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을 막론하고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한 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것 같다. 부자관계는 누구보다 최고의 친구가 될 수도 있지만, 또한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가장 증오하는 원수가 될 수도 있는 역설적 관계다.

영국 베스트셀러 작가 블레이크 모리슨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영화화한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언제입니까?>에도 애증(?)의 관계라고밖에 할 수 없는 한 부자(父子)가 나온다.

영화는 주인공 ‘블레이크’(콜린 퍼스 役)의 나레이션으로 시작된다. “우리의 아버지는 실패하지도 않고, 패배하지도 않고, 심지어 죽지도 않을 것 같았다. 당신이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언제입니까? 다른 누구도 아닌 진짜 아버지를…….”

▲영화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언제입니까>의 한 장면.


블레이크의 아버지 ‘아서’(짐 브로드벤트 役)는 아들의 시각에서 보기엔 그야말로 괴팍한 노인네다. 암에 걸려 죽어가면서도 택시 승차는 “사치”라고 잔소리하며, 살아생전 어머니를 홀로 두고 옆집 아주머니와 바람을 피우는 것 같았다. 아들은 아버지가 불륜에 빠졌다고 확신한 이후 단 한 번도 아버지에 대한 애정을 느끼지 못하고 아버지를 죽이는 모티브의 소설을 읽을 정도로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분노’를 쏟아낸다.

아버지와 대화조차 없던 블레이크 역시 시간이 흘러 한 가정의 가장이 되고, 아이들의 아버지라는 자리에 놓인다. 그러던 어느날, ‘영원히 죽지도 않을 것 같던’ 아버지가 갑자기 암 선고를 받고 임종이 얼마 남지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블레이크는 기억하고 싶지 않던 과거를 회상하며 아버지가 자신과 가족들에게 했던 행동들을 떠올린다.

단둘이 자동차를 타고 캠핑여행을 떠나며 운전법을 가르쳐주시던 아버지, 어느 크리스마스 저녁 어머니와 심하게 다투던 아버지, 대학입학을 앞두고 집을 떠날 때 으스러지게 안아주시던 아버지……. 너무나 괴팍하고 서투른 애정표현에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던 블레이크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야 비로소 그 분의 진심과 사랑을 깨닫고 하염없이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사랑은 허물을 덮어주는 것이라 하던가. 아비가 자식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듯, 자식도 아비의 허물을 덮어주고 있는 그대로 사랑해야 하거늘, 우리 못난 자식들은 영화 속 블레이크처럼 아버지의 잘못된 행동(‘잘못됐다’는 판단은 전적으로 한계를 지닌 나의 좁은 시각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을 발견하면 함부로 판단하고 소통을 거부하고 전혀 이해하려들지 않았던 모습이 있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하루하루 바쁜 일상과 직장생활의 스트레스로 인해 자녀들과 대화조차 할 수 없는 상황 그리고 가부장적 권위 속에 갇혀 나오려 하지 않는 우리 시대 수많은 아버지들……. 자녀와의 관계 단절, 대화 단절로 어느새 가족들 가운데 ‘왕따’가 되어 홀로 외로워하고 있지는 않을까?

아비가 아무리 자녀를 노하게 하더라도 자식된 우리에겐 먼저 그분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야 할 이유와 의무가 있다. 겉으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그들은 우리가 언제고 말을 걸까 항상 마음 속으로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