도 다분하다. 국격을 갖추지 못한 대한민국을 얕보는 한편, 우리의 기적과 선진화를 두려워하는 일본은 우리의 영토인 독도를 노리고 있다. 동북공정이라는 해괴한 논리로 역사까지 빼앗아가려는 중국의 술책을 막기 위해서라도 하루 속히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국격(國格)을 갖추어야 한다.

사법·입법·행정부와 언론이 앞장서 대한민국이 태어난 날을 바로잡아 더 이상 정통성 혼란이 일어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자랑스럽고 위대한 대한민국을 후대에게 전승, 교육시키기 위해서라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일이다. 정부나 관련기관이 이 문제를 방치하고 있기 때문에 뜻있는 국민들이 나서 지혜와 힘을 모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2010년 11월 (사)대한민국사랑회에서 “우리는 왜 건국을 기념하지 않는가?”라는 제1차 학술세미나를 통해 대한민국 건국일에 관한 문제를 파악하고 문제제기를 했으며, 제2단계로 토론된 내용을 책으로 엮어 많은 국민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한민국이 탄생한 날을 건국절로 정하여 온 국민이 기념 축하하도록 국민운동을 전개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한민족을 택하시고 부르셨기 때문에 20, 21세기에 이승만이라는 하나님의 사람을 중생, 리더교육, 애국애족의 훈련을 통해 기적적으로 대한민국을 태어나게 하셨다. 건국 2년만에 6·25 전쟁이 발발했지만 이 또한 하나님께서 섭리하심으로 대한민국을 보존하셨다. 이 기적이라는 말은 하나님 외에는 적용시킬 수 없는 용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대한민국을 지키고 발전시켜야 할 사명이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있다. 건국의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국부로 예우하는 일 또한 하나님이 사용하신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이라고 믿는다.

/김길자 대한민국사랑회 회장(경인여자대학 명예총장·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 기념사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