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포머(Transformers)라는 말은 미국의 완구회사 하스브로의 인기있는 완구 로봇의 이름에서 시작된 말입니다. 이후 이것이 에니메이션과 영화에서 히트를 치면서 대중들에게 익숙한 단어가 된 것입니다. 특별히 미국에서는 1984년 텔레비전 에니메이션 시리즈 [트랜스포머]가 만들어진 것이 시초였습니다. 이 스토리의 중심은 지구를 공격하는 외계 로봇과 이에 대해 지구를 지키는 로봇이 전혀 뜻밖의 모양으로 변형이 되고 합체가 된다는 것입니다. 한국에 처음 나왔던 마징가 제트가 이런 저런 모양으로 바뀐다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보면 이러한 기 형상 로봇의 등장은 시대적인 흐름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트랜스포머가 세상에 나온 1984년은 마침 조지 오엘의 공상소설 [1984년]과 연결됩니다. 이 책에 나오는 오세아니아 사회에는 두 가지 정치철학만 존재합니다. 바로 사상통제와 과거통제입니다. 사상통제는 거리, 방, 화장실까지 설치된 감시 스크린과 「신어(新語)」체계로 이루어지는데, 이는 평화나 자유 같은 전체주의에 반하는 말을 완전히 없애버린 새 언어입니다. 또한 과거통제는 모든 기록의 날조를 통해 이뤄집니다. 무서운 세상의 변혁입니다.
즉, 감시사회를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것이 바로 [1984년]인 것입니다. 이 소설에 나오는 빅브라더(Big Brother)는 감시 카메라를 통해 모든 주민들을 24시간 감시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공상소설이 늘 그러하듯이 좀 황당한 설정같지만, 이 이야기는 현대와 미래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였다는 점에서 예언적 찬사까지 받았습니다. 겉으론 열려진 자유세계 같지만, 온통 감시받으며 인간의 휴머니즘과 사랑 따위는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인간이 인간답지 못하게 됨에 따라 사람들은 기형적인 모습으로 바뀌어 갑니다.
지난 주, 온 세계는 천해의 자연환경과 가장 완벽한 복지제도를 자랑하여 지상천국이라 불리우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노르웨이에서 일어난 일로 인해 깊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현재까지 98명의 사망자가 발표된 이 희대의 살인사건 주인공은 안데르스 브레이빅(32)으로, 1m90cm의 훤칠한 키에 잘 생긴 외모 게다가 세계역사와 정치 종교사에 심취했던 청년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경찰로 둔갑하여 자기에게로 오는 사람들을 무차별 사살하고, 두려움으로 죽은 체하고 있던 아이들까지 찾아내어 머리에 총을 겨눈 극악무도한 살인마였습니다.
브레이빅의 어린 시절은 아주 평범했습니다. 마마보이로 불릴 정도로 온순했기에, 많은 보도들은 그가 성장하면서 이슬람 종교단체 열혈당원이나 반 기독교도가 된 정치적, 종교적 희생물로 추적하기도 하였지만, 사실과 무관함이 증명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우리는 그렇게 일반적이던 그가 이런 냉혈한 살인마가 된 배경에는 기구했던 가족사가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철저하게 일그러진 그의 가족사와 감시체제로 통제된 그의 어린시절을 보면 세계 1위의 복지사회가 숨겨온 파라다이스의 결말이 얼마나 기형적 괴물이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의 아버지는 런던과 파리 주재 노르웨이대사관의 상무관이었습니다. 전처와 이미 세 자녀를 둔 아버지, 첫 결혼에서 딸 하나를 둔 어머니가 재혼하여 낳은 아이가 브레이빅입니다. 부모는 그가 한 살 때 또 헤어집니다. 아버지는 런던에 남았고, 간호사였던 어머니와 브레이빅은 노르웨이로 돌아가 임대아파트에 살게됩니다. 그때 이후 2009년까지 30년간 어머니와 함께 살아옵니다. 어머니는 다시 노르웨이 육군 소장과 다시 결혼하지만 또 헤어지고, 아버지도 런던에서 대사관 동료 직원과 다시 결혼합니다. 부모의 반복적이고 파행적인 무의미한 결혼.
어린 브레이빅은 부모들의 양육권 법정싸움 사이에서 감시와 통제의 깊은 상처를 받게 됩니다. 그는 이후에 가끔 런던과 파리로 아버지를 찾아가고 새 엄마와도 원만하게 지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도 그의 나이 열두 살 때 갈라섭니다. 브레이빅이 아버지와 완전히 결별한 것은 15세 때입니다. 그가 공공장소 벽에 스프레이를 뿌리고 다니다가 경찰에 입건된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가 아들과 인연을 끊겠다며 만나주지 않기 시작합니다. 이번 사건 5년 전, 브레이빅이 마지막으로 한 번만 만나달라고 간청했지만, 아버지는 매정하게 거절해버립니다.
브레이빅은 이번 집단 살인극을 저지른 이유로 집권 노동당, 친(親)이슬람 이민 정책, 남녀평등주의를 요구하는 페미니즘 등에 대한 반감과 기독교 전쟁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그런 것에 깊이 관여를 해 왔을까? 사실 그의 아버지는 집권 노동당 지지자였고, 아버지를 빼앗아간 새 부인은 이민자 신청 업무를 다루는 정부 기관에서 일했음이, 어머니는 여성 인권 운운하며 아버지를 떠나버린 페미니스트였고, 누나는 성생활이 문란한 여성이었으며, 육군 소장이었던 새 아버지는 퇴역 후 생활을 태국에서 창녀들과 보냈음이 밝혀졌던 것입니다.
이번 참사는 어떤 근본주의자나 분리주의자의 행태가 아닌, 온갖 부조리로 점철된 세계제일의 복지국가, 노르웨이 사회가 만들어낸 괴물 '트랜스포머'에 의해 저질러진 것입니다. 갑자기 한강을 배경으로 한 봉준호감독의 영화 [괴물]이 생각납니다. 요즘 조국 땅에 물난리가 말이 아니라는데, 아래 저래 우리도 정신 차려야 할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