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 7.0의 지진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가난하다는 아이티 국민 30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130만명은 집을 잃었으며 도시 대부분은 파괴됐다. 지진 직후 현장은 원자 폭탄을 맞은 상황에 비견될 정도로 참혹했다. 정신적 후유증으로 트라우마에 시달려 눈이 멀거나 정신병이 든 사람, 신체 불구가 된 사람이 수두룩했다.

전세계 정부 기관, 구호 기관들은 앞다퉈 아이티로 향했다. 몰려드는 구호물자 덕에 이재민 텐트촌이 생기고 텐트촌에는 양식도 풍성하다. 재래 시장 주변으로 7백여 미터 상권이 형성되어 있을 정도로 경제도 살아나고 있다. 절망감에 젖어있던 그곳 사람들은 아픔을 점차 잊어가고 희망도 찾고자 애쓴다. 구호는 구제 단계에서 재건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6월까지는 몇십만 명의 이재민을 먹이는데 구호가 집중됐고 7월 들어서 재건축 쪽으로 구호 방행이 선회됐다. 그러나 무너진 도시를 다시 세우는 일은 장기 프로젝트라 아직도 신중을 가하고 있다.

아이티를 돕는 일에 누구보다도 앞장 선 것은 개신교다. 한국 교계는 물론 미주 한인교회에서도 작은 고사리 손부터 노인까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헌금해 구호 기관, 교단 선교부, 선교사 등 곳곳에 전달했다.

뉴욕ㆍ뉴저지 교계, 단체, 개인들이 아이티선교회(대표 장기수 목사, Haiti Mission USA)에 전달한 헌금만도 12만불 가까이 된다. 아이티선교회는 2004년부터 아이티만을 집중적으로 선교해왔다. 현지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아이티선교회의 고민은 '어떻게 헌금을 사용해야 하는가'다. 헌금의 가치를 누구보다도 귀하게 생각하고 있는 아이티선교회는 2만여불을 구제비로 사용했을 뿐 나머지 금액은 아직도 사용하지 않았다. 재건 현황이 하루하루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배를 드리는 데 지장을 줄만큼 피해를 입은 교회는 1500개 이상이지만 미국과 캐나다 교회들이 일하기 시작하면서 복구되는 교회들이 늘어나고 있다. 아이티선교회는 다시 세워져 좋은 모델이 될만한 곳, 신실한 사역자들이 있는 교회를 찾고 있다.

"안먹고 안써서 모여진 돈인데 어떻게 함부로 써요. 건물 세워서 사진 찍기는 쉽습니다. 하지만 그곳 사람들이 홀로설 수 있도록 해주고 싶어요. 주는 기쁨이 가장 크다잖아요. 분명 그들도 받는 기쁨 보다는 주는 기쁨을 크게 느낄꺼에요. 그 즐거움을 줄 수 있게 함께하고 싶습니다."

이미 재건한 타바의 'Body of Christ, 실로의 Church of God 두 교회는 좋은 협력 관계를 갖고 있었고, 사역자가 신실하고 선교사나 다른 기관에 의존하지 않는 교회였다. 타바의 교회는 교회 청년 30여명이 동원돼 인건비도 절약하고 빠른 시일 내로 공사를 끝날 수 있었다. 더 기쁜 일은, 공사 후 한국의 한 건축 팀장이 이 청년들에게 건축 회사를 마련할 수 있도록 장비를 기증한 것이다. 청년들이 팀을 이뤄 건축업을 지속적으로 해 자급자족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줬다.

교회 재건과 함께 고려하고 있는 '우물 파기'도 '정수기 설치'로 대체될 가능성이 있다. 기존 선교 단체, NGO 중 우물을 파던 곳이 있지만 이들이 사역을 중단하고 정수기 설치로 방향을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마을에 우물을 파주는 것은 식수 공급을 위해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비용이 비싸고 수질 관리 등 지속적인 사역이 필요합니다. 아이티는 물은 풍부해요. 문제는 물이 양질이냐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있는 물을 깨끗하게 정수해주는 것이 비용이나 효율적인 면에서 나을 것 같아 연구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복음도 전하고, 지역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고 있는 아이티선교회는 커뮤니티 센터나 학교를 겸할 수 있는 교회 재건에 관심이 있다.

"학교를 통해 인재를 키우는 일이 필요합니다. 카톨릭은 이런 일을 잘하고 있어요. 개신교는 영적으로 이들을 살리기 위해 많이 노력하지만 이웃을 섬기는 일에는 취약합니다. 학교와 함께 이웃을 섬기는 공동체 사역을 개발해 선교 헌금을 쓰고자 합니다."



아이티선교회는...

▲아이티 현지 박병준 선교사(좌)와 아이티선교회 대표 장기수 목사(우)


1.5세 박병준 선교사와 1세 장기수 목사의 인연은 1994년도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고등부 전도사와 초등부 전도사, 한 교회 사역자로 만났다. 그 뒤로 만나고 헤어지길 몇 번 반복했다.

2004년, 최초의 한인 아이티 선교사였던 인승칠 선교사가 12년의 사역을 마치고 라파트리 지역의 다니엘선교초등학교와 건축 중이던 교회당 건물을 장기수 목사에게 헌납했다. 사역자를 찾고 있던 그는 박병준 선교사를 다시 만났다. 박병준 선교사는 인도로 선교를 다녀온 후였다. 3천여평의 대지에 세워지던 건물, 학생 3백명, 교사 13명이 준비된 사역지에 선교사가 파송됐다.

이후 교회를 완공된 교회에는 '뒤비비에 임마누엘 교회(Eglise Emmanuel de Duvivier)'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현재까지 교회는 성장하고 있고, 학생들은 다니엘과 세 친구처럼 미래의 아이티를 걸머질 크리스천 지도자로 양성되고 있다.

2005년 12월에는 아이티 타바 지역에 비전센터를 세웠다. 현지 사역자들의 훈련은 물론 선교사들의 영적 재충전의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선교사 숙소와 단기 선교, 의료 선교, 선교 답사팀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아이티선교회는 협력하며 함께하는 선교, 미래의 지도자를 양성하는 선교를 목표로 삼고 있다. 그래서 지진 이전에는 교회 사역자를 양성하고 젊은이들을 위한 영어 학교, 어린이 학교를 운영해왔다. 눈에 보이는 건물을 세우기 보다는 사람을 키우는 것이 의미있다는 판단에서다.

직장이 없어 무료한 시간을 보내며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하던 젊은이들이 박 선교사의 영어 학교를 찾아 ABC부터 배우다가 어엿한 직장인이 됐다. 어린이들은 기독교 교육을 통해 성장하고 있다. 교회 지도자들은 기도회와 사역자 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비전을 발견하고 수준을 한단계 높이고 있다.

"'선교'하면 고아원, 교회, 학교 등 건물을 짓는 일을 생각하잖아요. 건물은 물적 자원이 있으면 얼마든 세울 수 있습니다. 사람을 키우는 일이 힘들죠. 그렇지만 해야할 일입니다. 문제 의식을 갖고 교육하지 않으면 선교를 명목으로 도움 없이는 못사는 거지를 만들 수 있습니다. 자립할 수 있도록 키워야죠."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은 선교 현장에서도 통한다. 협력은 혼자할 수 없는 일을 가능케 한다. 지진 후 교회 재건이 바람직한 결과를 낳을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쌓아왔던 교제 덕이다. 현재 아이티의 모든 혜택은 수도권에 집중돼있다. 네트워크는 지방의 특수성을 살리고 다각도로 선교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기에 박 선교사는 네트워크를 통해 집중된 혜택을 지방으로 확산시키고 싶은 소망을 갖고 있다.

그래서 현지 사역자와 단기 선교 팀의 협력도 중요시한다. 단기선교가 현지 선교사들의 사역을 방해한다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지만 아이티선교회는 단기 선교의 장점이 분명 더 크다고 본다.

"현지 선교사는 단기 선교 팀이 방문하면 본인 사역을 쉬어야 해요. 그러나 VBS나 주일 학교 교습법 등 새로운 사역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현지 교회도 단기 선교팀의 협력으로 힘을 받습니다. 서로 협력한다면 얻는 것이 더 많아요. 또한 단기 선교사가 장기 선교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잖아요. 선교사 양성 측면에서도 바람직한 일입니다."

아이티선교회는 이점을 최대한 살리고자 원칙을 세우고 매뉴얼을 제작하는 중이다. 선교지로 떠나기 전 충분히 공부하고 현장에서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박병준 선교사는 16세에 미국 땅을 밟은 1.5세다. '1세와 2세 간의 다리'로서 1.5세를 표현하는 것에 박 선교사도 동감하고 있다. 아이티선교회는 1세 장기수 목사, 1.5세 박병준 선교사, 그리고 앞으로 사역을 이을 2세를 기다리고 있다.

"1.5세로 다민족 문화와 영어를 접했던 것이 선교사로서 가진 장점이었습니다. 미국의 한인 2세는 최첨단 기술과 교육 안에서 자랐어요. 가진 것이 많은 선교 자원이죠. 2세들이 현장에 오면 헌신하겠다, 달란트를 선교에 사용하겠다고 합니다. 2세들은 약속하면 꼭 지켜요. 앞으로 2세들이 헌신해 아이티선교회가 지속될 것이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