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어로 지성소를 '데비르'라고 하는데 이것은 내전(內殿) 으로도 번역할 수 있다. 지성소는 깊숙한 속에 있는 거룩한 내전인데, 그것은 '정방형'으로 되어있다. 정방형은 하나님의 완전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 정방형의 방 안에는 ‘하나님이 임재하신다’는 표로서 거룩한 궤, 언약궤를 안치하고 있다.

그런데 이 거룩한 장소가 이제는 성전 안에 있지 않고 각자의 마음속에 있게 되었다. 예수가 죽으심으로 지성소의 휘장이 찢어진 것은(마 27:51) ‘지성소가 특정한 장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만인의 가슴속 깊은 곳으로 분산되어 산재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이제 각자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거룩한 장소에 계시게 되었다.

삶의 지성소가 없는 사람은 가벼워 보이고 깊은 무게가 없어 보인다. 그 인간의 체구의 크기와 입은 옷에 관계없이 물량적인 것이나 가시적인 것으로 측정할 수 없는 무게, 큰 영, 깊고 거룩한 지성소를 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인물을 만나면 저절로 고개가 속여지고 마음에 찡하고 울려오는 전파 같은 것을 감지할 수 있다.

개인뿐만 아니라 어느 집단이나 민족도 지성소가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를 구가하는 나라가 아직도 왕위를 보존하고 있는 것이나 어떠한 특정 지역을 '성역화' 하는 작업은 모두 국민적 지성소와 관련이 있다. 옛적에 이웃나라 사람들이 우리를 통치할 때 창경원을 국민들이 거룩한 장소로 우러러보지 못하도록 동물원을 만들어 그 땅을 밟아 속화시키는 작업을 했는데 그것은 정치적인 의도에서 그랬던 것이다. 훨씬 오래 전, 로마군도 예루살렘에 쳐들어 와서는 제일 먼저 민족의 지성소인 성전을 파괴했던 것이다.

그런데 자기가 자기의 지성소를 파괴하는 천박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 속에 숨어 있는 거룩함을 아직 발견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 우리 모두 다 하나님의 말씀의 궤를 삶의 깊은 차원에서 다시 발견해야 하겠다(고전 6:19 이하).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이 말씀을 깊이 이해하면, 불가항력적인 무너짐의 현장을 보고 듣게 되어도 우리 믿는 자들에게는(우리에게도 언제라도 있을 수 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한 가지 위로와 소망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의 전인 우리의 마음(영혼)은 결코 파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도 자신을 파괴하거나 훼손해서도 안 된다는 뜻이며, 그 어떤 참담한 경우에도 세상의 모든 이웃들에게 이 ‘무너진 거룩한 마음(지성소)을 다시 세워주어야 할 사명’이 우리 신앙인들에게 있는 것이다.

신앙의 불모지라 할 수 있는 이웃나라의 참담한 대참사를 보면서 그들의 질서정연하고 눈물을 삼킨 의연한 대처에 큰 경의를 표한다. 부디 더 이상의 피해가 없이 이번 대참사를 잘 극복하길 바라면서 한편으로 그들의 심령에 그 어떤 것도 무너트릴 수 없는 인간영혼의 지성소가 있다는 진리에도 영안이 열릴 수 있기를 아울러 기원해본다. 점점 우리 신앙인들의 마음에 믿음을 지키게 하는 영적인 분별력이 요구되는 일들이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결국, 우리가 스스로가 무너질 것에 서 있느냐 어떤 경우에도 무너트릴 수 없는 믿음(지성소)에 서 있느냐 하는 일이 각자에게 남아 있음을 분명하게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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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원 목사_SAM USA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