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은 고난의 대명사로 통하는 욥이 고난의 과정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내용입니다. 고난을 통과하기 전에 욥은 정직했습니다. 욥은 예배를 열심히 드렸습니다. 욥은 자신의 재물을 가난한 사람들과 나눴던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의 믿음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귀로 들어서 알았던 수준입니다. 지식적인 믿음이었습니다.
점쟁이를 세 종류로 나누더군요. 첫째, 점치는 것을 배워서 점쟁이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둘째, 부모가 점쟁이였는데 가업을 잇듯이 물려받아서 점쟁이가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셋째, 귀신이 내려서 점쟁이가 된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이 중에 진짜 점쟁이는 세 번째인 귀신이 내려서 점쟁이가 된 사람들이라고 하더군요. 신앙생활도 비슷합니다. 세 종류의 신앙생활이 있습니다. 첫째, 성경을 공부해서 지식으로 머리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둘째, 모태신앙으로 부모의 신앙을 물려받아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셋째, 성령을 받아서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위의 세 종류의 신앙생활 중에 진짜 신앙생활은 세 번째 하나님의 영을 받아서 하는 신앙생활입니다.
욥이 고난을 당하기 전에 그의 행위는 고귀했으나 위의 세 종류의 신앙생활을 놓고 볼 때는 첫 번째나 두 번째 정도의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고난의 과정을 통과하고 난 후에는 자신의 신앙이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신앙이 되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귀로 듣기만 했던 하나님을 눈으로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이론으로, 지식으로만 알던 하나님을 실제로 인격적으로 체험했다는 것입니다.오늘 말씀은 욥이 귀로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보게 되었다는 고백을 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보게 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1. 교만했던 사람이 겸손해진다(1-6절).
사람이 겸손해지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시고 교만한 자는 대적하시기 때문입니다. 잠 16:5에서는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라고 합니다. 잠 16:18에서는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욥의 행위가 의롭고 정직했지만 욥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교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도덕적으로 항상 옳은 생활을 했기 때문에 자기 의로 가득했습니다. 자기 의가 얼마나 충만했던지 욥 32:2에 보니까
1. 욥이 스스로 의롭게 여기므로 그 세 사람의 대답이 그치매 2. 람 족속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가 노를 발하니 그가 욥에게 노를 발함은 욥이 하나님보다 자기가 의롭다 함이요 욥이 하나님 보다 자기가 의롭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말했습니다.욥은 교만하여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자기의 의를 주장했습니다. 그런 욥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 때 욥은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욥에게 말씀하시면서 그런 일들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욥에게 질문했습니다. 욥이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알 리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욥이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욥이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부분적이며, 욥이 의롭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하나님의 빛 앞에서는 불의한 것들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빛 앞에서 욥은 42:3에서 자신이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렸다고 고백합니다. 자신이 자랑했던 지식들이 사실은 깨닫지도 못한 것을 말한 것이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지식으로 하나님을 알 때는 교만합니다. 지식으로 알던 하나님을 직접 만나고 인격적으로 알게 되어 질 때 겸손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에는 하나님을 눈으로 보는 영적이고 실제적이고 인격적인 체험이 필요한 것입니다.
2. 성숙한 인격과 신앙을 갖게 된다(7-9절).
성경은 원수를 사랑하고 원수를 축복하라고 하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원수를 사랑하고 축복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라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또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원수를 사랑하고 축복하지 못해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욥은 극한 고난 중에 있었는데 그의 친구들이 찾아왔습니다. 사실 그들은 욥의 친구라고 하기보다는 과거에 욥이 잘살았을 때 욥에게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이며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비교하자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욥과 신분의 차이가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욥 30:1에 보면 욥이 그들의 아비들은 내가 보기에 내 양떼를 지키는 개 중에도 둘만하지 못한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만큼 신분의 차이가 크다는 뜻입니다. 욥의 형편이 좋을 때는 욥의 도움을 받았고 욥 앞에 감히 설 수도 없었던 사람들이 찾아와서 욥을 위로한다고 하면서 오히려 욥에게 상처를 줍니다. 네가 믿음이 좋은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형편없는 믿음이었구나. 네가 이렇게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니 아주 못된 죄를 저지른 것이 분명하다는 식입니다
우리 속담에 때리는 시어머니 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이 있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욥을 위로한다고 찾아와서 욥의 속을 뒤집어 놓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극한 고통 중에 있었던 욥은 그 친구들이 얼마나 미웠겠습니까? 내가 먹지 못해 배고파 죽겠는데 자기는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배가 터지도록 먹으면서 고기 덩어리 한 조각도 주지 않으면서 좀 먹고 다니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밉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욥을 만나신 후에 그 친구들을 축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8,9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욥의 친구들이 하나님 앞에 번제를 드리는데 욥이 그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욥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원수 같은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십니다.
욥이 그들을 축복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은 그의 인격이 훌륭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귀로만 들었던 하나님을 눈으로 보는 영적인 체험,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3. 회복의 역사, 부흥의 역사가 일어난다(10절).
욥이 하나님을 만나고 원수를 축복한 후에 10절에 보니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이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회복과 부흥을 주신 것입니다.사실 욥이 하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회복, 부흥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욥이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보고 나니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11절에 보니 사람들이 욥을 찾아오는데 진정으로 욥을 위로하기 위하여 찾아옵니다. 그런데 위로만 한 것이 아니라 찾아오는 사람들마다 고대의 화폐인 금조각 케쉬다를 하나씩 가져오고 금고리 하나씩을 가져옵니다.
결국 12절에 보니 하나님께서 욥의 말년의 복이 처음 복보다 더 하게 하셔서 갑절의 복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회복과 부흥을 함께 이루신 것 이었습니다.우리교회도 회복과 부흥의 역사가 함께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원 합니다.
작년 한국 교회의 화두는 부흥이었습니다. 1907년 평양에 일어났던 대부흥을 100년이 지난 지금 이 시대에 다시 일으키자는 운동이 한국교계에 일어났던 것 입니다.
부흥이란 무엇입니까? 부흥이란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입니다. 부흥이란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세상이 다시 살아나는 것, 교회가 다시 살아나는 것, 자신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 부흥입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포로 된 곳에서 자유함으로, 어둠의 하늘에서 빛의 하늘로 바뀌는 것이 부흥입니다.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 병든 자가 치료를 받는 것, 방황하는 자가 방향을 잡는 것 모두가 부흥입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이에게 태의 축복을 주시고, 살맛을 잃은 실직자에게 삶의 의욕을 불러일으키고, 하루하루 복잡한 머리로 사는 백수에게 용기를 주는 것이 부흥입니다. 삶의 포기, 삶의 불안, 삶의 무능으로부터 해방되어 삶의 이유를 찾도록 만드는 것이 부흥입니다. 그렇다면 부흥은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하나님을 찾을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볼 때 일어나는 것이 부흥입니다.
암 5:1-3을 보십시오. 1.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에게 대하여 애가로 지은 이 말을 들으라 2. 처녀 이스라엘이 엎드러졌음이여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로다 자기 땅에 던지움이여 일으킬 자 없으리로다 3.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 중에서 천명이 나가던 성읍에는 백명만 남고 백명이 나가 던 성읍에는 열명만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아모스 선지자는 어느 날 북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곧 모든 사람이 죽게 될 것을 보았습니다. 너무나 처참한 모습이었기에 그는 그대로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울면서 백성들에게 외쳤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애가를 지어 불렀습니다. 애가라는 말은 죽은 사람을 애도하기 위하여 부르는 조가를 뜻합니다. 아모스가 판단하기에 북이스라엘은 이미 죽은 목숨과 같았습니다. 더 이상 미래가 없는 절망의 상황이었습니다.
아모스는 현재 이스라엘을 처녀 이스라엘이 무너진 시대로 여겼습니다. 다시 말하면 처녀 이스라엘이란 가장 활동적이고 강한 전성기를 의미합니다. 그 시기는 감히 어떤 외부의 세력도 이스라엘을 넘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천 명이 싸우러 나간 성읍에는 백 명만 살아남고, 백 명이 싸우러 나간 성읍에는 열 명만 살아남는 파멸의 길로 치닫고 있는 것입니다. 힘을 쓸 수 없는 다시 일어날 힘이 없을 정도로 완전히 엎드러진 절망의 때가 임박해진 것입니다.
그러나 선지자 아모스는 이런 파멸의 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길이 있다고 외치는 것입니다. 그 방법은 참으로 간단했습니다. 암 5:4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구원의 길, 희망의 길은 하나님에 의해서만 열린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든 한국의 백성이든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으면 산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부흥이라고 말합니다.
부흥이란 쇠하였던 것이 다시 일어나는 것, 쇠하였던 것을 일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곧 재건과 복구를 의미합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살다, 살아있다라는 말로 리바이브/리바이벌(revive/revival)입니다. 암 5:6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암 5:8의 말씀입니다. 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로 아침이 되게 하시며 백주로 어두운 밤이 되게 하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자를 찾으라 그 이름이 여호와시니라 우주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산다는 것입니다.
부흥의 출발은 분명히 믿음입니다. 언제나 믿음은 하나님의 일하심의 기초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하여 일하신다고 말을 하는데 사실은 그 사람의 믿음을 통하여 일한다는 말이 정확한 대답입니다. 그런데 아모스 선지자는 특히 찾는 믿음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찾아야 하는가? 누구를 찾아야하는가? 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입니다.부흥이란 하나님께 돌아오는 행위입니다. 선지자 아모스는 깨닫지 못하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암4:9-11절9. 내가 풍재와 깜부기 재앙으로 너희를 쳤으며 팟종이로 너희의 많은 동산과 포도원과 무화과나무와 감람나무를 다 먹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0. 내가 너희 중에 염병이 임하게 하기를 애굽에서 한 것처럼 하였으며 칼로 너희 청년들을 죽였으며 너희 말들을 노략하게 하며 너희 진의 악취로 코를 찌르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1. 내가 너희 중의 성읍 무너뜨리기를 하나님 내가 소돔과 고모라를 무너뜨림 같이 하였으므로 너희가 불 붙는 가운데서 빼낸 나무 조각 같이 되었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2.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이와 같이 네게 행하리라 내가 이것을 네게 행하리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로 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피했습니다. 범죄하기 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을 가려고 몸부림쳤습니다. 그 때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이 하신 특별한 일은 재앙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풍재와 깜부기 재앙, 팟종이 재앙, 염병 재앙으로 청년들이 죽고 성읍은 무너졌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무서운 것을 느끼지 못하는 영적 감각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고통의 때, 부흥이 필요한 때에 가장 시급히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거의 모든 교회들이 제 2의 부흥의 근원지가 되기를 사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 2의 부흥은 그냥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찾을 때 만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합니다. 잠 8:17에서는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만야 합니다.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보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보시고 겸손한 성도가 되시고 성숙한 신앙을 소유하시고 회복하시어 축복 받고 내가 살고 내 가정이 살고 우리교회가 살고 빛으로 희망으로 다시 살아나는 부흥의 역사가 온 성도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 합니다.
점쟁이를 세 종류로 나누더군요. 첫째, 점치는 것을 배워서 점쟁이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둘째, 부모가 점쟁이였는데 가업을 잇듯이 물려받아서 점쟁이가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셋째, 귀신이 내려서 점쟁이가 된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이 중에 진짜 점쟁이는 세 번째인 귀신이 내려서 점쟁이가 된 사람들이라고 하더군요. 신앙생활도 비슷합니다. 세 종류의 신앙생활이 있습니다. 첫째, 성경을 공부해서 지식으로 머리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둘째, 모태신앙으로 부모의 신앙을 물려받아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셋째, 성령을 받아서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위의 세 종류의 신앙생활 중에 진짜 신앙생활은 세 번째 하나님의 영을 받아서 하는 신앙생활입니다.
욥이 고난을 당하기 전에 그의 행위는 고귀했으나 위의 세 종류의 신앙생활을 놓고 볼 때는 첫 번째나 두 번째 정도의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고난의 과정을 통과하고 난 후에는 자신의 신앙이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신앙이 되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귀로 듣기만 했던 하나님을 눈으로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이론으로, 지식으로만 알던 하나님을 실제로 인격적으로 체험했다는 것입니다.오늘 말씀은 욥이 귀로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보게 되었다는 고백을 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보게 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1. 교만했던 사람이 겸손해진다(1-6절).
사람이 겸손해지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시고 교만한 자는 대적하시기 때문입니다. 잠 16:5에서는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라고 합니다. 잠 16:18에서는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욥의 행위가 의롭고 정직했지만 욥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교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도덕적으로 항상 옳은 생활을 했기 때문에 자기 의로 가득했습니다. 자기 의가 얼마나 충만했던지 욥 32:2에 보니까
1. 욥이 스스로 의롭게 여기므로 그 세 사람의 대답이 그치매 2. 람 족속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가 노를 발하니 그가 욥에게 노를 발함은 욥이 하나님보다 자기가 의롭다 함이요 욥이 하나님 보다 자기가 의롭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말했습니다.욥은 교만하여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자기의 의를 주장했습니다. 그런 욥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 때 욥은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욥에게 말씀하시면서 그런 일들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욥에게 질문했습니다. 욥이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알 리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욥이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욥이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부분적이며, 욥이 의롭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하나님의 빛 앞에서는 불의한 것들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빛 앞에서 욥은 42:3에서 자신이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렸다고 고백합니다. 자신이 자랑했던 지식들이 사실은 깨닫지도 못한 것을 말한 것이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지식으로 하나님을 알 때는 교만합니다. 지식으로 알던 하나님을 직접 만나고 인격적으로 알게 되어 질 때 겸손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에는 하나님을 눈으로 보는 영적이고 실제적이고 인격적인 체험이 필요한 것입니다.
2. 성숙한 인격과 신앙을 갖게 된다(7-9절).
성경은 원수를 사랑하고 원수를 축복하라고 하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원수를 사랑하고 축복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라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또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원수를 사랑하고 축복하지 못해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욥은 극한 고난 중에 있었는데 그의 친구들이 찾아왔습니다. 사실 그들은 욥의 친구라고 하기보다는 과거에 욥이 잘살았을 때 욥에게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이며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비교하자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욥과 신분의 차이가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욥 30:1에 보면 욥이 그들의 아비들은 내가 보기에 내 양떼를 지키는 개 중에도 둘만하지 못한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만큼 신분의 차이가 크다는 뜻입니다. 욥의 형편이 좋을 때는 욥의 도움을 받았고 욥 앞에 감히 설 수도 없었던 사람들이 찾아와서 욥을 위로한다고 하면서 오히려 욥에게 상처를 줍니다. 네가 믿음이 좋은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형편없는 믿음이었구나. 네가 이렇게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니 아주 못된 죄를 저지른 것이 분명하다는 식입니다
우리 속담에 때리는 시어머니 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이 있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욥을 위로한다고 찾아와서 욥의 속을 뒤집어 놓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극한 고통 중에 있었던 욥은 그 친구들이 얼마나 미웠겠습니까? 내가 먹지 못해 배고파 죽겠는데 자기는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배가 터지도록 먹으면서 고기 덩어리 한 조각도 주지 않으면서 좀 먹고 다니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밉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욥을 만나신 후에 그 친구들을 축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8,9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욥의 친구들이 하나님 앞에 번제를 드리는데 욥이 그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욥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원수 같은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십니다.
욥이 그들을 축복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은 그의 인격이 훌륭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귀로만 들었던 하나님을 눈으로 보는 영적인 체험,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3. 회복의 역사, 부흥의 역사가 일어난다(10절).
욥이 하나님을 만나고 원수를 축복한 후에 10절에 보니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이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회복과 부흥을 주신 것입니다.사실 욥이 하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회복, 부흥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욥이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보고 나니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11절에 보니 사람들이 욥을 찾아오는데 진정으로 욥을 위로하기 위하여 찾아옵니다. 그런데 위로만 한 것이 아니라 찾아오는 사람들마다 고대의 화폐인 금조각 케쉬다를 하나씩 가져오고 금고리 하나씩을 가져옵니다.
결국 12절에 보니 하나님께서 욥의 말년의 복이 처음 복보다 더 하게 하셔서 갑절의 복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회복과 부흥을 함께 이루신 것 이었습니다.우리교회도 회복과 부흥의 역사가 함께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원 합니다.
작년 한국 교회의 화두는 부흥이었습니다. 1907년 평양에 일어났던 대부흥을 100년이 지난 지금 이 시대에 다시 일으키자는 운동이 한국교계에 일어났던 것 입니다.
부흥이란 무엇입니까? 부흥이란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입니다. 부흥이란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세상이 다시 살아나는 것, 교회가 다시 살아나는 것, 자신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 부흥입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포로 된 곳에서 자유함으로, 어둠의 하늘에서 빛의 하늘로 바뀌는 것이 부흥입니다.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 병든 자가 치료를 받는 것, 방황하는 자가 방향을 잡는 것 모두가 부흥입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이에게 태의 축복을 주시고, 살맛을 잃은 실직자에게 삶의 의욕을 불러일으키고, 하루하루 복잡한 머리로 사는 백수에게 용기를 주는 것이 부흥입니다. 삶의 포기, 삶의 불안, 삶의 무능으로부터 해방되어 삶의 이유를 찾도록 만드는 것이 부흥입니다. 그렇다면 부흥은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하나님을 찾을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볼 때 일어나는 것이 부흥입니다.
암 5:1-3을 보십시오. 1.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에게 대하여 애가로 지은 이 말을 들으라 2. 처녀 이스라엘이 엎드러졌음이여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로다 자기 땅에 던지움이여 일으킬 자 없으리로다 3.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 중에서 천명이 나가던 성읍에는 백명만 남고 백명이 나가 던 성읍에는 열명만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아모스 선지자는 어느 날 북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곧 모든 사람이 죽게 될 것을 보았습니다. 너무나 처참한 모습이었기에 그는 그대로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울면서 백성들에게 외쳤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애가를 지어 불렀습니다. 애가라는 말은 죽은 사람을 애도하기 위하여 부르는 조가를 뜻합니다. 아모스가 판단하기에 북이스라엘은 이미 죽은 목숨과 같았습니다. 더 이상 미래가 없는 절망의 상황이었습니다.
아모스는 현재 이스라엘을 처녀 이스라엘이 무너진 시대로 여겼습니다. 다시 말하면 처녀 이스라엘이란 가장 활동적이고 강한 전성기를 의미합니다. 그 시기는 감히 어떤 외부의 세력도 이스라엘을 넘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천 명이 싸우러 나간 성읍에는 백 명만 살아남고, 백 명이 싸우러 나간 성읍에는 열 명만 살아남는 파멸의 길로 치닫고 있는 것입니다. 힘을 쓸 수 없는 다시 일어날 힘이 없을 정도로 완전히 엎드러진 절망의 때가 임박해진 것입니다.
그러나 선지자 아모스는 이런 파멸의 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길이 있다고 외치는 것입니다. 그 방법은 참으로 간단했습니다. 암 5:4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구원의 길, 희망의 길은 하나님에 의해서만 열린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든 한국의 백성이든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으면 산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부흥이라고 말합니다.
부흥이란 쇠하였던 것이 다시 일어나는 것, 쇠하였던 것을 일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곧 재건과 복구를 의미합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살다, 살아있다라는 말로 리바이브/리바이벌(revive/revival)입니다. 암 5:6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암 5:8의 말씀입니다. 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로 아침이 되게 하시며 백주로 어두운 밤이 되게 하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자를 찾으라 그 이름이 여호와시니라 우주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산다는 것입니다.
부흥의 출발은 분명히 믿음입니다. 언제나 믿음은 하나님의 일하심의 기초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하여 일하신다고 말을 하는데 사실은 그 사람의 믿음을 통하여 일한다는 말이 정확한 대답입니다. 그런데 아모스 선지자는 특히 찾는 믿음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찾아야 하는가? 누구를 찾아야하는가? 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입니다.부흥이란 하나님께 돌아오는 행위입니다. 선지자 아모스는 깨닫지 못하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암4:9-11절9. 내가 풍재와 깜부기 재앙으로 너희를 쳤으며 팟종이로 너희의 많은 동산과 포도원과 무화과나무와 감람나무를 다 먹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0. 내가 너희 중에 염병이 임하게 하기를 애굽에서 한 것처럼 하였으며 칼로 너희 청년들을 죽였으며 너희 말들을 노략하게 하며 너희 진의 악취로 코를 찌르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1. 내가 너희 중의 성읍 무너뜨리기를 하나님 내가 소돔과 고모라를 무너뜨림 같이 하였으므로 너희가 불 붙는 가운데서 빼낸 나무 조각 같이 되었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2.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이와 같이 네게 행하리라 내가 이것을 네게 행하리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로 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피했습니다. 범죄하기 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을 가려고 몸부림쳤습니다. 그 때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이 하신 특별한 일은 재앙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풍재와 깜부기 재앙, 팟종이 재앙, 염병 재앙으로 청년들이 죽고 성읍은 무너졌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무서운 것을 느끼지 못하는 영적 감각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고통의 때, 부흥이 필요한 때에 가장 시급히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거의 모든 교회들이 제 2의 부흥의 근원지가 되기를 사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 2의 부흥은 그냥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찾을 때 만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합니다. 잠 8:17에서는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만야 합니다.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보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보시고 겸손한 성도가 되시고 성숙한 신앙을 소유하시고 회복하시어 축복 받고 내가 살고 내 가정이 살고 우리교회가 살고 빛으로 희망으로 다시 살아나는 부흥의 역사가 온 성도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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