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뉴스) 미주 지역에서 국제 금융시장의 패닉에 가장 시달리는 곳은 미국이다.

미국은 유럽과 함께 이번 국제 금융시장의 패닉을 유발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뉴욕증시는 5일(현지시각) 고용지표의 개선으로 상승 출발했지만 4일에만 500포인트 이상 폭락하는 등 아직 패닉 상태에서 완전하게 벗어나지 못했고 미국의 실물 경기는 이미 더블딥(이중침체)에 빠졌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위기 상황은 채무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발생한 미 정부에 대한 신뢰 상실과 실물 경기의 둔화에서 비롯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단기간에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미 정부와 통화 당국은 경기 부양책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지만, 재정 긴축과 인플레이션 압력 등 제약 조건이 많아 마땅한 대안을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 금융ㆍ실물경기 공포 확산..금값까지 하락
뉴욕증시의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지난 2일 265포인트가 급락해 심리적 저지선이었던 12,000선 밑으로 떨어진 데 이어 4일에는 512포인트 이상 폭락하며 패닉 상태를 맞았다.

실물 경제도 더블딥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5일 발표된 미국의 7월 실업률이 0.1%포인트 떨어지고 신규 일자리 창출 규모도 11만7천개로 시장의 예상을 웃돌아 경기 둔화의 우려감을 약화시키고 있지만, 최근 발표된 경제 지표를 보면 더블딥 가능성은 아직 강하게 남아있다.

미국 공급관리협회(ISM)의 7월 제조업과 서비스업(비제조업) 지수는 모두 전월보다 하락했고 시장 예측치에 미치지 못했으며 6월 공장주문 실적도 전월보다 떨어졌다.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70%를 차지하는 소비지출은 6월에 전월보다 0.2% 줄어 2년여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미국의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3%에 그쳐 시장 전문가들의 예측치 1.8%에 크게 못 미쳤다.

위기감이 증폭되자 투자자들이 현금 보유에 나서기 시작해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여겨졌던 금과 원자재 가격이 내려가는 기현상까지 빚어지고 있다.

지난 4일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 종가보다 5.30달러(5.8%) 떨어진 배럴당 86.63달러에 거래를 마쳐 지난 2월 중순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고 금값은 전날보다 7.30달러 하락했다.


◇ 美정부 신뢰ㆍ정책 실종
이번 경제 위기의 주요한 원인 중 하나는 미 정부에 대한 신뢰 상실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2008년 경제 위기가 금융시스템에 대한 신뢰 문제였다면 이번 위기는 정부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미국은 연방정부의 채무 한도 증액과 재정 적자 감축 협상 과정에서 글로벌 리더십에 대한 문제점뿐만 아니라 정책적 역량의 한계를 드러냈다.

디폴트(채무상환 불이행)와 국가신용등급 강등 가능성까지 제기된 위기 상황에서도 미국 정부는 협상 과정에서 정치권에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였고 경제에 대한 통제력도 상실했다.

투자 전략 회사인 스트래티거스의 제이슨 트레너트는 "시장이 경제의 펀더멘털보다 소수의 정책 당국자들에게 의존하는 상황에서 대부분의 당국자는 휴가 중이라는 게 나쁜 소식"이라며 정부 정책의 부재를 질타했다.

여기에 실물 경제의 부진도 이번 위기 상황을 부추겼다.

미국의 채무 협상이 지난 1일 타결돼 불확실성이 사라지는 듯했지만, 이후부터 나온 제조업 지수, 서비스업 지수, 소비지출 등의 실물 경기 지표가 연이어 추락하자 더블딥 공포가 확산했다.


◇ 단기간 해결 쉽지 않을 수 있어
전문가들은 이번 위기가 실물 경기의 둔화뿐만 아니라 미 정부에 대한 신뢰 상실에서 비롯됐고 그 이면에는 미국의 채무 문제가 있기 때문에 단기간에 해결되기가 쉽지 않다고 전망하고 있다.

실제 미국의 채무 협상 타결 내용을 보면 만성적인 재정 적자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해답을 담고 있기보다는 우선 디폴트를 피하자는 임시방편적 성격이 강하다.

또 채무 한도 증액과 적자 감축 방안에 대한 윤곽만 잡아 놓았고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더 협상을 해야하기 때문에 채무 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았다.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와 무디스 등 국제 신용평가사들도 미국이 채무 협상을 타결했지만,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 가능성은 아직 남아있다고 계속 경고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2008년 금융위기와 달리 이번 위기는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정부 부문의 실패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미 정부의 대응 방향에 따라 예상보다 일찍 위기가 해소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 미 경기부양 검토..제약 요인 많아 효과 미지수
미 정부와 통화 당국도 경기 둔화를 막고 위기 심리를 없애기 위한 부양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WSJ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경제와 금융 시장의 위기 해소를 위해 일자리 정책에 대한 시동을 다시 걸고 있다고 전했고 워싱턴포스트(WP)도 백악관이 새로운 경기 부양책을 마련하고 있다며 기업의 신규 고용 촉진을 위한 세제 혜택 제공, 일자리 창출 프로젝트, 주택 시장 활성화 방안 등이 검토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 역시 국채를 사들여 시중에 통화를 공급하는 3차 양적완화(QE) 등 부양책을 검토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시장에서 나오고 있다.

하지만, 여러 제약 요인 때문에 미국이 제대로 된 부양책을 마련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우선 채무 협상 타결로 연방 정부의 지출이 줄어들어 경기 부양책을 시행할 재원이 부족하다.

또 이미 2차례 실시된 양적완화 정책으로 시중에 많은 자금이 공급돼 있어 추가적인 통화 공급책은 상승 압력이 높아진 물가를 자극해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앞선 양적 완화 정책들이 경기 부양에 큰 효과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 연준도 고민하고 있다.

미국 보스턴의 경제전문연구소인 IHS글로벌 인사이트도 이런 점들을 근거로 미국의 경기 침체 가능성을 40%로 예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