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간에 대한 참된 평가란 생전이 아니라 사후에 비로소 주어진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분은 재임시절 정치적으로는 거의 파산에 이르렀다. 퇴임 후 그분은 가족이 연루된 뇌물 수수혐의로 검찰에 소환되어 사법처리 직전에까지 이르렀다. 뇌물 스캔들에 관련된 언론 보도는 그의 고유한 자산인 청렴성과 도덕성 이미지까지도 추락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일그러진 그분의 이미지는 그분의 서거 소식과 함께 그분에 대한 추모의 열기로 변모되었다. 그분의 죽음의 방식이 일국의 대통령에게는 부적절(不適切)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열기는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현상이다.

한국 국민(韓國 國民)의 묘한 집단 심리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 소식은 전 국민을 놀라게 하였고 전 국민들을 모두 애도의 물결로 몰아 넣었다. 국민들의 애도의 물결은 수만, 수십만, 백만을 넘었다. 행정안전부에 의하면 그분의 서거(2009년 5월 23일) 뒤 25일부터 5월 29일 오후 6시까지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102개 분향소에 98만5531명이 조문했다고 한다. 장례위원회의 추산에 의하면 민간에서 운영한 233개 분향소에는 500만명이 넘는 국민의 발길이 이어져 그분을 가슴에 담았다고 한다. 운구차가 경복궁에서 영결식(永訣式)을 끝내고 서울 광장에서 노제(路祭)를 지내고 서울역으로 향할 때 시민 3천명이 운구를 가로막고 떠나 보낼 수 없다고 하면서 3시간이나 지체시켰다. 수십만의 시민들이 참여하여 운구차가 제대로 갈 수 없을 만큼 그분에 대한 추도의 열정을 뜨거웠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 최규하, 윤보선 대통령 때에도 이만큼 추도열기가 강하지 못했다. 그것은 “국민들 가슴에 심어진 대통령,” “우리는 당신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대통령”이라는 추모글귀들에 나타나고 있다. 만일 그분이 이번에 나타난 국민들의 추모열기를 알았다면 반드시 자살이라는 극단 방법을 택할 필요가 있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분의 빈소(殯所)와 분향소에 길게 늘어선 추모행렬, 그분을 정치적으로 상징하는 노란풍선과 노란색 종이모자의 물결, 국민들의 열광적인 추모와 애도의 열기를 감안하면 그분의 정치실험은 집권 시절 당시에는 실패했으나 국민을 향하고 나라를 향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던진 “국민의 대통령”으로서의 노무현은 실패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분은 자살이란 적절치 않은 방법을 통해 정(情) 많은 한국민의 가슴에 “국민의 참 대통령”으로서 영원한 추모의 지도자로 자리매김하였다. 지도자란 자기 마음대로 죽을 수 없는 자이다. 민족과 국가를 위하여 살신성인(殺身成仁)할 때 지도자의 죽음은 고귀한 것이다. 그런데 그분의 현실도피적인 자살은 국민들에게 비난받기보다는 “오직 했으면 그렇게 했겠나”라는 방식(方式)의 동정적(同情的)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것은 한국인들 사이에서만 통하는 묘한 집단 심리현상이 아닐 수 없다.

2009년 5월 29일 뉴욕타임스는 노 전 대통령 사망과 관련 다음같이 보도했다: “고향 마을 뒷산 바위에서 뛰어내려 자살하기 전 그의 명예는 만신창이였다.” 그런데 그는 자살로 인하여 “명성을 지키고자 자살을 선택한, 존경할만한 사람으로 바뀌었다.”

정치적으로는 파산(破産)했으나 인간적으로는 정(情)을 남긴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이 우리 사회에 남긴 아름다운 면모와 업적은 다음같이 서술할 수 있다. 첫째, 그분은 5년간 국정을 운영하면서 우리 사회에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지역구도를 타파하려고 힘을 기울였고, 서민들의 고충을 덜어주려고 노력하였다. 그의 재임시절에 서민(庶民)들을 위한 사회복지시설이 많이 확충된 것은 그의 공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그분의 재임시절 “국민들이 대통령”이라는 느낌을 주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는 “시민이 민주사회의 중심이 되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였다. “서민이 슬퍼서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였고, “정정당당하게 노력하는 자가 잘 사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였다. 그분은 그 자신이 상고(商高)출신으로 독학하여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인권변호사를 거쳐 국회의원이 되고 드디어는 국가의 정상(頂上)에 오르는 등 서민들의 희망이 되었던 것이다. 서민들의 인권과 사회의 빈부격차 해소및 지역균형발전을 위하여 노력한 지도자였다.

둘째, 그는 서민적(庶民的)이었고 지지자들로부터 “바보 대통령”이라는 호칭을 즐겨 받을만큼 진솔한 인간적인 면모를 갖추었다. 그분 자신도 이 별명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하였다. 정치인이 원칙과 신념에 충실하는 것을 “바보”라고 하였고, “이 바보정신을 실천하면 나라가 잘 된다”고 역설하였다. 그는 재임 중 제왕적 대통령상, 권위주의적 대통령상을 뿌리뽑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이 면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이분이 가지신 장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저 들에 높푸른 솔잎을 보라”는 상록수 노래를 애창했고, 기타를 가지고 “사랑으로” 라는 노래를 애창했던 그는 권위주의적 지도자와는 다른 인간적인 면모를 가졌다. 대통령 임기가 끝나고는 고향마을로 돌아가 그곳에서 농촌개량 및 환경 사업을 하는데 전력하였다. 이것이 서민들에게 크게 어필하였다. “집 가까이 아주 작은 비석” 하나 세워달라.“는 그의 유언에서도 그의 서민적 정취가 나타난다.

셋째, 그분은 검찰수사의 압박을 받으면서 검찰 사법처리 직전, 모든 책임을 스스로 지고 이 사건을 마무리하려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다. 그는 유서(遺書)에 “주변 사람들의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많은 분들에게 짐만 된다” 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누를 더 이상 끼치지 않기 위하여 자신이 이 모든 짐을 지고자 한 것이다. 그러면서 “미안해 하지 말라”,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이 글은 우리 사회의 반목과 갈등을 메우기 위하여 지지자들과 국민들에게 화해를 당부한 것이다. 서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나가라는 것이다. 그분은 자살이라는 선택이 즉흥적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오래된 생각”이라고 유서에서 밝히고 있다.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의 희생양이 되고자 한 정신이었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이 희생양이 됨으로써 자기와 연루된 많은 사람들을 어려움에서 구하고자한 숭고한 정신이 있었다. 여기에 그의 지도자다운 면모가 있다.

넷째, 그분의 참여정부는 지나친 정치논리로만 나아가 정책실패를 거듭하였다. 그리하여 정치실험에서 파산에 직면하였다. 그분이 창립한 열린 우리당은 집권말기에 이르러 공중분해되고, 그분의 후계자들은 저조한 민심의 지지 때문에 정권을 계승하는 데도 실패하였다. 그분이 내건 진보정책(특히 부동산정책과 세금정책 등)과 구호들은 이상적(理想的)이었으나 깊은 연구와 현실성이 결핍하여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그분은 정치인 노무현이라는 인간적인 면에서는 성공하였다. 그분은 재임중 수뢰(收賂) 혐의로 표착된 수십억원 때문에 청렴한 정치인이라는 그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분이 그동안 신념과 원칙을 위하여 몸을 던진 그 정신이 그분의 극단한 행동에서도 나타나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그만한 허물은 법적 책임을 물은 다음에는 망각한다. 이번 추모열기를 본다면 비록 그분의 죄는 인정하더라도 인간 노무현에 대한 국민들의 정(情)과 지지(支持)는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지도자도 인간이기 때문에 아내와 자식의 일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비록 기소되고 감옥에 갔더라도 그분은 국민들로부터 용서받을 수 있었고 얼마든지 재기(再起)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분 형이 말한 것처럼 “너무 성급하게 결단을 하였다”는 아쉬움을 달랠 수 없는 것이다.

다섯째, 그분은 정(情)이 많은 국민들의 지도자였다. 우리 국민들은 매우 정이 많은 민족이라는 것이 이번 그분의 별세 후의 추모열기에서 다시 한 번 증명되었다. 지난 5년간 그분의 정치 리더십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는 냉정하였다. 당선 후 그분이 여당에 의하여 탄핵소추되자 국민들은 동정(同情)으로 그를 지지해주었다. 그 후 그의 당은 각종 선거에서는 패배했을 뿐 아니라 여론지지도에 있어서도 10%대에 머물렀다. 국민들은 그분의 정치적 실적에 대하여는 모진 평가를 하였다. 수치(數値)면에서 본다면 그는 정치적으로 파산선고를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분이 퇴임 후 검찰의 법적 수사에 직면한 어려움에 직면하여 사법처리 직전에 이르기까지도 그분에 대한 동정여론은 일어나지 않았다. 봉하마을 사람들만 그분을 막아주었다. 그분 주위의 정치 동지들도 가만히 엎드리고 불똥이 자기에게도 튈까봐 검찰의 칼날을 피하느라고 엎드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분이 막다른 벼랑 끝에서 몸을 던지고 목숨을 끊자마자 그를 애석하게 생각하는 국민들의 추모의 열기가 고조되자, 이제 “누가 그를 죽였는가?” 아우성을 치고 있다. 이율배반적인 행동이다. 그리고 국민들의 집단 심리는 자살 직전 만신창이 된 그분을 다시 명예를 지키려고 죽음을 선택한 영웅으로 만들었다. 그러므로 우리 한국민들은 너무 감정적이고 정(情)이 많은 민족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분은 정 많은 민족의 대통령이었다는 점에서 그는 비록 고인(故人)이 되었으나 그 많은 국민들의 추모를 받은 행복한 지도자라고 말할 수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별세에 대한 몇 가지 아쉬움이 있다.

너무 빨리 포기하고, 문제에서 도피하는 노무현 증후군(症候群) 만연 우려

첫째,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버팀목 하나가 그분 자신의 성급한 판단으로 말미암아 너무 빨리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이번 추모열기는 가히 한국민들의 노무현 증후군이라고 부를 만큼이나 사회를 한 군데로 집중시켰다. 그만큼 그분은 국민들의 마음에 자리잡은 정치 지도자였던 것이다. 만일 그분이 극단한 선택을 하지 않고 마음 든든히 먹고 떳떳이 검찰조사도 받고 감옥에 갔다 나왔더라면 더욱 정치적 연륜이 쌓이고 극단적 보수를 견제하고 우리 사회의 중도적 진보층을 끌어 안는 역할을 감당하게 되지 않았겠는가 생각된다. 그렇지 못한 것이 정말 아쉽다. 사회란 극단한 공산주의 세력을 제외하곤,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가 같이 공존하면서 발전을 이어가는 것이다. 좌파나 우파나 각기 그 그룹에 속한 자들을 이끌고 가는 지도자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사회의 진보적인 지도자의 대들보 하나가 너무 빨리 사라진 것은 민족적인 손실이다.

둘째, 아직도 우리의 사회안전망은 일인당 2만불이라는 국민소득에 비하여 후진(後進)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는 전직 대통령이 자살하는 오명(汚名)을 지닌 나라라는 딱지가 붙게 되었다. 전직 대통령이 피할 수 없는 질병이나 사고에 의하여 죽은 것이 아니라 정치 보복성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 검찰조사 과정에서 자살하는 수준의 사회라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한국은 경제적으로는 세계 10위권에 들어가는 경제대국을 이루었다 하지만 삶의 만족도가 낮을 뿐 아니라 최고 정치지도자가 자살을 하는 나라가 되어 버렸다. 이것은 나라의 사회적 수준이 정신적으로 덜 성숙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어느 선진국에서 최고 정치지도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있는가? 이런 면에서 보면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다. 뉴욕타임스에 의하면 국제 변호사로 한국 헌법재판소에서 연구관으로 일한 적이 있는 션 헤이즈에 의하면 “한국과 일본에서는 자살이 왕왕 수긍할 수 있는 해결책으로 간주된다”면서 “서구인들은 이런 상황에서 자살을 어려운 상황을 견딜 만큼 정신적으로 강하지 않은 사람의 이기적인 행동으로 생각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셋째, 자살(自殺)이 한국인의 심리적 보편(普遍)증후군(症候群)으로 자리잡지나 않을까 염려가 된다. 자살이란 성숙한 인간에게는 사태 해결의 길이 아니며, 지도자에게는 더구나 해결의 길이 아니다. 지도자는 사사로이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다. 죽어서도 안 된다. 지도자의 행동은 지지자들의 행동의 규범이 되기 때문이다. 그분은 조여오는 압박으로 다가오는 검찰 수사에 너무나 스트레스를 받은 것 같다. 그래서 “고통이 너무 크다”, “건강도 좋지 않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고 마치 본인이 폐인이나 된 것 같은 절박한 심경을 토로하는 유서 내용은 인간 노무현의 신체적 정신적 한계를 나타내 보이고 있다. 그런데 그분은 한 나라를 이끈 분이고 여전히 전직 대통령이라는 신분으로서 그러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강인한 삶의 의지를 보여주어야만 했다. 우리나라는 5천년 역사를 통하여 오면서 중국, 몽고, 일본이라는 강대국의 침략과 압제 속에서 수백번이나 국토와 정신을 유린당하면서 반만년(半萬年)을 버티어 온 나라이기 때문이다. 국가의 지도자는 그러한 역사적 의식으로 감옥에도 가고 버티어야 했다. 이러한 의식은 지도자에게 있어야 할 자격과 품성의 주요 요건이다. 우리 선조 안중근, 류관순, 김구, 이승만 등은 이러한 지도자가 아니었는가? 이것을 보여주지 못하고, 극단한 자살을 선택한 것은 그를 좋아하는 많은 국민들에게 혹시나 자살 증후군이라는 심리적 암시를 심어주지나 않을까 걱정이 된다. “대통령도 살기 힘드면 죽는데 나 같은 것은 죽어도 된다”는 생각이 특히 젊은 이들, 그를 지지하는 층에게 확신될까 심히 우려된다.

우리 사회에는 1년에 자살하는 자들이 1만2천명이나 된다고 한다. 그러니 더욱 우려가 되지 않을 수 없다. 벌써 인천에서 여대생이 “나도 노통(盧統) 따라간다”고 목매어 자살하였다는 신문보도가 나왔다. 자살이 모든 일의 도피처가 될 수 없다. 생명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서 귀중하고 존엄한 것이다. 우리 인간은 이 하나님에 대하여 최선의 삶을 살도록 노력함으로써 우리 삶을 존귀하게 만들어야 할 책임이 부과되고 있다. 자살이란 특히 신앙인에게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으며, 하나님에게 불순종하는 것이며, 하나의 죄이다.

그리고 사후(死後)에는 대통령이나 왕이거나 재벌이거나 연기 연예인이나 체육인이거나 간에 모든 인간은 우주의 통치자이신 하나님의 흰 보좌 앞에 서서 최후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사도 요한은 그의 계시록에서 종말론적 심판의 모습을 다음같이 환상으로 보고 있다: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계 20:11-15).

사후 심판의 근거는 우리의 삶을 기록한 책이다. 믿음을 가진 선한 사람의 삶은 생명록에 녹명되고, 그러지 못한 사람의 삶은 사망록에 녹명되어 있다. 이 책이 최후의 심판의 증거물이 된다. 오늘날 중요 공공기관에 CCTV가 설치되어 있어 그곳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이 자동적으로 기록되는 것처럼 하나님이 대자연에 설치하셔서 우리의 삶 전체를 자동적으로 촬영케 하는 장치가 얼마든 있을 수 있다. 예전에는 우리의 이름과 삶이 생명록과 사망록에 녹명되어 있다는 말씀을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과학이 잘 발달된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CCTV는 하나님의 심판 장치의 유비(類比)가 될 수 있다.

넷째, 운명론(運命論)적인 사고방식의 만연(蔓延)이다. 그분은 유서에 “삶과 죽음이 자연의 한 조각이 아닌가?” “운명이다”라고 피력하였다. 여기서 그분의 인생관은 노자(老子)의 사상과 연관되어 있다. 그분은 일국의 대통령이 되었고, 이제 퇴임하여 검찰조사를 받게 되어 목숨을 끊는 모든 과정을 하나의 운명으로 돌리고 있다. 그래서 그분이 자기답지 못한 운명론적 사고방식에 순간적으로 빠져들어갔다는 아쉬움을 달랠 길이 없다. 인간은 자연의 한 조각이기는 하지만 프랑스의 기독교 사상가 파스칼(Rene Pascal)이 말한 바와같이 자기의 불행함을 자각하는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이다. 도교(道敎)와 불교사상(佛敎思想)은 인간을 거대한 자연의 과정 속의 하나의 파편으로 보지마는, 성경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形像, image)으로 본다. 인간에게는 물질의 과정으로 환원시킬 수 없는 영혼이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간의 영혼은 천하보다도 귀하다고 가르치셨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 16:26). 그리고 인간의 영혼을 구속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독생자가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리만큼 하나님은 인간을 존엄스러운 존재로 보시는 것이다. 인간의 몸은 흙으로 돌아가나 영혼은 창조주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 창조주 앞에서 모든 인간은 사후(死後)에 자신의 삶에 대한 결산을 해야 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증언한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운명론이란 결단코 발전하는 나라와 국민들의 사고방식일 수 없다. 경제적 사회적으로 덜 발달한 인도나 파키스탄 등 남아시아 지역의 모슬렘 지역은 힌두교적인 운명론이나 이슬람적인 운명론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가난한 자들은 가난을 자기의 운명으로 보고 거기서 탈피할 노력을 하지 않는다. 기독교에서는 예정론(豫定論)은 받아 들이나 운명론(運命論)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인간의 삶과 죽음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예정과 섭리에 있다. 이것은 결코 운명론과 같지 않다. 예정론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에 대한 인간의 자유의지적 결단과 책임을 요구한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은 철학적으로 논리적으로는 이율배반적이나 신학적으로 신앙적으로는 조화된다. 그러나 운명론은 자연의 맹목적인 의지를 전제로 자신의 불행을 인간이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자연의 가혹한 의지의 탓으로 돌린다. 그러나 성경은 자연의 맹목적인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격적이고 주권적인 의지에 인간의 책임있는 의지의 결단을 요구하고 있다.

고인(故人) 추모에 하나된 국민의 에너지를 화합과 통합으로 승화(昇華)시키자

고인은 유서에서 “미안해하지 말라,” “누구를 원망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다. 이제 영결식이 끝나고 일상으로 되돌아와 우리는 경제를 일으키고 나라를 발전시켜야 한다. 이럴 때 만일 야당 정치인들이나 과격한 시민들이 그분의 서거(逝去)의 원인을 정치적으로 각색하여 현 정부에 돌리고 정쟁(政爭)을 일삼고 다시 국력소모적인 촛불시위를 일으키려 한다면 그것은 그분의 뜻에도 어긋날 뿐 아니라 그분의 죽음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그것으로 인한 사회의 혼란 야기는 그분의 죽음을 불명예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2002년 월드컵 때 축제의 열기로 온 국민의 열기가 하나된 것처럼 이번에 다시 한 번 우리 사회는 추모의 열기로 우리 온 국민이 하나가 되었다. 이것을 정쟁(政爭)이나 촛불시위로 변질시켜서는 안 된다. 이것은 고인(故人)에 대한 예의(禮儀)도 아니고 정치도의(政治道義)에 맞지도 않다. 오히려 사회구성원들 하나하나가 자신들의 허물을 성찰하고 다시는 이러한 비극적인 일들이 생기지 않도록, 정치풍토와 사회의식을 보다 성숙한 차원으로 끌어 올려야 한다. 여당과 집권당국도 마찬가지로 정치적 대적자에 대하여 표적 수사(搜査)를 하는 등 정치적 보복을 하는 후진성을 탈피해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깊이 그러한 경향이 없었는지 성찰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한 지도자를 영원의 세계로 보내고 이제 남은 우리 국민들은 그분의 유지(遺志)를 잘 받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서로 원망하지 말고, 용서하고 화합하고 국민의 새로운 통합으로 나아가는 계기를 만들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