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본지는 지난 4월부터 6월에 걸쳐 총 10명의 신학 전공 유학생들을 만나 <목회적 영성과 신학적 지성이 만나는 그곳에서>라는 시리즈 인터뷰를 통해 이민교회 목회와 신학에 관해 논의해 왔습니다. 이 인터뷰를 통해 목회적 영성과 신학적 지성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모색하고자 했으며 또 양자 간에 어떤 점에 있어서 대화가 부족하며 증진되어야 하는지도 함께 고민했습니다.

이번 시리즈 인터뷰의 가장 주안점은 역시 신학교에서 신학훈련을 받으면서 동시에 시카고 지역 한인교회에서 목회훈련을 받고 있는 이들을 인터뷰 해 신학과 목회 두가지를 함께 논의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인터뷰 기간 가운데 현장에서 목회를 하는 많은 독자들께서 매우 긍정적인 격려와 함께 조언을 해 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또 이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담임목회를 하고 있는 목회자와의 의견 교환이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의견을 제안하신 분들이 많았기에 본지는 지난 7월 23일 나일스의 한 식당에서 “목회와 신학이 만나는 미래 이민목회를 말한다”는 주제로 4시간에 걸쳐 포럼을 개최한 바 있습니다. 이 포럼을 위해 많은 목사님들께서 시간을 내어 참여해 주신 것과 특히 김광태 목사님께서 신학생들을 격려하는 의미로 식사를 대접해 주신 것에 감사를 아울러 드립니다.

본지는 포럼의 내용을 3차례에 걸쳐 요약, 정리해 보도합니다. 1,2회에 이어 3회는 자유토론입니다.

주제: 목회와 신학이 만나는 미래 이민목회를 말한다
진행자: 백영민 목사(글렌브룩교회, 게렛신학교 조직신학 Ph.D.)
토론자: 서창권 목사(시카고한인교회, 비블리컬신학교 신약학 M.A.)
토론자: 김진양 목사(시카고루터란신학교 구약학 Ph.D. 과정)
토론자: 신동수 목사(휫튼대학교 조직신학 Ph.D. 과정)


백영민 목사: 우리가 이번 포럼의 발제와 코멘트를 통해서 신학과 이민목회에 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자유토론에서는 먼저 신학의 정의, 즉, 신학이 무엇이냐에 관한 것을 다시 나누어 보자. 신학교에서 말하는 신학과 목회 현장에서 말하는 신학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다. 우리는 목회자로서 신학을 어떻게 목회에 활용하고 있는가? 신학 부재 현상은 결국 이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신학을 목회에 도입하는 가장 직접적인 프로그램인 성경 공부에 관해서 토론해 보자.

김진양 목사: 결국 신학이란 것은 상황을 떠나서 있을 수 없다. 어거스틴도 알렉산드리아, 이집트 등에서의 경험 속에서 진주 같은 글들을 써냈다. 민중신학 역시 1970년대 전태일의 죽음에 대한 응답으로서 나타났다. 이민교회 신학 부재라는 말은 이민교회가 처한 현실 가운데 교회가 응답하고 대응하는 형식으로서의 신학 부재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서 목사님의 말씀처럼 이민교회에 대한 적절한 이해 없이 이민신학을 논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발제와 코멘트 가운데 바른 신학, 나쁜 신학이란 개념 역시 저는 그 상황 속에서 “사람을 살리는 신학”이 바른 신학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서창권 목사: 말 그대로 우리에겐 이민자들을 위해 정립된 신학이 없다. 주류 사회에서 활동하는 한인신학자들 가운데 이상현 박사님 등이 이민신학을 위해 많은 연구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사실 더 많은 이들의 참여와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며 그것이 현장의 이민 목회자들에게 충분히 전달되기까지 아직도 많은 난제들이 쌓여 있다고 본다.

신동수 목사: 신학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이 현실에 적용할 것인가를 주제로 한다. 이런 차원에서 신학은 반드시 바른 신학과 나쁜 신학으로 구분된다. 주류와 비주류가 생겨난다. 어떻게 성경을 읽고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구원에 이르게 하는 좋은 신학이 될 수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성경을 읽는 바른 신학의 전통 속에서 우리가 신학해 간다면 이민자들을 위한 신학 역시 효과적으로 발굴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목회자들이 개혁파적 전통을 알고 이해하고 회복하려는 노력부터 기울어야 할 것이다.

김진양 목사: 맞는 말씀이다. 그러나 유대교의 경우는 랍비 둘이 모여서 토론을 해도 두가지 답이 나온다. 그리고 그 두가지 답을 모두 존중한다. 한 개의 결론을 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이해를 나누는 것에 큰 의미를 둔다. 우리가 지금 신학에 있어서 주류, 비주류를 나누는 문제보다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읽어 내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서로의 대화 속에서 궁극적으로 올바른 신학이 무엇인가를 읽어내고 나누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건강한 이민신학이 도출될 수 있다.

백영민 목사: 신 목사님이 강조한 것처럼 전통에서 배우는 것, 김진양 목사님이 강조한 것처럼 상황 속에서 찾아 가는 것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전통은 과거의 것이지만 오늘의 우리 역시 전통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되겠다. 제가 가진 신학의 관점에서 저는 칼 바르트를 상당히 비판적으로 봐 왔지만 그가 처했던 역사적, 사회적 현실 속에서는 그의 신학이 상당히 적절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민중신학 역시, 한국이 민주화를 겪던 그 당시에는 충분히 고민할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민교회에 전통의 연장선상에서 이민교회가 처한 상황에 응답하는 이민신학을 어떻게 목회 현장에서 펼쳐 낼 수 있을지도 고민할 수 있다.

김진양 목사: 바울의 신학은 상황에 대한 응답이었다. 바울서신 전체에 흘러 나오는 신학적 개념들은 모두 그 편지를 받을 사람들이 처한 상황과 문제에 대한 대답들이었다. 그런 점에서 한인교회 혹은 시카고 지역 한인교회들이 처한 문제와 논쟁거리에서 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서창권 목사: 백 목사님의 제안대로 성경 공부의 문제부터 이야기 해 보면, 평신도를 그리스도의 제자로 키우는 과정이면서 목회의 동반자로 양성하는 과정이 바로 성경 공부이며 성경 공부가 없는 교회는 없다. 제가 볼 때 많은 한인교회들이 놓치고 있는 문제가 바로 교리 공부다. 모든 교회가 한 교리를 공부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가 서 있는 교단의 신학이 간단히 압축, 정리돼 있는 교리를 반드시 배워야 한다는 말이다. 심지어는 장로교 목사 안수를 받을 사람조차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읽어 본 적이 없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한인교회에서는 교리 교육이 등한시 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신학 부재를 말하는데 어떤 면에서 이 문제는 신앙의 부재, 신학이 밑바탕이 된 성경공부의 부재, 교리 공부의 부재라고 본다. 성경을 보는 눈이 곧 신학이다. 우리가 성경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반드시 교리 공부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평신도들도 성경을 제대로 볼 능력을 갖게 되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균형잡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신동수 목사: 한국의 많은 대학생 선교단체들이 시작한 것이 바로 60-70년대의 성경 공부다. 그리고 이것이 효과있는 양육 방식으로 인정받으면서 80-90년대가 되면 대다수의 교회들도 성경 공부를 도입하게 된다. 그런데 이 성경 공부들의 문제는 성경의 부분, 부분들에 대한 지식은 상당히 축적되는데 전체적 관점에서 읽는 방법을 안 가르친다는 점이다. 교회를 다니며 수년간 설교를 듣더라도 성경에 대한 지식이 단편적으로 축적될 뿐이다. 성경 공부를 하고, 수년간 교회를 다니며 설교를 들었으면 칭의가 무엇인지, 구원이 무엇인지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를 가져야 하고 그것을 통해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게 되어야 하는데 현재 한인교회의 성경공부는 그런 점을 간과하고 있다. 모든 성도들이 나름대로 성경을 읽는 수준에 그치고 만다.

백영민 목사: 저는 신학의 틀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교리라고 생각하고, 담임목사가 자신의 신학적 틀을 가르쳐 주는 것이 최고의 성경 공부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가진 것을 이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고민하고 있는 신학적 성찰을 성도들에게 설명해 주고 자신이 믿고 있는 틀로서 신학을 가르치며 수용 여부는 성도들에게 자유롭게 맡기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성도들이 담임목회자를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게 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안되지만 오히려 목회자의 가르침이 절대적이라고 믿게 하는 것도 크고 넓으신 하나님을 우리의 틀에 가두는 행위가 될 수 있다. 가르치는 것은 우리이지만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은 성령이시다.

아까 김진양 목사님의 말씀대로 시카고 이민교회가 처한 문제들의 면면을 살펴 보면 이 신학이 어떻게 이민교회를 살릴 수 있는지, 이민교회에 도움이 되는 신학은 어떻게 도출할 것인지, 이 신학을 어떻게 목회에 적용할 것인지에 논의의 초점을 옮겨가 보자.

신동수 목사: 어거스틴이나 칼빈 등 일생의 역작을 남긴 신학자들은 모두 목회 현장에서 부딪히는 문제에 대한 답으로서 책을 저술한 목회자들이었다. 저는 이민목회를 하시는 분들이 이런 일생의 역작을 하나씩 남겨 주시면 이것이 후세에 교본이 될 수 있고 이민신학을 정립하는 기초 사료로 사용될 수 있다고 본다. 저는 신학자들보다 오히려 10년, 20년씩 담임목회를 하면서 이민교회의 문제를 아는 분들이 쓰신 저술이 이민신학의 더욱 소중한 연구 자료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백영민 목사: 저도 현장 목회자가 책을 쓰며 이민신학의 체계를 잡아 가는 것이 정답이라고 본다. 지금도 우리 안에 일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믿고 그것을 믿음으로 따라 가는 것이다. 교회가 처한 문제들을 붙잡고 씨름하고 고민한 결과물이 바로 신학의 기초 자료가 되어야 한다. 이민교회라면 당연히 이민목회 현장에서 나온 목회자들의 목회와 신학의 산물이 이민신학의 기초 자료가 될 것이다. 제가 부탁드리기는 신학생들이 옛날 책, 유명한 저자가 쓴 책, 교수들이 쓴 책만 붙들고 자기 신학을 발전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웨슬리가 남긴 것도 설교였고 바울이 남긴 것도 편지고 설교였다. 그 가운데에서 신학을 조직화하고 체계화한 것이 신학이다. 이민목회자들이 목회 현장에서 겪고 느끼고 고민한 바를 펴낸 책들로부터 이민신학을 추출해 낼 수 있다. 우리는 목회를 하면서 목회 현장에서 성령의 움직임을 느끼고 그분의 음성을 듣게 된다. 문제는 신학교와 우리들이 얼마나 이런 경험들을 신학화 하기 위해서 노력하느냐이다. 그런 점에서 민중신학이나 해방신학은 현장의 경험을 신학화 하려 한 좋은 노력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김진양 목사: 제가 아는 성령의 역사는 곧 역동성이다. 갇히거나 고착되지 않고 계속 해서 움직인다. 성령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목사들이 자기 부족을 인정해야 한다. 성령의 역사는 목사뿐 아니라 성도들에게도 있기 때문이다. 사제 뿐 아니라 누구나 성경을 읽게 하자는 성경 번역과 종교 개혁이 역사를 함께 하듯이, 시카고 목회자들이 성령의 역사를 이야기 하고 목회 현장에 임하는 성령으로부터 이민신학을 찾아 가겠다면 자기 부족부터 인정하고 겸손해 질 것이다.

신동수 목사: 또 한가지 제안을 더 한다면 목회자들이 모여서 신학을 연구하는 모임이 필요하다. 그 분야의 전문가와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고 묵상하면 신학자와 목회자 간의 가교 역할도 할 수 있으며 목회자들 입장에서도 목회에 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백영민 목사: 오늘 이민신학에 관한 토론을 통해 우리는 이민자들의 삶을 품고 있는 이민교회가 현장에서 느끼고 겪는 문제들에 대한 응답으로서 이민신학 정립의 필요성을 재확인 했으며 이것은 대학의 높은 상아탑이 아닌 이민목회의 현장에서 이민목회를 고민하는 이들로부터 나와야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0년 이상 이민교회에서 담임목회를 해 오신 서 목사님께서 간단하게 마무리를 해 주시면 좋겠다.

서창권 목사: 저는 이번 토론을 하면서 이민신학에 관한 논의가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논의된 것처럼 이민교회에 많은 문제가 있고 이런 현장에서 이민신학이 필요하다는 점은 공감한다. 그러나 저는 이민교회의 현실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많은 문제가 있다고 하지만 이민교회가 공헌한 것도 결코 적지 않다. 그런데 왜 이렇게 몸살을 앓고 있으며 많은 문제가 있는가? 나는 이것을 신학 부재보다는 이민교회의 특수성에서 찾고 싶다. 이민교회만의 특성을 고려하고 배려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민교회 대부분이 열악한 환경에 있다. 첫째, 주일 출석 인원이 성인 100명이 넘는 교회가 총 미주 한인 이민교회 4천개 중에 10% 정도다. 시카고 역시 성인 출석 100명이 넘는 교회는 25개 내외다. 대부분은 50명 미만의 교회로 재정적, 인적 한계를 겪는다. 둘째, 2-30명, 혹은 40명 모이는 교회는 혈연 혹은 지연 관계로 맺어진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 사람들의 뜻대로 교회가 움직인다. 목회자를 교체하는 것부터 교회 내의 모든 문제를 교인총회라는 합법적 방식을 사용해 자기 마음대로 좌지우지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목회자의 운신의 폭은 한정돼 있고 그런 목회자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할 수 없다. 셋째, 교회의 구성원이 아주 다양하다. 한국 교회는 그 교회가 위치한 지역에 따라 그 교회에 출석하는 성도들의 수준과 요구사항이 대부분 비슷하다. 그러나 이민교회는 이민 온 연도, 교회 운영에 대한 요구, 교회에 바라는 바, 배경 등이 모두 다르다. 학력, 빈부, 신분, 이민성공 여부, 신앙 수준, 출신 교단, 인종, 국적 등이 너무 다양해서 한 교회가 감당하고 고려해야 할 요구 사항이 너무 많다. 그래서 이민목회가 10배는 더 어렵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한국교회 성도들의 요구가 10가지라면, 이민교회는 100가지라 볼 수 있다. 그러나 10가지 요구가 충족되어도 한가지가 충족되지 않으면 그것을 문제삼는 곳이 이민교회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그동안 한인교회는 많은 것을 이루었다. 이민자들을 위로하고 정착과 성공을 돕는 것부터 한인 2세들의 뿌리 교육, 신앙적 지도까지 정말 많은 일을 해낸 곳이다. 이제 조국교회에 양질의 목회자를 배출하는 시기까지 이르렀다. 최근 김승욱 목사 등이 한국으로 청빙받은 사건이 있었는데 나는 이런 사건이 이제 봇물 터지듯이 본격적으로 이뤄질 것이라 생각한다.이제 한국교회도 경제성장을 겪으면서 성도들의 요구가 다양해졌다. 권위적인 목회 스타일을 식상하게 여긴다. 지상사 파견, 출장, 유학, 여행 등으로 세계를 경험한 성도들도 많아졌다. 그러니 1.5세 이민 목회자들이 각광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이제 이민교회가 할 일이 참 많아졌다.

그리고 이제 미국교회에도 한인교회가 끼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채 1%도 안되는 인구를 가진 한인들이 교회에 있어서만은 30만개의 미국교회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학원 목회, 범아시안교회, 소수민족 교회 개척 등에 한인 2세 목회자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제 1.5세, 2세 가운데 신학을 공부한 이들이 신학교 교수로 진출하기 시작하면 5-10년 뒤에는 미국신학계에 상당한 부분을 기여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이민신학을 논의하며 이민교회의 상황과 문제에서 이민신학을 시작하지만 비난 혹은 비판 일변도가 아니라 이민교회가 가진 특수성을 반드시 고려하는 신학이 되어야 하며 이민교회의 긍정적 기여와 노력을 반드시 칭찬해 주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