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름에는 그 이름에 맞는 뜻이 있고 그 이름의 뜻대로 산 것을 알 수 있다. 인류의 시초 아담(Adam)은 히브리어로 ‘인간’ 또는 ‘인류’라는 뜻이 있다. 이렇게 이름의 뜻(인간, 인류)으로 아담이라는 단어를 성경에 사용한 것이 500여 회나 된다. 아담의 어원적 의미로 볼 때에 분명 ‘흙’을 의미하는 ‘아다마(adamah)'와 연관되어 아담(Adam)이라고 명명(命名)한 것으로 본다.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生氣)를 불어넣어 생령(生靈)이 되게 하신 것은 인간의 삶이 땅과 직결되어 있다는 것과 인간의 연약성(軟弱性)과 하나님의 절대성(絶對性)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게 이름 하나에 포함된 뜻을 알고 보면 대단하다.

아담의 아내 하와(Eve)도 아담이 잠들어 있을 때 갈비뼈를 취해 만든 여자로 아담의 아내가 되게 했다. 아담은 처음에 그 이름을 ‘여자’라 했고(창 2:23) 타락한 이후엔 그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 이름의 뜻은 ‘모든 산 자의 어미’라는 뜻이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생물의 이름은 아담이 지었다. 아담이 생물들을 부르는 대로 그 이름이 되었고(창 2:19) 오늘날까지 그 이름은 그대로 사용된다. 이렇게 이름에 의해 모든 생물의 종이 나뉘고 형태를 인식하게 되니 그 이름의 의미는 단순히 불리는 것 뿐만 아니라 이름에 함축된 뜻 또한 함께 전해지는 것이다.

하와를 유혹한 뱀은 성경에서는 죄의 도구와 나쁜 영향을 미치는 동물로 기록하고 있다. 악인과 타락한 사람, 또는 사탄(마귀)을 나타낼 때 뱀을 인용한다.(계 12:9) 인류의 타락을 주도한 사탄에 의해 사용된 뱀은 그렇게 이미지와 함께 이름을 사용할 때도 선과 반대되는 곳에 쓰는 것으로 볼 때 분명 이름의 의미는 우리에게 뜻과 함께 이미지도 전달되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계획하심 가운데 쓰임 받고 새로운 시작의 시초가 되었단 노아(Noah)의 이름 속에 나타난 뜻은 ‘쉼’과 ‘위로’이다. 그의 가족 모두 8명이 함께 방주에 타고 함께 배에 올랐던 동물들로 새로운 시작을 열었던 그의 이름 속에는 방주 속에서의 쉼과 인류구원의 역사에 사용된 시간동안의 수고로 인한 쉼을 의미하여 노아(Noah)라 이름을 짓게 된 것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이름은 아브람(Abram)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의미와 뜻을 전달하며 아브라함(Abraham)이라는 새 이름을 주셨고(창 17:5) 그 이름의 뜻은 ‘열국의 아비’이다. 사라(Sarah)도 원래의 이름은 사래(Sarai)였지만 ‘열국의 어미’의 뜻을 포함한 사라(Sarah)로 개명(改名)시켜 주셨다.(창 17:15)

이스라엘의 시초가 된 이스라엘도 야곱(Jacob)이란 이름(뜻; 발꿈치를 잡았다)에서 이스라엘(Israel)이란 이름(뜻;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으로 개명시켜 주셨고 그 이름으로 인해 이스라엘민족의 시초가 되고 그의 아들 12명으로 인해 12지파가 형성되게 되었다.

베드로(Peter)로 또한 히브리어로 ‘시몬(Shimon)'이었지만 예수님으로부터 ‘게바(Kepha)'란 별명을 받았고, 그 이름으로 인해 베드로가 되게 되었는데 예수님께서 주신 게바는 히브리어로 바위란 뜻이고 게바는 아람어 케파(Kepha)의 헬라어 음역이었다. 그래서 같은 뜻을 가진 베드로(페트로스; Petros)는 ‘게바’와 같은 뜻을 가진 헬라어 이름이다.(마 16;18, 눅 6:14) 그래서 베드로를 부를 때에 종종 ‘시몬 베드로’라 하기도 했다.

이렇듯 이름 속에 내포된 뜻은 그의 인생을 결정하게 되기도 하며 때론 그 이름으로 인해 과거에서 미래로 옮겨가는 터닝포인트(Turning Point)가 되기도 한다. 과거에는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을 평생 갖고 살아갔지만 요즈음은 개명(改名) 절차가 간소화 되어 아무 때나 개명이유가 합당하다고 판단되면 쉽게 자신의 이름을 바꿀 수가 있다.

만약 자신이 자신의 이름을 사랑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얼마 전 뉴욕에 있는 모 기독언론 사이트에 뉴스와 칼럼이 실린 언론광장에서 전쟁을 방불케 하는 필전(筆戰, war of the pen)이 일어난 적이 있다. 각자 자신의 논리를 주장했고, 얼굴이 보이지 않는 언론광장이라 그런지 실명(實名)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몇 사람에 불과했다.

그렇다 보니 욕설이 오가고, 인격모독적인 글들이 올라오고, 상대방을 비하(卑下)하는 글들이 난무(亂舞)하고, 도저히 기독언론 사이트라고 볼 수 없는 세상의 삼류 사이트보다 못한 비인격적인 언론광장이 되어가는 것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안타깝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해당 사이트 관리자는 관리지침에 따라 댓글을 삭제하고, 수정하고, 경고하고, 비밀글로 잠가놓고, 악성댓글들로 인해 고군분투(孤軍奮鬪)하는 것이 직접 보지 않아도 본 듯이 눈에 선했다. 아마도 한 시도 컴퓨터를 떠나지 못하고 자리를 지켰으리라 생각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필자의 소견으로는 이름을 밝히지 않아도 되는 필명제(筆名制)를 도입했기 때문에 그랬다고 생각한다. 물론 해당 사이트 관련 주인에게는 나름대로 이익은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관련글에 대한 조회수가 많았으니 조회수에 상당한 만큼 그 인지도에 따라 추후 책정되는 광고비도 적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누구에게나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이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이름을 내세우며 살아왔다. 이름으로 인한 부(副)도 누렸고, 명예도 가졌고, 어떤 이는 권력도 가졌으리라. 누구나 각자 자신의 이름에 걸맞은 삶을 살아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름에 걸맞은 인격을 지키고, 명예를 지키고, 본분을 지키며 자신의 주장을 펼치려면 제한이 따른다.

그렇다 보니 인간의 악한 본능을 작용하여 필명으로 하여금 악성댓글인줄 알면서도 자신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을 고묘히 이용해 상대방의 인격을 모독하고, 나아가 살인까지도 저지를 만한 감정을 유발시키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글들을 서슴지 않고 골방에 앉아 글을 올렸을 것이라 생각된다.

글을 올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기독인들이었을 것이라 사료된다. 타 종교인들은 기독언론사이트에 들어올 일이 없을 테니까 말이다. 필자도 불교나 힌두교나 이슬람교나 또는 여호와증인이나 통일교 등 타종교나 이단의 사이트는 일평생 한 번도 들어가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에 자신의 이름을 먼저 내걸고 댓글을 쓴다면 인터넷 써치(Search) 사이트인 구글(Google)이나 야후(Yahoo), 또는 네이버(Naver)에서 그 이름을 치면 1초도 되지 않아 자신의 이름으로 올린 글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보여주는데, 평생 삭제하기도 힘든 써치(Search) 사이트에 남는 기록을 과연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악성인줄 알면서 댓글을 쓸 사람들이 있겠는가?

참고로 대한민국 지식백과에 나온 악성댓글이라 함은 이렇다. 『악성 댓글(惡性댓글) 또는 악성 리플(惡性 reply, 간단히 악플)』은 상대방이 올린 글에 대한 비방이나 험담을 하는 악의적인 댓글을 말한다. 악성 댓글을 다는 사람을 악플러(←악플+er)라고도 한다. 악성 댓글은 상대방에게 모욕감이나 치욕감을 줄 우려가 있다. 악성 댓글은 법적으로 제한되기도 하는데, 대한민국에서는 보통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또는 형법에 의해 규제된다.

그렇다면 왜? 같은 기독인들끼리 이러한 필전(筆戰)을 치러야만 했을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견(異見)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람마다 다른 생각을 갖고 산다. 생각이 말이나 글로 표현되고, 표현된 글과 말로 인해 내편과 네 편으로 나뉘게 된다. 이렇게 나의 생각과 상대방의 생각이 다른데서 오는 차이(Gap)로 인해 자신의 주장을 펼쳐야만 했고, 실명(實名)이라는 제한이 없다 보니 필명(筆名)으로 자신의 모습을 완전히 숨긴 채 상대방을 무조건적으로 비방하고, 헐뜯고, 비하하고, 경멸하고, 때론 저주까지 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들어달라고 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필자도 모 사이트에 올라오는 글들을 읽어가며 각자의 주장이 팽배해서 어느 주장이 맞고 그른가? 어느 주장이 논리적으로 이해시키는가?를 살펴보기 원했지만 이는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이해시키려는 것이 아니고, 어린아이와 같이 응석부리듯 자기의 주장만 옳다고 내세우는 모습을 보며 오히려 설득력을 잃어 ‘아니 한만 못하다’는 말처럼 글을 쓰는 이들 스스로 피해보는 것을 보며 안타깝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하는 기독언론사이트에서 기독인들끼리 꼭 필전(筆戰)을 치러야만 하고 그 해결방안은 없을까?

필자는 과거 어느 칼럼에서 다뤘듯이 무조건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글을 쓰게 하는 실명제(實名制)만이 모든 부작용을 해소하고 건전한 기독인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와 예수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자신을 사용하여 많은 이들에게 유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독언론사이트에 들어와서 글을 남기는 사람들은 분명 목사나 전도사, 또는 신학생, 그리고 교회의 장로, 집사, 권사를 포함한 직분자들이나 아니면 적어도 교회에 한번쯤은 다녀갔을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소수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어느 교회의 누구(직분을 명시)라고 자신을 밝힌 다음에도 악성댓글을 남길 수 있을까?

만약 자신의 이름을 분명하게 밝히고도 악성댓글을 남길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분명히 우리가 척결해야 할 이단(異端)일 것이다. 이렇게 이단과 참크리스천을 구별하기 위해 자신의 이름으로 자신이 쓴 글에 책임을 지도록 하기 위해 기독언론사이트를 운영하는 책임자는 기독인의 자세로 돌아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크리스천을 보호하고, 이단(異端)들을 척결(剔抉)하기 위해 각자 맡은 기독언론사이트를 반드시 실명제(實名制)로 전환 할 것을 천명(闡明)한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