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에는 다른 복음서에서 볼 수 없는 내용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생명 유지법으로 죽음으로 생명을 살리는 방법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마침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만백성의 생명을 살리는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요12:25)

이 말씀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 많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자기 생명을 희생하고 헌신하게 될 때 그 생명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더욱 값진 생명이 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처럼 자기 생명을 지키기 위하여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현장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것은 어떤 것이며, 또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요?

서로가 이기고자 하는 세상이고 보면,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희생과 헌신이 우선이어야 하기에, 지는 방법을 택하는 사람이어야 할 것입니다.

지고자 하지 않고 이기고자 한다면, 오늘의 현실에서 살아 남기 위해 단 하나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데, 그러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걸어야 할 목숨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세상에서 지고자 하는 자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사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목숨을 하나님 나라에 가져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고 믿는 사람을 이길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 사람과는 싸워서 져야지 그 사람을 이길 수 있는데, 누구나 싸워서 이기고자 하는 세상에서 지고자 하는 사람을 어떻게 이길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두 가지 면에서 가능할 것 같습니다. 하나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어찌하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려 하기에 가능한 데로 예수님처럼 자신이 죽어지고, 깨어지고, 썩어지고자 할 것입니다. 누가 말리겠습니까?

둘째는 하나님 나라에 목숨을 건 사람입니다. 결코 이 세상의 것에는 목숨을 걸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것을 얻기 위하여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양보하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이 세상에서 없으면 없는 데로, 아프면 아픈 대로, 손해 보면 손해 보는 대로, 지면 지는 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직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 임이요”(마5:3)의 예수님 말씀처럼 가난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자일 것입니다.

옛날 어른 들이 “지는 게 이기는 게다.”고 하신 것을 보면 가난을 미덕으로 삼고 살던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하늘에 깊었는가를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